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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니 적어도 서양인들은 일본문화를 환상적인 것으로만 치부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고찰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중요한 점은 일본의 문화와 비교하는 표본이 서양의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이라는 것에 있어 의미가 더한다. 아시아라는 공통점 가운데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같은 문화를 가지고도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내는 일은 좀처럼 생각치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은 이 책에서 그 점을 찾아 내어 부각시켰고, 일본인의 문화를 축소지향적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한국과 일본 문화간의 차이점이 바로 이러한 성향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좁은 다다미방이 훨씬 더 익숙한 그들의 문화다. 어린 아이들에게 벌을 줄 때, 서양인들은 좁은 방안에 가둬 버리지만 일본인들은 나가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좁은 다다미문화에서 안정감을 찾기 때문에 넓은 바깥 세상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므로 내보내는 것을 벌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들의 축소지향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결과이다. 또 이 책에서는 여섯가지 모형을 두고 일본인들의 축소지향적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레코형, 쥘부채형, 아네사마형, 도시락형, 노멘형, 문장형이 바로 그 여섯가지이다. 이 중에서 가장 수긍이 가는 설명을 하는 것은 쥘부채형과 도시락형을 꼽을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시원한 바람을 위해 큰 부채를 선호했지만, 일본인들은 그것을 손 안에 넣을 수 있도록 쥘부채형으로 개조했다는 것이다. 또 집 밖에서도 완전한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축소시킨 도시락형이 그 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도시락으로 김밥을 꼽는다. 그것은 상에 차려진 모든 음식의 축소라기 보다 그저 간단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인들처럼 식탁 자체를 손 안에 넣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이 책에서 때때로 수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사실 그에 앞서서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일본인의 모든 행동을 축소지향에 맞추기 위해 좋을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탓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나 정황적 오류를 범한 것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그들의 대표적 문화를 통찰한 것은 매우 사려깊은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정황만을 두고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어령이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분석력으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재미있게 풀어 썼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지만, 이것만으로 그들을 축소지향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성급한 결론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나 그에 따른 결과를 무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잘못되었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성향들이 반드시 일반적이지 않다는 여지를 남겨 두고 책을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이 매우 놀라운 통찰력과 재미를 느끼게 해줬던 거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님과 함께한 일본 문화 여행은 분명 즐거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일본인이 축소지향이든 확대지향이든 그것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나 기술에서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치'가 '기무치'로 둔갑하는 일 등을 좌시하고 있는 것은 마냥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 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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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일본하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잘 알 듯하면서도 내가 일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국사책에 나오는 딱 그정도 뿐이었다. 유독 일본이란 단어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아서 그저 일본이라는 것에 고개를 돌리고 마는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아는 일본은 대체 어떤 나라일까? 문학 속 그들은 마음이 여린 반면 역사 속 그들은 무자비하고 악랄하기 그지 없다. 대체 무엇이 그들의 진실된 모습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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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알고, 싫은 상대일수록 알아야 비판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예외시키고 싶은 것도 참 많은게 사실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그것이 일본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앞의 말이 무산되기 쉽다. 세계 강대국인 일본을 '쪽바리'들이라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만 무시한다는 우스겟 소리도 있지만 그만큼 일본과 우리나라의 골은 깊다. 그래서 일본을 알아가는 이 책을 읽는게 내키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서 부담감은 덜어졌다는 것 외에는 말이다.
반성하건데 지금까지 나는 일본을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단순히 일본의 땅덩이와 그들의 기질을 왈가왈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정신세계를 몰랐던 데에서 오는 오해와 미움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아갔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참 독특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이질감과 이해심은 늘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그들을 이해심으로 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저자의 객관성이 한 몫 했던것 같다. 한국인으로써 일본을 냉정하게 바라보기 힘들었을 터인데,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이끌어 가면서도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지 않았던 것, 그것이 좋았다.
이 책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어린이 판으로 나온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의 수준을 잘 모르기에 읽으면서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단원의 끝자락마다 서술했던 것에 대한 만화가 삽입되어 있고, 주석 또한 풍부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의는 전달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큰 주제는 축소지향으로 바라보는 일본인이지만 책에서 수없이 강조되고 사례를 통해 전개되므로 축소지향 하면 일본인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저자는 6가지의 축소지향 모형을 통해 일본인을 말하고 있다. 과연 6가지의 모형으로 일본인을 파악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지만, 그 모형을 통해 지금껏 내가 알고 있었던 일본에 대한 조각조각의 지식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였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이질감이 뚝뚝 흐르는데 그 안에서 그들의 의식을 찾으니 비로소 객관적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레코, 쥘부채, 아네시마 인형, 도시락, 노멘, 문장을 통해 바라본 축소지향의 일본은 흥미로웠다. 앞에서 나열한 6가지의 특징은 축소된 것에 내포되어 있는 일본인들의 정신이였다. 그들이 확장형으로 나아가면 평상시에 지니고 있었던 사고와 판단력이 흐려지는 예를 보아왔듯이 6가지의 모형을 통해 일본이 작은 것에서 추구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 공간 속에서 단아함과 정갈함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지만, 그런 축소의 정신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일본은 시대의 흐름을 잘 갈아타는 반향자로써 다른 문화를 베끼기 좋아한다고만 알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이 발휘되었던 생각이기도 한데, 일본이 지금의 경쟁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베끼기를 넘어 축소지향의 의의가 서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들어진 상품을 다시 다듬고 보완하여 더 편리하게 만듦으로써 수 많은 사람들이 편해졌고 경제에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본의 동향이 긍정적인 것들만 낳았던 것은 아니였다. 역수출 속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경제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고, 확장형으로 시선을 돌릴 경우에 나타나는 행동들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지금껏 일본이 이러했다면 확장형의 일본인으로 성장하여 다른 나라와 그들의 문화와의 충돌을 피하라며 이 책은 마무리 하고 있다.
확장형을 추구 했다가 실패한 아시아 여러나라에 끼친 상처들을 보듬어 주지 못하고 나몰라라 하는 일본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많다. 축소에 긍정적인 시각만을 둘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장 염두해야 할 것은 일본의 문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려는 자세일 것이다. '이러하니 일본이 이럴수 밖에 없지' 하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조건적인 경쟁의식과 미움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지켜보는 마음을 기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손놓고 의식하지 않으면 일본은 우리에게서 더 멀리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와 축소지향에서 나오는 결점을 보완하지 않는한 그들의 한계는 분명 올 것이다.
우리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통해 일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이런 객관성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현재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의식은 적대감 밖에 일으키지 않을 뿐더러 제자리의 한국과 일본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백전백승을 하든, 비판을 하든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일본을 아는 것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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