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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大學(대학)』·『中庸(중용)』과 이에 대한 朱子(주자)의 章句(장구)에 懸吐(현토)하고 합본한 것이다. 원래 「대학」은 『禮記(예기)』 49편중 42번째, 「중용」은 31번째로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두 편은 유교의 주요경전으로 인식된 결과, 일찍부터 단행본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여러 주석서들이 있으나 주자가 諸家(제가)의 설을 종합, 절충하여 「大學章句(대학장구)」와 「中庸章句(중용장구)」를 짓고, 『대학』, 『중용』을 『논어』, 『맹자』와 함께 四書(사서)를 병칭하여 유교경전의 대표로 推崇(추숭)하였다.
주자는 『大學(대학)』은 옛날 太學(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라고 하고, 明明德(명명덕)·新民(신민)·止於至善(지어지선)을 三綱領(삼강령)(p. 23), 格物(격물)·致知(치지)·誠意(성의)·正心(정심)·修身(수신)·齊家(제가)·治國(치국)·平天下(평천하)를八條目(팔조목)(p. 25)이라 하여 君上(군상)의 修己治人之術(수기치인지술)을 밝힌 政治書(정치서)로 중요시하여 죽기 며칠 전까지 『대학』을 교정하다 서거하였다.
『중용』에 대하여는 『논어』「堯曰(요왈)」의 '允執其中(윤집기중)'(『논어집주』,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9년3월 3판12쇄, p. 385)과 『서경』「大禹謨(대우모)」의 '人心惟危(인심유위) 道心惟微(도심유미) 惟精惟一(유정유일) 允執厥中(윤집궐중)'(『서경집전(상)』,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8년7월 초판2쇄, p. 94)을 중용의 유래로 보고 이를 子思(자사)가 堯舜(요순)이래로 전해온 道統(도통)의 淵源(연원)을 밝힌 글이라 하였다.
「讀大學法(독대학법)」에 보면 '먼저 『대학』을 읽어 綱領(강령)을 세우면 다른 책은 잡설하여 이 속에 다 들어있다고 하여'(p. 17),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의 순서로 읽으라고 하고 있으나 그 배경을 잘 몰라서 나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순서로 읽었다. 「讀中庸法(독중용법)」에는 『대학』, 『논어』, 『맹자』를 읽으면 『중용』은 반절은 공부한 것이다.(p. 57)
『대학』과 『중용』에서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말은『대학』에서는 경문1장에 '明明德(명명덕) 親(친)(新(신))民(민) 止於至善(지어지선)'(p. 23), '格物(격물) 致知(치지), 誠意(성의) 正心(정심) 修身(수신) 齊家(제가) 治國(치국) 平天下(평천하)'(p. 24) 등으로 나오고, 『중용』에서는 1장에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 修道之謂敎(수도지위교)'(p. 59), '喜怒哀樂之未發(희노애락지미발) 謂之中(위지중) 發而皆中節(발이개중절) 謂之和(위지화)'(p. 61) 등으로 나오고 그 이후의 문장은 대부분 詩(시)와 書(서)를 인용해 논지를 전개하고 있어 첫 장만 따로 지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異端(이단)의 虛無(허무)(老莊(노장)), 寂滅(적멸)(佛法(불법))의 가르침은 그 높음이 대학보다 더하였으나 실제가 없었으며(p. 15), 異端(이단)의 말은 날로 새로워지고 달로 성하여, 老佛(노불)의 무리가 나옴에 이르러서는 더욱 이치에 가까워 크게 眞(진)을 어지럽혔다'(p. 55) 이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송나라 사람인 주자는 수·당 문명을 그 근원이 밖에 있는 외래적 문명이라고 생각하고 불교의 초윤리적 성격에 대해 비판하고 윤리주의를 들고 나왔다.(『도올선생 중용강의』, 김용옥, 통나무, p. 37), 불교로부터 유교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호교론으로서 중용을 채택(『도올선생 중용강의』, 김용옥, 통나무, 95년5월 1판1쇄, 143)하였다고 보기 때문에 오규우 소라이(1666-1728)는 주자학을 불교의 아류로 본다.
우리가 오늘날 평심하게 읽는 『중용』을 포함한 사서에 대한 비판은 조선조에는 목숨과 바꾸는 일이었다.『중용』은 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특히 주자의 해석이 가장 완벽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데, 白湖(백호) 윤휴(1617-1680)가 주자의 『중용』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하자 송시열은 윤휴를 斯文亂賊(사문난적)으로 비난했다. 斯文(사문)이란 말은 주자학, 동시에 옳은 학문, 옳은 정신, 옳은 사상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이 구절은 『논어』에 나오는데 '天之將喪斯文也(천지장상사문야),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후사자부득여어사문야), 天之未喪斯文也(천지미상사문야)(하늘이 장차 이 文(문)을 없애려 하셨다면 뒤에 죽는 사람(내 자신)이 이 文(문)에 참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이 文(문)을 없애려 하지 않으셨으니)'(『논어집주』,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9년3월 3판12쇄. p. 167)
亂賊(난적)이란 말은 어지럽히는 적이란 뜻이니까 이 옳은 정신, 옳은 학문, 옳은 사상을 어지럽히는 자, 이걸 줄여서 말하면 흔히 익숙한 말로는 이단이라고 한다. 사문난적으로까지 윤휴를 공격한 송시열, 그는 주자학만이 옳은 학문, 절대적인 진리라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주자에 대한 다른 해석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휴는 이렇게 반박한다. 천하의 많은 이치를 어찌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는가? 즉 주자학만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송시열은 철저한 주자존숭론자, 주자를 성인으로 보고 이제까지 유교경전해석은 주자가 모든 것을 다 끝내놨으니까 이제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 이건데 주자의 중용에 다른 해석을 가하고 주자를 비판하는 윤휴를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따라서 주자학 이외의 학문과 사상은 사문난적으로 엄격히 배척했던 것이고 결국 윤휴는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 당시 조선사회는 학문하던 사람이 정치했다. 결국 정권을 잡더라도 학문적인 업적과 명분을 가지고 있어야만 제대로 정치했던 것이다(仕而優則學(사이우즉학), 學而優則仕(학이우즉사)(벼슬하면서 여가가 있으면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고서 여가가 있으면 벼슬을 한다)(『논어집주』, 성백효, 전통문화연구회, 99년3월 3판12쇄, p. 378)
한국 유학사의 큰 봉우리인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1762-1836)도 그의 책에서 古注(고주)를 비판하면서도 新注(신주)(주자의 해석)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자의 해석뿐 아니라 일본, 서구제국의 연구결과를 볼 수 있고, 얼마든지 주자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배우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배울진댄 능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묻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물을진댄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생각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생각할진댄 알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분변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분변할진댄 분명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며, 행하지 않음이 있을지언정 행할진댄 독실하지 못하거든 놓지 말아,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