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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너무도 냉랭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
읽는 내내 음침한 불안함이 함께했다.
또한 보바리 부인이 갖고 있는 허영심,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에 대
한 동경, 부도덕성, 평범하고 일상적인 데에서 쉽게 싫증내는 마음,
환희와 환멸 사이를 너무 쉽게 넘나드는 감정의 변화... 자기 변호..
의 모습이 과거 나의 모습에서도 간간히 떠올라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모든 남성이면 다 매혹될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외모는 제외
하고 ).
진작 읽었어야 할 소설인데 부끄럽다.
위대하다는 평가가 무색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언 십몇년 전, 기억도
가물가물한 소녀시절 깊은 밤 지새면서 눈물인지콧물인지 흘려가
며 페이지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몹시도 아까워하면서 읽었던 제
인에어 같은 낭만적인 소설을 다시 보기는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든
다. 그건 소설내용의 문제라기보다는 내 정신적 나이의 문제겠지
만 말이다. |
|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보봐리 부인을 다 읽고 일어서며 내 뱉은 말이다.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바람을 피워 가산을 탕진하는 아내를 단도리도 못하고, 아내의 정부 앞에 힘 한번 못 써보는 쓸개빠진 남자 보봐리. 바람난 여자. 한 남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 방탕해 가산을 탕진하고 망해 가는 마당에, 죽음에 이르는 종착역에서 공증인 기요맹의 요구를 뿌리치는 짓은 또 무슨 꼴인가. 실제 인생살이와 소설 속의 그것의 차이-다름일까. 그것으로 소설의 격이 상승되는 걸까. 140여년 전의 소설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현대를 연 소설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효시라는 말에 어쩔 수 없는 속물로서 의무감을 갖고 읽었다. 바람난 여인들. 외설문학의 효시인가. 챠탈레이 부인, 애마부인, 북회귀선, 그러나 현대인의 안목으로 이 정도에 외설운운은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 그래 140년의 간격을 생각하라. 생각 외로 고부간의 갈등과 그 사이 남자의 지난(至難)한 입장도 엿보인다.속도가 나지 않는(3부를 빼고) 책이다. 그렇다고 사색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내 시각으로 불필요한 사실묘사가 너무 많고 집요하다. 그래서 사실주의인가. 그러나 3류 소설과 1류 소설의 척도를 느껴야 한다. 무려 4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흔적은 어디에서도 느낌으로 닿는다. 아마 그 것이 아무렇게나 읽을 수 없는 힘일 것이다. 명작은 언제나 명작의 몫을 다 한다. 누구나 이 책을 건너뛰고 문학을 논하지 못하리라.악의> |
| 내가 비교하고 싶은 책을 소개하자면, 보바리 부인과 테스이다. 둘 다 세상 물정을 모른 순진한 소녀였는데 남자들의 정욕과 욕망의 재물이 되어 비극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그러나, 조금 살펴보면 두 주인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둘 다 정욕의 대상이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테스 현실적이고 스스로 개척하는 타입이다. 그리고 두 주인공 모두 여러 남자를 만난다. 그러나 보바리 부인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흥미 대상의 정도로 남자들을 만나고 어리석게 자신을 비하시키며 남자들을 따른다. 그러나 테스는 오직 클레어 한 남자만을 열렬히 사랑하며 클레어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길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테스의 부제가 순결한 여인인 것 같다. 두 주인공은 다른 성격을 가지고 다른 사랑을 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도 서로 다른 이유를 가진다. 그들은 연약하고 아름다운 이들로 맹목적인 운명과 사회의 희생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