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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없는 한국전쟁 - '한국전쟁의 기원'에는 한국전쟁이 없다.
"한국인 없는 한국전쟁 - '한국전쟁의 기원'에는 한국전쟁이 없다." 내용보기
80년대에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은 20여년 가까이 한국전쟁의 기원과 현재의 비추어 진보적인 역사연구의 길잡이로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책이다. 대학에 들어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를 읽고 근현대의 역사적인식을 새롭게 했었고, 다현사 속에서 박세길 氏가 많이 차용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지적호기가 생겼다. 국내에서 한반도의 근현대를 어느 한쪽의 이데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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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은 20여년 가까이 한국전쟁의 기원과 현재의 비추어 진보적인 역사연구의 길잡이로서 지금에도 잊혀지지 않는 책이다. 대학에 들어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를 읽고 근현대의 역사적인식을 새롭게 했었고, 다현사 속에서 박세길 氏가 많이 차용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지적호기가 생겼다. 국내에서 한반도의 근현대를 어느 한쪽의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고 씌여진 텍스트는 거의 없다. 박세길, 강만길...... 몇 명의 지식인이 있을 뿐이다. 브루스 커밍스의 저작 '한국전쟁의 기원'에는 한국전쟁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페이지 수만 늘어나도록 구지 책 속에 전쟁 자체를 서술할 필요가 없으며 한국 근현대사에서 전쟁자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건 '전쟁이 왜 발발하게 되었는가.' '좌우의 대립이 분단으로 몰고간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을 포함한 외세가 2차대전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배경이 무엇이며 민족분단을 조장, 심화시킨 의도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것들을 이데올로기의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역사적 진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란 것은 힘과 힘의 대결이라는 시점에서부터 전개되기 마련이며 승리한 쪽은 패배한 쪽을 추동해낼 수 있으며 패배한 쪽은 승리한 쪽에 종속당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관계에서 새로운 힘을 가진 부류가 생성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러한 순환과정의 시작과 끝은 명확하지 않으며 언제나 연속되어 이어 나가기 마련이다. 민족분단의 원인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고만 얘기할 수 없으며 한국전쟁이 민족대립의 가장 커다란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남한에서는 근현대사의 연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적 광기에 휩싸여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할 수 없었으며 용기있는 자의 역사적 해석도 마냥사냥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초등학교 적부터의 제도교육 속에서 역사를 공부할 수 없었으며 고등학교적 역사교과서의 끝부분인 근현대사를 다루지도 공부하지도 않을 뿐이다. 시험에 나오지 않기에 근현대사를 생략했던 것이다. 시험에서 다루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의 역사에서 짧은 근현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로 엄청난데도 제도교육에서는 관점의 관한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금 역사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때보다 제대로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그랬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인민들은 '쌀을 달라. 배고파서 못견디겠다', '미군정은 물러가라', '조국을 통일하자'고 외치었다. 인민들의 10월봉기의 원인은 미군정 수립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민의 불만과 북한처럼 자주적 사회개혁의 실현을 두고 남한 상황의 불만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교육에선 이것을 두고 일부 공산당의 선동으로 폭동을 야기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국적인 규모의 봉기였으며 인민들이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죽음을 불사하고 외치는 절규였던 것이다.
n***9 2001.07.17. 신고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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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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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세계사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식민지 시대의 고통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되 반복된 곳에서 벌어진 전쟁,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첫번째 전쟁, 적극적 친일부역자를 제외하고 모든 민족 구성원이 공통된 통일의 염원을 갖고 있음에도 벌어진 이 전쟁의 아픔은 아직도 분단된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에 대립과 증오의 잔재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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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기억되지만, 세계사에서 잊혀진 전쟁으로 기억되는 한국전쟁...

식민지 시대의 고통에서 벗어난지 얼마안되 반복된 곳에서 벌어진 전쟁, 미국이 승리하지 못한 첫번째 전쟁, 적극적 친일부역자를 제외하고 모든 민족 구성원이 공통된 통일의 염원을 갖고 있음에도 벌어진 이 전쟁의 아픔은 아직도 분단된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에 대립과 증오의 잔재로 우리의 생활속에 곳곳에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려서 낮에 텔레비젼이 나오는 신기함과 재미없는 이산가족 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당신의 일도 아닌데 매일 눈물을 흠치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에겐 교과서에 배운데로 일요일 새벽에 북한괴뢰집단이 38선을 넘어서 쳐들어온 전쟁이고, 일제시대와 625를 경험한 할머니에게 생생한 삶의 과정이 었고, 이해할 수 있는 고통과 아픔이 아니었을까한다.  이런 고착된 생각을 갖고 살다, 조금식 근대사에 대한 책자를 조금식 보다보면, 한국전쟁은 왜 발발했는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기도 한데, 학교를 다니고, 교육을 받는 기간에는 원인이 아닌 결과에 대해서만 주입식 교육을 받은게 아닌가한다. 


이 책을 선물이란 이름하에 반요청으로 받아 읽게된 계기는 최근에 근대사 역사책, 리영희의 대화를 보면서 본 시대상의 진실이 어쩌면 내가 주워들은것과 동일하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또 오래전 광주MBC에서 진행된 도올선생의 역사강의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지만, 최근 Ohmynews에 기재된 시카고대학 석좌교수의 한국정치, 북한문제에 대한 인터뷰기사였을것이다. 다른 책에도 소개되던 브루스 커밍스교수의 한국전쟁이 기원, 그 노학자는 아직도 한국문제와 북한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한국내에 사는 나는 21세기가 되서야 그 원인에 관심을 갖는게 참 민망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고, 또 책을 보고 아주 기분이 좋았던것 같습니다.  사실 책은 술술 읽기는 좀 어렵고, 읽고도 머리가 띵한게 같을 줄을 2-3번씩 읽은게 한두번이 아닌것 같습니다.  아마 단정적인 사항이 많다보니, 원문을 번역하면서 생기는 어려움이라 생각되지만, 또 나름데로 독자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점도 있습니다. 저도 12개장중 2개장은 각 장별로 결론으로 정리된 내용을 본것 같습니다.


이 책은 수많은 문헌과 주석을 통해, 진실에 얼마큼 더 가까이 가려는 시도, 그리고 얼마나 객관적인 입장을 갖는가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우수한 수준이 아닐까합니다. 우린 근대사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사실을 추측과 가상을 바탕으로 극단적 민족주의 또는 이념의 프레임속에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는 전후 한세기가 넘게 우리사회를 장악한 반민주적 정치체세속에서 반공이란 이념교육속에 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면에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바라본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사이의 이해관계없이 바라보고, 또 짧은 시점이 아닌 1900년초기부터 해방전후까지 일관된 맥락을 갖고 역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노력에 깊이 고개숙여집니다. 성균관대 서중석교수의 1호 현대사 박사학위 논문이 90년에 통과됬으니 86년에 발간된 이책은 한국역사의 이해에 크게 기여했으리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책은 식민시기 정부구조, 1910년 한일강제병합 전후의 일반 백성들의 삶과 저항, 경제적 우위의 지주계층의 삶과 저항을 사회분석적 입장에서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특히 일본사람을 도우면 무조건 친일이라고 보는 현재의 극단적인 조류는 무지에서 기인한것이 아닌가합니다. 생존의 범위와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활동의 방해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할 사실이며, 그 시대속에서의 기준을 찾아야한다는 점에서는 보다 객과적인 접근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뉴라이트같이 찬양은 아니지만, 식민지시대의 한반도 개발사항과 목적등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우리나라의 지도자라고 하던 사람들의 소극적 저항 또는 적극적 친일부역행태등에 대한 국지적인 현상과 1943년부터 해방시점까지 미국, 소련, 영국등 열강등의 세계조류 특히 루즈벨트시기와 투르먼시기의 정책적 변화등 한반도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친사항이 잘 정리된것 같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던 카이로, 얄타, 포츠담회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위키백과 검색권장)등이 각 열강등의 이해관계와 동방의 조그만 나라에 대한 무지, 어제의 적성국가인 일본의 자료에 근거한 해석이 열강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 인식하는 해석이겠지만, 그것이 우리 민족에게 던진 상처는 너무나 크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특히 일부 책에서 소련과 중국이 신탁통치를 반대했다고 하였으나,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반대라기 보단 찬성을 안햇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합니다. 서로의 이익을 위했을 뿐이니까요.


이런 결과로 이북은 초기 소련군의 문제가 있지만 자율적인 인민위원회 일명 꼼뮨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과정에서 친일부역자와 탄압받는 국민들이 장차 이남에서 서북청년단과 같은 우경화 조직이 되기도 하고, 이남에서는 군정과 함게 꼼뮨의 인정대신 일제시대의 관리시스템을 승계합니다. 하지장군도 인정하듯 친일이나 친미나 인종만 바뀐것이지 똑같은 느낌을 많은 사람에게 줫다는 것은 매우 정확한 반성이 아닌가합니다. 


그리고 항일운동의 상당수가 일제시기 산업화와 함게 싹튼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많았다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로 교전국임에도 일본은 전향이란 시스템으로 공산주의 척결을 시도했고, 미국도 냉전으로 가는 초입에서 공산주의 확장을 막아왔고, 국가이익을 위한 팽창주의 속에 "반공"이란 공통된 프레임은 상당히 왜곡된 결과를 갖고 온것도 같습니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람이 이성만 갖고 사는 완전체가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일정 부분은 자본주의 또한 완전한 것이 아님으로 적절한 조화를 위해 부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한국의 시스템이 상향식 의사결정의 자치적인 꼼뮨이 성공적이었다면 한국이 공산화가 되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시스템이 발생했을까 생각봅니다. 어째던 아쉬운것은 저자의 표현데로라면 약싹빠른 이승만이 미군정에 붙고, 미군정에 미리 빌붙어 있던 친일부역경력의 지도자들을 감싸고, 경찰조직을 부여잡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닌 이승만을 위한 단독정부의 꿈을 꾸고, 미군정과 미국의 정책을 잘 이해했다면, 해방후에 고국에도 즉시 돌아오지 못하고, 돌아와서는 항일운동가들은 반공의 기치하에 미국정에서 폄하되는 과정은 저자의 표현되고 해방이 사생아가 아니라 정신분열아를 낳았다는 말은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따뜻한 죽을 강아지가 먹는 경우일지도..


자주독립의 힘이 없기 때문에 외세에 시달리고, 외세의해서 해방되고, 열강의 이해관계속에 물리적으로 분리되가는 과정과 친일과 애국,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대립과 생존투쟁, 이북의 개혁과 남한의 혼란이란 혼돈속에 서로을 당기는 인력, 자기기준으로 해석한 동포애의 구현도 한국전쟁의 한가지 원인이 아니었을까합니다만, 당시는 서로 적대적으로 고립되었다기 보단 왕래도 가능하던 시절이었고, 각 군정시절의 결과, 그 속에서 움직이던 한심한 지도자들, 자율성의 차이, 70년까지도 유지되던 경제력의 차이, 전투경력과 자원들과 준비등... 이렇게 한국전쟁이 혼란속에 무르어간것 같습니다. 저자가 미국의 악의는 없었지만, 실패한 정책이란 비판은 결과론적으로 한민족이 미군정에 대한 염원의 측면에서도 정확한 판단이고..현재까지도 미국은 애증의 나라가 아닐가요? 


잊혀진전쟁에서 2백만이상의 인명피해, 백만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의 피해가 커진것도, 이념만의 혼돈이 아니라 해방 후 바로잡지 못한 역사속에 기생충처럼 살아난 자들때문에 증폭된것 같아 참 씁씁하네요. 더 아쉬운건 오늘 현재도 이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달려와 새로운 건설적인 준비를 하는가를 돌아보면 물질문명의 발달은 확실한데 자꾸 魂과 정체성은 뿌옇게되는것 같습니다.

k***i 2012.03.18. 신고 공감 5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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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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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이후에 진주한 미군정이나 그 뒤를 이은 이승만 정권이 8.15후에 응당 새나라 발족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허다한 잘못을 범했으며 이후 이 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응당 후퇴했어야 할 친일파들이 나라의 실권을 장악해 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 잘못을 지적하기가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p.1)      지난 달 10월 역사적인 남북 2차 정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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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이후에 진주한 미군정이나 그 뒤를 이은 이승만 정권이 8.15후에 응당 새나라 발족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도 해결하지 않고 허다한 잘못을 범했으며 이후 이 나라는 해방과 더불어 응당 후퇴했어야 할 친일파들이 나라의 실권을 장악해 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그 잘못을 지적하기가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p.1)

 

 

 지난 달 10월 역사적인 남북 2차 정상회담이 있었다. 첫 번째 정상회담때의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남과 북이 더 이상 외부세력에 의한 수동적 통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주체적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골자였다.

 독재자 박정희로 부터 이어 온 반공의식은 이제 많이 사라졌으며(몇몇 생각없는 재향군인회나 해병전우회, 딴나라당 따위의 용공단체를 제외하고) 군인들조차 우리나라의 주적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는 설문이 많이 나오는 지금의 현실에서 6.25 한국전쟁은 이미 까마득한 옛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금세기에 있어 옛 유고연방과 옛 서독과 동독과 더불어 끔찍한 내전을 치른 한반도의 남과 북에 있어 한국전쟁은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독재 살인마 박정희가 만든 어용사학에 바탕을 둔 역사 공교육을 받아온 내게 역사를 가르친다던 선생과 교과서는 이렇게 가르쳤다.

 

6.25 한국전쟁은 북한이 옛 소련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남한을 급습해 일어난 전쟁이며 부산과 일부 경상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남쪽의 땅이 점령당했을 무렵 그야말로 천사같은 미국이 떡 하니 나타나 북쪽의 신의주와 원산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생각만해도 지저분한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개떼같이 몰려와 남과 북 중간쯤에서 선을 긋고 휴전을 한 상태라는 것이다.

 그 후로 천사같은 미국은 신탁통치를 통해 남한이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기초를 닦아 주었고,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표정의 코흘리개 어린아이가 "깁미 쪼꼬래뜨"외치며 미군의 짚(Jeep)을 쫓아가면 개 먹이 던져주듯 초콜릿과 사탕을 던져 준 고마운 은인으로 남아있다.

 

 이 쓰레기 같은 것을 역사랍시고 배워왔다. 오호통재라~~~

 

 각설하고 책을 읽어 온 이후 한국전쟁에 대한 책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던 차에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만났다.

 저자는 지금의 한반도의 상황을 초래한 6.25 한국전쟁의 원인을 찾는 데 책의 중점을 둔다.

 한국의 작가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미국 국립기록보관소의 자료를 조사하고 인용한 저자의 철저한 사료 조사와 객관성이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하게 한다.

 

 

 

 "나는 한국전쟁의 원인은 주로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의 사건에서 찾아야 하며 그 다음으로는 식민통치기간 동안 한국에 부과된 외부세력과 그것이 전후의 한국에 남긴 독특한 자취에서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p.13)

 

 저자는 한국전쟁의 주요 원인을 한반도 내에서 찾는다. 흔히 미국이나 소련 등과 같은 외부에서 원인을 찾아왔고 그렇게 배워 왔었는데, 저자는 500여 년간 이어져 온 조선의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에서부터 구한말 열강들의 침략야욕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과 그들의 앞잡이를 자칭한 한국인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억압 받아온 민중들의 관계로 인해 얽혀진 실타래를 객관적 사료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풀어내고 분석해 낸다.

 

 

 

1. 공산주의

 일본에 의한 1910년의 병합은 구 조선의 토지관계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비록 일본인들을 통해 수리의 개선, 곡식종자와 수확증대에 있어서의 과학적 발전을 통해 농업의 생산성을 증가시킨 것 만은 사실이지만, 일본의 몇 차례에 걸친 토지 조사와 시장관계의 발전은 토지의 집중화를 가속화했으며, 이에 따라 소자작농의 소작농으로의 전락을 가져온 것이다.

 식민당국은 조선 때 부터 지속되어 온 지주와 결탁하여 수출용 쌀을 수탈하였고 이것은 소작농 처지의 농민들에게 절망을 안겼다.

 

 나라를 잃은 슬픔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가장 큰 절망거리가 되지 못했다. 같은 민족이지만 여전히 자신들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한국인 지주들과 소작농인 자신들의 변하지 않는 관계가 가장 큰 절망거리였다.

 일부 항일 지식인들의 농촌 유입을 통한 사상교육은 그들의 사상전환을 가져오게 되었고, 해방 전 전국 각지에 <농민조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945년 해방은 저자의 말대로 "해방은 그저 단순한 경축일이 아닌 하나의 대유동의 시기와 대중참여의 시대를 개막시켰다." (p.107)

 

 수십년 꿈틀대던 화산이 폭발한 것 처럼 한국의 대중은 해방이라는 빅뱅을 맞이하여 무언가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대는 <공산주의>의 물결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마치 끝없어 보이는 외국의 압제에 억눌려 지내온 한인들에게 있어서 공산주의는 새로운 희망과 마법의 횃불처럼 보였다.. 일반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공산주의의 이상 자체는 제쳐놓고 그들의 희생만으로도 강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어쩌다 폭탄을 던지는 민족주의적 행위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p.65)

 

 "해방이후 한국에는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자 및 농민들의 조합이 한편에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측이 주도한 애국 및 반공단체들이 한국사회의 모든 계층에 존재했다." (p.114)

 

 

 

 

 

2. 미군정과 한민당

 

"사회와 안락한 생활에 타고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미국인으로서는 1945년 당시 한인들의 정치적 및 사회적 모순을 이해하거나 동정하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미국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은 한국에 있어서의 공산주의 인식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미국에 있어서 공산주의는 대중의 지지를 얻은 적이 없는 반면, 1945년의 한국에서는 그들의 강인한 항일투쟁과 그들의 정강이 지니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 덕택에 대중적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1945년 당시 한국에서의 공산주의는 세계정세에 대한 깊은 조예가 없었으며, 소련당국에 근거를 둔 권위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마르크스의 국제주의에 구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것은 특수한 한국의 공산주의였다."(p.128)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인해 남쪽에 군정을 세운 미군은 이러한 대중의 호소를 전혀 듣지 않았다. 미국은 이미 2차세계대전을 통해 반공체제를 국가 최고 이념으로 삼았고, 하지 중장이 이끄는 미군들은 한국의 상황과 한국인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군정은 35년 동안 한국인들을 폭압해 온 일본 총독부의 관리들과 그들을 위해 일한 한국인 앞잡이들을 그대로 등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방법만큼 빠르고 편안하게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창설된 <국립경찰(현재 경찰의 전신)>에도 경찰 간부의 80%이상이 일본인들을 받들던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에 더해서 미군정은 커져가는 남한내의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병욱을 위시한 세력들이 세운 <한민당>과 손을 잡게 된다.

 지금의 <한나라당>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총독부에서 고관을 지낸 많은 한인들이 한민당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한민당의 명단에는 일본에 의하여 임명된 의원들이 공공연히 들어 있었고, 이들은 대부분 지주들이었다. 미국 정보국에서 작성한 임명록 속에 들어 있는 한민당원은 거의 전부 지주, 공업가 혹은 어떤 종류의 기업인들이었다." (p.139)

 

 당연히 한민당은 대부분의 남한 대중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미군정은 "자주독립 신탁반대"를 외치는 대중들의 옹골차고 뼈에 사무친 원성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러한 대중의 원성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남한 전역에 퍼져있는 공산주의 조직인 <인민위원회>를 가만히 내버려 둘 경우 소련으로 인한 공산주의 통일이 이루어 질 것이라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3. 농민봉기의 실패

 

"1945년과 1946년에 있어서 한반도 전역은 도, 시, 군 및 마을 단위까지 존재한 '인민위원회'로 가득차 있었다. 북한에서는 인민위원회가 정권 수립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남한에서는 국토의 반이 넘는 지역에서 이들이 각기 다른 기간 동안 통치를 하였다. 이들 인민위원회들은 지방에 뿌리를 박고 지방에 책임을 지는 조직으로서 한국 정치의 가장 희귀한 형태의 표본이었다. 그들은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농민의 정치 참여의 시기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은 문헌에서 여전히 연구되고 있지 않다."(p.345)

 

 저자의 말대로 위와 같은 현상이 왜 아직도 문헌에서 연구되고 있지 않는 것일까? 내 짐작대로 한민당의 직속계보를 이은 한나라당을 위시한 친일, 반공 세력들이 이 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전반에 자리잡고 있어서가 아닐까? 흐흐흐

 

 해방 후 남한의 전역에서 강력한 영향을 끼치던 <인민위원회>와 그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내던 남한 대중들의 호소는 미군정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46년 가을 끔찍한 가뭄이 찾아왔고, 그 해 "서울 자유시장의 쌀 도매가격은 8월 부터 급속히 올랐으며, 1947년 2월에 이르러서는 이미 상당히 올라 있던 8월의 물가시세가 30배로 뛰었다."(p. 466) 고 한다.

 

 대중(민중)의 호소는 전혀 무시한 미군정의 시책과 끔찍한 가뭄은 1946년 미군정을 뒤흔든 <농민봉기>를 일으킨 동기가 되었다.

 

 "1946년 가을, 미군 점령 1년간의 결과를 되돌리기 위하여 경상도 및 전라도와 인민위원회가 강세였던 기타지역을 농민봉기가 휩쓸었다. 이 봉기는 여러 면에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로 이것은 정치, 경제 및 사회 분야에 있어서의 미 군정 정책의 실패를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미국인들은 해방 후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쌓이고 쌓인 한인들의 불만을 회오리 바람을 이제 거둬들이는 것이었다. 둘째로, 반란으로 인해 인민위원회와 이와 관련된 대중조직들이 지방에서의 권력을 공개적으로 쟁취하는 강력한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하는 것은 사실상 끝나게 되었다. 세째로, 봉기의 진압과 인민위원회의 붕괴는 우파, 특히 국립경찰과 한민당의 운명의 뚜렷한 전환점을 나타냈다."(p.438)

 

 가을의 농민 봉기는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경찰관 200명 이상이 피살되었고 죽은 관리, 시위자 및 민간인의 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1쳔명이 넘었다고 한다. 재산 패해는 더 광범위하였다.

 이 혼란이 가라앉자 가장 큰 피해자는 좌파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봉기의 성공적인 진압은 국립경찰의 실력과 생존력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고 남한에서의 치안세력은 이제 몹시 겁에 질린 농민들을 향하여 총부리를 돌려 남한의 대중들은 일제 강점 시기의 서슬퍼런 <순사>의 지배를 다시 받게 된 것이었다.

 

 인민위원회는 분명 전국에 걸쳐 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비체계적이고 경험에 의존하는 자연발생적인 개개 농민의 집합을 이룬 것에 불과했고, 남한의 좌익세력 및 공산주의자들은 인민대중을 조직한 경험이 거의 없는 지도자들이 태반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서 전수받은 중앙의 통제기구에 의하여 진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농민봉기의 실패는 외세로 인해 남과 북으로 갈라서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한민족 스스로의 자주적 독립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꺽어 버렸다.

 수많은 공산주의자들과 좌파지식인들은 처형당하고 살해당했으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쟁기와 지게를 벗어 던지고 나선 농민들은 다시 그들의 끔찍한 논과 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후 한반도의 남쪽은 남쪽대로 북쪽은 북쪽대로 각자의 과도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는 데 두 권의 책을 펴낸다고 하였다. 내가 읽은 첫 권은 일제 강점 말기부터 해방 후 1946년 가을 농민봉기까지의 정세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이 나온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두번째 책이 나오지 않은 거 같다. 첫 번째 책이 워낙 안 팔려서 출판을 안 한 걸까? 정확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1947년 부터 6.25 전쟁 직후까지의 남한과 북한의 정세를 분석한다고 한 두 번째 책이 아직 출판되지 않은 것이 못내 애석하다.

 

 해방 후 남한은 식민 일본의 과거를 전혀 벗지 못한 채 미군정에 의해 얼렁뚱땅 넘어가 버렸고, 민중의 열망을 담은 공산주의는 미군정에 의해 철저히 실패해 버렸다.

  이후의 47년부터 6.25전쟁 직후의 정세는 저자의 말대로 두번째 책에서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할 거 같다.

 

 여튼 풍부한 사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궁금한 사건 중 하나였던 민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근본 원인에 대해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담아 내고 있다.

 6.25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던 내가 전혀 모르던 분야를 알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다



l****h 2008.06.21.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한반도와 한국사회에 관해 이 책에서 지혜를 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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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55주년을 맞는다. 반세기를 지난 지금은 전쟁의 아픈 기억이 상당히 아물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신문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북한 핵 이슈, GP 총기난사 사건 등으로 1면을 채우는 것을 볼 때면, 아직도 분단 상황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약 20년 전에 번역, 출판된 커밍스의 이 한반도와 한국사회에 관해 지혜를 빌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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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 55주년을 맞는다. 반세기를 지난 지금은 전쟁의 아픈 기억이 상당히 아물어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신문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북한 핵 이슈, GP 총기난사 사건 등으로 1면을 채우는 것을 볼 때면, 아직도 분단 상황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중요한 키워드임이 분명하다. 약 20년 전에 번역, 출판된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1>이 한반도와 한국사회에 관해 지혜를 빌릴 만한 매력적인 저작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의 기원 1>을 관통하는 커밍스의 질문은 왜 한국전쟁이 일어났는가(왜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이다. 역사학도의 관점에서 그는 한반도라는 공간을 고찰하면서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모순(또는 대립관계)이 형성되고, 심화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커밍스는 조선시대부터 시작하여 일제하, 해방 5년을 차례로 검토하여, 국내정치(민족주의와 국가건설)와 국제정치(미소 군정과 양극체제)의 두 측면에서 모순을 분석하였다. 커밍스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모순이 식민 지배에 밀려 해소되지 못한 채 오히려 증폭되었고, 미국의 영향 아래에서 모순의 극복이 재차 좌절되었다. 이러한 남한 상황은, 북한지역에서 일련의 사회주의적 프로그램에 따라 반제반봉건 혁명이 진행된 점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분석은 미국의 정책이 분단 상황의 고착화와 내전 발발에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미군정이 이승만-한민당 계열과 밀착하여 식민관료체제를 복원하고 물리력을 장악하며 단독정권을 추구했다는 커밍스의 분석은 왜 한국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우선 미국의 중앙정치 수준에서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노선 갈등이 있었으며, 다음 남한의 중앙정치 수준에서 민족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한민당(또는 친일세력)이 세력을 복구하고 강화하였고, 마지막으로 남한의 지역 정치 수준에서 민중의 자발적인 세력화가 좌절되고 한민당 중심의 중앙집권화가 관철되어갔다. 이러한 남한지역과, 사회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는 북한지역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증대되었고 이것이 결국 내전으로 귀결되었다는 커밍스의 설명은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남북간 구조적 모순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국전쟁의 기원 1>은 한국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또한, 2005년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남한 사회 내부의 구조적 모순이 아직 완전하게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주의 깊은 독자라면, 남북한이 상이한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화해하고 협력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행간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이 책을 꼼꼼하게 읽고 북한이 1940년대 후반에 보여준 성과와 현재 처한 정치·경제적 상황을 견주어볼 줄 아는 독자가 있다면, 현실사회주의가 잘했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점을 알고 북한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해 쓴 소리를 조금 남긴련다. 우선 남한의 미군정이 워싱턴의 국무부를 선도한 적이 있다고 보는 커밍스의 시각에 대해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워싱턴 정계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한의 미군정이 워싱턴의 지시를 때때로 경시하거나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그리스, 터키 등의 미국 파견진이 워싱턴과 어떠한 관계를 맺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책 전체를 통틀어 미국의 역할과 입장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아마도 저자가 주요 독자를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으로 상정했던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이홍광을 여자로 생각하는 등 작은 오류들도 보인다. 몇 가지 재검토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오늘의 시점에서 지혜를 빌리기에 충분한 역사서다. 일독을 추천한다.
n***l 2006.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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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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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마 기존의 반공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북한지도자의 적화야욕과 소련의 팽창정책이 결부되 빚어진 야만적 만행정도로 이해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한국전쟁의 이해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반공주의적 역사의 왜곡된 단면일 뿐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측의 전쟁결정과 소련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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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전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마 기존의 반공교육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북한지도자의 적화야욕과 소련의 팽창정책이 결부되 빚어진 야만적 만행정도로 이해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한국전쟁의 이해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반공주의적 역사의 왜곡된 단면일 뿐이다. 한국전쟁은 북한측의 전쟁결정과 소련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단순한 전쟁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더욱 복잡한 관계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남한 정권과 관변측의 역사학자들은 의도적으로 도외시해왔다. 즉 한국전쟁에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수호란 명분아래, 남북의 분단을 의도적으로 방관했던 미국의 대한정책과 이승만의 분단정책, 그리고 더 멀게는 일제식민지의 유산마저 결부되어 있었다. 물론 남침의 결단을 내린 김일성의 '조국해방명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아마 한국전쟁이 단순히 북한과 소련의 침략야욕에 의해 발발했다는 견해에 결정적으로 치명타를 날린 학자는 이 책 "한국전쟁의 기원"을 저술한 브루스커밍스일 것이다. 이 책이 80년대 초에 등장할 무렵 일으킨 반향이란 정말 엄청난 것이었는데, 그것은 기존의 전통주의적 견해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의 일차적 원인으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 즉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수호를 위해 남북분단도 불사하는 - 을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로선 정말 혁신적인 주장이었고, 반공주의자들의 좋은 공격미끼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커밍스의 "수정주의론"은 약간의 보완이 요청되고 있을 망정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한국현대사학계의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전통주의적 해석에 손을 들어주지 않고 있으며, 커밍스를 필두로 한 수정주의 내지 후기 수정주의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지금은 너무도 상식적이고 진부할 정도로 일반화되었지만, 커밍스의 혁신적 주장은 당시 한국사학계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여겨질 정도로 혁신적인 것임에 틀림없었다.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고 싶어하는 일반인들과 한국역사의 입문자들에게 이 책은 훌륭한 지침이 될 것이다. 또한 한국현대정치의 왜곡된 단면의 기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k*****l 2002.07.2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