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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통해 입양아들의 입양후 그들이 겪은 고민과 아픔을 들어 보는 프로를 보게 되였다. 어릴때 부터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직업엔 귀천이 없으며 차별을 하는 건 나쁜 행동이라 배워왔지만 세상은 그렇게 정직하게만 흘러가지 않았고, 생각해 보면 서양중심의 이성적 사고라는 것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일 뿐인데 너무 그것에 맹목적이였던 아닌가 하는 생각이 새삼들었다 그 연장선에 남아공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이 아닌 나라에서 오히려 주인처럼 살아왔던 백인들 영문도 모른체 억압과 노예로 살아야 했던 원주민 남아공사람들.... 남아프리카공화국이야기는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이유를 말해주고 고통을 말해주었고 그들이 그에 맞서 싸우게 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이 책은 남아공의 인종문제가 중심 화두였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차별이란것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우리역시 입양아에 대한 차별도 있지만 동남아인에 대한 경멸과 무시하는 어투,눈빛을 보았고 농촌총각들을 결혼하기 위한 국제결혼에 대한 광고에서도 인간에 대한 존엄을 느껴지지 않았다. 인간을 존중하는 마음이 모두의 바탕에 있다면 차별이란 말은 사라지지 않을까? 내가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 남을 무시함으로 해서 내가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같은 사람으로 본다면 사람의 피부가 다른 것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며 종교가 다른 것이 서로 싸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안다 남아공의 이야기를 처음 읽을땐 남아공의 아픔과 역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았지만 읽는 내내 차별이란 것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우리의 마음에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바탕이 된다면 차별이란 단어는 세상에서 없어 질 수 있는 단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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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의 작품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현실의 일부분을 알게 되면서 받았던 충격만큼 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그 먼 땅의 진실 일부를.
정말, 사람이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사람들 중 일부에 해당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천사와 악마는 멀리 저 멀리 하늘 나라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람 중에 있는 것이다. 천사 같은 사람과 악마 같은 사람으로. 물론 악마 중에도 유식한 악마와 무식한 악마가 있겠지. 자신이 악마인 줄 아는 사람과 자신이 악마인 줄도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보았을 때, 내게는 무식한 악마의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몰라서, 모르고 저지르는 악마로서의 행동들. 몰라서 그랬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마 어쩌면 알면서도 모른 척, 몰랐던 척 해 보고 싶었던 게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왜냐, 그게 더 나에게 편하니까, 나에게 더 이득이니까, 나에게 더 좋으니까. 간사하고 이기적인 내 속의 일부.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인데, 단편 소설이 몇 편 담겨 있지도 않은데, 어쩌자고 이렇게 마음을 무겁게 만들어 버리던지.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어쩌면 안네의 일기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지도 모르겠다. 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야 할 작품들이다. 내가 이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면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혼자 착각한다. 적어도 내가 가르치는 몇 백명의 학생들은 모르고 있다는 뜻이니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이, 그냥 흑인들이 어떠한 역사 속에서 최근까지 살아왔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뜻이니까.
기독교도 노예들만큼이나 내게는 충격적이다. 제국주의 시대 때 유럽의 백인들은 혹시 기독교도노예제에 대한 복수심으로 아프리카 흑인을 이용했던 것일까. 어쩌자고 그때는 그런 생각들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면 지금은? 지금의 우리나라에는?
정말 사람이, 딱 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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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두껍지 않고 흔히 접하지 않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야기라 호기심으로 잡았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시기별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인종계급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게다가 아프리카는 흑인들이 주인인 곳이었는데 말이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미국 땅도 인디언이 주인이었지...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법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지내도록 했다지만, 아직도 공공연하게 백인들이 흑인들과 공평한 대접을 받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능력 가지고 차별받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어쩔 수 없는 피부색때문에 열등한 종족으로 낙인 찍히다니...
나는 요즘 학생들에게 이 책을 많이 권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남아프리카의 역사를 알 수 있게 해 주고, 거기서 아이들 나름대로 차별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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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는 장면에 전 세계인의 시선이 꽂힌 지도 벌써 1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흑과 백이 분열 되어 서로 섞이기를 거부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피부색에 기반한 빈부 격차 문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과거에 비한다면 성공적으로 치유에 성공했다는 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선 한국인이 지배적인 인종이기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이 정책적으로 외국인을 차별하기 위한 시도는 아직 행해진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보다 진한 피부를 소유한 이주 노동자들을 대할 때 우리도 모르게 나타내는 적의나 무시의 감정들을 발견할 때면 나는 인간의 적은 인간이라는 다소 씁쓸한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소멸되었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 하여 이 책이 무거운 이론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짧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 실체를 보여주는 게 이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는 판단을 저자는 했던 것 같다. 백인만의 거주지역이 지정되고 흑인들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는 순간, 수많은 흑인들이 대대손손 정착해 살아왔던 자신들의 고향을 잃는 경험을 했다. 버스가 텅 빈 상태로 도로를 질주할 때도 흑인들은 긴 줄을 늘어서 있어야만 했으니, 그 버스가 백인 전용 버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끔찍한 건 이러한 흑백의 분리가 가정이라는 영역에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이 아닐지 싶다. 이전에 나치즘 하의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의 혈통이었다. 결혼을 해 하나의 가족을 이루었을지라도 유대인 혈통을 소유한 이는 그 가족으로부터 언제라도 분리될 수 있었기에, 유대인-비유대인의 결합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파괴되는 일이 잦았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자행되었음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곳곳에서는 희망이 느껴졌다. 어린 아이의 시선이 바로 그것이었다. 어른들의 시각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캐롤라인과 앨리스와 같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 조장하는 흑인에 대한 공포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 아이들은 어린 시절 검은 피부의 유모로부터 따스한 사랑을 얻었고, 검은 피부의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우정이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설사 어른들이 흑인이 나쁘다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할지라도 그리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어른들의 타인을 향한 증오심이 아이들에게 완전히 자리하기 전에 아이들은 사람을 사귈 때 그 사람의 피부색을 고려치 않는다. 로한과 솔라니의 이제 막 시작한 아름다운 우정을 끝으로 저자는 책을 마감했다. 비록 아직은 장벽에 가로막혀 서로의 우정을 드러낼 수 없는 단계이긴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그 곳에 살고 있는 모든 이의 것이 되는 과정이 이미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는 모잠비크 지역에서 홍수 이재민 구조 작업을 함으로써 피로 얼룩졌던 과거를 거스르려는 시도를 지난 2000년에 하지 않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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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심이 거의 미치지 않는 곳, 아프리카. 가끔 우리와 관련된 일이 있을 때만 잠깐 관심을 가질 뿐이다. 예를 들자면 수단 해역에서 조업하던 선원이 납치되었을 때라던가, 월드컵 축구 때 그곳의 어느 국가와 한 조가 되는 경우 등을 제외하면 평상시에는 우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간혹 그들의 깡마른 모습이라던가 물 양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을 매스컴에서 보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에게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곳은 안 좋은 모습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커다란 아프리카 대륙 끝자락에 위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라면 가장 만저 넬슨 만델라가 떠오른다. 그가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국민투표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차별정책이 있었다는 정도 밖에 알지 못한다. 그나마도 각각의 단어만 알고 있는 셈이다. 넬슨 만델라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어떤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는지, 차별정책을 철폐하기 위해 무슨 활동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마찬가지로 아파르트헤이트도 이름만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분명 학교 다닐 때 듣긴 한 것 같은데 더이상 자세한 것은 기억이 안 나니 말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실상을 시대별로 잔잔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씌여져서인지 상당히 절제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상황을 여러각도에서 보도록 해 준 것은 여러 계층의 아이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최하위 계층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그냥 울분의 표출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테지만 중간 계층과 백인 계층의 아이들 마음과 내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어서 읽으면서 느꼈던 약간의 의구심이 하나씩 풀렸다. 사실 처음에 아프리카 원주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 과연 백인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할까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나 후에 나오는 백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는 그런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특히 백인으로 그 사회 안에 있으면서 원주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도 보여주고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서로의 본 모습을 보려 하지 않고 경계만 하다가 그 안에 들어가보고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변화도 전해준다. 아마도 그렇게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경계를 허물게 되는 것이겠지. 그러나 과연 그 보이지 않는 장벽이 모두 없어질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한다. 별 것 아닌 것으로 경계를 지으려는 인간의 속성을 잘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꼭 아파르트헤이트 같은 법적인 차별정책이 아니더라도 사는 지역이나 아파트 규모로 경계 짓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러니 인종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나마 '이 책에 묘사된 대부분의 사건은 새로운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라는 추천의 글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이제 우리도 서서히 다른 문화와 인종에 마음을 열어야 할 때라고 본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문화 가정에 아이들이 이상한 눈길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런 다른 나라의 사례를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물론 우리의 상황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의 경우 질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 인식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 이런 책으로라도 아이들 마음을 서서히 열어주었으면 한다. 하긴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구별하고 경계를 짓는 것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이지 아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만약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캐롤라인처럼. 내 아이를 캐롤라인과 같은 아이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어른인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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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흑인 아이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땅 아프리카를 빼앗겼습니다. 피부색이 하얀 이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얼굴이 하얗다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많이 먹을 수 있어 힘이 있다는 이유로 이들은 먹지 못해 힘이 없는 이들, 피부색이 까만 이들, 돈이 없는 이들의 것을 당연하다는 듯 빼앗았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총을 가지고 빼앗았고, 음식을 가지고 빼앗았으며, 지식으로 빼앗았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것을, 먹을 만큼만 자연으로부터 취해서 저축을 모르는 이들의 것을, 침략할 줄 모르는 이들의 것을 당연하다는 듯 백인들을 빼앗았고 가난한 이들의 것을 빼앗은 부자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백인보다 열등한 존재인 흑인을, 백인의 종으로 사는 것의 정당성을 세뇌시켜 백인들에게 덤비지 못하게 했죠. 백인들이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백인들 중에는 그들이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흑인들 중에 생각이 깨어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흑인들이 아무리 세뇌를 당했어도 잘못된 것의 틀을 깨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백인들의 잘못된 사상에 대해 많은 이론을 통해 정당화 시키려 해도 잘못된 것이기에 정당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고, 이들의 현실을 지켜보는 많은 올바른 생각을 가진 이웃들이 그냥 두지 않을 거란 사실을요. 백인들은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잘못된 힘이기에 그 힘은 유지되지 못할 거란 것을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아이들을 통해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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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하나씩 따로 놓고 보면 천성적으로 나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일단 무리가 형성되고 상황이 만들어지면 생각지 못했던 용기와 의지, 때로는 만용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들은 작게는 왕따에서부터 극단적으로는 전쟁까지 넓은 범주를 아우른다. 나치의 1급 전범이 해외로 도피한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신분을 위장하여 살아가고 있었는데, 결혼기념일을 기념하여 꽃을 사다가 검거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서 잔인과 냉혹 대신 자상과 친절을 보았다고 했다. 이처럼 무리의 분위기, 군중 심리는 개인의 인성까지 바꿔버리는 가공할 힘을 지녔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무서운 상황은 내전이 아닐까 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 이해 관계가 달라서 생기는 정치적 내전이 있기도 하고, 르완다 내전처럼 인종이 달라서 반목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부분적으로는 흑인 노예의 해방을 목표로 한 내전이라고 볼 수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원주민인 아프리카인들과 350년 전부터 이주해온 유럽인, 아시아인들의 계층이 뚜렷하여 생긴 인종 차별이었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목적에 의한 사람의 사람 지배는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욱 피를 요구했다. 그렇게 지낸 350년 동안 흑인의 권리는 땅에 떨어졌고 생사마저도 백인 주인의 손에 좌우되는 노예 생활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으로 노예가 해방되고도 130년이나 더 지난 후, 넬슨 만델라라는 운동가가 1994년 선거를 통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됨으로써 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흑백이 평등한 무지개 나라가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에 실린 7개의 이야기는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반까지 10년마다에 걸친 사회 분위기를 이해하기에 족하다. 서문에 실린 것처럼 흑인에 의한 보복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핍박당한 흑인들이, 그간의 상처를 딛고 조금씩 권리를 회복하는 모습은 참 더뎌 보였지만 꾸준했다. 아직도 그 차별은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내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고, 굽히며 살아온 사람들은 그 노예 근성을 없애는 것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맨 마지막 이야기 ‘장벽을 넘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서는 해묵은 관습 대신 서로 평등하고 솔직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이 다행스럽다. 시민의식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독립한 인간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 즉 전근대적인 미망(迷妄)이나 비굴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생활태도를 말하며, 둘째로는 각자가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입장에서 발언하는 태도, 셋째로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본을 지지하는 의식’이라고 네이버 백과사전에 정의된다. 이와 같은 시민의식은 어려서부터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이야기에 대해 배우고 이야기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시민의식을 가진 청소년으로 키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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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종교로 인한 갈등은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전쟁의 이유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특히 인종에 대한 차별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가장 대표적인 부분임을 누구나 알지만 이에 대한 자각은 실상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이면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겪지 못한 것에 대한 모호함...그렇지만 모든 것을 어찌 실제 경험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으랴. 이번 책을 통해서 늘상 들어오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차별정책인 아파트트헤이트의 잔혹성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지구상의 대륙 가운데 가장 차별 받고 아직까지도 수난을 겪고 있는 곳을 꼽으라면 아프리카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가장 많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가면서 많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일까? 피부색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쉽게 말하더라도 길가에서 만난 흑인들에 대해서 나 또한 쉽게 편안한 마음이 되지 않는 것은 어색함과 더불어 서양인들에 의해 나도 모르게 길들여진 환경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서부터 눈처럼 하얀피부의 공주를 최고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을 잠자리에서 읽어주고 동경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은 많는 변화를 겪고 그러한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좋아할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말이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표지에서 포옹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묘한 슬픔이 느껴진다. 아이들은 그렇다. 적어도 어른들에 의해서 길들여지기 전의 아이들은 편견이나 차별을 모르고 한데 어울어지는 천성을 가졌으리라..
남아공아국의 차별정책으로 아픔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 .아이들의 시선으로 엮어내는 이야기 일곱편을 마음 한 구석을 너무도 무겁게 만든다. 자연스럽게 색깔과 정도에 따라서 등급을 나누어서 차별 정책을 벌여온 남아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그러한 차별이 생활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은 한다.
저자가 흑인이 아닌 백인이기에 그들의 아픔을 좀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아직까지도 자행되는 정체불명의 인종차별에 각성하지 않을 수 없다. 투쟁하는 어른들의 모습보다도 아무것도 모른채 차별의 고통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기에 가슴이 더 미어진다. 선택해서 태어난다면 누가 어려운 상황을 선택할까? 문제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낸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리라 .더불어 이렇게 불완전한세상에서 그 모순의 과정을 고쳐나가야 하는 것도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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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들은 유태인들에게 노란색 별모양의 배지를 주고 그들을 가스실로 밀어 넣어 버렸다. 나치들은 외쳤다. 우리는 잡종으로부터 흐려지는 우리의 순혈을 보호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인태형령이라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조선인에 한해서만 재판을 거칠 필요없이 태형을 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였고, 이 법으로 인해 많은 독립투사들은 일본인들의 채찍아래에서 신음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인들은 말했다. 조선인들은 미개하다. 그러므로 개나 돼지같은 가축처럼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백인들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소수백인 다수 순수아프리카 흑인과 혼혈인종을 합법적으로 차별하는 정책이였다. 순수백인을 제외한 그외 나머지 잡종들에게는 화장실도 도로도 수도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사람이 사람을 분류한다? 마치 제품검사에서 품질하자가 발생한 물건은 가차없이 폐품이라고 분류짓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주권을 잃고 살았던 그 분노와 눈물로 얼룩진 그 시기에 일본인들은 우리를 분류했다. 일제에 협력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미개한 조선인들...그리고 미개한 조선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했다고 아직도 우기고 있는 극우일본인들.. 그리고 그런 어둠의 시기는 세계사에도 존재했다. 화장실도, 차도, 집도 옛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그 시대부터 지금까지 쭉 지키고 살던 내 선조의 숨결이 아직도 숨쉬는 그 땅에서부터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학대하고, 피를 말리던 어둠의 시기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있었다. 산통을 겪는 엄마를 위해 몇 수십킬로 떨어진 백인들의 동네에 맞아 죽을 각오로 물통을 지고 간 어린 흑인소년과 그를 향한 호기심에 시작한 도움이 불행하게도 흑인들은 자신들의 거주지를 점령하려고만 하는 진드기같은 존재라고 어른들이 가르치던 그 시대를 뒤덮고 있던 편견과 장벽을 뛰어 넘는 진실과 우정을 갖게 된 백인 소년과의 이야기 - 장벽을 넘어 백인정권의 탄압에 항거하는 흑인대학생들의 항쟁과 그 속에 어우러진 가족애를 그린 이야기 - 타자기 모든 백인들은 학교를 개방하고 양 인종은 차별없이 교육받아야 한다는 넬슨만델라 정권이 들어서고 최초로 백인학교로 전학을 온 흑인소녀과 어린 백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맞서며 새로운 사회를 전하는 이야기 -학교운동장 탄압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흑인들의 주권을 위해 싸우는 백인부모와 딸이 그 시대의 백인들 사이에서 겪었던 갈등과 혼란 그리고 인종차별 앞에선 장벽을 넘어 선 애정따위는 전염병으로 취급받던 그때 좋아하는 흑인삼촌과는 놀이동산엔 절대 갈 수 없었던 그 시대- 언젠가는 릴리, 언젠가는 등등... 왜 사람은 다르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걸까? 조금 먼저 문명화를 이뤘다고 그렇지 못한 곳은 미개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만 나왔다. 생각해 보면 아직도 인종차별은 끝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지만, 언제나 흑인들은 악당에 마약을 하고 나약하며 쉽게 유혹에 빠지고 미개한 것처럼 그려졌었다. 최근에 들어서야 흑인배우들의 설 곳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한다. 또, 내가 중고등학생때만 해도 영어교과서엔 언제나 백인만 등장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백인에게 우호적이고 흑인에겐 왠지 차갑게 군다. 그리고 혼혈에게는 더 가혹하게 굴고 있다. 언제가 되어야 이러한 차별이 없어질까? 차별을 없애고 진정 우리가 하나가 되는 그 날은 언제가 될 것인가? 단편적인 이야기로 우리의 오만한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게 하고, 미래에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우리가 되게 생각하게 이끄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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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뼈아픈 차별주의 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인들 마음대로 정해놓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무자비하고 모호한 이 법은 수많은 흑인들을 암흑속에 몰아넣고 절망만을 주었다. 그들이 저항한 이유는 오직 단 하나였다. <자유> 인간이 당연이 누려야할 것을 누리지 못한 자들의 외침은 수세기동안 이어져왔고, 마침내 <넬슨 만델라>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대통령에 선출된다.
그 수년동안 흑인들은 백인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흑인들은 자신의 고향, 출생성분등이 적힌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했고, 불신검문에도 응해야했다. 또한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흑인공동거주지역으로 쫓겨나기도 했다.(올가미中) 그리고 흑인 아이들은 제대로 된 고등교육이 아니라 '반투 교육 제도'라는 저급한 노동만을 위한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그 교육에 거부한 수많은 학생들이 경찰의 총탄아래 쓰러져만 갔다.(타자기中) 그리고 백인들은 흑인을 한 인간이 아닌 도구로만 생각했고 '야 이 검둥아' '그 계집애'라고 지칭했다. 물론,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흑인에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분노에 함께 분노했고, 그들이 저항에 함께 동참했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그들처럼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 가난한 이들이 모든것을 가진, 그것도 총을 들고 있는 백인에게 저항하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고 현재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이루는데 한 몫을 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가진자가 없는 자를 차별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밑바닥의 없는 사람들을 차별한다. 부당하게 느껴질때가 많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많은 흑인들의 소리없는 저항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이뤄낸 <자유>를 눈으로 목격하며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차별도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용기에, 그들의 저항에 박수를 보낸다.
"우분투 웅구문투 웅가반예 아반투.........한 무족은 다른 부족을 통해서 하나의 부족이 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남을 대하는 방식대로 우리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뜻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