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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던 나는 한겨레를 보며, 어머..쯔쯔.. 정말? 이런 생각을 해가며 조금씩 사회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너무 어렵다고 생각한 주제는 내팽겨치긴 했지만, 그래도 꼼꼼이 살펴본 첫 주간지이자 언론매체였다.
웹페이지를 내리다 신윤동욱 기자를 처음 보게 되었다. 처음엔 기자가 아닌, 스포츠 선수나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뭔가 사회에 불만이 잔뜩 있어보이는 얼굴...
그러다 그의 책 플라이 인 더 시티를 만났다. 책을 읽는 중에 궁금해졌다. 신윤동욱씨는 어떤사람인가? 게이인가? 아닌거 같은데... 이쁜 무지개빛 블록도 살짝 의심의 눈초리를 ㅋㅋ
북측에서 파견한 미녀 응원단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는 기자들 틈에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들을 기사거리로 본 자신을 고백하는 신윤동욱기자님 담배값아껴서 제2의 고향인 방콕에서 살고싶어요 라며 인터넷 쇼핑에서 면세점 쇼핑까지 즐기게 된 신윤동욱 기자님 수염을 길렀더니 주위의 시선이 어색하지만 아프가니스탄 가서는 수염있어야 대접해준다며 자랑스러워 하는 신윤동욱 기자님 나처럼 채널돌리기 좋아하고,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합리화에 능한 신윤동욱 기자님 빈번하게 지금도 회사다닌다고 나 스스로를 자축하는 나에게 회사다닌 10주년이 되었을 때 스스로 자축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해준 신윤동욱 기자님 같은 사건, 현장을 봐도 기자의 감수성과 예리함으로 나보다 더 뛰어나게 설명하고 느끼는 신윤동욱 기자님
오호오호~~ 만나고 싶어요, 그 열정, 그 충동적인 듯한 모습 ^^
간만에 재밌으면서 심각한 책을 봤다. 책을 다 본 후에도 남는 궁금증.. 과연 그의 정체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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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시네21이나 한겨레21에 이런저런 잡문을 실을 때 유심히 지켜보던 기자의 글이 묶여나와서 냉큼 사들었다.
제목도 즐겁다. 'Fly in the city'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니고 날아다닌다. 방방 날아다니는 네자이름의 아저씨?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 하지만 글을 읽다보면 아하..이 사람이 느껴지며 이해가 간다.
방콕을 좋아하고, 이태원을 사랑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리버럴한 개인의 자유여야하고, 소수자를 존중한다기보다 차별하지 않고 그냥 알아서 살게 내비두기만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소극적이지만 분명한 실천을 하는 사람.
별 것 아닌 듯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개인의 탐욕과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어쩔 수 없음을 가감없이 다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쪽팔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보는 내내 하게 되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썼던 잡문들고, 같은 시기 비슷한 다른 매체에 그의 방콕 밤놀이를 위한 군자금 마련을 위해 실었던 글을 편집 거의 없이 생라이브로 책에 실어서 그랬는지 몇 몇 이야기와 표현은 반복재생되어 학습되어 머릿속에 각인을 시킬 정도다.
보통 그런 글을 보면 저자의 게으름과 무신경함에 짜증이 생기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사회도 이런 글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10-15매 사이의 글이니 부담없이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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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기자라는 직업은 좀 다르다며 새삼스런 감탄사를 날린다. 그의 비꼼과 꼬집음은 적당히 날카롭고 빛나는 표현-특히! 부시와 알카에다는 '근본주의'라는 같은 신앙을 지니고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동업자라는 말-이 여러군데 눈에 띄며, 내가 머리아프다고 고개를 휙 돌린채 관심조차 두려하지 않았던 문제를 친근하게 혹은 주책맞게 자신의 일상사를 엮어 솔직하게 적어내어 가볍게 읽을수 있게하였다. 하지만 서평을 쓰려고 주억거린게 몇번인지 모르겠다. 평소 빠릿빠릿한 편도 아니었지만 점점 더 굳어만 가는 나의 머리는 기자님의 논리에 옳소! 하며 순응할뿐 이렇다할 의견이나 반박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했다. 소비로 제 3세계를 구원한다며 애정의 대동아공영권을 강조하는 그는 엉뚱하지만 그의 시선은 늘 이주노동자, 성소수자들, 단일민족이라는 한국사회의 치부를 향해 정조준되어있었고 다만 가벼움으로 포장해 신선하게 발칙하게 다가가고 있을뿐이었다. 덕분에 호불호만 표현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면 그만인 철저한 방관주의자로서, '내가 너무 단편적으로 단순하게 살았구나' 라고 처절하게 느꼈다. 세상사에 무관심하며 남의 의견에 따라가기만 하고 아무런 비판도 딴지도 걸지 않는다는 것에 반성했다. 그리고 그의 말에 참 많이 공감했다. 그가 너무 속속들이 자기속을 내비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없지 않지만 그만큼 더 즐겁게 읽을수 있었고 특히나 내가 가려운 곳만을 골라 시원하게 긁어주는 그의 포지셔닝이 참 돋보이니, 삐딱함을 즐기는 분들에겐 꽤나 재밌는 책이 될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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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신윤동욱 특이하다. 책을 읽다보면 이름에 얽힌 칼럼이 나온다. 나도 이름은 신동욱이라 읽은 것이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칼럼집이 라지만 나에겐 에세이집 못지 않게 친근히 다가온다. 책은 자유롭다 제목처럼 하늘위의 도시..자유롭다 서른이 넘어 이태원 클럽을 다니고 드라마 주인공을 따라 턱수염을 기르고 보통 하고 싶어도 남의 눈치가 보이는 일들을 자유롭게 신나게 써내려 가고 있다. 남의 눈치를 보지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라고 외치지만 말 처럼 싶지 않다. 더욱 더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편하고 남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는다면 그리고 행복하다면 그것보다 삶을 신나게 사는 방법은 없는데 평소 얌전한척 고상한척 하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때려주는 느낌이 난다
나에겐 코미디 같다. 나와 같은 주제로 생각을 하지만 의견이 달라도 저자에게 동의하고 만다. 설득당한것도 아닌데 미묘한 힘!이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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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보여? 음~ 하늘에는 모래가 펼쳐져있고 땅에는 구름이 둥둥 떠있어. 건물들은 모두 땅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 붙어 있네. 와아, 신기하다. 그런데 왜 머리가 아프지? 쿵! 철봉에 거꾸로 매달린 나를 떨어뜨리는 친구에게 원망섞인 시선을 보내니 친구 혀를 차며 한마디 한다.
"너, 미쳤어?"
세상에~ 세상을 거꾸로 한 번 봤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세상이 무서워지려고 한다. 하긴 나보다 더 세상이 무서워지려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인가? 나는 아주 가끔 세상을 거꾸로 보지만 이 사람은 아예 세상 비딱하게 보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괜찮은 걸. 삐딱하게 세상보기, 은근한 중독이다. 하긴 이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날 수 있다. <플라이 인 더 시티>라는 책을 낸 세상을 나는 남자, 신윤동욱의 책이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알록달록 표지로 인사를 한다. 책만이라도 발랄하게 보이려는 겁니까? 하긴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니 그의 삶도 발랄하게 보이려고 한다. (종종 노총각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아픔이지만, 같이 늙어가는 처지니 이해완료!)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재방송을 '보고 또 보고' 하는 35살이 넘은 남자의 세상 바라보기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의 신윤동욱이란 이름은 보는 것만으로 낯설다. 동방신기를 흉내낸 것이 아닌 그의 이름은 양쪽 부모님의 성을 써서 이름이 4자가 되었다. 신윤동욱, 이름만으로는 참 멋진 이름인데 4자가 되니 부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한겨레 21기자이니 신기자라고 부름 좋을 것 같은데 성이 신윤이니 부르기도 고민이다. 이름으로 인해 이미 만나는 사람에게서 적잖은 관심(?)을 끌었을 저자의 고뇌에 왜 웃음이 지어지는 걸까? 그의 이름이 4자라 더 기억이 잘 될 것 같다고 하면 저자는 쓴 웃음을 지을까? 니가 내 고통을 알아~ 이러면서. 그래도 나는 씨익 웃으며 말할 것이다. 당신 이름 참 멋지다고!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쓴 컬럼을 모아 놓은 책이다. 칼럼이 이렇게 재미 뿐만 아니라 마음에 콕 찝기도 하고 생각할 거리도 줄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의 칼럼은 분명 사회의식나 비판이 강하게 담겨있는 글인데도 지루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일렁거림을 느껴지게 만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사회의 부조리함을 알리는 기자에게 이것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한걸까?
지금은 문화 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전에 사회 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이 부분에 실린 칼럼들은 아마도 그 당시 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1퍼센트라고 부르는 저자. 그가 외치는 1퍼센트는 고급 승용차를 타는 1퍼센트가 아닌 좋게 말하면 정치적 소수자고 나쁘게 말하면 철없는 '또라이'다.(또라이라는 말은 내가 아닌 저자가 스스로 말한 것이다.)
대한민국 1퍼센트의 소수의 편에서 선 저자는 스스로 우리나라의 마이너리티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편에서 글을 쓰는 그의 글은 권력의 얄팍함을 꼬집고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를 죽일 줄 아는 국민을 송곳으로 콕콕 찌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바라보기에 소수의 위치는 얼마나 적절한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인가 할정도의 겁없는 컬럼도 수두룩 하다.(당신 정말 이런 칼럼을 쓰고도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건가요?!) 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를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문을 보면 정치 사회면은 빼놓고 보는 나인데 이제는 그로 인해 챙겨보지 않을까 싶다. 왜냐 그의 글에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조금의 지식은 필요할테니. 저자와 대화를 해보고 싶어졌다. 얼마나 유쾌하고 두근거리는 시간일까.
1부가 대한민국의 뒷담화라면 2부는 저자의 생활(그의 생활을 삶이라고 하면 왜 무거운 느낌이 들까? 그의 말대로 드라이하게 '생활'이라고 부르자.) 3부는 대중 매체 속의 문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의 브로크백은 '방콕'이라는 사실에 나도 늙으면 방콕에 가서 살아볼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생활을 베일 하나 남기지 않고 드러낸 듯한 글에 눈살이 찌푸려지기 보다 오옷! 이란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물론 그 뒤에 웃음과 함께. 엉뚱한 아저씨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그의 생활이 유쾌하게만 느껴진다.
1부에서 삐딱하게 세상을 봄으로 시원함을 느꼈고 2부에서는 유쾌함을 느꼈다면 3부에서는 나도 나도를 연발하게 되는 공감대를 느꼈다. 3부는 그가 문화 기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을만큼의 그만의 시선이 느껴진다. <순풍 산부인과>처럼 시트콤을 비롯해 <훌라 걸스>에 이르기까지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 제대로 맛나게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다시 봐야할 영화와 볼 영화가 늘어났다.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이 나를 몰아댔던 책을 손에서 내려 놓으며 여러 감정에 휩싸인다. 쉽게읽히는 글이라고 쉽게 쓰일리 없는데 빠르고 쉽게 읽은 것만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시간이 날 때면 아무 부분이나 펼쳐서 읽으며 그 미안함을 갚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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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일종의 발버둥의 흔적이다. 덜컥 청탁을 수락하고, 막상 마감이 닥치면 도망가버리고 싶었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고투들이다. (중략) 비록 조롱의 언어로나마 이땅의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사정을 아는대로 전하려는 글들도 있었다. 정말로 내가 썼나, 싶은 글도 있다. 잘 썼단 얘기가 아니라 낯설단 말이다. " 책 머리말중
이 책은 <한겨례21> 기자인 신윤동욱님의 칼럼집이다. 문화와 사회 사이에서 전공을 몰라 헤메고 있다는 그는 문화와 사회를 총괄한 우리 사회 전반적인 모습을 다루고 있다. 칼럼은 사설과 달리 풍자적 요소가 많아 시선이 삐딱해 보이기 십상이다. 사실 이 책도 상당히 삐딱하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결혼 문제나 대마초 관련등 일부 민감한 사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감이 가고, 때론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2002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는 경기뿐만 아니라 북측에서 온 미녀 응원단에 온통 관심이 집중되었다. 카메라는 발빠르게 대표 미녀 몇 명을 색출해내고 네티즌들은 팬 사이트를 만들어 환호한다. 여기에 여성 단체들은 민족 화해 분위기를 의식한듯 침묵으로 일관한다. 김정일의 사진이 비에 젖자 울부짖으며 현수막을 거두어 들이고, 인근의 것까지 모두 회수한 후에야 이동했다는 그녀들의 일화를 보면서 정말 체제를 알 수 없는 집단이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기도 했었다. 북한처럼 폐쇄적인 국가에서 미녀응원단을 내세운 속내도 알 수 없거니와 국제적 행사때마다 '미녀응원단'을 요청하는 남쪽의 고위공직자나, 언론도 이해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런 현상을 북쪽 응원단에 대한 '민족적 관음증'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미디어는 그녀들이 진정 '통일의 꽃'이라고 믿는 것일까?
한국말은 어렵다. 한국어로 솔직하게 말하면 무례한 사람이 되고, 정확하게 주문하면 까다로운 사람 취급 받는다. 대표적인 소통 불능, 중국집의 다꽝 이야기 "조금 더" 라고 이야기하면 항상 처음 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다꽝이 나온다는 것. 자장면은 두어 젓가락 남았을 뿐인데... 더 달라고 해놓고 남길려니 엄청 눈치 보인다. 이것이 바로 '정량 2배의 법칙' 이라나. 한가지 더, 택시 안에서 "아저씨, 볼륨 좀 낮춰주실래요." 크게 라디오를 켠 택시기사에게 주문을 한다. 아저씨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라디오를 꺼버린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말이 통하는 사회, 진심이 통하는 사회를 꿈꿔본다. ㅋㅋ
기자 특유의 냉철함과 설득력있는 문장이 돋보인다. 우리 사회 다방면에 대하여, 소수자를 대변하여 거침없이 할말 다 하는 솔직담백, 당당함이 멋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쓰고 있을까. 먼저 이름부터 살펴보자. 저자의 이름은 신윤동욱, 1997년도에 시작된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에 영향을 받았다. 독특함 때문에 주위에 이름을 각인시키기가 너무 힘들고 "어쩌다가" 부모성을 함께 쓰게 되었냐는등 질문속에 반감을 드러낸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산다. 부모성 함께쓰기 그 후 10여년, 그는 여전히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부모성을 함께 쓰는 이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성을 선택할 수 있으되 결국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모순적 사회 분위기 탓이리라.
문화의 다양성은 오랜 세월동안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어왔다. 서로 다른 문화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와 융화시켜 새로운 미래를 이루어 낸다. '원리주의'는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다른 문화와 충돌하여 피를 부르는 인류의 가장 큰 '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회의 발전 가능성은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가늠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좀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 볼줄 아는 사람. 마이너리티, 당당함이 멋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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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에 빨간색으로 강조된 '급진적 다양주의자' 라는 단어가 눈에 띄인다. '다양주의'라. 형용 모순이 아닐까? 무릇 '주의' 라 하면, 사회의 문제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아니던가. (물론, 이것과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주의' 들도 있다.) 예컨대, 민족주의는 분단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라는 주장이고, 자본주의는 시장경제가 희소한 재화를 분배하는데 최적의 방법이라는 주장이며, 사회주의는 계획경제가 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주의라니.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의미하는 다양주의는, 의미와는 별개로, 적어도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다.
- 형용모순인 수식어를 표지에 써놓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나 무슨무슨 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고, 현실의 문제점을 나열하는 것과 현실의 해결책을 탐구하는 것은 개별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자에 가깝고, 그저 그것 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유쾌하고 즐겁게 사회를 비춘다. 굳이 후자를 흉내낼 필요는 전혀 없지 않은가.
- 첫번 째 장 '사회(SOCIETY), 대한민국 1퍼센트의 뒷담화' 는 사회적 통념에 대한 비판이자, 반대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변론이다. GNP를 국민총생산을 나타내는 경제적 지표 이상으로 활용하는 GNP 인종주의, 민족의식으로 치장한 북한 여성 응원단에 대한 관음증, 공영언론 사영언론을 가리지 않는 민족주의, 반 한나라당 정서, 대마초 흡연에 대한 금지, 반 동성애 정서, 등 사회 구성원 다수에 의해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통념' 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한국 사회의 다수자 정서, 집단적 정서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어떤 주장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 글쓴이의 일상과 취향에 대해 쓰고 있는 두번 째 장, '취향(TASTE), 아저씨의 브로크백 드리밍' 은 이러한 글쓴이의 솔직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의 동남아 여행 이야기, 이태원 클럽 이야기, 티브이 시청기, 운동이나 쇼핑에 대한 이야기들은 즐겁지만, 동시에 즐거운 '일상' 일 뿐이다.
- 다양주의 같은건 없다. 다양함에 대한 인정은 '추구해야 할 가치' 이지 '추구하는 가치를 실제로 이루어내기 위한 방법' 은 아니다. 혹시나, 다양함에 대한 인정을 하나의 주의로 포장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기력한 자기 위로 이상이 되지 못할테니까.
- 그의 글은, 다양주의가 아니라, 그저 공평무사하게 다루어지는 소수자들의 모습에서 가치가 있다. 특히,「동성애자 천국과 나쁜 어린이의 향연」은 '내가 생각하는 인권 운동' 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는데, 소수자는 다수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내 주변에 있는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글쓴이 덕분에 동성애를 다루었다고 알려진 영화들을 사랑 영화 목록에 끼워넣었고, <발레교습소>가 보고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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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설펐던 마이너리티 시절이 생각이 나 얼굴이 자주 붉어지곤 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마이너리티 근처에도 못 갔을 터이지만 내 나름대로 내 생애를 주욱 뒤돌아봤을 때 20대 초반이었던 그 시절만큼이나 다양한 삶과 가치들을 받아들였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냐의 삶은 정말 내가 생각해도 깝깝하다. 그 깝깝함을 깨닫는 순간 난 자유가 그리웠고 그러고자 노력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자유로워질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을까. 나를 얽매이던 모든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자 무척이나 불안하고 무서웠었다. 그러려니 애써 태연한 척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래서 매일 술로 나날을 보내면서 객기를 부려보았지만 역시 난 깝깝한 생활이 이미 너무 내 삶 깊숙이 자리잡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슬펐지만 편안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뭐... 다시 정형화되고 가장 보편적인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나이도 많이 먹고 주류가 주는 안정감의 맛도 이미 알아버렸기에 비주류의 삶을 꿈꾸진 않는다. 가끔씩 부럽기만 할 뿐이다. 한겨레 21에서 자주 그의 글을 대면했었다. 볼 때마다 "히야~"하는 시원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되는 글이었다. 또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의 자유로움과 신선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을 읽으니 이번엔 신선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했다. 사실 처음엔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내 주위에는 너무나 보수적이고 고정화 된 삶을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에 난 어느 새 그들의 삶 이외의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에 맞게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리고 늘어가는 뱃살을 고민하고 뭐.. 이런 일련의 엇비슷한 생활들 속에 아주 푸욱 젖어있었기에. 그러나 그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새로운 것들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만나는 세상이 다가 아니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참, 세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째서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가. 사람이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가 아니었다. 모두 다른 모습으로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동성애와 양성평등과 굴절된 민족주의 같이 커다란 사회의 벽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자신의 정당성을 외치는 문제들에 대한 담론들이 많아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지금까지 정해진 틀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것이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한다. 어쩜 한 번도 다르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지. 이 책을 읽는 또 한 가지 재미는 재발견에 있다. 태국의 재발견, 가족오락관의 재발견, 드라마의 재발견, 나이와 성과 사랑과 섹스의 재발견. 모든 것들이 이전에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기 있는 자들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다른 모습의 사람들에 대한 억압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내가 비주류의 삶을 포기하고 주류의 삶을 선택한 것은 용기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주류가 나를 받아줬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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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 부터 특히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닽이 쓴다는 신윤동욱 씨의 솔직담백한 한국 이야기였다. 저자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고 때론 생각치 못한 부부까지 알아내는 등의 본 직업인 기자 스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책은 재미있었다. 이런 삐딱한(?)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도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런 불만을 좀더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책이 다룬 이야기는 참 다양했다. 크게 보자면 사회와 문화였는데 그 안에서도 이슈가 된 여러사건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가볍게 읽을수도 무겁게 읽을수도 없었다. 개인의 의견이니 그저 스치듯 읽어도 되었고 또 그 내용이 무겁고 진중한 주젱니 마냥 가볍게 읽을수 많은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만족하는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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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잡힌 책을 손에 쥐고 문장등을 열심히 소화시키는 내내 "유별남"과 "특별함", 이 두 단어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내 퀴즈에 맞서야했다. 과연 신윤동욱이라는 이 남자는, 유별난 것일까 특별한 것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 나는 과감히 부저를 누르고 자신있게 '정답!'을 외쳤다. 신윤동욱 씨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도 그렇습니다! 하고 말이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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