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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처럼 별명을 많이 얻은 여류비평가도 드물다. 가령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미국의 어느 보수주의 비평가는 손택에게 ‘문학계의 뚜쟁이’라는 모욕적인 별명을 선사한 바 있다.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는 독설을 퍼부은 양성애자에게 보수파가 붙일 수 있는 모욕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내가 난생 처음 접한 손택의 소설이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무척 맘에 들었다. 손택의 소설은 《화산의 연인》과 같은 장편소설이 유명하지만 70년대 10여년에 걸쳐 쓴 8개의 단편들을 진지하게 읽어보는 것도 미국 문학의 전통에 한발 더 가깝게 다가선다는 의미가 있어 더 뜻깊지 않나 싶다. 이때는 암이 손택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었던 시기지만 손택은 아이와 같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글에다 녹여냈다. 손택은 자신을 비평가나 에세이스트가 아니라 '소설가'로 불러 주기를 바랐다. 나는 저자의 이런 바람이 사실 문화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라고 본다. 나는 저자의 '소설가'에 대한 숭배에서 문학이 미학과 철학과 종교를 대신하리라는 그미의 은밀한 욕망을 읽는다. 철학은 미학에게 자리를 건넸고 미학은 문학에게 다시 자리를 건네야 한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역자는 이 단편집의 주제가 "삶으로의 회귀"라고 설명한다. 그것도 부정적 현실로의 힘없는 복귀가 아니라 부정까지 끌어안은 삶을 긍정하는 강건한 회귀라고 역설한다.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알레고리적 서사로 <미국의 영혼들>과 <베이비>를 언급하고, 현대인의 일상과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인형><지킬박사><사후 보고>를 언급한다. 그리고 손택의 개인적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자기 고백적 서사로 <중국 여행 프로젝트>와 <안내 없는 여행><오랜 불만을 다시 생각함>을 거론한다.
<인형>(1963)에서 주인공은 현대 사회의 단조로운 일상을 자기 대신 살아줄 복제인간을 만든다. 그런데 인형에게 일상적 삶을 맡긴 후 정작 주인공은 권태의 늪에 빠져 부랑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 삶의 의미는 단조로운 생활을 견디는 데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과 똑같은 인형을 복제해 낸다 할지라도 앞으로 벌어질 생은 예측 불허이기에 결코 안전할 수가 없다.<지킬박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다룬 명작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다시 쓴 작품이다. 사이비 교주 어터슨의 종교단체에 소속된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살해하려 한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된다.
<사후 보고>는 자살로 생을 마친 뉴욕 여인 줄리아를 통해 뉴욕의 세속도를 그려낸 우울한 드라마다. '가난한 떠돌이' 줄리아의 자살은 도시의 고통과 삶의 공포에 대한 저항이자 고발인데, 이야기 곳곳에 화자의 감상을 빌어 손택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모럴리스트적인 글도 보인다. 다음과 같은 글들이 바로 저자의 평소 생각을 드러낸 글이다.
"우리는 써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이 모든 잡다한 것들을 보라. 로켓, 베니스의 교회들, 데이비드 보위, 디드로, 누옥 맘, 빅맥 햄버거, 선글라스, 오르가슴. 신문과 잡지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사탕이나 수면제나 절규 치료법이 내 이웃이듯이, 그것들도 내 이웃이다."(229-30쪽)
"누군가와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기억되는 모든 것은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감동적이고, 보석 같다. 최소한 과거는 안전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거에 있으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남았으니까."(236쪽)
미국은 절제의 국가가 아니라 소비의 국가다. <미국의 영혼들>은 색정의 세계에 빠진 '평면 얼굴' 아가씨와 '음란' 씨의 이야기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탐색이다. 여기서 '상반된 가치들의 혼재'는 미국 사회의 특징으로 부각된다. <베이비>는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을 소재로 한 매우 실험적인 작품이다. 의사의 말이 모두 생략되어 있는데 환자의 말로 미루어 미국 사회의 부모자식 관계를 알레고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중국 여행 프로젝트>는 가지 않은 중국에 대해 미리 쓴 기행문이다. 손택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그곳에서 사망했고, 손택의 어머니는 중국에서 그녀를 임신했다. 그만큼 중국은 손택의 정체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오랜 불만을 다시 생각함>은 세상을 변혁시키려고 운동조직에 몸담은 멤버가 조직을 떠나려고 하면서 제기하는 여러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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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로 에세이스트로 이름이 나 있는 그녀의 글을 아직 한번도 접한 적이 없다 이름만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녀의 소설집 <나, 그리고 그밖의 것들> 극작가,영화감독,연극연출가,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그녀의 이름 앞에는 그녀가 해온 많은 일들이 그녀의 이름에 덧붙혀진다
책을 읽는 내내 좀 혼란스러웠다 아직 유명한 그녀의 평론집등을 접해보지 않고 먼저 소설을 읽어서 그러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복제인간을 표방한 인형은 그 시대에 그런 생각을 먼저 할 수 있고 또 그때나 지금이나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현대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작품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좀 의문스러웠고 문장들이 그저 놓여있는 듯한 느낌에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고 유명한 작가의 글인데 내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건가 하는 속상함과 함께... 그래서 자꾸 뒷부분의 옮긴이의 글에 소개되어있는 작품들에 대해서 먼저 읽어보고 다시 글을 읽으며 끼워 맞춰보려고 해도 역시 내게는 좀 어려웠다 그냥 덮어버리면 웬지... 하는 생각에 천천히 다시 읽어보지만 그저 읽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는 듯 하다
자극적이고 무엇인가를 던져줘야하고 재미가 있어야하는 소설에 대한 기대감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이 책을 덮은 후의 심정은 그리 편치가 않다
다른 책도 한번 더 도전을 해보고 평론집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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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이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정작 그녀의 작품은 읽어볼 기회가 없던 개는 그냥 영원히 덮어버리는 수도 많구요. 부디 이 책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기도하 면서 읽었다면 제가 얼마나 이 작가와 작품에 애정을 가지려고 노력했는지 아시겠지요? ㅎ 1963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던데 어떻게 그 당시 이미 인간의 복제란 문제를 점칠 수 있었는지 놀라웠습니다. 한 마디로 그녀가 미국의 지성으로 알려진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던 충분한 증거를 발견한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녀의 혜안이 놀라우면서도 그녀 의 예지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게 확실하단, 일종의 자극을 받게 되었지요. 있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단편을 다시 여러 번 읽으며 그녀의 진정한 의 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좀 더 탐구해봐야겠단 결론에 도달했고, 그렇게 하려니 기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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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손택이 60~70년대에 쓴 8개의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이다.비평가나 에세이스트가 아니라 소설가로 불리길 원했다던 손택,그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녀를 평론가나 지성인으로기억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보면 된다.소설가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단박에 짐작하게 되니까.우선 경악스러울 정도로 재미가 없다.차라리 평론이 더 재밌다.거기다 평론은 적어도 쓸만한 정보 몇개는 건지지 않는가?여긴 건질만한 정보도 없다.이 책의 주제가 <삶으로의 회귀,결국에는 모두가 처음으로 돌아간다.>라던데,아쉬운대로 그거라도 경건하게 받들어 볼까 했지만 별로 그러고픈 마음도 들지 않는다.어쨌거나 왜 지금 그녀의 해묵은 단편들이 나오게 된건지 모르겠다.시대를 막론하고 생명력을 가지는 대단한 책이여서?라고 말하긴 어렵던데...각설하고,각 소설별로 대충 분석을 해보자면, 맨처음 등장하는 <인형>그나마 좀 소설같다.<지킬박사>횡설수설한다.<미국의 영혼들>섹스에 탐닉하는 단세포적인 개인의 여정을 그렸다.그런데 그녀는 정말로 이것이 미국의 영혼이라고 믿었을까?아님 관찰자답게 현상의 일면을 과장한 것에 지나지 않을까? <베이비>별다른 메시지도 없으면서 폼만 잰다.<중국 여행 프로젝트>그녀답지 않게 중국에 대한 여과없는 환상을 폴폴 날리고 있다.중국은 천국이 아니다.70년대도 아니었고,40년대도 아니었으며,지금도 마찬가지다.<오랜 불만을 다시 생각함>혼자 주절대는 통에 알아먹기 힘들다.자기 중심적인데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전무했다.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소설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비판하는 사항들에 대해 그녀가 존경해 마지않는 크랜스턴 교수는 이렇게 반론할 거라고 추측한다."지혜에 대해 네가 무얼 알아?".맞는 말이다.하지만 그 사실을 그녀가 진심으로 자인할 리는 없다.그러기엔 너무 똑똑한 여자니까.지나치게 이지적이고 지성적이라 정작 지혜라고 할만한 통찰력이나 인간미는 보이지 않은게 아닐까 싶다.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내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니... 만약 언어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딱 본인의 취향일지도 모르니 참고 하시길.그녀 특유의 탁월한 언어감각만큼은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만일 언어로 집을 짓는다면 그녀의 집은 벽돌집보다 더 튼튼하지 않을까 한다.그나저나 손택을 읽고 있자니 얼마전 읽은 도리스 레싱이 그리워진다.레싱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겐 얼마나 다행인지.레싱에게 감사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