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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소품문의 대가 연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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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쓰기 철학은 법고창신이다. 항상 법고와 창신의 묘미를 살려야 하고 병통을 제거해야 하는데, 법고주의의 병통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편협함(隘)이고, 창신주의의 병통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불공(不恭)이다. 따라서 연암은 「초정집서」 에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 아아! 옛것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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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의 글쓰기 철학은 법고창신이다. 항상 법고와 창신의 묘미를 살려야 하고 병통을 제거해야 하는데, 법고주의의 병통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편협함(隘)이고, 창신주의의 병통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불공(不恭)이다. 따라서 연암은 「초정집서」 에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아아! 옛것을 모범으로 삼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구애되는 것이 병이고, 새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은 상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탈이다. 참으로 옛것을 모범으로 삼되 변통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 내되 법도가 있게 할 수 있다면, 지금 글이 옛날 글과 같을 것이다.(244쪽)

또한 「공작관문고자서」에서 글을 쓸 때 지적 허세나 화려한 분칠을 지양하고, 보다 진솔하고 개성적인 글쓰기를 주문한다.

글이란 뜻을 드러내면 족하다. 글을 지으려 붓을 들기만 하면 옛말에 어떤 좋은 말이 있는가를 생각한다든가 억지로 경전의 그럴듯한 말을 뒤지면서 그 뜻을 빌려 와 근엄하게 꾸미고 매 글자마다 엄숙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은, 마치 화공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때 용모를 싹 고치고서 화공 앞에 앉아 있는 자와 같다. (281쪽)  

 

역시 평범한 일상사를 가볍고 참신하게 표현한 '소품문의 대가'다운 조언이다. 연암이 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장가인지 단박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연암은 고문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는 것과 동시에 고문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표현법과 조선 고유의 속어ㆍ속담 등을 구사한 참신한 소품문을 많이 남겼다. 

 

한편, 연암은 「소완정기」에서 독서의 비법으로 성찰적 요약(約)과 통섭적 깨달음(悟)의 이치를 강조한다. 소완정(素玩亭)은 연암의 제자 이서구(1754-1825)의 당호로, 자는 낙서이고 호는 강산이며, 척재, 녹천관, 소완정이라는 호를 쓰기도 했다. 

"천지 사이에 있는 게 죄다 책의 정이라네. 이는 방 안에 틀어박혀 들입다 책만 본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닐세. 그래서 포희씨가 문을 살핀 것을 두고, '우러러 하늘을 살피고 굽어봐 땅을 살폈다'라고 했는데, 공자는 이러한 포희씨의 천지 읽기를 거룩하게 여겨 「계사전」이라는 글에서 '가만히 집에 있을 때는 괘사와 효사를 음미한다'라고 말했거늘, 무릇 '음미한다'라는 것이  어찌 눈으로 봐서 살피는 것이겠나? 입으로 맛봐야 그 맛을 알 수 있고, 귀로 들어야 그 소리를 알 수 있으며, 마음으로 이해해야 그 정수를 알 수 있는 법일세. 가령 지금 자네가 문풍지에 구멍을 내어 한쪽 눈으로 뚫어져라 보고, 둥근 유리알로 빛을 모으듯이 마음으로 깨닫는다고 치세. 비록 그렇더라도 창이 투명하지 않으면 빛을 받아들일 수 없고, 유리알이 투명하지 않으면 정을 모을 수 없는 법일세. 대저 마음을 밝히는 도란, 텅 비워 물을 받아들이고 담박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는 데 있나니, 이것이 바로 이 서재 이름을 '소완'이라고 한 이유일 테지."(273, 274쪽)


연암의 어법에서 오늘날에도 즉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한자어 표현은 찾기 힘들다. 실용성은 떨어진다. 그래도 '원문풀이'에서 제법 재미난 말을 골라봤다.

●馬輾마전: 이는 원래 말이 땅바닥에 뒹굴며 몸을 비비거나 발길질하는 모습을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어리광을 부리며 발버둥치는 작자의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썼다.

●飣餖정두: 음식을 죽 늘어놓고 먹지 않는다는 뜻. 의미 없는 문사를 죽 늘어놓는 것의 비유.

●胡盧호로:입을 가리고 웃는 모양, 혹은 깔깔거리고 웃는 모양.

●嗢噱올갹: 웃음을 그치지 아니함. 배를 안고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는 모양.

●軒渠헌거:쾌활하게 웃는 모양.

●粲然찬연: 흰 이가 드러나게 웃는 모양.

●屏營병영:배회하는 모습.

 

연암의 성격과 기질이 가장 잘 드러난 글은 『공작관문고』에 나오는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다. 친구가 보내준 술에 취한 연암은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찬을 지었다.

 

"제 몸 위함은 양주를 닮았고

겸애함은 묵자를 닮았고

집에 양식이 자주 떨어지는 건 안회를 닮았고

고요히 앉았기에 노자를 닮았고

자유롭고 거리낌 없기는 장자를 닮았고

참선하는 듯함은 부처를 닮았고

불공스럽기는 유하혜를 닮았고

술 잘 마시는 건 유령을 닮았고

밥 얻어먹는 건 한신을 닮았고

하염없이 자는 건 진단을 닮았고

거문고 타는 건 자상호를 닮았고

저술하는 건 양웅을 닮았고

자신을 큰 인물에 견주는 건 공명을 닮았으니

나는 얼추 성인일세!

다만 키가 조교만 못하고

청렴함이 오릉을 못 따라가니

부끄럽네 부끄러워!"(71, 72쪽)

연암은 유머와 패러독스의 달인이다. 자찬에 연암 개인의 인간적인 면과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나는 얼추 성인일세!"는 얼빠진 허풍이 아니라 건강한 정신에서 나온 패러독스다. 연암이 경학에 조예는 깊지 않았지만 문학의 깜냥은 스스로 대견해 하는 바가 있었다. 연암이 스스로를 조선의 삼류선비라 칭하였던 것도 자신의 문장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인 셈이다.

z***a 2014.10.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