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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 너무 많아 내용적인 것 제외하고
한정 사은품에 대한 리뷰...
미니북은 동작가 파실린나의 <목매달린 여우의 숲>이 왔습니다. 핀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소설입니다.(핀란드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을만큼 재밌네요.) 독특함과 평범함을 이야기하며 인간 삶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육군소령, 젊은 범죄자인 두 주인공, 미모의 여인들, 경찰관, 시골 노파 등의 비범한 인물이 이 숲에 모여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수첩은 미니북과 같은 사이즈로 표지는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 빨간 책표지이고 속지는 버스와 구름 모양, 이 두가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번갈아 인쇄된 여백 가득한 종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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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건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의 프로토타입 아닌가. 일단 작가가 같다. 핀란드의 유명한 작가인 아르토 파실린나, 최근에는 솔 출판사에서 책을 펴낸 덕에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제법 높아졌다. 또한 동물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주변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 소설의 야생 토끼, 그리고 「목 매달린 여우의 숲」의 여우 '오백파운드'. 그리고, 현재 국내에 출판된 그의 소설이 모두 그렇듯이, '무기력에서 힘을 다시 찾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뭐 길을 가면서 의미를 찾는다는 점,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 같다는 점은 「기막힌 자살여행」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를 참조해보자. 마누라는 바람이 나서 혼외정사하고 애를 임신하자 지워버리고, 남편이 그걸 눈치채고 뭐라하자 오히려 바가지만 신나게 긁히고, 그 남편 바타넨은 사실은 신문 기자, 하는 짓이라곤 만날 술쳐마시고 무의미한 정치 토론. 대학 시절 훗날 정계에 투신할 생각에 버닝하며 어깨와 배에 힘을 주고 다닐 청운의 꿈을 꾸던 기억은 온데 없고 이제는 배에 소화불량에 걸린, 우리시대 아저씨 바타넨.
어쨌거나 어느날 신문 기자 바타넨씨는 길가다가 토끼 한마리를 치고, 'RETURN!!'을 고래고래 외치는 카메라맨은 저멀리 내팽겨친채, 그리고 카메라맨은 짜증나서 바타넨을 버리고 가고, 바타넨씨는 토끼와 함께 핀란드 전역을 아우르는 '어드벤쳐'를 떠난다. 바타넨은 말 그대로 전형적인 인생의 낙오자다. 파실린나는 이후에 나온 다른 작품들에는 가면 갈수록 다양한 유형의 낙오자를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필력 향상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한 사람이 다양한 인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른 작품들에 나오는 독특한(?) 낙오자들에 비하면, 훨씬 평범(?)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같이 데리고 있는 토끼와는 말이 안 통하는 법이고, 여행을 혼자 하고 있어서 바타넨 하나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기가 힘들다. 그래서 이 소설은 연작, 혹은 옴니버스에 가깝다. 바타넨이 여정 중 만나는 사람 하나마다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또 그 때마다 잔잔하게 의미를 하나씩 띄어준다. 뭐 말이 안 통한다고 토끼가 존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아저씨들이고 아낙네들이고 하나같이 백수 바타넨 씨는 몰라도 토끼에게는 우호적이다. 토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타넨 씨는 참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많나고, 많이 도움받곤 한다. 바타넨처럼 여행을 못 떠난 사람들, 즉 아직 '무기력'한 사람들이 토끼를 통해 잠시나마 열정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작가는 그만큼 우리가 자연에서 치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듯 싶다. 사실 최근 북유렵 경제의 침체를 많은 사람들이 너무 좋은 복지 정책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삶이 너무 지루해서, 경쟁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능력도 없다고 말한다. 북구는 아니지만 프랑스 같은 나라도 최근에 다시 자유 경쟁 체제로 뛰어들 준비를 한다. 북유럽에서도 계속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러나 파실린나는 무기력은 그런 경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성 싶다. 복지 정책이 있든 없든, 술집에서 맥주를 퍼마시면서 불만 토로 하는 것이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아닌가. 오히려 토끼와 같이 자연을 경험하고 뛰어다니면서 그 뿐만이 아니라 주윗사람들도 하나둘 치유해가고 있지 않은가. 정말 로맨틱하군. 그리고 난 저런 로맨스라면 얼마든지 좋아할테다. 이 작가를 이야기할 빠질 수 없는 것이 작품 곳곳에 있는 위트다. 수능 문제집 식으로 말하면, '현대인의 무기력'을 이렇게 가벼운 문체로 다룬 작가는 드물 것이다. 그렇다고 가볍게 다루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주제의 무게가 책의 재미를 짓누를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위에 써놓았던 저 문장만 봐도 제법 센스를 아는 작가라는 것이 짐작이 될 것이다. 전작 내용을 은근슬쩍 끼워놓고 말야. 「토끼와 함께한 그해」는 단연컨데, 국내에 출판된 모든 파실린나 소설중(4권밖에 없지만) 가장 웃기다. 나중에 주인공이 붙들려가는 부분부터는, 어지간한 사람도 계속 피식거리기는 할것이다. 나같이 웃음이 많은 사람이야 더 말할것도 없고. 특히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편지는 압권이다. 편지 내용은 안 나오고 '설득력' 있었다고 하지만, 아마 작품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저 편지가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고 미소를 지을수 밖에 없을 것이다. 친절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왜 이리 우연의 연속이냐고 말할 수 있다. 택시 기사는 토끼를 보자마자 같이 토끼먹을 풀을 찾지를 않나, 사람들은 토끼를 보면서 어머 귀여워라-하곤 바로 집을 빌려주고. 그리고, 결말이 무책임하고 김빠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목 매달린 여우의 숲」에서도 똑같이 지적되는 문제다. 그러나 파실린나는 추리 소설 작가도 아니고, 또 그럴 만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능력도 별로 없는 듯 싶다. 앞에 말한 개연성은 탄탄한 플롯을 원했다면 분명 단점일테지만,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사근사근한 이야기에는 제일 적절한 듯 싶다. 「기막힌 자살여행」에서 그랬듯이, 동화같은 유치함과 뻔뻔한 우연성은 받아드릴수만 있다면 부담없이 파실린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파실린나는 풍자도 유독 잘한다. 이 작품에서 생기는 큰 사건들은 대개 바타넨의 행적을 높으신 분들이 확대 해석하면서 생긴다. 마지막이 바타넨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이유도 비슷하고. 아마 세상의 모든 심각한 일이 다 그런가 싶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는 엄숙하게 찌푸린 우리의 얼굴을 펴줄 것이다. P.S. 좀 투정같지만 한마디 더 해야겠다. 번역에 관한 문제다. 깔쌈하게 번역이 잘 된 책임은 확실하지만, 역자님의 노고를 무시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래도 불만인것은 이 책이 독어판을 번역한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오역의 오역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핀란드판과는 제목도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에는 핀란드어 전문가가 번역을 해줬으면 한다만, 국내에 많을것 같지가 않다. P.S.2. 플레이 스테이션 2가 아니다. 초판은 이벤트 중이다. 지금 사면 이 책은 물론, 목 매달린 여우의 숲 미니북 버젼과, 기막힌 자살여행 수첩까지 얻을 수 있다. 절호의 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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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지사 기사로 그저 평범하고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던 바타넨은 출장길에 차에 치인 토끼를 쫓아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인연을 끊고 방랑길을 떠난다. 토끼와 함께. 이 길은 여행이 아니다. 그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떠돈다. 그러니 이건 말 그대로 방랑이다. 그의 동지는 한 마리 토끼일 뿐. 핀란드의 곳곳을 떠돌며 일용직으로 삶을 이어가면서 그는 이전까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세상과 일들을 마주한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이 그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고 차가운 바닥으로 내쳐진 것도 아닌 그저 미지근한 일상 속에서 시간이 흘러갈 때, 이렇게 인생이 끝이 나버릴까봐 두렵고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이라면 새롭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멋진 모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실제로 떠나는 것은 의외로 쉽다. 그저 토끼를 따라 숲 속으로 몇 발자국 들여다 놓는 것처럼 말이다. 그저 출근길에 다른 버스를 타거나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않거나 조용히 짐을 싸서 늘 가던 길이 아닌 길로 들어서며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들은 왜 떠나지 않을까? 아니면 떠나지 못할까? 스스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답을^^
그리고 실제로 더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떠나고 난 그 다음이다. 떠나고 난 뒤 도망치고 난 뒤에 말이다. 그 누구도 영원히 도망다닐 수 없고 영원히 떠돌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책을 읽어갈수록 바타넨의 방랑이 점점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나가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져만 갔다. 점점 더 일상에서 세상이 말하는 정상에서 멀어져 가는 바타넨과 토끼의 방랑길은 이야기를 시작은 했는데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처럼 장황해져 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어딘지 개운치는 않은 느낌으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그런 마무리 말고 또 어떤 결론이 있었을까나 싶기도 했다. 토끼를 따라 떠난 바타넨의 이야기는 인생을 한바탕 방랑으로 한낱 농담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나저나 이 책은 1975년에 씌여졌다기에 나름 놀랐다. 아르토 파실린나의 한바탕 농담같은 이야기 <토끼와 함께한 그해>였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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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는 사회라는 틀안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야 한다. 여러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워진 사회라는 거대한 틀안에 갇혀 살다보면 자신이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현실에 맞닺뜨리며 몸안에 스트레스를 쌓아간다. 아마도 요즘 어수선한 분위기안에서는 그런 스트레스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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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귀엽다. 토끼를 안고있는 바타넨. 바테넨의 품속으로 쏙 들어가는 토끼.
황당하고, 깜찍한 두 주인공
사람과 토끼가 주인공인데 기가막히게 잘 어울린다
엉뚱하다.
하하 소리가 나도록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순간 우울함이 공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 스웨덴 여자가 토끼똥을 수저로 건져내고 스프를 떠먹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사람이 정신줄을 놓으면 낫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우리의 옛말을 상기시켜주니.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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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함께한 그해>에서 바타넨은 우연한 사고로 토끼를 만나게 된다. 우연히 만나게 된 토끼로 인해 바타넨은 1년 동안 핀란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겪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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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소설은 접할 기회가 여간해서는 없던 나는 요전번 책을 구매할때 과감하게 그의 책을 세편 골랐다. 그리고 내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대만족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일상에 시달리고, 심술궂고 이기적인 마누라에 자신에겐 무관심한 회사 사람들. 바타넨은 출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차에 치인 토끼 한마리와 함께 숲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그 토끼와 함께 핀란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여러 마을의 사람들, 그리고 경찰, 군인, 종교인, 벌목하는 사람 등등 수없이 많은 사람을 만난다. 바넨타의 여행은 늘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어딜가나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순탄할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때도 많았던 것이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는 핀란드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자연으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현대인들의 로망을 담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바타넨의 자연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측면을 다룬 것만은 아니다. 그가 일하던 신문사는 온간 불공정한 일을 보도한다던 취지에서 벗어나 연예인 기사나 가쉽기사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거나, 핀란드 정치, 무의미한 군사 훈련이나 정치적으로 꽉 막힌 여러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이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킴으로써 그가 보는 사회문제에 대해 풍자를 해놓은 부분도 다수 눈에 띈다. 바타넨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로망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우리들은 이 꽉 막힌 세상속에서 숨통 트일 곳을 찾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상당수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일이다. 바타넨은 직장과 결혼생활, 그리고 도시 생활의 안락함을 훌훌 벗어던지고, 핀란드의 숲으로 사라졌다. 작은 토끼와 함께. 그는 그곳에서 진정한 자유를 맛볼테고, 그것으로 진정한 행복을 찾아낼 것이다. 시종 일관 아름다운 핀란드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게 만든 이 책은, 나 역시도 이 갑갑한 세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었다. 아니, 핀란드의 라플란드로 날아 가고 싶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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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토 파실린나. 내가 접한 그의 첫 작품은 '독 끓이는 여자'였다. 이 책의 감상은 그다지 재밌다거나 생각할거리를 준다기보다는 약간 불쾌한 느낌에 더 가까웠다. 지옥에 떨어진 주인공이라니. 그러나 웬지 핀란드 작가라는 호기실이랄까, 북유럽 작가를 접해본적이 거의 없어서인지 더욱 한 권만으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을 한 권 더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독 끓이는 여자'와 같은 블랙 유머가 곳곳에 있으면서도 나의 취향에 엄청나게 잘 맞는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점을 발견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엄청나게 재미있었다. 깜짝 놀라서 아르토 파실린나. 그에 대해서 좀 더 찾아보니 내가 얼마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잠시 소개하자면
1963년 라플란드 성인대학을 졸업한 뒤 여러 신문사와 문학 잡지사에서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전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국제적인 작가이다. 나라에서 소개된 번역서만 해도 100권이 넘는다. 파실린나는 에어 인터상 (Air Inter Prize,1989), 주세페 아체르비 상 (Giuseppe Acerbi Prize, 1994), 유럽의 작가상 (European Writer of the Year, 2004)을 비롯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파실린나는 핀란드 문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작가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그의 신작을 기다린다고 한다. 해를 보기 힘든 계절에 그의 작품은 핀란드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파실린나의 작품을 출간하는 헬싱키의 출판사는 “해마다 출간되는 파실린나의 작품은 자작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만큼이나 핀란드의 가을에서 기본적인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소설가로서뿐 아니라, 저널리스트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핀란드의 무라카미 하루키랄까? 이런 거성의 단 한 작품만 감상하고 다른 작품들을 못 읽을뻔 했다니 삶의 낙이 크게 줄 뻔했다. 작가의 소개는 이쯤하고 책 자체를 살펴보자면 일종의 일탈기이다. 개인 보트까지 소유한 수입이 괜찮은 40대 기자가 차에 치인 새끼 토끼를 만나는 것을 계기로 고약한 아내와 지긋지긋한 사회를 떠나 토끼와 함께 핀란드 곳곳을 떠돌면서 자연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인간 세계의 풍자화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한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정해진 주거공간없이 여기저기 떠돌면서 내일은 어떤 곳에 일자리를 얻어 어떤 사람을 만나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될까.두근두근 거리며 한장한장 읽다보면 새끼였던 토끼는 털갈이를 하는 겨울 옷을 바꿔입고 기자생활을 하며 사회에 찌들었던 주인공 '비타넨'은 벌목공,별장지기,산불 도우미 등등으로 야생의 생활에 완전히 익숙해져 버린다. 마지막에 작가가 비타넨의 인터뷰의 기록을 책으로 펴낸양 써놓았지만 가난했던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다음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마지막에 그의 자유를 위한 갈망에 찬사를 보내게 된다.
소재가 토끼라는것은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외모조차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약하디 약해 보호본능을 끓게 만드는 동물. 강아지,고양이,앵무새 등 여러 동물이 있겠지만 토끼보다 더 착하게 생긴 동물이 있나 싶다. 그리고 그 토끼의 역활은 단순히 비타넨의 여정의 동반자가 아니다. 그의 일탈의 '방아쇠'가 된 매개체이다. 비타넨은 토끼와의 만남으로 인해 도시생활을 버리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다. 돈,명예,가정,직장 이라는 모든 족쇄를 벗어던진채 어쩌면 비타넨에게 자식이 없었기에 토끼라는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방아쇠'에 쉽게 일탈로 발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솟아오를때 여행을 하는 선택을 많이 한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곳에 가보고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을 직접 경험해보면서 약간의 자유를 느끼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우리에게 비타넨의 토끼와 같은 일상을 완전히 벗어버리게 하는 방아쇠는 무었일까. 그리고 그 방아쇠가 당겨졌을때 바로 발사될 수 있을까. 자유의지로 발사된다면 다행이겠으나 일상에 대한 피난처로의 일탈이라면 조금 더 생각해볼 문제다. 그리고 그 끝에 비타넨이 누렸던 자유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말하자면 이 책 정말 재밌다. 작가님 이 책 2권 안내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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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내게 낯설은 곳이다. 언젠가 핀란드가 세계청렴국가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외에는 핀란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 이 책은 아르토 파실린나의 작품으로 저자는 핀란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처음이라는 단어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언제나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게 해 준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는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작품으로도 처음이지만 핀란드 문학으로도 처음 접하는 것이기에 이 책은 나를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주인공 카를로 바타넨은 마흔 살 가량의 남성으로 직업은 기자이다. 이기적인 아내와의 결혼 생활은 뒤죽박죽이 되었고 자신이 하는 일은 경박한 오락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어느 날 그는 동료와 취재차 헬싱키로 가는 도중 자신들이 타고 가던 차로 어린 산토끼 한 마리를 다치게 한다. 바타넨은 다친 토끼를 데리고 숲 속으로 사라진다.
중년에 접어드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동안 꾸려오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등의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삶에 더 관심을 집중할 나이이다. 그런데 바타넨은 토끼를 만난 순간 아무런 미련 없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린다. 겉으로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자신은 불만이 가득한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해 버린 불행한 삶으로 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무책임하게 가정과 직장을 내팽개친 바타넨의 행동은 중년의 반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사회생활로 지칠 대로 지쳐버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 꿈꾸어 보았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실행에 옮긴 바타넨은 용기 있는 자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심사숙고하더라도 아무나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바타넨의 탈출은 그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모든 불만과 고통에서 해방되고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해주는 완벽한 선택이라고 보여 진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서 곰을 쫓는 바타넨의 모습에서는 발단 부분에서 보여 지는 무미건조한 생활에 찌든 활력 없는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360도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과 의지가 뚜렷하고 개성 있는 인물로 변화된 것이다. 물론 바타넨의 생활이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모험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그러나 힘들더라도 기쁨과 행복이 존재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생활 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이 훨씬 자유롭고 행복하게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면 바타넨의 모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현재 내 안에서도 바타넨의 모습을 찾을 수 있고 내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도시 속에서의 메마른 삶에서 벗어나 자연에 동화되어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일은 모든 이의 꿈이 아닐까. 아르토 파실린나와의 첫 번째 만남은 유쾌하거나 통쾌한 느낌보다는 허탈한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기분 나쁜 허탈함은 아니다. 저자가 보여주는 삶과 내 현재의 삶이 비교되어 허탈함을 느끼는 것이므로. 아르토 파실린나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쁘다.
바쁜 일상에 지쳐 쓰려지고 싶거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토끼를 끔찍이 아끼는 바타넨을 떠올리며 삶의 여유를 찾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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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한 함께한 그해"는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핀란드 소설이다. 역시 글은 대단한 것 같다. 한국어로 번역도 되어서 우리가 읽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핀란드 사람들 이 해마다 가을이면 파실린나의 신작을 기다린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작가에 대한 기대와 핀란드 소설에 대한 기대로 이책을 읽었다.
해를 보기 힘든 계절에 그의 작품이 핀란드 사람들에게 위안과 즐거움이 된다고 하니 얼른 책장을 넘겨서 나도 그의 작품을 통해 위안과 즐거움을 얻고 싶어졌다.
두 남자가 한여름에 자동차를 타고 모랫길을 달리고 있었다. 핀란드의 아름 다운 풍경이 옆으로 스쳐지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석양에 관심조차 없었다. 그들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 었다. 그들은 무시당하며 살아가는 절망한 남편들로 소화불량이었고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오늘 만에 헬싱키까지 갈것인지 아니면 헤이놀라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것인지를 두고 말다툼을 중이 었다. 그때 석양 한가운데에서 나지막한 언덕에서 어린 토끼 한마리가 나타났다. 운전하게 카메라 맨이 토끼를 치었다. 카메라맨을 가자고 했으나 기자는 정신없이 풀밭으로 들어갔고 곧 작은 풀밭에서 뒷다리가 부러져 힘없이 매달려 있는 토끼를 보고 뒷다리에 수건을 대고 싸맸다. 카메라맨이 기자를 찾는데 대꾸를 하지 않자 혼자 떠나 버렸다. . 이순간 부터 기자인 바타넨이 토끼와 함께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바타넨은 걸어서 마을 까지 와서 토끼를 고쳐주고 헬싱키에 가서 친구에게 보트를 팔고 그돈으로 토끼와 함께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수일간 야생동물은 토끼를 데리고 다녔고 닐시에서 몰래 작살 낚시를 하고 정당한 낚시 허가증 없이 한티카니넨이란 자와 함께 낚시를 했고 살로센사리라는 자와 함께 음주를 즐기느라고 산불 진화 작업을 등한시 했고 쿠모에서는 죽은 사람인지 모르고 인공호흡까지 해서 시체를 훼손했고 멜타우스와 오우나스강에서는 독일 전쟁 물자를 횡령해 불법 판매했고 위험한 곰에 관해 제대로 정당하게 경고하는 일을 소홀히 했고 총기 허가 없이 불법으로 곰 사냥에 나섰다. 이 사냥의 과정에서 서류 없이 핀란드와 소련 사이의 국경을 넘었으며, 그결과 소련 당국에게 그가 자백한 점죄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래서 죄수가 되어서 소련에서 두달이나 수감 생활을 했다..
바타넨과 토끼가 함께한 여행은 신기할정도로 재미있었다. 핀란드의 곳곳이 이야기에 나오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쁘고 아름 다운 곳일 것 같았다. 바타넨의 일상으로의 탈출 너무 멋진 것 같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떠날수 있다니 말이다. 나도 가끔은 이렇게 일상으로 탈출만을 꿈꾸고 항상 자리는 그대로 이다. 바타넨의 결단력이 부러웠고 토끼를 아끼는 모습에서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까지 옅볼수 있었던 것 같다. 토끼를 위한 허가증도 받고 토끼에게 좋은 풀도 먹이려고 하고 토끼의 건강도 걱정하는 모습에서 바타넨의 착한 마음도 읽을 수 있었는 것 같다. 하지만 끝에 바타넨이 저지를 수차례에 걸친 범죄는 놀라웠다. 책을 읽는 중간에 그렇구나..하고 지나쳤던 일들이 범죄였다니... 자유를 찾아서 떠났는데 범죄자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일상의 탈출에 뛰따르는 책임 같아보였다.. "토끼와 함께한 그해" 재미있었다. 그리고 멋진 핀란드의 모습이 내눈앞에 아른 거리는 것 같다.. 가보고 싶다. 아름다운 나라 핀란드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