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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게 너무도 많았다. 휴식을 위해 찾은 공간마저도 이리 복잡해서는 아니 될 터였다. 허나 좁디좁은 땅에서 많은 기대는 금물.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공해와도 같은 존재로 여겨질 것임을 잘 아는지라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수시로 여행을 다니면서도 이유모를 목마름에 시달렸다. 여력이 닿는다면 색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여행상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제품이었다. 국토의 분단은 철마도 멈추게 만들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나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모스크바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는 날이 올 것이다. 아직은 쉽사리 닿을 수 없는 땅이어서인지 시베리아는 나에게 무한한 생명력과 신비감을 소유한 공간으로 여겨지고는 한다. 그 곳에 가면 누구나 이방인이 된다. 동시에 파괴되지 아니 한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인 만큼 발을 디디자마자 곧바로 ‘힐링(healing)'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도 같다. 많은 이들에게 이름만큼은 익숙한 바이칼 호수도 시베리아의 일부다. 거대한 호수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온을 선사할 것만 같다. 그런 풍경을 늘 접하며 성장한 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넓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시베리아를 오로지 맑음만으로 설명해서는 곤란하다. 책은 지난 역사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수면위로 끌어올렸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이야기가 비극이었다. 국가로 치자면 러시아가 될 것이다. 다들 알지 않는가! 러시아의 현 상황을. 차르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을 누리고 있는 한 인물이 떠오른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정답을 말하는 듯하다. 혁명이 있었고 체제의 붕괴도 있었다. 요동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다.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신의 뜻이었을 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면 여전히 풀리지 않는 한을 가슴에 품고 있을 고려인들과 만나게 된다. 어딜 가나 부지런한 이 민족은 낯선 공간에서도 잡초마냥 꿋꿋하게 뿌리를 박았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새 세상에 적응했건만 다시금 시련은 시작됐다. 이는 고려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색채를 띤 인물이라면 어김없이 시베리아를 찾았다. 의도한 바는 물론 아니었다. 지금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했던 것도 아닌 만큼 시베리아 유배는 곧 죽음을 뜻했다. 피어오르던 새싹이 메말랐고, 타오르던 불꽃은 꺼졌다. 그 책임을 독재자 스탈린에게만 물을 순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현대로 흘러들기 위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바람만이 몰아치는 허허벌판에서 그들은 이를 악물었다. 다시 시작하는 거다. 황량함은 억척스러움을 낳았고, 무엇보다도 풍성한 문학과 예술로 이어졌다. 저주받은 영혼은 신의 구원을 갈망했다. 죽음에 도달한 사람들은 처절하게 생의 가치를 찬미했다. 그 와중에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 뜬 이들도 있었다. 안톤 체호프, 라스푸틴, 도스토예프스키. 심지어 크로포트킨과 트로츠키 역시 시베리아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당대 에너지 넘치는 모든 존재를 시베리아는 품었다. 그 이름들을 듣고 있자니 고독만 아니라면 시베리아도 견딜만 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밤낮없이 달리는 열차에서 하루 종일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는 경험을 해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가 곤고한 생의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인간의 세상에 떨어지는 밤하늘의별빛을 가슴속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 안에 싹튼 이유모를 그리움은 실상 인간이라면 누구나 품음직한 것임을 이제야 알겠다. 왜 꼭 시베리아여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작가의 시베리아 예찬에 백기를 든 나는 오늘밤 꿈 속에서 필히 시베리아를 횡단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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