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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カ! :: 伊藤たかみ 초등학교 시절을 있는 그대로 고백 하는 것 만큼 민망한 것이 또 없다. 순수함의 허울을 쓰려고 해도 너무 젠체를 하고, 이성적 존재로서 매겨보려 해도 별 하나 주기 아까운, 내 자신의 과거면서도 마치 옷에 들러붙은 벌레라도 보는 마냥 그 시절이 징그럽고 소스라친다. 고작 지갑과 머리 방울의 가치에 연연하던, 거친 나무 책상에 금을 긋고 이성의 짝과 신경전을 벌이던, 지우개나 연필 싸움으로 희비가 엇갈리던, 친구의 말을 듣기보다 내 의견을 말하기에 급급하던 시절이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는데,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잔재가 다 털어 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이라고 물건의 소유에 연연하지 않고, 타인과 영역 싸움을 벌이지 않고, 사소한 다툼으로 감정의 고저가 없고, 상대방의 의견을 내 말보다 더 잘 듣고 있는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유스케는 쌍둥이 여동생 미카와 함께 아빠 밑에서 살고 있다. 한동안 고등학생인 누나 아유미도 함께 살았었지만 아빠와의 불화로 집을 나가 별거 중인 엄마에게로 갔다. 남매끼린 사이가 좋은 편이지만, 미카는 스스로가 여자 아이임을 부정하며 남자애처럼 거칠게 행동하고 그로 인해 싸움이 끊이지 않아 매번 유스케가 뒷수습을 하게 된다. 서로에게 의지할 뿐인데 학교에서는 둘이 결혼 할거라는 이상한 소문이 돌아 마음이 괴롭다. 친구 관계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그런 와중에 유스케와 미카 남매는 자신들만의 비밀 기지에서 괴이한 동물을 발견해 "그저께" 라는 이름을 붙히고 키우기 시작한다. 키위 열매만 먹는 동물인줄 알았더니 알고보니 자신들이 눈물을 흘리면 그걸 먹고 성장하는 정말 알 수 없는 생물이다. 유스케는 한번 밖에 눈물흘 흘리지 않았는데도 '그저께' 는 점점 크기가 커져간다. 자신보다 센 척 하는 미카가 실은 몰래 와서 울고 가는 것일까? 이대로 '그저께' 가 커가면 어떡해야 할까. 열살도 되기 전,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없었던 현실의 비밀을 알아 버리는 바람에 그 당황스런 마음은 도벽이 되기도 하고, 괴짜스런 성격이 되기도 하고, 사내애들 앞에서 지지 않으려는 고집이 되기도 했다. 부모가 나를 속였기에 나도 부모에게 솔직해질 수가 없었고, 친구에게 털어놓고 싶어도 그 나이의 언변으로 그만한 일을 설명하기란 역부족 이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과장할 수 밖에 없어서 타인과의 거리만을 벌려 놓았다. 열두살이 되던 때에,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했다. 그 당시의 어린 나를 지금 와서 회고 하자니 참 안쓰러우면서도,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해도 붙혀 주면서도, 작은 일을 부풀려 망상했던 나를 그때 바로 잡았다면 처세술을 익히는 것이 좀더 빨랐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자기 연민을 지나치게 키워서 성장의 여지를 스스로 저지 해버린 셈이라고 할까. 눈물을 먹고 자라는 '그저께' 는 자기 연민의 덩어리다. 스스로가 불쌍해 눈물을 흘리고 그 존재를 키워봤자 '그저께' 는 단지 과거일 뿐, 응어리의 일시적 해소 말고는 그 무엇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정상적 가족의 형태를 박탈 당했어도, 부모의 관심권에서 벗어나 외로움을 더 많이 얻을 수 밖에 없었어도, 사랑하던 사람에게 버림 받았어도,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원하던 것을 얻지 못했어도, 어긋나고 헤어지게 되었어도, 닥치는 일에 대한 감정 조절을 위해 눈물의 댐을 여닫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쏟아내 흘려 보내지 못하고 악착같이 끌어 모으기만 하면 언젠가는 한계 수위에 이르러 부서지고 무너져 무용지물이 되는 것 밖엔 기다리고 있는 것이 없다. 왜 아직도 초등학교 때처럼 소소한 것에 연연할까. 왜 아직도 그 어린 시절처럼 감정의 변덕을 부릴까. 왜 아직도 얻을 수 없는 것에,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불쌍하게 만들려 할까. 속상해, 괴로워, 죽겠어, 하고 말하며 세상에 떼를 쓴들, 그래서 한번 이라도 그 투정이 통했던 적이 있는지? 어떻게 해야 앞으로 나갈 수 있는지 해답을 알면서도 왜 초등학교 때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고, 그때의 유치스런 행동을 답습하고 있을까?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그 눈물을 '그저께' 에 뿌려 내보내고, 다시금 내일을 향해, 모레를 향해 씩씩하게 걸어 나가는 '어른' 스러움은 언제나 찾아 올련지? 울어 봤자 소용 없으니까, 떼를 써봤자 소용 없으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하면서 다친 상처를 내둬 버리는 것이라고 어른스러운 것은 아니다. 넘어졌을 때의 상처는 아이라고 더 까지고 어른이라고 덜 까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다치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울기도 하고, 그래도 치료할 수 있다고 굳센 마음을 갖고, 눈물로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발라 영차 하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또한 아직 스스로를 치료할 수 없는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 아니 비단 아이가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다른 이들을 돌봐 주려는 사람이야말로 "어른" 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께" 의 아이를 벗어나 "모레" 의 어른이 되고 싶다. 상처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혀 다쳐보고, 그것으로 울고, 그것으로 성장해, 그 경험으로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 도망치고 회피하고 변명하는 자기 연민 덩어리가 아니라 나아가고 다가서고 끌어안는 이타적 자아를 깨우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을 사랑하고 싶고, 미래를 사랑하는 만큼 과거를 사랑하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성장" 일거라는 믿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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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그저께를 읽으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기한 동물 그저께에게 호기심이 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그저께가 사람의 눈물을 먹는다는 것이었어요. 가짜 눈물이 아닌, 슬퍼서 나오는 진짜눈물 말입니다. 안녕, 그저께를 보면서 나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했구요. 청소년 도서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공감하게 됬습니다.
미카가 말했죠. 모두에겐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그러니 자신도 행복해 질거라고.
저는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해 지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