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0.0
리뷰 총점 종이책
용서하는 삶, 이들처럼 가능할까.『양치는 언덕』
"용서하는 삶, 이들처럼 가능할까.『양치는 언덕』" 내용보기
『빙점』은 알아도 저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책 중 하나로 기억한다. 일본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최근 어떤 사람과 책에 관한 대화를 하던 중, 일본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일본 문학에 큰 관심이 없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모르면
"용서하는 삶, 이들처럼 가능할까.『양치는 언덕』" 내용보기

 

『빙점』은 알아도 저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않았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책 중 하나로 기억한다. 일본 문학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던 책이기도 했다. 최근 어떤 사람과 책에 관한 대화를 하던 중, 일본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일본 문학에 큰 관심이 없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모르면서 나설 부분은 아닌듯해서 기준 차이가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대신했는데 그는 기독교적 작가관으로 대중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미우라 아야코의 예를 들었다. 순간 누구였지 했지만 이내 『빙점』의 작가라는 걸 알았다. 이 책은 처음에는 제목도 작가도 너무 생소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빙점』의 그녀라는 것을 기억했고 또 앞의 질문을 받고 생각이 많았기에 첫 마음과 달리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양치는 언덕』은 쇼와 24년을 배경으로 세 여고생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사랑(현실)을 담고 있다. 모두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났지만 그중에 가장 맑고 깊은 눈을 가진 나오미, 순수하고 순진한 매력을 풍기는 교코, 요부의 농염함을 타고난 데루코를 중심으로 선생 다케하마와 교코의 오빠 료이치가 무려 오각관계를 이룬다. 삼각 구도도 아니고 다섯 명이 얽히고설킨 애정 관계는 일반적 시선으로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책의 줄거리는 크게 복잡할 게 없다. 요즈음 브라운관을 독식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의 전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내용은 불편하지만 저자가 시사하는 바는 생각할 거리가 충분하다.

 

소설은 이들 남녀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용서에 대해 역설한다. 고등학교부터 얽힌 관계는 성인이 되고 상대가 바뀌면서 점차 복잡한 내면 심리, 양가적인 감정을 두루 묘사하고 있다. 일반적 윤리관으로 허용되지 않는 불륜과 조절되지 않는 감정 기복이 시종일관 반복된다. 읽다 보면 시시각각 변하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황당함을 감출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한편으로는 인간의 마음이란 이렇듯 흔들리는 갈대가 아닌가 하고 수긍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조금 전까지 1이라는 사람이 좋았다면 말 한마디에 2라는 사람이 좋아지거나 행동 하나로 마음이 금세 뒤바뀌는 과정 같은 것들 말이다. 반추해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상대가 달라지는 건 물론 아니고, 좋아했던 사람의 행동 하나에 희비가 엇갈리고 마음이 들쑥날쑥했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미우라 아야코는 한없이 나약하고 어린아이 같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을 이 작품에서 잘 드러냈던 게 아닌가 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살리는 일이란다." (중략) "사랑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한 번이나 두 번 용서하는 게 아니야. 계속해서 용서하는 거야."-104쪽

 

사랑한다면 끝없이 용서하라. 어려운 일이다. 이 말인즉슨 인간이란 본래 자의든 타의든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기억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간은 배신(배반)을 당했을 때 분노나 절망의 강도가 제일 크다고 들었다. 마음을 다해 믿었던 상대에게 하루아침에 배신을 당하는 고통은 육체가 아닌 마음에서 파생되는 상처이다. 육체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히 치유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란, 언제 어느 때고 복기 되기 마련이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까닭이다. 미우라 아야코는 다섯 남녀의 삶을 통해 용서, 화해, 구원을 촉발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담고 미혼 남녀가 일부러 기혼자를 유혹하는 과정은 보편적 시선으로는 수긍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잘 알다시피 미우라 아야코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집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들의 관계, 그러니까 잘못(배신)을 저지르고 화해하고 이해, 용서하는 수순을 종교적 관점으로 보완해서 서로를 보듬는 과정을 보여준다. 종교도 없고 무신론자인 내가 읽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지만 인간이 인간을 용서하는 삶을 이타적으로 수용하고 아우르는 시선은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성내지 마세요, 아가씨. 왜 여성은 남성이란 존재를 잘 모르는 거죠? 세상의 여성들은 사실 남성에게 너무 달콤한 기대를 갖고 있어요. 평생 바람 한 번 안 피우는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의 미래의 신랑도 지금쯤 예쁜 계집애를 무릎 위에 올려 놓고 히죽거리고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133쪽

 

미우라 아야코는 현실을 냉정히 직시한다. 바람을 한 번도 안 피우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바람 핀 남자는 그 버릇을 못 고친다는 말을 듣고 웃었던 적이 있다. 아마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에서 파생되지 않았을까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한다는 게 무지함에서 비롯한 걸까. 아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그러해도 내 사람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잔류하기 때문에 그렇다. 믿음이 부재한 관계야말로 어그러진 현실이니까 말이다. 바람피우는 사람들의 습성은 내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외로움, 고독 같은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한다. 때로는 단순한 일탈일 수도 있겠지만. 바람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습관적이라면 더더욱 문제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다. 인간이 처한 고독과 외로움은 절대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인간은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다. 잠시 잠깐의 유혹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이즈음에서 제목에 대한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작품의 말미에 나오미의 현실에 비춰 투영된다. 그녀는 자기 삶을 뒤흔들었던 모든 일이 끝난 후 한가로이 양 떼 목장을 찾는다. 스포일러가 되니 간략하게만 말한다면, 평화로운 양 떼 목장의 어린 양들은 바로 나약한 인간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는, 극단적이지만 가장 쉽게 용서라는 키워드를 보여줄 수 있는 예시가 남녀 관계라 반복된 바람기나 집착, 번복되는 심리를 통해 드러냈던 것 같다. 사랑을 알기 전에는 장밋빛 무드를 꿈꾼다. 반면 지금 현실이 보이는 건 사랑을 알고 그만큼 삶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난 적어도 사랑 앞에서는 이들처럼 배신하는 삶을 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사랑은 서로의 믿음을 지켜가야 하는 거니까.

 

 

w*****8 2014.12.16. 신고 공감 15 댓글 12
리뷰 총점 종이책
아 ~ 미우라 아야꼬!*^^*
"아 ~ 미우라 아야꼬!*^^*" 내용보기
누구나 시선을 뺏길 만큼 아름다운 나오미. 그녀를 연모하는 두 남자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선생이었던 다케야마와 다케야마의 친구이며 나오미의 친구 교코의 오빠 료이치. 그녀는 순진무구한 눈을 가진 마냥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료이치에게 끌리나 그리 강렬한 감정은 아니었는데 주위의 반대로 되려 감정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
"아 ~ 미우라 아야꼬!*^^*" 내용보기

 

 

누구나 시선을 뺏길 만큼 아름다운 나오미.

그녀를 연모하는 두 남자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선생이었던 다케야마와

다케야마의 친구이며 나오미의 친구 교코의 오빠 료이치.

그녀는 순진무구한 눈을 가진 마냥 아이같이 천진난만한 료이치에게 끌리나

그리 강렬한 감정은 아니었는데 주위의 반대로 되려 감정이 깊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와의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녀의 선택이 큰 실수였음이 조만간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그녀를 미워하는 두 여자, 교코와 데루코.

이들 간에 벌어지는 치정과 미움, 용서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 .. 사실 이 책을 읽고,

어떤 작품이 그 작가의 대표적이라고 불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 <오만과 편견>인 이유,

김훈 씨의 대표작이 <칼의 노래>인 이유,

그리고 미우라 아야꼬의 대표작이 <빙점>인 데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라고.

 

솔직히 이 책은 미우라 아야꼬의 대표작 <빙점>과 비교했을때 ..

인물들의 캐릭터와 행동 간의 긴밀하지 못한 개연성,

다소 부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나 떨어지는 설득력 등이

확실히 <빙점>보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번역까지 너무 안 좋았다. 오타도 너무 많고ㅠ

심지어 책의 어느 부분에서는

대사를 나타내는 큰 따옴표가 작은 따옴표로 표기되어 있기까지 해서

그 다음 문장을 보고야 생각이 아니라 대사라는 걸 알았을 정도였다 ..

 

그래도 역시 미우라 아야꼬는 미우라 아야꼬 ..

썩어도 준치(?) 라는 생각이 들만한, 그녀다움은 살아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의 내용은 얼핏 보면 통속 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평범한 통속 소설 말고, 무지 재미있어서 독자를 빠져들게 하는

무한 재미의 통속 소설.

그래서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을 보는 독자는 그 재미에 빠져들어

책을 읽다가 일이나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책을 잠시 덮어두어야 할 때가 되면

선뜻 책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손가락을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떼어내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통속적 비스무레한 하지만 무한한 재미 속에

그녀는 그녀만의 깊고 날카로운 눈으로 성찰한

인간 내면의 깊은 어둠을 담아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작품성을 동시에 섭취할 수 있게 한다.

(오호라.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설이다 ^^)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다 보면

언젠가 한번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분이 살아 계시건 아니건.

하지만 미우라 아야꼬는, 만나보고 싶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조금 무서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인간 내면의 어둠을 날카롭게 통찰해내는 그녀 앞에 있으면

내 안의 어둡고 치졸한 생각들도 모두 꿰뚫리게 될까봐 ..

 

그만큼 그녀는 일견 선해보이는 인간조차

내면 깊은 곳에, 어쩌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할 깊은 곳에 담고 있는

어둡고 죄악된 면을

포착하고 표현해내는데 있어 뛰어나다.

 

그러나, 파헤칠 줄만 알지 해결하고 싸매어 다시 덮어줄 줄 모르는 사람은

그닥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미우라 아야꼬는 심연의 어둠과 죄악을 파헤치는데서 끝내지 않고

"구원" - 사랑과 용서를 제시하는 작가다.

그래서 그녀가 훌륭한 작가라 칭송받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 .. 미우라 아야꼬, 너무 좋다 !

 

그래서, 역시, 쬐끔 무섭고 찔리는 심정이 될지라도

언젠가 꼭 한번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

이생에서는 어차피 애저녁에 이루지 못할 일이 되어버렸으니

그녀를 만나려면 요단강 건널 날을 기다려야 하겠지.

그날이 기대된다 ^^ ㅋㅋ.

j********e 2009.01.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양치는 언덕 - 사랑은 한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양치는 언덕 - 사랑은 한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내용보기
사랑에 대해서 내가 더 쏟아낼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지금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사랑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사실 나는 사랑을 모른다. 모른다라는 이야기는 아주 경험한 바가 없다는 말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황홀하고도 혼란스럽고,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찬란하면서도 암흑같은, 이 역설적이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랑을 내가 어
"양치는 언덕 - 사랑은 한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내용보기

 사랑에 대해서 내가 더 쏟아낼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지금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사랑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제시했지만 사실 나는 사랑을 모른다. 모른다라는 이야기는 아주 경험한 바가 없다는 말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황홀하고도 혼란스럽고,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찬란하면서도 암흑같은, 이 역설적이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랑을 내가 어찌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역설'을 '안다'라고 말하는 것 만큼의 어폐가 어디 있을까.


「양치는 언덕」을 읽기 전 보았던 공지영 작가의 「높고 푸른 사다리」가 절대자를 향한 헌신으로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 수사가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면 미우라 아야꼬의 이 소설은 좀 더 현실적이다. '현실적'이라는 단어를 굳이 선택한 이유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관계에서 경험하는 애달픔이 아니라 좀 더 인간본성에 대해서 세심하게 파헤쳐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삶을 독자들에게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도 한 사람쯤은 사랑할 수 있어요."


  료이치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 앞에서 나오미는 이렇게 말한다. 나오미는 한 사람을 남편으로 받아들여 사랑한다는 의미를 몰랐다. 여자로 살아본 경험이 없어 그 심리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여인들이란 남자들보다 '순수함'에 더욱 매료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감정에 이끌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그런 모습에서 '순수함'을 발견하고 곧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러나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순수한 인간'은 없다. 순수함이란 개념이 인간에게 아주 없다고 말할 순 없지만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기에 많은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는 그런 가치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희소한 것에 우리는 항상 높은 가치를 주기 마련이니까.


  참으로 거지발싸게같은 료이치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나오미는 절망을 경험한다. 심지어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까지 하는 그를 20대 초반의 나오미가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오미의 부모님은 사랑이란 상대방을 살리는 일이며, 용서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일깨워준다. 


 "한 번이나 두 번 용서하는 게 아니야. 계속해서 용서하는 거야,"


 인간의 본성상 한 사람의 잘못을 한 번 용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꾹 참고 한 번 용서하는 척을 할 수는 있어도 두 번, 세 번 그런 일이 이어진다면 그 존재가 눈 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라고 분노의 감정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계속해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용서를 받아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용서할 수 있다. 용서를 통해 큰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나는 그런 큰 용서를 경험해 봤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이미'와 '아직'의 사이. '이미' 용서받아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 증명해야 할 시간이 내 앞에 남아있다. 용서하는 것이 사랑의 큰 영역이라면 이또한  삶에서 실천하며 많은 사람을 사랑해 보리라. 

s********8 2015.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