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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그럴싸하게 골랐는데, 어쩐지 나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듯하다.
세살배기 어린아이를 데리고 우리나라도 아닌 낯선 타국을 여행한다는 것은, 분명 흔치 않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왠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과연 기억이나 할까.
전혀 부럽지 않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터키 여행의 소소한 정보를 얻고자 한다면 그닥 권하고 싶지 않다. 그저 사랑스런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으로 감탄만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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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지금 3살배기 아들이 있고 작가가 여행을 떠날때의 나이가 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데리고 1.5 일본여행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지 못했다 만약 이 책을 읽었더라면 조금더 행복하고 즐거운 여행을 다녀왔을텐데 힘든일을 힘들지 않게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가장 짧은 유년의 아이와 가장 긴 행복을 갖게 하는 방법을 이책은 가르쳐 준다 여행의 방법이나 길을 알고 싶다면 이책은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짧고도 긴 시간을 갖고 싶다면 이책은 꼭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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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파트 공터에서는 키 작은 꼬마 아이가 얼음 조각을 차며 놀고 있다. 신선한 풍경이다. 아이는 그 짧은 다리로 잘 보이지도 않는 얼음 조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걷어차고는 간혹 균형을 잃고 풀썩 넘어지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몇 센티쯤 옮겨간 얼음 조각을 보며 깔깔대며 웃는다. 아이는 마치 얼음 조각을 옮기는 것이 제게 맡겨진 커다란 소임인 양 이내 일어나 또다시 집중한다. 이번에는 아이의 발이 허공을 가른다. 두꺼운 코트때문인지 이번에도 풀썩 주저앉았다. 헛발질이 무안했는지 아이는 울지도 않고 일어난다. 주차되었던 차 한 대가 그곁을 무심히 지나간다. 아이에게서 조심성이라곤 도통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은 어찌 되어도 좋다는 투다. 아이에게는 지금 얼음 조각이 세상의 전부다.
그렇게 혼자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넋이 나간 듯 지켜보았다. 나이에 비례하여 열정이 식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열정만 식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도 잃어간다. 나는 한동안 이름도 모르는 동네 꼬마를 지켜보며 오소희 작가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읽었다. 세 돌 된 아들과 함께 터키를 여행하고자 했던 작가의 결단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몰라도 그 여행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많은 생각들이 오갔으리라.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 나는 아이에게도 혼자 걷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무척 노력했다. 어떤 엄마들에게는 가베나 오르다 같은 것이 중요한 교육적 선택이 되는 시기에, 나는 아이를 부단히 데리고 다니며 걷게 했다. 열이 오를 때에도 졸음이 쏟아질 때에도 아이는 더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제 힘으로 걸었다." (p.126)
여행에 무슨 기술이 필요할까마는 여행의 동반자를 선택하는 일은 내가 원했던 여행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여행의 동반자가 짐보다 더한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고, 더없이 믿음직한 친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 경험이 전무한 여행초보자라고 할지라도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꼬마를 여행의 동반자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의 시각과 보조에 맞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오히려 말없는 짐짝만도 못한 훼방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길 사람이 대부분일 이지 않을까? 그러나 작가는 용감(?)하게도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행을 감행했다.
"처음에 나는 아이를 이곳에 데려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오래전부터 이곳에 올 예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에게 가방을 들게 하고, 자신의 힘으로 이곳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이의 첫 걸음마, 첫 번째 열감기, 처음 내지른 일성, 이 모든 것들은 매일매일 또 다른 '오늘'을 위해 성실히 축조된 밑계단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내가 끌고 가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열린 마음이 닿는 곳까지 가는 것이다. 이 아이의 인생은 오롯이 이 아이의 것이다. 내가 주관할 수 있는 것은 가방을 들어주는 정도의 일일 것이다." (p.170)
그렇게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던 중빈이는 올해 중학생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제3세계 국가를 중심으로 무려 25개국에 발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아장아장 걷다가도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의 행렬에 자신의 온 시선이 빼앗기곤 하던 아이는 이제 자란 키만큼이나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인 오소희 작가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의 중빈이를 그리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여행이란 아이의 시선으로 즐기지 않으면 고통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여행자가 아이의 보조에 맞출 자신만 있다면 아이는 여행에 있어 최상의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초원의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어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이란,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일이다. 나는 터키 여행을 통해 아이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보았다. 샴쌍둥이처럼 붙어 지내던 시기를 마감하고, 둘 사이의 적정한 간격을 보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더 잘 보였다.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고 싶은 것만이 분명해졌다. 나는 더 떠돌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었다." (p.301)
여행기는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경계가 뚜렷하다. 사진과 경로를 곁들여 단순히 여행지의 소개에 그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과 작은 깨달음을 위주로 쓰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물론 후자를 즐겨 읽는다. 그렇다고 여행기를 그닥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들 녀석과 단 둘이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이해하려고 한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바빴고, 나는 언제나 피곤했다. '언젠가'하고 게획했던 일들이 이제는 '다시는'이라는 메아리로서 존재할 뿐이다. 아들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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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어쩌면 이렇게 멋진 표현을 구사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하며 책장을 넘기니 더욱 더 나를 놀라게 하는 저자의 프로필에서 그 답안을 구할 수 있었다. 옛말에 [자식을 큰 인물로 만들려면 여행을 시켜라]라는 격언이 있다. 자식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지 말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온갖 삶의 방법과 수단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과 이로움을 주는 거짓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자는 36개월 아들인 중빈이와 함께 해외 배낭 여행을 즐기는 낭만파이자 실속파 주부이다. 감히 우리네는 엄두를 내지 못할 일에 저자는 두려움 없이 그 모든 것을 본인의 의지만으로 아들과 사막을 보기 위해 아랍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맞춰가며 작은 세상에서 움추렸던 기지개를 활짝 펼치고 거대한 세상에 몸을 과감히 내던지며 그 긴 여정속에서 그들의 문화와 정감어린 사진들로 인해 보는 이가 가까워지는 느낌이였다. 제일 나의 오감을 자극하며 공감하는 부분은 [올림포스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196쪽에서 저자가 이 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여행에 대한 정의를 정립하는 속내가 드러난다. 내가 10대였을 때는,누군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내가 하기 어려운 일을 앞장서 해준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불과했다. 내가 20대였을 때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신의 삶을 성실히 영위하는 것은 '먹고 살기 위해 당연한 일이었다.그러나 지금 30대인 내게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자신의 삶을 성실이 살아가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것에도 부단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노력과 결심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고 비로소 말하고 있다. 이 부분들은 저자가 말하고자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한 여행의 괄목상대할만하다. 읽는내내 저자는 자기만의 평화스런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 곳을 그려나가고 있었으며 동시에 보고 느끼고 딛으며 우리네에게 시오설을 보여준 그 의지는 일이관지처럼 와 닿고 있었다. 현대인들은 시간에 쫒기고 사람에 부대끼다 누릴 수 있는 그 귀한 여행의 백미를 제대로 맛보진 못하고 수많은 인파속에 묻혔다 다시 빠져 나오는 오류를 범하곤 하는데 저자처럼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어 곧바로 실행이란 쉽지 않기에 더더욱 어린 중빈이와 그 낯선 곳을 씩씩하게 활보하고 그들과 어울리며 노니는 모습들이 내겐 하염없이 망양지탄스럽기까지 하다. 국내든 해외든 어느 곳이든 길은 열려 있음이다. 나 역시 저자처럼 내친걸음이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나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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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만큼 인간을 살찌우는 행위가 또 있을까? 익숙치 않은것에 대한 동경....익숙한 것으로부터의 해방...여행의 또다른 이름인듯 하다. '생기있는' 나에게는 또다른 호기심 충족을, '생기없는' 나에게는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돌파구 역할을 하는 것이 여행이고, 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할줄 아는 오픈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실상 나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못했다. 스쳐지나가듯 희미한 이미지만을 기억속에 넣어둔 홍콩과 중국여행은 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이다. 패키지 여행이었고, 단 몇일을 묵으면서도 가이드의 철저한 감시(?)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패키지 여행은 여행의 참맛을 빼앗아가는 비정한 형태임에 틀림없다. 홍콩과 중국여행이 무척이나 희미하고 부정적인 영상으로 남아있다면,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일행들과 무턱대로 떠났던 사가다 동굴 탐험과 라이스테라스 여행은 그야말로 신선하고 흥미진진한 기억 그 자체로 남아있다. 역시 짜여진 일정없이 조금은 무모하고 또 조금은 무식하게 돌진하는 방식이 주는 희열은 남다른 법이다.
이 책은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와 3살짜리 아들이 함께 떠난 한달간의 터키여행에 관한 것이다. 실제 터키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관광 안내 책자의 성격보다는 한 여성으로, 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미지의 세계를 여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또 그 여행의 순간순간 느꼈던 교훈이 어떤것이었는지에 관한 에세이에 더 가까운 책인듯 싶다. 이 책에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터키를 돌아본 그들의 실질적인 여행 일정표나 지도가 나와있지 않다. 단지 자유로운 형식으로 경유지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과의 에피소드가 소개되어있으니 그야말로 짜여진 여행이 아니라 발길 닿는대로의 여행이라고 봐도 무방할것 같다. 그들은 터키 여행에서 돈만 밝히는 상인들부터 가난한 소녀와 병든 아버지, 헐벗은 아이들, 외로운 여행자,선량한 마음씨의 사람들까지 두루 만나보고 소통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서면 선량한 사람은 함께 마음을 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녀의 주머니만을 살핀다는 것이다.
그녀가 소개한 여행지중에서 올림푸스가 가장 인상적인데, 그도 그럴것이 그들이 묵었던 팬션에는 유습이라는 20살 터키 청년이 수줍은 모습으로 남아있고, 마음을 정화시킬수 있는 거대한 자연이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도 익숙함을 줄수 있는 따뜻한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란다. 어느 팬션의 주인처럼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들을 위해 데코레이션용 신라면과 미소국을 준비해놓지도, 가족같은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품어주지 않지만, 그 곳에는 여행자의 주머니만을 살피는 속된 눈빛이 없다.
이 책에 있어서 하나 아쉬운 점은 에세이 성격이 짙어서 사념적인 생각들이 일기처럼 쏟아져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을 통해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 반성들이 가슴속에서 빼꼼히 고개를 드는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여행에 관한 기록에 조금 더 치중했더라면 더욱 알찬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이 책이 다른 여행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3살짜리 꼬맹이에 대한 육아일기 느낌이 아닌, 또하나의 여행 동반자와 신나게 여행하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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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귀중한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책의 내용에 매료가 되어서, 읽던 책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정독을 하게 되는 경우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다. 일종의 욕심이다. 그러나 사실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책을 읽은 후 리뷰는 대체로 후하게 쓰는 편이다. 어떤 책이든 배울점이 있기 떄문이다. 그러나 정말로 마음에 쏙 와닫는 책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책속에 든 정보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우선 세상을 보는 시선이 나 자신과 코드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비슷한 감성을 느낄수가 있어서 좋다. 또 같은 시선이기에 저자가 책에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내용이 일치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 책을 만나면 더 없이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한때. 바람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사실 무심한 척하며 살아가는 지금도 그런 마음은 여전하다. 그러나 일상이라는 것의 관성이 나를 이 자리에 주저않히고 있을 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 속에서 일고 있는 그 바람의 회오리가 많이 잠잠해진 것이다. 반면에 이 책을 쓴 저자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그 열망이 강한 에너지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더욱 부럽고, 아이와 함꼐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지칠줄 모르는 열정이 더욱 대단하게 여겨진다. 주부. 아이의 엄마. 그것도 어린 아이이다. 아이에게 돌이 지나면서 부터 영어로 대화를 했다는 엄마이다. 그래서 아이는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책의 곳곳에서 아이가 한 영어 대화의 내용들이 나온다. 상당히 자연스러운 언어구사이다. 그녀는 아이에게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볼 기회를 주기 위해 bilangual 교육을 시킨 것이라고 한다. 한국어로 나오는 책만 읽는 것보다, 세상의 언어인 영어로 된 책을 자유롭게 읽을수 있다는 것이 영혼의 자유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는가. 세상의 여러곳에서 통용된 언어를 자연스레 익힌다는 것이, 세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영혼을 가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느가. 이런 정도의 교육관을 가진 엄마라면 세상에 대한 대단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맞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여행에 나선다. 터키를 찾아간 이번의 여행에서도 그녀의 그런 여행자 정신은 잘 드러난다. 그녀는 여행하는 방법이 다르다. 세상을 느리게 훝으면서 자신이 만나는 낮선 풍경과 시간과 사건들에 진지하게 집중을 한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같이 그들의 삶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여행가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여행자는...결국은 떠나야 할 사람이다. 결국은 떠나야 할 그곳을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여행을 가도 결국은 같은 자리로 돌아올 그런 여행을 그토록 부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은 돌아오고 말 여행. 책에 그 여정과 사진이 가득이 들어있고, TV마다 다큐멘터리를 끊임없이 보내주는 그런 여행지를 고생해가면서 가고 싶어서 마냥 부러워하는 나는 왜 그런 설익은 방랑벽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모른다. 아니 알지만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책의 저자가 여행에 대해가지는 그런 느낌과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람이 나를 인도하는대로 끊임없이 떠돌아다니고 싶어하는 방랑자의 영혼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이 공유할수 있는 그런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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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바라보는 대상의 차이는 물론이요,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확연하게 구별된다. 아이는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어른들은 나름대로의 때묻고 주관화된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아이들은 객관적이며 덜 변질된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천착한다. 그리고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어른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의지를 함양한다 하더라도 생래적으로 비본질보다 본질을 우선하는 득도의 눈을 가진 어린 아이를 따라가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터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오소희씨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읽었다. 언제나 여행에세이를 만날 때는 기대와 흥분의 색깔이 특별나다. 저자가 직접 보고 경험하고 깨달았던 당시의 시공간속으로 나 자신이 침투되는 느낌을 기대하면서 흥분한다. 거기에다 29년의 인생을 살면서 이 자그만 반도를 넘어서지 못했던 개인적 콤플렉스가 뒤섞여 엄청난 앎과 지혜와 도전의 덩어리로 내게 밀려오곤 한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도 이런 내 기대감을 만족감으로 승화시키는 데 일체의 부족함이 없는 소중한 양식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생소한 나라 터키라는 공간에 저자가 아들과 함께 여행했던 3년 전의 한달동안의 시간속으로 나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이자 강점은 관찰자의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함께 여행했던 세 살배기 아들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의 관찰자적 시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그 두 가지 시선이 이 책의 흐름을 정리해 나가고 있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어른과 아이의 일반적인 시선 프레임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저자는 터키라는 관찰대상을 한달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관찰하되 자신이 볼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비록 단순한 시선이지만 어린 아이의 순수한 관찰을 통하여 여행이라는 인생수업이 주는 다양한 앎과 지혜를 1.5배 이상의 학습효과로 얻어 가고 있다.
아이는 아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내가 그림을 볼 때 개미를 보고, 해협의 별장을 볼 때 그 옆을 지나가는 기차를 본다. 때로는 같은 것을 보고 즐거워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는 나와 다른 것을 '선택'한다. 나는 그 사실을 여행 초반부에 알게 되어 기뻤다. 그것은 곧 '엄마, 나는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는 마치 선물처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아이가 그 옛날 술탄의 삶에 관심이 없듯 오늘 구석에 핀 들꽃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생생하게 현재를 좇는 아이의 눈은 죽은 자의 흔적을 따라가느라 치열하게 피어나는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런 일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일어났따.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 본문 중에서
터키라는 나라는 어떤 곳인가? 위풍당당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이자 한국전쟁 당시 전투병을 파병하여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던 우정의 나라.. 2002년 한일월드컵때 그 우정을 재확인하려는 듯 3,4위전에서 보여준 멋진 경기 외에는 별다른 배경지식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서 터키의 남다른 매력을 알 수 있었는데 국민 대부분이 이슬람권이며 그 처절했던 모슬렘과 기독교와의 오랜 전쟁의 중심지이자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정 중앙에 위치한 특이한 유럽국가라는 상식수준의 정보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작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터키사람들이 느리고 순진하며 친절한 인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매우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는 평범함 속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나라라는 점이다. 터키인들은 노동하는 하루 열 시간이 비즈니스 아워가 아니라, 그냥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간다고 한다. 비지니스 아워를 살 때는 경제적 행위만을 극대화하지만 삶을 살 때에는 모든 것이 그 안에서 공평해진다는 저자의 언급대로 여유와 안정감의 미학이 있는 터키인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저자는 그 어떤 곳보다 올림포스라는 곳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그 유명한 톱카스 궁전, 블루 모스크, 그랑바자르, 아야 소피아 등으로 대변되는 이스탄불의 공인된 유명세보다는 올림포스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과의 만남에 더 큰 여행의 기쁨을 발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올림포스 이전의 여행은 올림포스로 밀려가는 것처럼 보이고 그 이후는 다시 올림포스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로 책의 1/3 이상의 분량이 올림포스에서의 생활을 다루고 있다. 저자 자신도 올림포스를 떠난 이후 자기 안에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락되었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질 정도로 자신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던 올림포스에 대한 사랑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여행의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정도다. 그 어떤 문화재나 건축물, 관광지보다 올림포스가 선물한 잔잔한 인간미와 드넓게 펼쳐진 지중해, 다양한 인간상들과의 호흡이 훨씬 더 소중했던 것이다. 이는 저자 자신이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볼 수 있는 여행의 정의이자 참맛을 바로 올림포스에서 융숭깊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 책이 여행에세이로 구분된다는 것이 다소의 불만이다. 물론 도서의 물리적인 구분에 따른다면 응당 세계여행기로 불리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이 제공하는 화학적인 가치를 목도할 때면 무리하게나마 다른 구분 또한 가능하다. 아들의 여행 관찰 시점을 시종일관 조명하는 동시에 아이의 멋있는 미래를 소망하는 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야기, 즉 러브스토리로 말이다. 여행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 저자가 고백한 아들의 현재의 모습과 미래를 향한 설렌 기대감은 너무 아름답게 이 책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아이가 세돌 무렵에 처절하게 배낭여행을 했다고 해서 제 친구들과 부쩍 다르게 행동하느냐 하면 그건 물론 아니다. 토마스에 열광하고, 사소한 일에 울고 웃으며 정확히 제 나이에 기대되는 행동반경을 유지한다. 다만, 몇 가지 사소한 차이점은 존재한다.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그곳에 있는 선생님이 조금 놀라운 듯이 내게 말했다. "중빈이가 통이 참 커요. 다른 아이들은 소꿉놀이할 때 자동차 타고 이마트 갔다 온다고 하는데, 중빈이는 비행기 타고 베트남에 다녀오겠다고 해요." 아이는 이 세상에 한 가지 인종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또, 한 가지 언어, 한 나라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다. '나'라는 것 외에 '너'가 있는 '우리'를 인식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경계를 설정하는 일인 동시에 그 경계 너머를 꿈꾸는 일이다.
그렇다. 한 사람의 멋진 미래는 IQ가 결정하지 못한다. 의지력이나 집념도 아니다. 부모의 교육열은 더더욱 아니다. 우주라는 연극무대에서 배우로서의 개런티는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항아리의 크기와 정확하게 비례한다. 크고 단단한 항아리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세상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아리는커녕 종제기와 같은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다시말해서 인류는 극히 소수의 항아리들에 의해 절대다수의 종제기들이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큰 항아리 안에 '나'를 품고 '너'를 품고 '우리'를 품고, 더 나아가 자연과 이 지구와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때에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고 천국이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영어 단어나 피아노 수업으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항아리의 가치를 깨달아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삶은 물론이요, 자신들이 만든 작은 천국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위대한 항아리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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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나는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그건 분명 행복해서 나오려는 가슴벅찬 눈물이었다. 그 누가 바람을 통해 그곳으로 날아갈 생각을 했을까. 혼자라도 벅찬 이 세상에 .5의 부피를 가진 천사와 함께라니 사실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더욱 눈물이 나려했따.
그리고 이렇게 고맙게도 내 마음을 움직여주어 고마웠다. 몇해전부터 나는 터키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났었지만 그건 단순한 이상일 뿐이었다. 그래. 아. 가고싶다. 흔히 우리가 배고파 하는 수준의 그런 소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책은 단순히 여행 책을 지나 동행 할 수 있는 그런 비디오적인 책이었다. 뭐, 사진이 많아서 라기보다는 보는 내내 이야기를 들려주는듯한 문체도 따뜻하게 좋았거니와 귀여운 천사 중빈이의 재롱마저 속속히 전해왔다.
터키 하면 단순히 월드컵과 형제같은 나라 라는 이미지였지만 함께 동행하면서 우리는 터키의 극히 일부분 밖에는 모르는 거엿고 그 청남빛 지중해 바다와 순박한 터키인(전부는 아니겠지만)들과 당장에 친구가 되고싶었다.
2년안에 나는 터키에 갈거다. 그곳에는 바다와 친구들도 있겠지만 내가 비운 내가 떠난 내 자리를 돌아다 볼 수 있을것이다. 소희 언니(편한 호칭)가 그랬던거 처럼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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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르기전 잠깐 망설였다.. 후기중에 안좋은 후기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이건 기대 이상이다.. 아이를 낳아보지도 않은 내가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의 눈으로 터키를 여행하면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 키득키득 웃어가면서.. 한장한장 책을 넘기는 재미란.. ㅎㅎ
음.. 나는 가이드북 처럼 이곳저곳 소개하고 안내하는식의 책을 싫어한다. 가이드북은 따로 장만한다.. 여행하면서 작가가 느끼는 감정.. 작가의 삶의 방식.. 그리고..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는걸 좋아한다.. 이책은 재밌고.. 작가의 사고방식이나 모든것이..바다처럼.. 탁~ 트여있어서.. 답답하지않고.. 좋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둔 아이도..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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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도 축복이라고 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것이 들어설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에… 하지만 영원히 간직하고픈 것들이 가장 먼저 지워지는 듯한 아이러니 앞에서 난 무기력해질 때가 많다. 어린 시절 가족들과 분명히 갔다고 하는 몇몇 장소, 사진으로는 남아 있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의 그 막막함. 잊혀진 기억들도 현재의 내 일부가 되어 단지 끄집어내지 못하고만 있을 뿐이라며 내 자신을 위로해 보지만 아쉬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작 세 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엄마의 손 붙잡고 걸었던 길이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아름다운 동행이 부디 아이의 머리 속에 영원히 남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나는 책장을 넘겼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급한 성질은 여행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자 하는 열망만 놓고 본다면 세계 1위를 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 역시 지난 몇몇 여행에서 장소를 옮겨 다니기에 급급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걷는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다. 우는 아이를 들쳐 업고 무작정 가던 길을 가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장기간의 여행에서 매번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어른의 방식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순 없다. 때때로 어른은 아이로부터 삶을 새로이 배운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서슴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아이에겐 세상을 대하는 조건 따위는 필요 없겠지? 장난감이 없더라도 세상 모든 것이 놀이의 도구이니 아이의 세상은 따분함과는 거리가 멀 테고… 터키 전역을 거닐었을 어린 아이의 작은 발을 떠올리며 난 그들의 여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보고 용감하다 혹은 무모하다는 평을 했다. 나의 어머니 역시 나와 나의 동생이 어렸을 땐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종종 이야기를 하신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아이 키우는 기쁨을 아무리 칭송한다 하여도 어머니는 외로운 직업이다. 오로지 아이와의 관계 외엔 아무것도 맺을 수 없는… 여행은 외로웠을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의 많은 부분은 중빈이의 의지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터키는 지속적으로 유럽을 표방해왔다. 하지만 이 이슬람 국가가 유럽이라 여길 수 있을지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아직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손길에 서서히 물들고 있는 몇몇 터키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며 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돈 많은 관광객으로 비추어지겠구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유년 시절을 반납한 채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 역시 내가 생각했던 터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문명이나 현대를 향해 걷지만, 그 걸음이 다소 느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음을 난 외면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동서의 갈림길이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예로부터 다양한 문화가 융합되곤 했던 곳이 바로 터키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력은 단순히 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님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왜 일본이 역사 왜곡을 하면서까지 그렇게 자국의 역사를 단정하려 드는지… “엄마,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워…” 세 살배기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말 한마디는 오랜 시간 쌓인 여독을 풀어주고도 남았으리라. 마음은 죽이 잘 맞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친구와 함께한다는 기분으로 여행한다는 그녀의 자유로운 삶이 문득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경쟁에 치여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인색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옹졸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