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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츠코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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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 나카타니 미키 주연 / 일본 / 코미디, 뮤지컬 / 일본 / 2007년 개봉작>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나는 한 여자의 일생!', 이 영화에 대한 평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떠올린 제목이다. 그런데 영화의 본 제목과는 정 반대의 제목이니 읽는 분들께서는 의구심이 들겠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왜 이렇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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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 나카타니 미키 주연 / 일본 / 코미디, 뮤지컬 / 일본 / 2007년 개봉작>

 

 '너무나 아름다워 눈물이 나는 한 여자의 일생!', 이 영화에 대한 평을 꼭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떠올린 제목이다. 그런데 영화의 본 제목과는 정 반대의 제목이니 읽는 분들께서는 의구심이 들겠다. 도대체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왜 이렇게 정 반대의 제목이 나온 것인지 말이다.

 

 이 영화는 마츠코의 조카 쇼가 그녀의 죽음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으며 시작된다.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카가와 테루유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 되었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가 사체로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 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 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며 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쇼는 마츠코를 기억하는 이들로부터 고모 마츠코의, 한 여자 마츠코의 삶을 듣게 된다.

 노래를 너무나 잘하고, 너무나 사랑해 음악선생님이 된 마츠코는, 수학여행 중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으로 해고을 당한다. 그 뒤 마츠코는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동거하던 작가 지망생은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는 짧은 글 한 줄을 남긴 채 자살을 하고, 마츠코는 작가 지망생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친구와 불륜 관계에 빠진다. 하지만 곧 버림을 받고 절망에 빠져 몸을 팔게 된다. 이후 기둥서방에게마저 배신당한 마츠코는 그를 살해 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다시 한 남자를 만나 영원히 함께 하자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도 잠시, 경찰에 연행돼 8년형을 언도 받아 복역을 한다. 출소 후, 미용사로 일하던 마츠코는 자신을 해고당하게 만들었던 절도사건의 범인인 제자 류 요이치와 재회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야쿠자에 몸담고 있는 그는 놀음을 하는데 돈을 써 조직의 추격을 받아 결국 교도소 행을 택한다. 그러는 동안 마츠코는 그를 기다리고, 한편 교도소에서 우연히 신약성경을 읽고 종교에 귀의한 류는 그녀가 자신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존재였음을 깨달으며, 그녀를 위하는 일은 앞으로 그녀를 만나지 않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드디어 출소 날,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 마츠코는 꽃다발을 들고 미리 나와 있지만, 정작 류는 그녀의 뺨을 때린 뒤 소리치며 달려가 버린다. 이후 고향에 있는 강과 비슷한 강가 아파트를 빌려 생활하게 된 마츠코는, 씻지도, 청소를 하지도 않는 생활을 통해 이웃들로부터 '혐오스런 마츠코'라는 소리를 듣는데, 다시 미용사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은 날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영화의 내용을 대략 들으셨으니 이제는 왜 그런 제목이 붙여졌는지 아실 것 같다. 사실 최루성이어서 눈물이 나게 만들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코미디로 분류될 만큼 우스운 장면도 그닥 없다. 또한 마츠코의 삶을 다룬 노래들이 중간 중간 나오기 때문에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지만, 그렇다고역시 유쾌하거나 또한 경박하지도 않다. 오히려 화려한 색감과 CG로 더해진 영상이 촌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마츠코'의 일생에 초점을 맞추어서 말이다.

 

 이 영화는 제80회 키네마준보 베스트10 여우주연상, 제30회 일본아카데미영화상 여우주연상/최우수음악상/편집상, 제61회 마이니치영화콩쿨 여우주연상/기술상, 제31회 호우치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이 말해주듯, 일단 여우 주연을 맡은 나카타니 미키의 연기가 압권이다. '역도산'에서 설경구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이 배우는, 연기는 물론 노래와 춤까지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한 여자로서의 마츠코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그 외 일본의 내노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총 출동한 이 영화는 흠잡을데 없는 완벽 캐스팅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마츠코는 어릴 때부터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아주 컸다. 이유는 병으로 누워 있는 동생 때문이었는데, 특히 아빠는 관심도 선물도 동생에게만 주셨다. 아빠가 원하는 아이로 자라, 결국 아빠가 원하는 직장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남자 선생님과 데이트를 시작한 이야기를 동생에게 들려줬을 때도, 아빠는 동생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서 마츠코를 나무란다. 이 일은 이후 마츠코가 집을 나갈 때 나가지 말 것을 만류하는 동생을 뿌리치고 목을 조르며 하는 말 속에 잘 녹아 있다. "너 때문에..."

 또한 마츠코에게는 스스로 심하게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되면 나오는 행동이 있는데, 이 행동 역시 처음에는 아빠가 웃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수시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그런데 이후 이 방법 또한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으로 변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사랑에 대한 갈망이 컸던, 상대적으로 외로움이 많았던 마츠코는,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마음을 허락한다. 때문에 동거를 한 남자도 많았고, 그들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한다. 그렇게 자신을 파괴시키면서까지.

 더불어 마츠코는 그리움 또한 많은데, 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다. 때문에 그녀의 마지막 종착지 역시, 고향의 강을 닮은 곳 옆이었고, 그녀가 그 강을 바라보며 자주 울었다는 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녀의 삶을 거꾸로 되짚어 간다.

 

 이 영화는 치료적인 속성을 많이 담고 있는데, 우선 음악치료적인 속성은 마츠코가 부르는 노래에 있다. 이 노래는 마츠코 자신에게 힘을 주는 요소가 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따라서 영화 중간중간에도 독백처럼 노래가 흘러 나온다. 또한 이야기치료적인 속성도 담겨 있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특히 자살하려고 했을 때 만났던 이발사는 "너의 과거가 어땠는지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로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치료적인 면도 잠깐 나오는데, 혼자 사는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좋아했던 가수에게 자신의 일생을 담은 글을 쓴다. 너무 많아서 우체통에 들어가지도 않는 오랜 세월 자신의 이야기를 말이다.

 

 한 여자의 일생을 어찌 두 시간에 다 담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마츠코'라는 여인이 갖고 있던 아픔과 사랑, 그리고 행복과 꿈을 느낄 수 있다. 결코 혐오스럽지 않은 그녀의 삶을 만나보시라고 여러분들께도 권하고 싶다.

h*****5 2007.08.12.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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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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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씨네씨네에서 퍼옴)   당신은 ‘혐오스런 마츠코’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카가와 테루유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 되었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가 사체로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 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 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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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씨네씨네에서 퍼옴)

 

당신은 ‘혐오스런 마츠코’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도쿄에서 백수 생활을 하던 쇼(에이타)는 고향의 아버지(카가와 테루유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행방불명 되었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가 사체로 발견되었으니 유품을 정리하라는 것. 다 허물어져가는 아파트에서 이웃들에게 ‘혐오스런 마츠코’ 라고 불리며 살던 그녀의 물건을 정리하며 쇼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마츠코의 일생을 접하게 된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며 모든 이에게 사랑받던 마츠코에게 지난 25년간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제자가 일으킨 절도사건으로 해고 당한 마츠코는 가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동거하던 작가 지망생은 자살해 버리고, 그의 친구와 불륜을 시작한 마츠코는 곧 버림받고 절망에 빠져 몸을 팔게 된다. 기둥서방에게마저 배신당한 마츠코는 그를 살해, 8년형을 언도 받는다. 출소 후, 미용사로 일하던 마츠코는 자신을 해고당하게 만들었던 절도사건의 범인인 제자 류 요이치와 재회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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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일생을 그린 영화다.

제목과는 다르게 전혀 혐오스럽지 않은 마츠코의 일생을 다룬 영화니며 줄거리는 보면 아주 우울한 내용의 전개지만 뮤지컬 영화라서 재미있게 표현했다.

 

물론 영화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표현이 있지만 많은 여성들에게 공감을 얻은 작품이다.

 

찾아보니 이 영화는 원작이 소설이다.

 

바로 야마다무니키의 작품이다.

 

원작인 소설과 영화중 어떤게 더 재미있냐? 라고 물어오면, 소설은 보지 못한 나이기에 대답은 못하지만, 영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인간의 삶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처참한 그녀의 삶이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다.

 

b*****0 2010.05.02.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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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 옆 미학카페]낯설게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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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일본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일본 영화에 대해 무지하며 관심 또한 별로 없는 기자가 지난 14일 일본 영화 한편을 보았다.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의 이력을 소개한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망설이다 어렵게 선택한 영화는 시작부터 기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내레이션이 긴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루한 화면에 후회 막급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기사를 쓰
"[영화관 옆 미학카페]낯설게 하기" 내용보기
 

평소 일본 영화를 거의 보지 않고 일본 영화에 대해 무지하며 관심 또한 별로 없는 기자가 지난 14일 일본 영화 한편을 보았다. 범상치 않은 여주인공의 이력을 소개한 기사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망설이다 어렵게 선택한 영화는 시작부터 기자를 당혹하게 만든다. 내레이션이 긴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지루한 화면에 후회 막급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기사를 쓰고 있는 까닭은 영화적 서사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그것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낯설다’는 것이다. ‘혐오스럽다’는 수사가 꼭 어울리는 여주인공의 생애를 나카시마 테츠야는 삶의 시간을 허비 중인 백수 조카와 대면시킴으로서 혐오스런 생애 뒤의 의미심장한 여운을 백수 조카에게도, 우리에게도 남기고 있다.

 

어둡고 무거운 화면과 낮은 목소리의 내레이션에 지루함을 참으려 하면 명랑 쾌활한 노래가 들리고 뮤지컬 영화인가 생각하면 코미디 같은 장면과 애니메이션이 불쑥 화면에 튀어 나온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여주인공의 일탈(교사직에서 파면 당하고 가출까지 하는)에 골몰하려는 순간에는 특별한 설명도 없는 삽화들이 지나가버린다. 지루함을 견딘 관객들은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집중하여야 한다.

 

낯선 시간이 던지는 잔혹한 질문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여자 친구와의 사이도 틀어져 일상이 무료하고 갑갑하기 만한 백수 조카에게 아버지는 난데없이 고모가 죽었다며 유골함을 가지고 나타난다. 생전에 본 적도, 존재에 대해서조차 들은 적 없는 고모의 아파트를 정리해달라며 아버지는 고향집으로 향한다.

 

쓰레기장 같은 그녀의 집에는 악취 나는 고모(마츠코)의 일생이 먼지처럼 흩어져 있다. 불치병으로 늘 누워 지내야만 했던 또 다른 고모인 쿠미, 그 때문에 웃음을 잃어버린 할아버지, 동생에게로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시샘한 고모의 성장과정, 교사가 되었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파면을 당한 사연과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가출 등등 조카는 혼란스럽고 필름은 빠르게 과거의 시간 속을 투영한다.

 

작가지망생과의 동거, 그의 친구와의 불륜, 증기탕의 매춘부로 만난 기둥서방과의 비극적 결별, 그로 인한 살인과 자살의 시도, 도피 과정에서 만난 이발사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달콤한 생활, 8년을 산 교도소의 수감생활, 출소 후 일하던 미용실에서 만난 (포르노 배우가 된)친구와의 우정, 자신을 교사직에서 쫓겨나게 한 제자 류와의 재회, 그와의 외줄을 탄 것 같은 불안한 동거와 절망적 선택 등등.

 

카메라는 때로는 우울하게, 때로는 코믹 쾌활하게, 노래와 율동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칙칙한 골방과 밝은 거리로, 지루한 회고와 느닷없는 전환으로 엽기와 혐오를 화면에 담아낸다. 이때의 스크린은 세상의 더러운 진창이고 썩은 물 고여 있는 못이다. 그런데 그 진창에서 한 떨기 수선화가 피어나고 연꽃이 그 순수한 향내를 뿜어낸다.

 

영화가, 마츠코의 혐오스런 생애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이자 험하고 거친 세상에 내동댕이 쳐진 삶을 곁에서 위로해주고 보듬어줄 동반자에 대한 절실한 바람이다. 사랑을 받는 것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오직 제 사랑이라도 줄 누군가에 대한 처절한 그리움이고 기다림이다. 집에 돌아와 “다녀왔습니다”하고 인사할 바로 그 누군가의 부재에 대한 잔혹한 물음이다.

 

낯설게 하기 그리고 강

 

미학에서 ‘낯설게 하기’란 쉬클로프스키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된 이론이다. 이를 연극에 적용시켜 구체화시킨 이가 브레히트다. 형식주의자들에 의하면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일상어와는 달리 예술언어는 반대로 의사소통을 늦추고 힘들게 하는 것이다. 흔히 일상어와 시어(詩語)의 구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마찬가지로 소설 등에서는 스토리와 플롯의 구별이 일상어와 시어의 관계에 놓인다. 스토리가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간 순서로 차근차근 요약되는 것이라면, 플롯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해 재배열되고 교란된 작품의 형식이다. 다시 말해 플롯 혹은 형식이란 작가가 의사소통을 늦추고 방해하기 위해 스토리를 일부러 낯설게 재배열한 것이다.

 

어른이 다 된 나이의 가출과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가해자에게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헌신하는 그녀의 삶의 자세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모두가 견디고 있는 그 외로움 때문에 고귀한 삶을 내팽개치고 정신분열에 이르는 그 출발점이 동생 쿠미 때문이라는 설정은 어딘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속 마츠코의 일생은 그 혐오스러움과는 반대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수와 순정을 감추고 있다. 감독은 “인간의 가치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은 것에 있지 않고 누구에겐가 준 것에 있다”는 조카 여자 친구의 말을 빌려 마츠코의 일생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를 드러낸다. 마치 조카가 고모집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아내듯이 말이다.

 

병적인 집착에 매달려 자신을 망가뜨리는 마츠코나 그녀의 남자들은 모두가 깊은 병에 신음하는 말기 환자들이다. 그들은 세상에 순응하고 질서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미 올바른 이성을 상실한 정신병자들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 사이의 관계, 그들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 역시 애초부터 병든 것이다.

 

작가는 그 병적인 관계, 그 병적인 사랑을 더욱 추악한 병실에 몰아넣고 부패시키고 진물이 흐르도록 썩힌다. 그런 다음 그 병실에서 행복한 기억의 삽화를 읽어주고 저 높은 곳의 신에게 찬양을 드린다. 때로는 노래와 춤으로 문병하며 저미도록 뭉클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건네준다. 의뭉스런 작자의 낯설게 하기는 애증의 시원이었던 동생 쿠미의 마지막 말 “어서 와”를 들려주는 신에서, 병자들 모두가 모여 아름다운 노래를 합창하는 엔딩 장면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마츠코도, 그 마츠코를 추억하는 조카도 강에 서있다. 강가에서 살았고 강가에서 죽었다. 강가에서 고모를 만났고 강가에서 그녀의 삶을 이해하였다. 강가에서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난 애인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고모는 뛰쳐나온 고향의 강을 그리워하며, 그 강가의 시간 속에서 가족과 살았다. 마치 흘러간 시간처럼 흐르는 강물을 보며 생애의 마지막을 견뎠다.

 

그녀가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결심한 것도 강가였다. 강은 온갖 더러움과 악취를 걸러 내는 생명의 젖줄이다. 또한 마츠코가 살았던 하구(河口)는 앞의 시간과 삶이 끝나고, 새로운 시간과 삶이 시작되는 생애의 경계다. 마츠코가 새로운 삶의 의지를 찾는 순간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도 강가였다. 그 경계에서 마츠코의 시간은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강물은 흐른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지금도 흐르고 있는 것처럼.

e******1 2007.05.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