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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금지하면 아이들이 책을 읽는다." 라는 다나와 슌타로씨의 말을 들으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대한민국은 책들에 접근할 수 있는게 너무 쉬워졌기 때문에, 오히려 책을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책 읽는 시간을 많이 허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때문에,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했던 저자, 그리고 책장 가득 진열되어 있는 책을 보고 자란 저자의 삶은 책은 그저 지식을 쌓는 수단뿐이 아닌, 그저 하나의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 또한 형들이 사다논 책들을 심심할때 들쳐보다가 푹 빠져버린 케이스인데, 소설책뿐아니라 철학책등 다양한 책들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도, 책들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난 그다지 환타지소설이나 무협지 소설은 그다지 흥미를 갖지 못했는데, 아마도 비현실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읽기, 듣기는 인풋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쓰고 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기와 듣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린, 읽기,듣기를 멈춰버린다. 오히려 말하기에 많은 비중을 준다. 그것이 오히려 쉽기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 처럼, 한권의 책을 위해, 몇백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처럼 인풋이 많으면 많을 수록, 아웃풋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듣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단순히 언어를 듣는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뿐 만이 아니라 화자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린 어느순간엔가 듣는다는 것은 나의 주관적인 필터가 장착된 상태로 듣기에, 화자와의 올바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읽기와 듣기는 단순히 정보의 인풋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화자, 또는 작가의 생각을 올바르게 이해하여 화자와 작가와의 관계가 더욱 성숙하고 따뜻한 관계로 거듭나야 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이라는 비실용적인 주제를 가지고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또 많은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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