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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철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개인의 해석에 따른 여지를 지나치지 않을 수 없다. 특히나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과학과 영성의 긴밀성이라는 것은 기존의 과학에서 중요하게 여기던 요소, 즉 객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랍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상에 대한 연구 결과 또한 미심쩍은 부분이 남아 있다. 그 탓에 에르빈 라슬로가 말하고 있는 것은 과학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적이다. 특히 책에서 보여주는 실험결과들, 즉 전생을 체험하는 사람들과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하려는 여러 노력들은 지나치게 미신적이고 광신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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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햇살이 비추었다. 주말내내 이불빨래며 눅눅해진 집안을 말리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소파에 걸터앉아 한숨 돌리며 커피한잔을 마시다 보니 그제서야 어깨죽지가 욱신거린다. 일기예보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기상청도 지금쯤 한숨 돌리고 있겠지. 지질 특성상 비가 내리기 무섭게 지하로 빠져버린다는 제주도에서조차 유례없는 물난리를 겪었다고 할 정도니 이번 장마아닌 장마가 특이하긴 한가 보다. 한반도의 아열대화는 10여전 전부터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이미 예견되어진 상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예견되어진 상황에 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렇다쳐도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대책있는 예견'을 기대해 본다.
과학이란 무엇일까? 너무나 광범위해서 명쾌하게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저자는 과학에 대해 관찰을 하고, 측정하거나 계산하여 기록하는 학문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였다. "과학은 인간이 세계와 세계속의 자신을 이해하려는, 영원한 추구의 일환이다. p158 " 라는 주장인데 한마디로 과학은 '의미'에 대한 추구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위대한 과학자들, 현대 과학의 창시자들은 대부분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신학,문학,예술등 다방면에 능통했던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영성과 과학 두 분야있어서 통합적 사고를 한 사람들이었다. "의식과 정보가 스며들어 있고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통합적으로 진화하는 우주, 이것이 다시 마법에 걸린 우주다. p.160"
흔히 인체를 '소우주'라고 표현한다. 인체의 신비스러움과 긴밀성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생각한다. 우주 또한 놀라운 긴밀성을 가지고 있으며 신기하게도 인간(특히 인간의 마음)과 우주 사이에는 더 큰 긴밀성이 존재한다. 자연계에는 사물들을 연결하고 있는 무언가가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아카샤' 라고 이름지었다. 아카샤는 창조가 시작될 때 유일하게 존재하였던 만물의 기초가 되는, 만물이 되는 매질이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생애의 흔적들이 아카샤장에 보존됨은 물론이고, 인간의 의식이 아카샤장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들에게 열린 상태', '영계 소통', '환생'에 이르기까지 초우주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책의 반정도를 차지하는데 상당한 이해력을 요하고 있다.
우리 인간을 '거대한 생명공동체'의 일부로 보았을 때, 하나의 종(種)으로서 우리가 맡은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저마다 그것의 본절적 가치를 위해, 다른 것들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리고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지구와 지구상의 생명체를 파괴한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결국 인간은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그에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과학, 우주에 마법을 걸다> 이 책은 분명 '과학책'의 무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다루고 있는 주요 쟁점은 인간-지구-우주의 긴밀한 유기적 관계에 대한 것으로 영성과 철학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였다.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대해 기본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책 읽는 내내 이해력의 한계를 경험해야만 했다. 먼 길을 돌아서 결론에 다다르니 결국은 '현실', 우리앞에 직면한 문제에 대한 고민과 희망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 기후'라는 말도 자꾸 듣다보니 익숙해지려 한다. 그것이 두렵다. 바닷가에 해파리가 넘쳐나고, 가끔씩 거대오징어 같은 특이한 바다 생물의 출현을 구경거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더이상의 파괴를 멈추고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우리 후손을 위해 이 행성을 보존해야 겠다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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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보면서 우주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아니다. 우주론이 아니라 세계 인식 혹은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의 표현의 빌어보면 과학과 영성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 해 전에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 하이브리드를 우리말로 하면 이종 교배 쯤 되는데 서로 다른것들이 교배하여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내는 행위다. 사자와 호랑이의 교배인 라이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과 과학이 만난 이종 교배가 아닐까? 아캬샤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인데 처음이 아카샤장 이론을 설명한다. 양자 진공이라던지 초우주론이 비슷한 의미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해주고 세계는 기계보다는 유기체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자세한 것은 63페이지 참고하시라 두번 째 부분에서 우주의 진화론 즉 빅뱅에서 빅크런치의 주기적 반복을 뛰어넘는 아카샤장 이론을 제시한다. 홀로그램이 전송되는 것처럼 전승정보를 다음 세대로 전달함을 설명하고 우주 진화 과정을 인간 개체에 대응하여 환생과 불명을 설명하다. 세번 째 부분은 앞에서언급한 라슬로- 이 책의 저자 -의 아카샤장에 대한 다양한 관점에서의 적용과 이해를 여러 사람의 글로 보여주는데 해설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쉽지만 그다지 해설도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물체는 무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는데 모든 것은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이야기 즉 의식과 실제의 우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아카샤장은 주관적 판단이겠지만 지극히 동양적이다. 정보의 집적과 전승은 확실히 환생 개념의 다른 과학적 정의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벽을 느꼈다. 과학도 생소했고 철학도 생소했다. 조금은 과학과 철학에 읽을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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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로 읽는 책들은 문학위주라서 이런 책들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두려움 반 설레임 반이다. 내게 너무 낯선 장르여서 그렇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아 간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과학책이라면 읽어본 기억이 없어서 낯섬도 두려움도 더 깊었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버린 경험이 되어 조금은 안타까운 심정이다. 역시 내겐 새로운 장르의 탐방은 때가 이른 것일까. 책을 다 읽기는 읽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과학이 우주에게 마법을 거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마법을 걸고 있어서 책만 펼쳤다 하면 졸음이 밀려오는 진풍경만 만들어 낼 뿐이었다.
한 때 출판계에서도 콘서트 바람이 불어서 무슨무슨 콘서트라는 제목의 책들로 인해 평상시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장르에 많은 사람들이 다가갔던 기억이 있다. 전문가들이 봤을땐 그런 책들이 겉핥기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같은 일반인들에겐 거부감이나마 없앨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반인이 읽기엔 무리일 정도로 대중성이 없다. 나의 독서 수준을 의심해도 개의치 않겠지만 전공이나 이쪽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법한 내용들이었다. 물론 나조차 감을 못잡고 있으니 전공분야니 뭐니 떠들어 대는 것이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책의 구성으로 보자면 대충 알것 같다. 소수인들의 의견 나눔이라는 것을.
책의 구성을 보면 제 4부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4부 중에서 1,2부가 저자의 의견이라고는 하지만 3부에 실려있는 다른 사람들의 칼럼들 또한 양의 비중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1,2부에서 우주가 마법에 걸린 혹은 과학이 우주에 마법을 거는 것을 피력했다면 그 이론에 대한 여러사람들의 칼럼들이 중반에서 후반부를 차지한다. 그 칼럽들을 통해 저자의 이론에 대한 뒷받침이 되었다면 그 부분을 높이 사겠지만 되려 혼란과 난해함을 주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의 칼럼을 보아도 저자의 이론에 대한 칭찬과 격려만 기억날 뿐 무슨 얘기들을 한 것인지 부끄럽게도 나는 알 수가 없다. 전문적인 용어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고 생각 되지만 흐름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고 과학에 무지 상태라고 해도 무방할 나에게는 벅찰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과학책으로만 볼 수도 없었다. 나에게 과학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을 무조건 등한시 한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자가 말하는 과학은 좀 달랐다.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의식의 일부분이나 체험과 사례들을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되려 그것은 우주와 과학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었으므로 흥미로운 부분도 없진 않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움이 크지 않아 아쉬웠을 뿐 적어도 과학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거기다 인간 내면의 깊은 성찰을 다루기도 해서 과학이 아닌 철학책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어쩜 과학은 인간이 세계와 세계속의 자신을 이해하려는, 영원한 추구의 일환이다(p.157)라는 말을 거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무조건적인 첨단만을 추구하는게 과학이다라고 생각했던 내게 라슬로의 주장은 인간에게 동떨어질 수 없는 과학을 만나고 있었다. 인간에게 동떨어짐이 단순하게 그려지는 편리가 아닌 나의 존재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이 책에 담겨있는 메세지는 인간을 갈라놓는 분열보다는 인간의 화합을 주장하는 것이라(p.161) 했다. 과학과 우주, 그리고 인간의 사이에서 화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너무나 동떨어진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의 이론을 전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보는 저자의 이론에 대한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조금씩 깨달을지도 모른다.
분명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난해하고 나를 이해하고 인간과 화합을 만들어 내는게 과학과 우주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이 책이 말하고자 함을 제대로 꿰뚫지 못하고 어정쩡한 반응밖에 보일 수 없으니 할말 또한 많지 않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과학이, 내가 생각하는 우주가, 내가 생각하는 인간과의 관계가 조금은 편견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우주에 마법을 걸듯, 나의 의식 속에서 이미 마법의 영향이 미쳐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을지 모르므로 내가 기억하고 있는 소수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 한다. 내가 알게 될 것과 찾게 되는 것이 많지는 않겠지만 미래에 마주하게 될 예측할 수 없는 앎의 방향에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난해하고 어려웠던 시간들이 헛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분명 언젠가는 무릎을 탁 치며 '그때 그것이 그것이였구나' 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