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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참 멋있는 작가입니다. 내용이 깊이있어서도 감동이 남달라서도 아닌, 글의 유희를 즐길 줄 알고 그것을 함께 공유할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죠.
아래 리뷰를 보니까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또 정리하려고 하신 분들이 많은데, 그런 작업을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그렇게 하는 것은 별 의미도 없고 어떤 면에서는 굳이 찾으려 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기의(의미)가 아닌 기표(표면적인 형식)의 유희를 강조한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아마 바르트가 살아 있었더라면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뿐만 아니라 온다 리쿠의 다른 소설을 수도 없이 많이 인용했을 겁니다. 바로 기표의 유희 - 글이 글을 먹고 들어가고 형식이 형식을 먹고 들어가는 바로 그 자체를 즐기면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이고 또 범인은 누구이고 심지어 '누구누구'는 누구인지 하는, 우리 머리 속에 굳건히 자리잡은 인과 원칙, 정리와 분류의 습관은 옵션 정도로 해도 별 문제가 없고요.
이 책을 읽으려는 분들에게, 또 이 책을 다 읽었지만 뭐가 뭔지 몰라 리뷰를 뒤적이는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군요. 아무 생각 없이 힘 빼고 읽으라고요. 그냥 글만 쭉 읽으세요. 온다 리큐가 리드하는 방향을 따라 그냥 가기만 합니다. 목적지도 없고 결론도 없지만 가는 길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그 자체가 흔한 '의미' 따위를 찾는 일보다 몇 백배 의미있는 일일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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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가 사회 드라마와 연극 드라마의 경계를 교묘하게 허물고 비튼 작품이 바로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다. 극중극의 형식을 빌어 현실과 가상, 연기와 정체성, 원본과 재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그 극중극의 무대 공간이 바로 호텔 정원이고 호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배우다. 극중극이란 쉽게 말하면, 외부의 연극과 내부의 연극이 있는 것이다. 외부의 연극이 호소부치와 구스노키 도모에가 리허설한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고, 내부의 연극은 가미야가 쓴 <고백>이라는 모노극이다. 내부의 연극에서 극작가 가미야 가세이가 살해되고, 외부의 연극에서는 여배우 요시코가 독살된다. 극본의 배경은 호소부치가 호텔 정원의 카페 주인에게서 들었던 기이한 사건이다. 물론 이 사건 역시 외부의 연극의 일환이다. 취직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다 호텔 정원 카페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한 여성의 이야기로, 목격자 세 사람의 이야기가 전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요한 것은 호텔 정원은 현실이든 무대이든 똑같이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이고 배우가 연기를 펼치는 야외공간이라는 점이다.
"빌딩 안에 있는 정원은 극장과 비슷하다. 사실, 지금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모두 뭔가를 연기하고 있다. 이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은 그것만으로 어떤 사건의 공범자와 같다. 닫혀 있는 듯한, 닫혀 있지 않은 듯한 공간. 항상 외부로부터 누군가가 보고 있는 장소. "(59쪽)
내부의 연극과 외부의 연극은 원본과 재연의 관계와 흡사하다. 내부의 연극은 <고백>이란 모노극이다. 내용은 <고백>의 각본가 가미야가 호텔 정원에서 세 명의 후보 배우들과 함께 차를 마시다 독살당한다. 주인공을 발표하기 직전인데다 가미야가 고노 유리코와의 약혼발표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형사는 유리코를 의심하지만 사건 후 잠적해버린 상태이고 다른 세 명의 여배우들이 그녀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준다.
외부의 연극은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고 여배우 마키 아키코, 히라가 요시코, 가이자키 게이코와 형사가 주역으로 등장한다. 세 여배우는 <고백>의 주인공 후보이자 각본가 가미야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등장한다. 형사는 세 여배우의 모노극을 보면서 가미야를 살해한 진범과 동기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한편, 모노극의 재연이라는 내용 외에도 호텔 정원을 무대로 하여 <고백>의 주연 후보였던 히라가 요시코가 가미야와 마찬가지로 독살당하고 만다. 과연 누가 왜 요시코를 독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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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아주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온다 리쿠의 책을 8권 정도 섭렵(?)한 난 온다 리쿠의 미스터리 소설이 가지는 복잡한 전개를 생각하고, 아주 주의깊게 읽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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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정말 천재적이라는 말 말고는 다른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작가인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한 권으로만 평가해 보더라도 그녀는 정말 천재적인 작가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엄청나게 뛰어난 한 권의 소설이다. Master Piece 라는 말은 이런 작품 정도는 되어야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한 편의 연극 공연을 보았다. 극중극과 또 그 극중극 안의 극중극이 이어져 있는 이야기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앞 부분을 다시 한 번 봐야 하는 때도 있었고 책을 잠시 덮고나서 골똘히 생각해보아야 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이해가 되고나면, 아니 내가 이해했다고 완벽하게 자신하기도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정말 책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복귀하기 힘들정도로 책에 빠져버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유명 각본가의 독살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를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씩 꼬리를 물고 등장하는 또 다른 미스터리와 등장인물들간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한 편의 연극을 보게 된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모~든것이 전부 각본이었다. 한 편의 시나리오. 한 편의 연극 안에 극중극과 또 그 안의 극중극이 이어지는... 극중극과 그 안의 극중극을 모두 이해해야만 외부의 스토리까지 이해 할 수 있는 한 편의 시나리오. 내가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내게는 더이상 생각 할 여력이 었다...;;
짧은 표현력으로 뭐라 설명 할 수 없는 작품인 것 같다. 그저 굉장하다는 감탄과 함께 찬사만을 보낼 뿐이다. 온다 리쿠. 다시 한번 말하게 되지만 정말 엄청난 작가이다. 모든 사람들은 배우이다. 우리는 한 편의 연극 속에 출연하여 자기 자신이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로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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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그녀의 작품들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앞다퉈 출간되고 있다. 내가 그녀를 만난지 불과 1년만에 그녀의 작품들이 결국 나의 책장 한켠을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 왠지 그녀답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호텔 정원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는 그런 은밀하고 스멀스멀한 공포가 생길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의 방' 같은 이야기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거울의 방'은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여 있어서 거울 속에 거울이 있고, 또 그 거울 속에 거울이 있고... 끊임없이 안으로 들어가도 거울이 존재한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을 읽으면서 마치 '거울의 방'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신 거울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야기가 존재한다. 읽지 않은 분량보다 읽은 분량이 더 많아질 때까지도 이야기의 구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몇 번씩 머리 속으로 상황을 그려보고 나서도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크게 '호텔 정원에서', '나그네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의 세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으며, 세가지 이야기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호소부치는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이라는 각본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고, 어떻게 결말을 써야할지 고민이 돼서 평소 남들과 다른 명쾌한 두뇌로 조언을 주었던 구스노키에게 자문을 구한다. 호소부치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고백>이라는 일인극을 준비하던 가미야라는 각본가가 <고백>의 주인공을 발표하기 전날 호텔 정원에서 열린 파티에서 독살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얼마 후 가미야가 죽은 호텔 정원에서 <고백>의 주인공 후보였던 두 여배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여배우가 독살을 당하고 만다. 각본가 가미야가 준비하고 있던 <고백>은 세 명의 여배우와 형사가 등장한다. 각본가 가미야가 <고백>의 주인공을 발표하기 직전 죽게되자, 세 명의 주인공 후보가 용의자 선상에 오르게 된다. 일인극 <고백>의 주인공이 되려면 각본가 가미야가 제공한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의 큰 틀을 바꾸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여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로 각색을 해서 오디션에 참가해야만 했다. 여배우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을 연극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가미야가 워낙 대단한 각본가였기 때문에 그녀들은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고백>은 한 여배우를 협박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고,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을 뽑는다고는 했지만 사실 주인공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형사는 <고백>을 자신 앞에서 연기해 보라고 여배우들에게 주문한다. 오랫동안 형사 일을 해오면서 거짓말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그는 범인이 하는 거짓말을 금방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한 명의 여배우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그녀는 순순히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 사건이 종결된 후 우연히 범행 장소를 다시 찾아가게 된 형사는 그녀가 가미야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가미야를 사랑해 왔다. 그러나 가미야는 그녀를 한번도 돌아봐주지 않았을 뿐더러, 그녀보다 어린 여배우와 재혼을 해버렸다. 우연히 가미야의 집을 방문하게 된 그녀는 가미야가 어이없는 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고사와 가미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를 사랑해왔던 그녀의 사랑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그를 죽인 범인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죽인 여자. 그렇게 되는 것이 당신이 바라는 바였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보다 깊이 사랑한 그 사람을, 마지막까지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이 여의치 않았던 그를, 가장 마지막에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를 연기해 온 것입니다. (p.339) '나그네들'은 가장 온다 리쿠다운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이다. 마치 스멀스멀한 공포가 피어오를 것만 같은 어두운 밤, 두 남자가 선로를 따라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예전에는 기차역이었지만 지금은 극장으로 개조되어 연극 무대로 바뀐 곳을 찾고 있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고 있다. 그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연극과 관련된 괴기스러운 이야기, 한 호텔 정원에서 죽은 젊은 여자의 이야기, 새 아버지의 양녀를 좋아했던 남자의 이야기 등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물음표가 남는 이야기들이다.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의 경계 이렇게 마구 섞여 정리가 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결국 호소부치의 각본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로 정리가 된다. 그리고 비로소 온다 리쿠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의 혼란스러움도 정리가 되고,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보르헤스는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를 독자들이 실재(實在)라고 믿게 하기 위해 가상의 책을 만들어 인용하곤 한다. 어느 책에서 인용했다는 것까지 나와있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독자들은 당연히 실재(實在)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결국 그 책마저 그가 가상으로 만들어 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엄청난 혼란이 찾아온다. 과연 어디까지가 실재(實在)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대한 경계를 알 수 없어서 생기는 혼란이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을 읽으면서 나는 보르헤스의 이야기를 읽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존재하고, 또다른 이야기 속에 또다른 이야기가 또 존재하는 이야기의 연속. 『삼월은 붉은 구렁을』처럼 이야기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온다 리쿠, 그녀는 독자들에게 쉽게 읽혀지는 이야기가 아닌 이처럼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택했던 것일까. 그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호텔 정원을 들여다 보면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호텔 정원'이라는 공간은 그리 은밀한 곳이 되지 못한다. 호텔 정원은 탁 트여져 있는 공간으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기 쉬운 곳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도 나를 관찰하기 쉬운 곳이다. 즉 내가 관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볼 수 있기도 하지만, 내가 배우가 되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연기를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녀는 경계가 없는 현실과 허구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역시 무대와 현실은 동전의 앞뒤. 보잘 것 없는 허구라도 현실의 일부. 항상 시대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그것이 연극이지. (p. 116) 2007/07/28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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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연작부터 한달의 절반을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며 보내는 지금도 그녀의 소설은 끝이 없이 나오고 있다. 온다 리쿠에게는 분명 이야기 책이 열리는 나무가 있을거라고, 미스터리 이야기 책이 열리면 후다닥 따서 출간을 하고 그 책이 출간하는 순간 다른 책이 여물고, 여러 빛깔의 책이 여물어가는 책을 분명 그녀는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나 하나의 책마다 알알이 꽉 들어찬 맛난 책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만날 때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손에 든 내게 "지겹지 않냐?" 라는 핀잔을 "너도 읽어봐!" 라는 말로만 넘기는 내게 이야기 책이 열리는 나무는 분명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성능 좋은 나무로. 다작을 하는 작가에게 편견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어내려 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설마, 이번 책도 괜찮을까?' 그래, 난 실망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파도처럼 치는 그녀의 신작들이 무서워서 너무 반가운 파도임에도 괜히 그 두근거림이 버거워서 그녀의 소설이 나를 실망시키를, 파도타기를 그만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랬는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두려웠던 건 파도타기가 아니라 밤마다 생각나는 책 속의 몽환적인 세계였다. 가고 싶다, 주인공들의 대사 속의 그곳, 작가의 묘사로 태어나는 그곳에 가고 싶음이 간절해질수록 온다 리쿠의 세계는 내게 점점 이어도가 되어간다.
이어도를 한 번 경험한 사람은 다시 전과 같을 수 없다고, 살아 있는 내내 이어도를 그린다고. 그 처절함은 아니라도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고 나면 왜이리 제어가 안 되는 것인지. 하루종일 마음은 슁숭생숭하고 내 주위를 둘러싼 바람들만 스산하게 느껴진다. 진한 커피를 몸으로 부어놓고도 모자란 듯한 깨어있음을 요구하는 작가, 온다 리쿠. 아직 그녀에게 실망할 때는 아닌 것 같다.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쥐고 흔들었다. 나를 배려하는 듯하면서도 매몰찼고 뒤돌아 서려하면 끈하나 내게 휙 던지고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실마리를 잡고 갈 마음이 생겨 따라가면 누군가가 나와 가위로 그 끈을 가차없이 잘라버린다. 비명이 입까지 치밀어 올랐을 때 다른 누군가가 나와 내게 방문을 열어준다. 모든 비밀이 풀릴 것 같은 환한 무대 조명처럼 반짝이는 방, 그 방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또 속고 만다. 그 방은 다른 연극이 시작되는 무대 였을 뿐, 마지막에 가서는 온 몸의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음을 느낀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시작과 끝이 어딘지 몰라 헤매는 나는 꼭 뫼비우스 띠를 붙잡고 우는 어린아이 같다. 얼마 전에 신문에서는 뫼비우스 띠의 비밀이 풀렸다고 하는 기사를 봤다. 뫼비우스 띠 의 비밀도 풀렸는데 책 속의 비밀이야 곧 풀리겠지 쉽은데도 책을 접었음에도 왜 갈피가 잡히지 않을까? 나 어디서 부터? 언제부터? 잘못 읽은거야? 아니면 놓친건가?
이해 못함, 그 도장이 있다면 나는 이 책의 뒷 표지에 찍어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온다 리쿠가 이해 못한 독자라는 도장을 찍어줄지도. 다시 읽기 전에 이렇게 주저리 이해 못했다고 투덜 거리는 것은 내가 이해한 것을 정리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 <디 아더스 (The Others, 2001)> 를 처음 보고 혼란에 빠졌을 때처럼 이 책도 내게는 혼란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을 발산하는 이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음을 어떡해야 할까. 두 번째 손에 든 책은 분명 무언가 다른 풍경으로 다가올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가 망설여짐은 온다 리쿠의 치밀함에 또 혀를 내두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까?
줄거리를 적을 수가 없음은 제가 아직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먼저 소화해 내신 분이 계시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감미로울만큼 치밀한 살인 그리고 연극이야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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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느꼈다.
이사람 정말 재주가 있다고
이 책은 이야기자체의 미스터리한 매력도 있지만
구조가 정말 재밌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구심점에 의해 모이는 이야기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의 책에서 보았던
책구조를 대성당에 구조의 맞춰쓴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상해보건데 이 이야기는 그렇게 쓴게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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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소설 중 가장 독특하고 흥미있는 소설이다. 각본가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정황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며 세 명의 여배우들이 같은 사건을 자신만의 연기력으로 사건을 재현해주며 독자들을 살인사건의 무대로 초대한다. 한 각본가의 살인사건에 이어 다른 한편에서는 쇼핑몰의 중앙 정원에서 이상하게 죽은 어느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안개로 둘러싸인 숲 속 극장을 찾아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이지며 소극장에 출몰하는 유령이야기로 자연스레 전개된다. 결국 세 가지 사건의 연관성을 결말에 이르러서 흥미있게 보여준다.
<호텔정원에서 생긴 일>은 밀실과 같은 호텔 정원에서 파티를 하는 중 유명한 한 각본가가 독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주요 용의자로는 다음 연극의 여주인공 후보였던 세 여배우들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어 형사의 심문을 받게 되면서 시작된다. 형사는 각본가가 무대에 올리려고 했던 작품 <고백>이란 모노드라마를 세 여배우에게 연기하게 하면서 살인 사건의 정황과 증거를 찾으려고 하면서 그녀들의 화려한 연기 대결이 시작되며 독자들은 무대에서 공연되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며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세 명의 여배우는 각기 전혀 다른 배경, 연령, 경력을 가진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이고 그녀들은 최선을 다해 그녀들의 연기를 보여준다. 과연 그녀들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연기에 충실한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를 독자들은 끊임없이 의심하며 따라가야만 한다. 그녀들이 사건 속으로 이끄는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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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는 건 아니고 즐거움은 있었는데 뭐라 정의할 수 없어 리뷰를 미뤄 왔다. 근데 오늘 우연히 어떤 분의 리뷰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글 자체의 즐거움, 글의 유희. (정말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구조인지 머리를 써가며 요리조리 이해해가며 읽느라고 좀 힘들었는데 중반쯤 넘어가고 나니 머리굴리는 것도 힘들고 읽는 자체, 이 글의 구조 자체, 형식 자체에 재미를 느꼈다.
솔직히 다 읽은 지금에도 누가 '이 책 줄거리가 뭐야?' 묻는다면 초간단한 한 줄(누가 죽었어. 범인은 누구야.. 근데 그게 전부가 아냐)밖에 말할 수가 없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보여왔던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쓴데는 작중 가미야같은 생각이 들어가서가 아닐까 했다. 인기작품에 난해함을 곁들여 작품성을 만들어 보자는.. 결국 그래서 이 책도 무슨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거야 모르지..
아무튼 온다 리쿠의 책은 읽는 자체에 큰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잔잔한 감동을 주던 작가의 책이 그립다.
이제 다른 작품 읽으러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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