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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란 제목을 보자마자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 시 구절이 있었다. 박목월의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란 구절. 하지만 견자가 떠난 길은 나그네처럼 유유자적하게 가는 길은 아니었다. 향반인 아버지가 오십 줄에 기생에게서 본 늦둥이 서자였던 견자, 그는 굳을 견(堅), 기둥 주(柱) 견주라는 멀쩡한 이름 대신 개자식이란 견자(犬子)로 불렸다.천첩자식, 기생자식, 개자식이라고 자조하면서, 얼자라는 신분의 무게에 짓눌려 망나니 짓을 일삼다 조선 제일의 검객 황정학을 만나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조선 제일의 검객 황정학에게 검을 배우게 되면서 견자는 화두 하나를 품게 됐다. 칼로 무엇을 벨 것인지, 세상을 뒤엎어야 하는가? 나를 베야 하는가? 이 화두는 견자를 사로잡아 고민하게 만들었다. 황정학 같은 스승을 만난 것은 견자에겐 평생의 행운이었다.
황정학, 이몽학, 견자 이들은 세상이 휘두르는 칼날에 베여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양반가의 적자로 태어났지만 장님으로 태어난 죄로, 독안에 숨겨진 채로 자라야 했던 황정학, 서자라는 설움을 삭이지 못한 이몽학 그리고 견자. 한사람은 심안(心眼)을 틔우려, 한 사람은 벼슬이든 세상이든 고르게 분배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칼잡이가 된 것이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견자는 숙고한다.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가 될 것이냐 나를 바꾸는 구도자가 될 것이냐, 권력과 소유를 얻을 것이냐 자유를 얻을 것이냐. 칼의 노예가 될 것이냐, 칼을 다스리는 칼잡이가 될 것이냐. 과연 어느 쪽 칼이 바른가. 어느 쪽 칼이 옳은가.
이들 외에도 사람의 길은 책으로만 아니라 방짜로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 방짜 쟁이나, 산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장각 등 민초들이 꿈꿨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갈망이나, 이들이 삶으로 몸으로 보여준 사람 사는 길에는 가슴 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선문답 같은 대사가 눈에 띄었고, 그림과 잘 어울리는 은유와 상징 또한 이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만화를 별로 보지 않아서 그랬는지, 언어적 표현은 그림을 보완하거나 설명하는 역할이 주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었다. 그림과 언어가 어우러진 깊이나 다양한 표현이 돋보였다. 인물에 대한 또한 묘사도 깊이가 있어서 만화를 보면서 문학을 읽는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신분이 한 인간을 짓누르며, 굴레가 됐던 시절 그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 견자의 여정을 담고 있다. 견자는 그 길에서 사랑하고, 이별하고, 동지와 스승을 만나고, 헤어지고, 배반당하고, 전쟁을 겪었다. 그를 옥좼던 것은 비단 신분의 굴레 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성장만화라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칼은 세상을 향해서도 겨누어져야 하고, 자신을 향해서도 겨누져야 한다. 이몽학처럼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사람도, 나를 바꾸려는 사람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스승 황정학을 영원히 떠나 보낸 뒤에도 견자는 길을 멈추지 않았다. 칼을 통해 사람이 가야 할 길과 가지 않아야 할 길을 찾고자, 여전히 어디로 향하지는 모르는 그 발길을 다시 옮겼다. 여전히 그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칼의 주인이 되고자 다시 길을 떠난 것이라고 믿고 싶다. 견자 혼자 떠나는 여정이 아니라 덜 외로울 거 같아 다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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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노블' 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 태동되었을 법한 이 단어는 단순히 '코믹북' 이라고 불리던 당시의 만화가 한단계 성장했음을 의미한다. 단어 그대로 미술과 문학의 조화로운 화합. 그것이 바로 그래픽 노블인 것이다. 알란 무어, 프랭크 밀러 등이 시도한 '만화' 는 말 그대로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었다.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얻어내며 사랑받았고, 그것은 단지 종이위의 그림이었을 캐릭터가 진정한 생명을 얻어냈음을 의미한다. 그림과 글들은 살아있는 캐릭터들과 함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과 흡사한 만화속의 세상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의 예술적 완성도를 획득했다. 소설에 버금갈만큼 완성도 있는 아름다운 문장과, 그에 어울리는 개성적인 그림. 이 세상을 깊이있고 통찰력있게 그려내는 만화속의 세상. 그것들이 만나 '그래픽 노블' 을 탄생시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박흥용 작가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은 온전히 한국형 그래픽 노블로 분류할 수 있을것이다. 이미 유럽시장에서 그 문학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개 견犬 자에 아들 자子. 속칭 개새끼라고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조선시대 청년의 성장 스토리이다. 본명은 '견주' 이지만, 간신히 진사시험에 합격한 촌부나 다름없는 아버지가 기생에게서 낳았다 하여 스스로를 개새끼라고 부르는 견주는 세상에 대한 뜻을 품고 있지만,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태생적 한계에 대한 분노 또한 가슴에 담고 망나니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한량이었다. 그랬던 그가 우연히 기연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은 급선회 하게 된다. 그가 우연히 만난 기연은 바로, 장님이자 조선 최고의 칼잡이인 황정학과의 만남이었다. 황정학을 통해 검술의 세계로 들어서면서 견자는 조선 팔도를 누비며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임진왜란을 겪고,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잃기도 하며 차츰차츰 생에 대한 깨우침을 얻어간다.
박흥용작가는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작가 중 한명이다.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내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국내외 유수의 만화상들을 휩쓸기도 한다. 한때 절판되기도 했었지만, 새로 이렇게 복간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참 다행스럽기도 하고, 여전히 바닥을 보이고 있는 한국 만화시장의 생김생김이 안타깝기도 하다.
작가주의 작가의 작품이라지만, 만화라는 장르는 언제나 대중성을 담보로 한다. 전 세계 공통 만화의 미덕인 '재미' 또한 출중하다는 뜻이다.
박흥용 작가의 가장 큰 특징이자 뛰어난 부분은 유려하고 문학적인 대사와 그에 어울리는 탁월한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묘사에 있다. 특히 1권 초반부에 소경 칼잡이인 황정학이 자객과 대결을 하는 장면이나, 기생집에서 처음 여인을 품는 부분의 묘사는 뛰어난 그의 감성적인 묘사를 볼 수 있다. 한올 한올 세심하게 그려낸 보리밭의 정경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황정학과 자객의 검술 대결이 자연스러운 흐름과 호흡으로 펼쳐진다. 영화나 미술은 잡아낼 수 없는 컷과 컷 사이의 흐름과 구도와 구도 사이의 긴장감이 검과 검, 바람에 흩날리는 풀들과 함께 절묘한 '만화' 를 만들어낸다. 견자가 첫 여인을 품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거대한 기와집 지붕의 기와가 하나, 둘 씩 떨어져 내리더니, 이내 기왓장들이 일순간에 우루루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져 내리던 기왓장 하나가 돌연 하늘로 솟아 오르더니, 그 기왓장 속에 견자와 여인이 누워있다.
스승 황정학을 잃고 삼년상을 치루던 도중,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삶의 자유를 깨닫는 순간에 대한 묘사 역시 문학적이고 만화적이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들과 대결하는 장면들에서 보여지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뎃셍력과 정과 동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감각적인 연출도 아주 인상적이다.
한편의 시같은 나레이션들도 아주 잘 어우러진다.
결국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화두는 '길' 이다.
어떤 비오는 날. 견자는 책을 한 장 한 장 찢어 바닥에 놓고 밟고 간다. 지나가던 어른이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라고 묻자, 어린 견자는 "우리 훈장님이 책 속에 길이 있댔어요. 책으로 길을 내는 중인데 뭐가 어때서요?" 라고 받아친다.
하지만 견자에게 책 속에 있는 길은 죽은 길이다.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견자에게 책속에 있는 길은 쓸모가 없다. 하지만, 죽은 길이라도, 책속의 길은 견자에게 올바른 방향을 가르쳐 준다.
책장으로 길을 내던 견자는, 어느새 기왓장을 하나씩 밟고 가고 있다. 자신에게 첫 여인이었던 기생과 정을 나눌때 등장했던 바로 그 기왓장이다. 여인으로서 남자의 길을 알려주었으니, 그 길 또한 견자에게 어떠한 방향을 일러준 것이리라.
그리고, 그 기왓장 길은 이내 '방짜(놋쇠그릇)' 로 변한다. 견자가 만난 인물들 중 그의 초기 인성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준 노비출신의 방짜쟁이는 견자에게 말한다.
"봐라, 이 노비새끼 책으로 못 낸 길 방짜로 냈다. 그래. 네 길은 무엇으로 낸다니?"
네 길은 무엇으로 낸다니??
일단 구름을 벗어난 달을 봐야 한다. 나의 한계이자 자유를 만나야, 알 수 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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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99년일 것이다.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그 후 이희재 선생님 다음으로 박흥룡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지난 달 극장에 갔을 때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구매하여 읽게 되었다.
10년 전 읽었을 때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견자가 느꼈던 서자라는 신분의 차별이 500년 넘은 지금은 돈에 의한 차별로 바뀌어 되풀이 되고 있고, 국민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한 무능한 권력자도 다시 동일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돈이라든지,신분이라든지, 권력이라든지에 의해 꿈꾸는 것조차 금지된 세상에 대한 분노는 역사 속에서 항상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견자가 찾고자 했던 것보다 몽학이 찾고자 했던 것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만화라는 장르의 가벼움때문에 역사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다루는 것이 어려웠을 것인데도 많은 준비를 하여 완성한 작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내 파란 세이버도 꼭 함께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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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을 즐겨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 이지만 처음 이 만화책의 제목을 듣고는 이런 만화가 있나 하며 의아해 했던 게 생각난다. 일반 만화방 혹은 도서 대여점에서는 구할 수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만화를 쉽게 볼 수 없는 것일까. 쉽게 접할 수는 없겠지만 소장가치가 매우 높은 만화라고 생각하기에 직접 구매해서 읽는 걸 추천하고 싶다.
처음 이 만화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어느 영화잡지에 이준익 감독님 - 왕의남자/황산벌/님은먼곳에/라디오스타/즐거운인생 - 의 인터뷰 기사였다. 당시 왕의 남자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감독님은 차기작으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을 생각해 보신다고 했던 게 기억난다. 그게 수년 전 일인데 그 동안 이 감독님은 음악 3부작 등의 영화를 감독하셨고, 지금 검색해 보니 2009년에 드디어 이 만화를 영화로 만드시는 것 같다.
그 기사로 호기심을 갖게 된 나는 대강의 줄거리를 접한 뒤 정치 만화인가라는 생각을 갖고는 만화를 yes24에서 구매하게 되었다. 당시 해외에서 인정받았다는 홍보가 있었고 절판되었다가 재판매되는 시기여서 어렵사리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만화의 그림체는 매우 유려하였다. 나는 일단 지저분한 그림체를 싫어하는 편인데 이 만화의 그림체는 왠지 사극에 잘 어울렸고 깔끔했던 것 같다.
우리의 주인공은 신분제 사회에서 피해자인 서자로서 살아가기에 태생부터 세상과 부딪히며 살 수 밖에 없는 신세이다. 그런 내적인 울분을 조절, 분출함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런 내외적 충돌들은 좋은 스승, 좋은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 생각거리들을 남기며 인간적 성숙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 인간에 대한 성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사회에 대한 생각 등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주인공을 비롯한 중심된 이야기는 주로 무력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개되지만 회화, 대장 등의 다른 직업군의 이야기로도 표현되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한 인간의 성장담으로서 개인과 사회의 부딪힘 속에서 여러 생각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만화는 참 좋은 만화라고 생각한다.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3권이라는 분량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생각 거리를 제공해 주며 매우 아쉽다는 여운을 남길 정도로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작품이다. 추후 개봉될 영화가 기대되며 청소년 이상의 계층에서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ps. 여자 친구도 매우 재밌게 읽었다고 하는데 여자 친구는 성적 묘사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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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용 글, 그림 | 바다그림판(바다출판사) | 2007년 07월 | 정가 : 24,000원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전 3권) ★★★★★ (2010.05.01) 재산은 있으나 벼슬길에 제대로 나서지 못한 아버지가 소일거리로 기생집에 출입하다가 낳은 아이가 견주다. 나이많은 기생이었던 어미는 견주를 낳다 죽고 아버지가 거두어 기르나, 이름까지 견자로 바꿔 부를만큼 동네에서 개자식 취급을 받는다. 공부를 하면 뭐하나 쓸데가 없는데, 그저 동네 망나니로 살다보니, 무슨 사건만 터져도 견주에게 덮어 씌우면 그만인 상황이다.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고 고문 끝에 반죽음을 당하지만, 평소에 한 짓이 있으나 크게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는게 견주의 상황이다. 그런 견주가 황처사의 치료로 살아나, 황처사의 칼구경을 한번에 황처사를 따라나선다. 어설프게 뒤따르는 자객을 무찌르는 황처사의 칼솜씨까지 본 견주는 무릎을 꿇는다. 가희를 만나 남자로 태어나고 그때부터 요살을 떨며 따라다니는 기와조각이 이몽학을 만나 깨어지고 만다. 견주가 지 맘대로 라이벌을 정하는 그 순간은 멋졌다.
황처사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에서 태어났건만 장님이라 아홉살까지 독 안에 갇혀 살았던 아픔이 있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 칼 뒤에 자신을 숨겼다. 견주처럼 천첩의 자식인 이몽학은 다른 세상을 꿈꾼다. 아무것도 모르던 견주가 황처사를 따라 나선 후, 여러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헤어지며 성장해가는 모습과 그 만남이 견주에게 남겨 놓은 것들이 보여 다시 보니 더 좋았다. 나도 사람들을 만나서 성장하고 있으려나? 제대로 '한계"를 만나고 있나?
책의 상태는 탄탄하고, 작가의 그림은 아름답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영화를 본 후에 다시 본 만화라 그런지, 만화가 얼마나 탄탄했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런 만화는 소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전 3권) ★★★★☆ (2007.08.05) 이 만화를 휴가 시작하는 첫날 여행을 떠나기 전에 별 생각도 없었으면서 쫓기듯이 샀다. Yes24 블로거 중에 이 만화의 제목을 이름으로 쓰는 분이 있어 이 만화를 장바구니에 담아놨었다. 제목이 낯익다는게 별 고민없이 대뜸 산 이유일까? 휴가 다녀와서 배달된 만화책을 보며, 나의 충동구매를 탓했다. 왜 샀을 까를 몇번이고 자문했으나 다른 이유는 더 없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책 산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 만화 참으로 담담했다. 주인공들의 인생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겠으나 참으로 담담했다. 그리고 간결한 그림체에서 나타나는 강한 여운과 심리상태를 나타내는 소품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특히나 가희와의 하룻밤 이후 쫒아다니는 기와가 이몽학을 만난 이후에 깨지는 부분에서는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양반으로 태어났지만 장님이라 아홉살까지 독 안에서 갇혀살았던 장님 황정학과 천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견주의 동행으로 시작되는 이 만화는 견주의 성장만화다. 개인사와 조선의 시대상을 한꺼번의 훑고 지나가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다. 견주가 지 멋대로 지정한 라이벌 이몽학과의 다른 길의 선택도 매력있다. 즉흥적으로 산 책이지만 좋은 책을 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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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친구가 감명 깊게 보았다며 권했던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이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만화도 이렇게 진한 감동의 울림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유쾌하면서도 의미가 깊게 배어 있다. 그림은 스케일이 크고, 의미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등장인물들 간의 심리상태를 잘 묘사한다. 또한 칼싸움 등의 장면에서 구도나 시선 등이 다른 만화들과는 달리 과감하면서 절제되어 있다.
만화의 내용은 서자 출신인 ‘견주’를 통해 전개된다. 벼슬에도 나갈 수 없고 멸시의 대상이었던 견주는 싸움만을 일삼다가 장님인 황정학을 만나 그를 따르게 된다. 조선 후기 전쟁과 당파 싸움으로 시끄러웠던 분위기 속에서 견주는 황정학을 따라 다니며 칼 쓰는 법을 배운다. 겉멋만 들어있던 견주는 황정학을 통해 자신이 눈 뜬 장님임을 알게 되며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어질 때 얻는다.”
어떠한 분야에서 고수가 되는 일, 프로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단련을 많이 했다고, 혹은 기술이 좋다고, 경험이 많다고 무조건 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재주를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없다. 휘엉청 빛을 밝혀야 할 달이 구름에만 가려 있다면, 그 의미가 퇴색할 것이다. 그래서 견주는 그 구름을 벗어나 제 빛을 발하고 싶었다. 존재의 의미를 찾고, 제 한계를 극복하는 일, 그것은 고수가 되고자 했던 열정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일이었던 것이다.
일을 하다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내가 가진 능력과 열정을 제대로 평가하기 전에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하고, 시간을 탓하는 내 모습과도 비교가 되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세 권을 모두 읽고 난 후에는 만화를 봤다는 느낌보다는 그 의미와 말들만이 머릿속을 자꾸만 맴돌았다. 점점 더 편한 것만 찾고, 편하게만 얻으려고 하는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소중한 보물을 얻은 느낌이다.
“칼면에 번뜩 튀는 달의 파편, 가만, 가만… 이 양반이 무엇을 벤 거야, 아아… 내 자존심을 잘랐구나.” “지독한 열등이 지독한 열성을 만든다.” “처해진 상황이 안목을 만든다.” “내 칼로 나를 겨눈다.” “단 한순간에 저들을 박살낼 수 있는 칼솜씨가 있는데도 칼을 뽑지 않고 말 한마디로 굴복시킬 수 있는 힘” “네 모습은 몇 가지니? 껍데기를 모두 벗어라.” “똑같은 칼인데 스승님은 덕과 인품을 얻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저는 피값에 쫓기는 살인범에 불과하니….” “가장 무서운 적은 ‘한계’”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어질 때 얻는다.” “벼슬 길 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왜 살아야 하는가를 아는 일” “내 칼의 적은 세상인가, 나인가.”
by 꽃다지, 2007년 11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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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사기는 정말 어려웠다. 장마철에 구르믈 버서난 보름달 보기처럼 어려웠다. 항상 1권이 문제였다. 여러 곳에 수소문을 해보아도 1권이 있는 세트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열받았었다. 내파란 세이버 재출간 뉴스를 보고 심사가 뒤틀릴 정도였다.
이책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 한 잡지를 통해서이다. 아마도 세븐틴인가 하는 약간은 성인 만화 풍의 만화들이 있는 잡지였다. 그리고 영챔프에서는 열혈강호를 연재하고 있었다. 열심히 두 잡지를 사들이고 단행본도 샀다. 그런데 그때 용돈은 가히 최저생계비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하숙집에서 나오는 아침과 저녁을 충분히 먹고 점심은 하루이틀 정도 거르기도 했다. 그렇게 모았던 잡지와 단행본은 여름방학 이후 돌아와 보니 한권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찌하겠는가 도둑이 든 것도 아니고 하숙집에 있는 사람들이 돌려줄 기약도 없이 한두 권씩 빌려간 것을.
그렇게 책이 사라지고 난 후 언젠가 다시 사야지 하다 결국은 책이 나오지 않아 못 사게 되었다. 재 출간했을 때는 너무 바빠서 재출간된 것도 모르고 지냈다. 그런데 결국 이책이 나왔고 이번에는 살 수 있었다. 감동이 몰려온다.
그러면 왜 나는 이책에 이토록 집착을 하게되었는가?
첫번째, 패러디와 인용들이다. 이책에는 기독교, 불교(선종), 유학, 그리고 현대의 철학들이 자기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림에선 개화기의 사진들이 보인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갖다썼지만 조금도 뭉개지지 않았다. 아마도 작가의 탄탄한 공부 덕분일 것이다.
두번째, 사람에 대한 사람이다. 견자의 오기가 풀리는 장면에서 그리고 그가 성장하는 장면에서 나의 마음도 풀렸고 나도 성장했다. 항상 세상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고 타인에게도 각박했던 내가 그 순간 변했다. 이번에 다시 책을 읽을 때도 다시 나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만하면 종교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이름은 견자교 정도로 해서 말이다.
세번째, 그의 그림이다. 많은 동작, 인물, 배경의 명암이 선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느정도의 노력이 필요한 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의 책이 다른 만화와 무게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톤과 선에 들어간 잉크의 무게 차이만큼은 말이다.
네번째, 마지막 장이다. 이름을 물어보는 견자를 바라보는 아니 이름을 말한 이후를 바라보는 처자의 눈빛, 미소, 뺨의 홍조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꽃은 7할이 피어난 것이 이쁘고 물은 반만 차야 좋다고 했던가, 연애를 경험한 사람은 누구나 알 수있는 그 순간을 어쩌면 에로틱하고 어쩌면 수줍은 한 장의 그림이 담고있다. 아마 연애계의 모나리자는 아닌지.
정말 이번 휴가는 보고싶었던 책을 실컷 보면서 충분히 쉬다 왔다. 얼마나 좋은 시간들이었는지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루키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휴가철의 이국의 풀사이드의 비치 벤치에서 잠든 아기의 옆을 지키며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책을 보는 것보다 더 이책을 읽기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출판사에게 한 마디하고 싶다. 경복궁학교는 어떻게 안됩니까? 꼭 한 세트 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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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영화로 개봉된다기에 구입했던 만화책 ~ 원래 만화책은 별로 안좋아하는데 소설과 같은 글에... 빠져들어서 하루에 세권모두 읽어버렸습니다.
"견자의 성장소설"이라고 부르기에 적합한 이 만화. 견자 중심이라 스승인 황정학은 더불어 잘 그려졌지만 유일한 실존인물인 이몽학에 대해 잘 알 수 없어서 좀 아쉬웠었죠.
아무튼... 돈이 안 아까울 정도로... 좋은 작품 살 수있어서 다행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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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나의 자유 진짜 자유는 자존심과 오기라는 항아리가 깨어질 때 얻는다. 아, 한계라는...자유!‘
장님 무사 황처사와 서인 출신 한견자, 그리고 신비의 인물 이몽학 임진왜란을 둘러싼 시대적 배경과 신분의 굴레, 정치적 대립 등 여러 가지 배경과 문제들이 나오지만 주인공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그대로 내버려두고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그 길이 옳다고, 그리하다고 어느 누구하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쯧쯧... 벼슬길을 마다하니, 자네 맘 속에 더 큰 뜻이 있겠지..., 자네 재능이 너무 아깝네” ‘그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난, 결정이 아니라 운명이야...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봤다‘ 난 이런 쿨한 성격이 맘에 든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그들의 자유가 맘에 든다. 금강산을 여자의 몸에 비유하여 샅샅이 훏는 장면이 압권이다. 전혀 외설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산들은 여성의 몸매와 비슷하다. 저 봉우리는 막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 소녀 가슴이고 이 골짜기는 새색시의 양 허벅지와 비슷하다. 저 부드러운 능선은 어느 여인의 누운 모습이고, 옆선이다. 어제 여주비엔날레 전시장에 갔는데 재미난 작품을 보왔다. 갈색의 도자기 주전자와 화병이었는데 여성의 매끄러운 다리는 주전자의 부리가 되고 풍만한 엉덩이와 다리는 아름아운 정병이 되어 있었다. 여성작가의 작품이였는데 인상적이였다. 구르물 버서난 달처럼...자유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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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이 궁금해서 만화를 읽게 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극한을 향해 달리던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는 이몽학도 황처사도 견자도 치열하게 부딪치며
끝을 향해 달려가고 왜군까지 등장해서 모두 현실에서의 삶을 마치고
그 후의 현실인지 꿈인지 알수 없는 상황의 여운을 이야기 하지만
만화는 모든게 미완성인 상태에서 끝난다.
이몽학은 기세등등하게 민심을 등에 업고 자신의 길을 달려가고
황처사도 견자에게 가르침을 남기고 자신의 생을 담담히 마감하고
견자는 다른 이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사람과 함께 조용히 제갈길을 간다.
모든게 진행중인 상태로 그렇게 싱거운 결말이 난다.
![]() 만화의 주인공들은 누구하나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네가 옳다 그르다 내가 맞다 하지 않고
네가 원하는 길을 찾으라고 한다.
나와 같이 가자고 바라고 강하게 설득하기는 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극한으로 치닫지 않고
각자의 길을 존중하며 달려가게 배려해 준다.
황처사는 견자에게 쉽게 뭐 하나 알려주는 법이 없다.
늘 툭 던지고 찾게하고 스스로 느끼고 찾게한다.
견자의 무술보다 견자의 속마음의 성장과정을 보며
읽는 사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해보게 한다.
지금 세상은 정말 제갈길 가기가 어렵다.
남의 이목을 의식하며 산다.
내 20내는 남들의 20대와 비슷해야 하고
내 30대도 남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30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내 갈길을 가다가 그게 남들과 좀 다르면 미심쩍은 눈 빛이 다가오고
여간해서는 남을 의식하지 않기가 어렵다.
자신의 길에 중심을 잡고 각자 자신의 길을 가는 세상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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