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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름 그륀 신부의 ‘베네딕도 이야기’를 읽게 된 것은 왜관(倭館)의 베네딕도 수도원에 대해 알기 위해서이다. 저자인 안셀름 그륀은 베네딕도 수도회의 수도승이다. 그는 참선과 불교 수행, 융 심리학을 접한 것이 수도 생활의 영적 풍요와 베네딕도의 심리학적 지혜에 새롭게 다가갈 길을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누르시아의 베네딕도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이냐티우스 성인에 비해 다소 덜 알려진 존재이다. 그는 유럽의 수호성인, 유럽의 아버지 등으로 불렸다. 안셀름 그륀은 베네딕도에 대한 역사적 모습은 불투명하지만 그 자신의 '규칙서‘와 그레고리오 대종(大宗)의 ’대화집‘은 중요한 두 원천이라 설명한다. 그레고리오 대종의 ’대화집‘은 베네딕도의 내적 성장을 엿볼 수 있는 영적 전기이다. 이설(異說)이 있지만 베네딕도는 500년경에 태어나 555 ~ 560년에 삶을 마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575년에 삶을 마쳤다는 기록도 있다.) 배네딕도가 살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혼란기였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아테네 학당을 폐쇄한 529년 베네딕도는 몬테카시노 산정에 수도원을 세웠다. 젊은 베네딕도는 내적 지혜를 위해 외적 지식을 포기했다. 베네딕도는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지 않고 가시덤불에 알몸을 던짐으로써 발산했다. 베네딕도는 성욕과 단절하지 않았다. 그는 성욕을 직시하고 영성의 원천으로 변화시켰다. 안셀름 그륀은 성욕은 불과 같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성욕 없이는 생명력과 힘도 없고 신적 사랑의 불길도 타오를 수 없다. 안셀름 그륀은 말한다. 성욕의 불길을 영성으로 변화시키고 하느님 안으로 몰입하려는 갈망으로 변화시키는 데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안셀름 그륀은 성욕 다음으로 강한 삶의 에너지는 공격성이라 말한다. 베네딕도는 성욕과 공격성을 남에게 투사(投射)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그것을 봄으로써 영적 여정에 큰 도움을 얻었다. 베네딕도는 개인의 수덕(修德) 생활이 아닌 여럿이 더불어서 하느님을 찾는 능력에서 영성을 찾았다. 베네딕도에게 생활의 동기를 제공한 것은 초대교회에 대한 향수였다. 안셀름 그륀은 생동감을 참된 영성의 표지로 정의한다.(생동감이란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는 데만 힘을 쏟는 경직과 대극적이다.) 베네딕도는 노동을, 슬픔을 이기게 하는 덕목으로 보았다.(베네딕도는 노동은 과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과도한 노동은 억압적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가 행한 기적을 현대적으로 풀이하는 저자의 메시지에서 얻어야 할 것은 영성의 의미이다. 저자는 영성이란 현세를 초월하여 자신 속의 생명력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합시키는 것으로 풀이한다. 기도하면서 고요한 내적 공간을 찾을 때만 외적으로도 활동의 과욕에 쫓기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베네딕도회의 모토는 ’기도하며 일하라’이다. 그레고리오 대종은 베네딕도의 ‘규칙서’에 남성적 정신의 명료함과 여성적 사랑의 온화함이 결합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레고리오 대종은 ‘규칙서’의 특징을 분별력(지혜로운 절제)과 명쾌한 문체로 설명한다. 1930년대의 많은 신학자들이 베네딕도의 ‘규칙서’에서 스토아주의와 신플라톤주의 등 그리스 철학의 흔적을 발견했다. 물론 베네딕도가 의도한 것은 모방이 아닌 참고였다. 베네딕도는 성욕 같은 우리의 욕구에도 하느님이 현존한다고 말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허락되고 모든 것이 바르다는 의미를 갖음을 뜻한다. 그륀은 우리의 거짓 없는 본성과 관계 맺는 것이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조건이라 말한다. 그륀은 자신에게만 귀를 기울이면 떠오르는 사념을 하느님의 뜻으로 오인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베네딕도는 침묵을 중시했다. 말이 많으면 자신을 만나지 못하며, 말하다 보면 자신에게서 멀리 떠나며, 자신을 견딜 수 없어 말을 해야 하고, 말이 많으면 죄를 피하기 어렵다.(73 페이지) 그륀에 의하면 수도 생활에서의 영적 여정의 목표는 쾌활함이다. 베네딕도는 간결하고 이치에 맞는 말을 하라고 가르쳤다. 앞에서 말했듯 베네딕도회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이다. ’규칙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베네딕도가 기도와 노동의 건전한 균형을 중시한 것은 사실이다. 베네딕도는 노동 개념을 변화시켰다. 그는 노동을, 하느님과 자신을 만나고 하느님과 인간에게 자신을 열어서 하느님이 쓰시도록 하는 영적 수단으로 보았다. 베네딕도에게 노동은 수도승들의 자립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것, 이웃에 대한 봉사의 의미가 있는 것,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수단이었다. 베네딕도는 가난한 이와 순례자를 통해 그리스도를 맞아들일 것을 수도승들에게 역설했다. 그륀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사회 분열, 질서 붕괴, 민족혼합이 만연하던 민족대이동 시대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고작 서른 명 남짓한 수도승들이 모인 베네딕도회 수도원이 세월이 흐를수록 견고하고 조화롭게 서방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공동체 모델을 창출했다고 말한다. 베네딕도는 수도 공동체의 이상을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에서 찾았다. 그륀은 덧붙여 무엇보다 공동체가 이상향은 아니라는 사실을 참아내라고 말한다. 베네딕도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아모르 즉 에로틱한 사랑, 관능적 사랑, 사랑하는 이와 합일하기를 갈망하는 사랑으로 표현했다. 그륀은 이로부터 하느님에 대한 사랑도 에로스의 힘에서 샘솟는다는 것이 감지된다고 설명한다. 그륀에 의하면 수도승들에게 매혹적인 하느님과 두려운 하느님 사이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따르는 것만이 복음적인 삶이라 여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매우 특정한 상황 속에서 복음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륀은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말했듯 모든 욕구를 즉각 충족시켜야 하는 사람은 결코 어른이 될 수 없고 강한 자아를 발전시킬 수 없지만 반면 늘 포기만 하는 사람은 억압된 태도를 취하기 쉽다고 말한다.(122 페이지) 그륀에 의하면 베네딕도의 영성은 수도원 뿐 아니라 수도원 너머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륀은 욕구를 자르면 영성은 공격성을 띤다고 설명한다. 그륀은 회의(懷疑)를 억압하면 믿음이 없거나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 다른 영성의 길을 가는 사람 모두와 싸운다는 말을 한다. 깊이 음미할 말이다. 그륀은 신앙은 우리가 무엇을 선포하느냐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며 밖으로 어떤 기운을 뿜어내는지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한다.(129 페이지) 그륀이 말했듯 오늘날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이 큰 시대이다. 그륀은 영성이 종교적 자아 도취로 타락하고 공동체가 유아적 모성 의존성으로 퇴행하면 공동체 생활은 해체 아니면 반목으로 변질한다고 말한다.(131 페이지) 그륀에 의하면 교회는 극도로 다양한 그룹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집단 역학이나 의사 소통 연구소를 찾아갈 만큼 겸손해야 한다.(133 페이지) 그륀은 신자들이 저마다 편견, 적개심, 개인주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지닌 채 미사에 온다고 설명한다. 그륀은 현대 신학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전제한다. 그륀이 말했듯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학설과 견해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느끼는 것, 타인의 하느님 체험에 동참하는 것이다.(135 페이지) 그륀은 사람들을 속여 하느님을 가로채지 말 것을 교회에 당부한다. 그륀은 하느님에 대한 물음은 인간에 대한 물음이라 말한다. 더는 이론적 토론에 휘말리지 말고 한 인간으로 살면 된다고 말하는 그륀은 인간을 끝까지 생각하다 보면 하느님과 마주친다고 설명한다. 그륀은 오늘날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정신치료와 예술이라 말한다.(136 페이지) 베네딕도는 극심한 정치, 사회, 종교적 혼란기에 처해 난세를 한탄하지 않고 자생력 있는 소공동체를 세움으로써 노동으로 전 서방 세계를 교화하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발터 니그(’예언자적 사상가‘의 저자인 철학자)는 베네딕도를 건축가라 불렀다. 이는 베네딕도가 많은 건축물을 세워서가 아니라 정신이 건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륀은 사랑은 도덕적 요구가 아니라 피조물 안에 넘쳐 흐르는 하느님의 사랑의 체험에 대한 응답이라 설명한다.(145 페이지) 그륀은 공격성이든 무관심이든 애착이든 붙임성이든 물건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그 당사자의 영성이 어떤지 드러난다고 가르친다.(146 페이지) 베네딕도는 수도승들의 자급자족을 중요시했다.(148 페이지) 타인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베네딕도에게 인간이 경제적 성취의 노예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은 개인 존중으로 나타났다.(150 페이지) 그륀에 의하면 내가 진실로 사는 데 정말 결정적인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냐가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것을 어떻게 인지하고 체험하느냐이다.(157 페이지) 그륀은 우리는 참 삶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륀에 의하면 순간을 온전히 살고 농밀하게 살 줄 알아야 참 삶이다.(164 페이지) 그륀은 오늘날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베네딕도의 공동체 모델이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 본다.(166 페이지) 베네딕도와 그의 삶과 신앙을 다룬 그륀의 가르침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그리고 참으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신앙을 가졌음을 알게 한다. ’베네딕도 이야기‘는 심리학과 불교 수행 등에도 열린 마음을 가진 저자의 지적, 신앙적 여정이 낳은 걸작이다. 적극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