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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시다 이라는 투명하리만치 섬세한 감성을 가진 작가이다. 남성임에도 여성의 심리를 너무나 탁월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이다. 그리고 그는 카메레온 같은 작가, 다양한 성격의 소설을 너무나 어색함 없이 빠져들게 만든다. 이 책이 그의 책인가 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나 작가의 이름을 확인하게 만드는 독자의 놀람을 즐기는 것이 분명한 작가, 그를 좋아하는 건 어느 소설에도 그의 남다름은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기 때문!
<잠들지 않는 진주>를 읽으며 그의 묘사에 놀란 내게 이 책은 상상 초월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다. 사람 많은 곳에서 읽었을 때 발그레지는 볼을 숨기며 책 어딘가에 붙어있을 '19세' 를 찾았지만 그런 경고문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았으며 내가 시골처녀라서 그런가라는 의문을 품고서 다시 읽어내려 가는 책은 역시나, 집에서 읽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후다닥 가방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책을 덮고 나서 집으로 오는 내내 생각나는 료군의 섬세한 손길, 아, 이거 연애를 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인가 스스로에게 자제하자는 마음으로 숨을 몰아쉬며 그러나 발걸음은 빠르게.
야하다는 말은 언제 하는 것일까? 이 책 야하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의 빙산의 일각만을 말하는 것 같아 망설여진다면 이 책은 야하지 않은 것일까? 분명 책이 전해주고 싶은 많은 것에서, 아니 어쩌면 단 하나에서 야한 것만을 이야기 한다면 이시다 이라에게 나는 분명 최악의 독자가 될 것이다. 다행인 건 이시다 이라는 독자에게 그런 말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작가임을 책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빈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 틈을 채우는 건 사람이고, 사람이 채운다 해도 그 틈을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한 공간이 있고, 과거의 아픔이나 상처는 그틈을 더 벌려놓고 우리에게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만큼의 고독이나 아픔을 선사한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대다수가 사람에게서 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이 말해서 낡아버린 말이지만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희망처럼 품고 사는 나인지라 주인공 료를 통한 사람들과의 희망을 눈이 부시게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책을 보는 동안 영화 <오리지널 씬-Original Sin, 2001> 이 생각났다. 친구들의 말하는 야한 장면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참 예뻤던 영화였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하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심한 두근거림으로 다가왔고 십대 소녀가 된 듯 그 사랑장면을 며칠이나 되새겨 보고는 했다. 료군과의 배드신이 내게는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건 료군이 여자들에게 하는 배려 때문은 아니였을지, 타인에게 맞춰가려는 노력, 타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 그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책 속의 주인공 료의 직업은 호스트 이다. 로얄클럽의 호스트바는 일반 호스트바와는 달리 품위(?)가 있고 아무나 호스트로 고용하지 않는다. 로얄클럽의 사장 시즈카씨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료군을 스카웃한다. 어렸을 때 엄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료군은 삶에 대한 열정을 잊은 상태지만 그의 몸에는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해 준 미열정도의 열은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그 미열을 깨워주는 것은 시즈카씨와 사쿠라 그리고 그가 호스트 하며 만나는 상대들이다. '엑스터시'를 원하기 때문에 남자를 산다고 말하는 여자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들이 료군를 최고의 호스트로 뽑는 이유는 그가 채워주는 마음의 조각이 아닐까? 료군이 전해주는 사람의 소중함, 료군에게는 선입견이나 남을 낮추어 보는 행동이 없다. 그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을거라 여기고 그것에 스스로 고민하며 자신과 있는 시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한다. 몸을 파는 남자, 그를 더럽다고 말하는 메구미의 말에 발끈하는 건 책이 료군의 마음을 료군과 여자들의 배드신을 너무 아름답게 그려서 일까? 료군의 투명한 마음 때문일까? 료군에게 간직된 미열에 바람을 일으켜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일까?
이 책은 아름답다. 아플만큼의 투명함, 보는 이가 어지러울 정도의 혼란. '같이 찾아주고 싶어! 네가 잃어버린 것을' 라고 속으로 외치게 만드는 책. 사람과 사람은 어쩌면 이리도 아픈지, 어쩌면 이리도 기쁜지.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 사람이 만들어 내는 기적을 너무 가벼이 본 내게 경고를 던지는 책. 아프게 힘들더라도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손을 잡아 줄 누군가가, 기다려 줄 누군가가 없다하더라도 당신이 가는 길에 만날 누군가가도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 길에 서서 당신을 안아줄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당신도 누군가를 안아주길, 발걸음을 멈추지 않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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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뜻밖이다.
예쁜 표지그림을 보고 일본 로멘스 소설.. 그것도 아주 음울하고 감각적인 느낌의 젊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감각적인 젊은 두 청년, 연상의 여인이 등장하는 바의 씬을 보고 "도쿄타워"류의 애정 소설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했었다.
엄마 나이뻘의 멋지고 쿨한 여성과 20세의 엄마 잃은 시니컬한 대학생의 만남 이정도면 딱 바로 그 느낌!
근데 이 소설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 소재부터가 독특했고 그 소재에 다가서는 작가적 감성도 독특했다.
이 소설은 그냥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와 성과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 대한 환타지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느낌을 굳이 예를 들자면 감미로운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모던한 바에서 투명한 유리컵의 질감과 색감을 보며 그 차가운 감촉을 느끼고 입속에 뜨거운 알콜의 기운을 느끼며 눈으로는 칵테일의 화려한 색감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 홀로 칵테일의 향취와 바텐더의 손놀림에 취하는 나.. 그때의 몽롱한 그런 느낌을 이소설은 갖고 있다.
읽는 사람들의 재미를 위해 주인공 료가 무엇을 하게 되는지 어떤 만남을 가지게 되는지에 관해 언급할 생각은 없다.
이 소설의 느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까놓고 묘사하는" 사랑의 다양한 형식들. - 그것이 너무도 다채롭고도 환상적이고 편견이 없어서, 즉 주인공 료의 눈을 통해 보이는 각양 각색의 사람들의 내밀한 사랑들이 그만 이상하다기 보다는 신기하고, 섹시하다기 보다는 농염하며, 천박스럽기는 커녕 동경스럽기까지 하다. 작가는 그 묘사에 있어서 로맨틱한것과 리얼한 것의 경계선을 서커스처럼 가로지르는 곡예와도 같은 얘기 진행 솜씨를 보여준다.
누구도 경험하기 어려운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기에 타인의 속사정을 은밀히 들여다보는 그런 즐거움을 준다.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사랑에 한없이 가까운 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깊이가 느껴진다.
이소설은 더구나 문체가 엄청나게 미려하다. 어렵지는 않지만 묘사가 함축적이고 비유적이다. 이 작가의 소설을 이전에 읽어본적은 없지만 번역을 무지하게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모험적인 재미와 묘하게 에로틱한 느낌과 신비로운 캐릭터들에 대한 단상을 모두 포함한 서늘한 레모네이드 같은 책이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주인공들의 비밀 또한 특출한 부록의 하나가 될 것이다. 독자들 사이에서 속편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후기도 있는데 나 역시 속편이 있다면 꼭 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나면 과연 평범하다는게 뭔지 장애가 있다는게 뭔지 인간이 인간과 소통하는 단일한 방식에 우리가 얼마나 얽매여 있었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수도 있을런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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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가 자신이 창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긴장의 끈이 풀어지며 편안해진다. 료가 보여주는 성애의 장면들이 료가 알고 싶어하는 욕망의 끝에 이르는 길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리 거북하지 않다. 료가 궁금해하는 욕망의 깊이에 대해서 궁금하진 않았다. 욕망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욕망은 그 모습이 다를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욕망만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인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알기를 바라겠는가. 이 세상을 모두 알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욕심일 뿐이다. 료가 가고자 한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알고 싶은 욕심은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지 못할 것도 알고 있었다. 결국 료도 평범한 한 남성으로 사랑하는 사람 곁에 머물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메구미가 료를 바라보는 시선과 나의 시선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제까지나 창부의 일을 할 수는 없으며 밝은 햇살 아래 살아가며 이 일을 함께 할 순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모든 '선'을 대표하는 듯 행동하는 메구미의 모습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료가 속한 세상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달라 메구미의 의견에 동조할 수 밖에 없지만 손님이 되어 료를 지명하는 순간, 메구미도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이가 메구미다.
탄력을 잃은, 더이상 젊음이 남아 있지 않은 나이 많은 여인의 몸을 보면서 이에 대해 거북함을 느끼지 않는 료는 그녀들에게서 엄마와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아니 엄마의 일부분을 본다. 엄마를 기억할 때면 '손'이 떠오르는 료에게 나이 많은 여자들은 단순한 타인이라기 보다 어린 시절 기억속에 남겨진 엄마의 일부분이다. 이런 감정때문에 료가 묘사하는 성애의 장면들이 거북하지 않은데 예술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타인의 깊은 곳에 내재된 욕망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 소박하게 묘사하는 료 덕분에 책 읽기가 한결 편안해지는 것이다.
저자 이시다 이라는 미도 시즈카와 료의 만남을 운명으로 표현했다. 불행한 만남이지만 더 먼 곳에서 이어진 인연은 이들이 만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연의 끝은 '사랑'에 이르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 자신의 곁에 머무는 사랑은 슬프다. 료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갑자기 끝나 버린 듯 독자들을 허무하게 만든다. 속편에 대한 기대는 그래서 생겼을 것이다. 료의 남은 삶에 대해,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랑에 대해 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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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다 이라의 <잠들지 않는 진주> 를 읽은 뒤로 두 번째 읽은 그의 소설이다. <잠들지 않는 진주>를 읽기 전, '다소 선정적' 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 책 <렌트>를 읽기 전, '아주 선정적' 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들지 않는 진주>에서 적나라한 성행위가 묘사되었다면 이 책 <렌트>는 변태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책이다. 오로지 그 부분에 대해서만 보자면 <잠들지 않는 진주>는 <렌트>에게 게임이 안된다. 살다 살다 이런 책은 또 처음이다. (아, 처음은 아니군. 에헴) 좀 다르긴 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섹스에 경악한 일이 있으며 슈카와 미나토의 <새빨간 사랑>의 '내 이름은 프랜시스'를 읽고 역시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모두 일본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군그래. 일본의 성문화는 정말 이리도 난잡하고 지저분한지. 역시 야동의 교과서같은 나라답다. 뭐 그건 그렇고, 이 책의 수위(?)를 보자면, 절대 절대 비닐포장용이다.
음.... 왜 이 책을 두고 그리를 떨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니 알 것 같다. 책을 읽기 전에는 '에이~ 뭐 얼마나 그럴라구' 하는 마음 반,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하는 마음 반이었다. 뭐 그저 적나라한 묘사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 기분? 그런데 이 책은 완전 그간의 상식(?)을 뒤엎었다.
<렌트>와 <잠들지 않는 진주>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감정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닮았다. 두 작품에서 그 점을 살펴보자면, 모두 다 남녀가 호텔 로비에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체취가 씻기지 않은 상태를 원하는 점, 마지막으로 '노년에도 성욕(사랑)은 있다.' 하는 이시다 이라의 목소리다. 역자 후기를 보면 이시다 이라는 베드신 묘사를 좋아한단다. 그의 이런 면이 훌륭해보인다거나 멋져보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거야 뭐, 개인취향일수도 있지. 그치만 개인취향이라고 보기에는 <렌트>는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난잡한게 아닌지 싶다. 이시다 이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각기 다르고 다양한 형태로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여성 또한 남성과 같이 성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입장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들을 말하고자 한게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서라면 이 소설은 너무나도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다. 관전(누군가의 행위를 지켜보거나 자신들의 행위를 타인에게 보게 하므로 쾌락을 얻는 것), 동성애, 쓰리썸, 성매매, 가학행위.... 많이도 나오는군 그래.
나는 이시다 이라의 섬세하고 여성스런 감성과 문체, 그리고 그의 표현력을 좋아한다. <잠들지 않는 진주>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도 이런 점들 때문이다. 그리고 <렌트> 역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했다. 그러나 이시다 이라는 왜 이런 글을 쓰는 것일까? 어떤 글을 쓰든 가장 솔직하고 정직한 이유는 작가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시다 이라가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적나라한 글을 써내는 재미에 하는 짓거리라면 언젠가는 그의 글은 쓰레기 이상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그릇이라 한들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 이상일 수 없듯이. 솔직히, <렌트>를 읽고 이시다 이라의 성적 취향 또한 의심스럽다. 속된 말로 '이 작가 변태 아니야?' 싶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의 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장선우의 <거짓말>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례이다. 혹자는 외설로 단정하고 판정함으로 인해 예술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되지 못하며 질이 떨어지게 되며 예술가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하고 혹자는 예술을 빙자한 건전하지 못하고 온건하지 못한 것이야 말로 예술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수요자(관객 내지는 독자가 되겠지)를 교란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책 <렌트> 역시 일본에서는 나오키상 후보작이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작품이라 일컫고 또 다른 곳에서는 쓰레기로 칭해지는 이렇게 양분되는 창작물을 판가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러니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오로지 자각에 의해, 지극히 주관적으로 판가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책 <렌트>는 인간에게 감추어진 근본적인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의 다양성을 꺼내어 보이는 일에는 매우 친절했다.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욕망들이 어찌나 많던지. 그리고 이시다 이라만의 섬세한 필치로 써내려간 작품이라 반갑기는 했다. 그러나 여전히 <렌트>에 대한 당혹감과 일본인들의 성의식에 대한 의문은 지울 수 없을 듯 싶다. 끝으로, 이 책을 내게 건넨 이는 '어떻게 읽어야 할지' 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나 역시 이렇게 응수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그러게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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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책 커버를 봐서는 제목을 봐서는 전혀 감을 못한다. 아니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표지에 스무살, 그해 여름 나를 사로잡은 달콤한 비밀. 난 가슴 시린 짝사랑이나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려거니 하고 시작했지만 상상를 초월한다.
*료와 미도시즈카 료는 학교는 출석하지 않고 밤에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텐더이다. 어느날 불현듯 친구 신야와 함께 나타난 클럽 마담 미도시즈카. 그녀는 료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고. 여자도 섹스도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료는 그 미도 시즈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료는 중년여성인 미도시즈카에게서 어머니의 향수를 그리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비밀을 알려준다.
*료와 메구미 료가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대신 메구미는 수업내용 정리를 한 노트를 빌려준다. 대신 료가 일하는 바에서 마시는 것은 모두 무료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료에게 다가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위험을 무릎쓰고 그를 보호하려 한다. 정작 료는 달갑지가 않다.
* 료와 사쿠라 사쿠라, 그녀를 료가 처음 본 곳은 미도시즈카의 맨션. 청각장애자로 말로 듣지도 못한다. 그녀 또한 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 료와 아즈마 료와 아즈마는 동료이다. 둘다 클럽에서 1위를 다투는 사이이지만.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료와 미도시즈카는 료의 과거 기억속의 어머니라는 매개체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료와 메구미 그리고 사쿠라는 료가 학생시절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칼로 찔러 버린 낯선 소녀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료는 과거의 선명하고도 아픈 상처를 현재에 다시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사람은 진정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료는 남창이다. 하지만 고급 손님들을 상대로 심지어 그냥 데이트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언제나 제3자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일을 자기의 평생 직업으로 삼겨된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만족을 준다는 것은 보통 서비스업과 다를게 없다. 하지만 성관계에서 돈이 거래된다는 것은 불법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메구미가 저지른 일을 알면서도 그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제 몸을 맡긴다. 황당한 상황에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는 정말 타고난 남창인지도 모른다. 늘 여자들의 매춘에 대한 사건만 익숙했었는데 남창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다가온다.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을테니깐 말이다.
역시 섬세하고도 야하다. 이시라 이라만의 매력이 마음껏 나타나는 책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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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그해 여름 나를 사로잡은 달콤한 미열.
도서관에 책을 보러 갔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813.36 서832(유레루) 813.36 석732(렌트)
그래. 나는 유레루를 빌리러 갔다가, 이 책을 뽑아 들었다.
"스무살, 그해 여름 나를 사로잡은 달콤한 미열."
제목이 아니라 그 옆에 붙어있는 저 문구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뽑아들게 만들었다.
이 책,
"온 몸과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 곤란할까?"
이 책은 지하철에서 읽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성적묘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나는 학교를 오가는 길 그리고 내 방 침대에서 모두 읽어버렸다.
이 책에서는 여러 여인들의 성적인 차이들을 많은 종류로 묘사한다.
그동안 많은 여자나, 친구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다르다는 것. 그 매력을 살려줄 사람을 만나고, 그 매력을 알아줄 사람을 만났을 땐 그 사람은 그 때 눈부시게 빛난다는 것.
사람은 외모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한번 깨달았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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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이었다. 이시다 이라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주제와 이야기여서 과연 같은 작자의 작품이 맞나하면서 지은이를 다시 살필 정도였다. "이케부쿠로 웨스트게이트 파크" 같은 미스테리적인 작품만 읽다가 이 책을 만나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했다. 하지만 역시 이시다 특유의 빠르고 감각적인 문체를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호스트다. 이른바 '몸파는 남자'. 아주 파격적인 설정이다. 결코 양지에 있을수 없는, 음지의 직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 인데다가 더구나 남자다! 주인공은 20살의 대학생 료다. 학교는 잘 안나가고 칵테일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어떤 특정한 목적이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 그냥 인생이 따분해서 그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의 친구인 신야는 호스트다. 어느날 그가 미도 시즈카라는 자신이 속해있는 클럽의 마담을 데리고 온다. 거기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는 료. 평범한듯한 료에게서 무엇을 느꼈을까. 비록 학교때 여자아이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겉으로 보이는 면으로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5천엔의 몸값을 받게되는 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클럽의 톱클래스급의 호스트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게 되는데... 료의 직업자체가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것인데 그를 찾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이른바 '변태'스러운 사람들이었다. 남자 두명과의 관계에서만 만족을 얻는 여성, 오줌 누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쾌감을 얻는 여성등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혐오스러울수도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료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을, 그 간절한 욕망을 비록 댓가를 받지만 정성스럽게 들어준다. 그들의 삶도 어찌보면 존중받아야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평범하지 않는 욕망들... 그 다양한 욕망들에 과연 얼만큼 비난할수가 있을까.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 변태가 아닐까. 아마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것은 아닐까. 그것을 알기에 료도 그들을 받아들일수 있었을것이다. 무료했던 삶을 살고 있던 20살짜리 청년 료는 이 직업을 하면서 세상을 좀더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필 왜 그렇게 통해서 자신을 세상을 보게 되었을까 했지만 그 이유가 끝 부분에 가서 짐작하게 된다. 무의식중에 그를 지배했던 그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는것이다. 그와 더불어 그를 그쪽으로 이끌어냈던 미도 시즈카와의 관계도 어떤 인연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런저런한 것들이 얽혀서 결국 료가 그쪽으로 갈수밖에 없는 필연이 되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정 자체가 남자 호스트가 주인고인만큼 이야기 내내 여러가지 파격적인 성적인 묘사가 나온다. 얼핏보면 외설인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감각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적절한 묘사와 전개를 해서 읽은이로 하여금 그속에 녹아들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야하긴 하지만 그리 속되보이지 않게 보이는것은 작가의 역량일것이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 책은 위험한 소설이기도 하다. 호스트라는 직업, 창부라는 그 직업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자던 여자던 돈을 주고 성을 사는것 즉, 매춘은 필요악이던 뭐던 나쁜것임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의 욕망을 그런식으로 해소할수밖에 없는 현실때문에 비록 없앨수는 없다고 해도 말이다. 료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일것이다. 그가 그것을 통해서 성장을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꺼라고 생각할수는 없다. 이 책의 지은이도 물론 매춘 그 자체를 긍정적인 뜻으로 그린것은 아닐것이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그런 직업속에서도 인간은 있고, 또 성장할수도 있다는 그런 메세지를 던진건 아닐까. 어쨌던 참 매력적인 책이었다. 어쩌면 우리 속의 욕망을 대입해서 본것일지도 모르겠다. 책 주인공을 그려낸 표지 디자인도 좋았다. 몽환적이면서 나른한 주인공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번역도 깔끔했고 제본도 잘 되어있다. 다만 책분량에 비해서 책값은 조금 비싼편이다. 반양장본을 하지 말고 좀더 가볍게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20살이었을땐 어떤 생각을 했을까. 빨간색의 강렬한 표지에 걸맞는 선명하면서도 몽롱한 이야기. 뜻밖의 장소에서 색다르고 특이하게 세상보기는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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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의 원제는 '娼年'이다. 너무나 줄거리가 확 보이고, 비교적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지 않는 원제를 버리고, '빌려주다'는 의미의 'Rent'를 제목으로 차용했다. 이 책의 부제인 '스무 살, 그해 여름 나를 사로잡은 달콤한 미열'을 보고 떠오른 책은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이었다. 그 책을 읽은 시기도 여름이었고, 주인공 '수련'과 마찬가지로 내 나이도 스무 살이었다.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은 이제는 나이가 든 화자가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을 돌이켜 본다는 점에서, 현실의 화자가 자신의 스무 살을 보여주고 있는 『렌트』와 다르겠지만, - '회상'을 통해 그린 스무 살은 그 애틋함 때문에 더욱 미화되었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나 스무 살이었던 '나'는 전경린의 소설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고, 결국은 해답을 못 구하고 끝내버린 아쉬운 책이었다.
이 책도 그것과 틀리지 않는다. 이시다 이라의 섬세한 묘사와 간결한 문체는 '여성들의 욕망이 얼마나 깊고 넓고 다양한'지는 효과적으로 보여주지만, 정작 주인공인 '료'에게는 '미도 시즈카'가 보이는 서늘한 시선만큼이나 무감하게 일관한다. 거의 후반부까지 '료'는 자신의 미래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기회를 놓인다 해도 상관없고, 선택의 순간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철없는 스무 살의 모습이다.
이 때까지 주인공 '료'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에 나왔던 한 구절이었다. "스무살이 인생이 되게 하지는 말아라. 스무살은 스무살일 뿐이야. 스무살을 삶으로 끌고 가지 마라." 그러나 마지막 순간 '료'는 자신의 자아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미래를 선택한다. 스스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여름이라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선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린 그것을 '성장'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욕망의 다양성'을 말한다. 그리고 그 '욕망'이 새롭고 낡은 것도 없는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작가는 "욕망의 비밀은 그 사람의 상처 입은 부분이나 약한 부분에 몰래 숨어 숨 쉬고 있다"며, 섬세하고 평범한 '료'에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귀 담아 듣게 하고, 보듬어 주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한다. 그건 그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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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몸을 비비 꼬았는지 모른다. 조용한 곳에서 나 혼자 책을 읽고 있음에도 혹여나 누가 볼까 긴장하면서 읽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한 베드신의 연속으로 이렇게 당황을 한 것인데 야동이 판을 치는 세상에 책이 적나라 해봤자지 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묘사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난 편인데 거기다가 작가의 문체가 뒷받침해 준다면 한편의 영상보다 나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책을 꾸준히 보아온 탓에 묘사에 대한 상상력은 조금 있는 편인데 여기다 저자의 문체가 더 자극을 시켜 주었으니 머릿속에는 낯뜨거운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의 직업이 창년이였으니 베드신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고, 단순한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그것은 욕망의 분출이기도 했고 욕망의 채움이기도 했지만 창년 료는 그 세계에 매료되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남들이 봤을때 유쾌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미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료에게는 새로움이 되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희열보다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을 상대하면서 무한함 속으로 들어 간다는 것은 현실 세계와 분명 달랐다. 자신은 여자를 비롯한 그 어떠한 것에도 관심이 없다고 했으니 창년의 제안도 별 느낌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열을 찾아 보고자 하는 마음에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료에게 창년을 제안했던 미도 시즈카가 료의 자질(?)을 어느정도 알아본 것도 있지만 여자 손님들은 료를 상당히 맘에 들어한다. 미즈카가 충고했듯이 그 여성들 하나하나에 진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진심의 발견은 섹스일 수도 있지만 여성들 내부에 깊숙히 묻혀있는 욕망을 이해해주고 들어주는 것에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녀들은 섹스를 통해서 욕망을 분출하려고 했지만 그 늪에 빠진 것은 료였다. 여자들의 욕망을 알아가면 갈수록, 그 세계에 대한 혐오보다 그녀들을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며 자신이 찾고자 했던 열정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껴간다. 20살 료에겐 그것이 분출이였다.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아픈 기억도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지리멸렬함에도.
그러나 료가 그런 느낌이라고 해서 창년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는 없었다. 변태적인 손님을 주로 다루며 자신 또한 그런 습성을 즐겼던 아즈마는 료가 단기간에 vip 전용으로 뽑힌게 보통사람 이여서 라고 했다. 보통사람의 사고와 고뇌를 지닌 료가 평범해서 그런 매력을 뿜어 낸 것이라고(물론 외모도 어느정도 받쳐 주면서). 자칫 료가 창년이 된 것은 돈이 목적이 아니였고 욕망의 분출도 아닌 열정을 찾는 계기였다고 해서 획일화된 사고를 심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역효과를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료가 창년의 일을 잠시의 흥분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 일을 계속 추진하기로 한 결말에서 드러나지만, 저자의 섬세한 문체 속에 푹 빠지다보면 료가 손님들을 대했을때 진심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료에게는 새로움이 될 수도 있었지만 료를 지켜보는 타인에게는 행위에 대한 자각심이 떨어질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런 위험성을 뒷받침해 주었던 건 저자의 섬세함이였다. 료를 통해서 충족해가는 다양한 손님들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문체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때로는 여자들보다 더 깊은 곳을 헤엄치는 듯한 저자의 묘사는 료가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랬기에 료는 그 매력의 발산이 되는 여성의 육체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고 그 일을 계속하게 만든게 아닐까. 창년으로써의 일을 관뒀다면 오히려 퇴폐적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경험밖에 되지 않을 일을 료의 결정으로 하나의 세계로 인정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도 처음 줄줄이 이어지는 베드신을 보면서 적나라하다 느낌이면서도 담담하게 관찰자로써 써내려가는 저자의 문체에 저급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나또한 덤덤하게 바라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찾은 것은 없었다. 료처럼 여성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찾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은 것도 아닌, 지켜본 것이 전부였다. 그 세계의 존재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료를 통해서 얻을 만큼 내 삶이 무료하다 생각되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에 대한 억압도 아니고 편견도 아니다. 성에 대한 편견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더 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순히 빛을 보고 싶을 뿐이다. 어찌 되었든 료의 세계는 너무나 어둡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