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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시대를 관통한다고 하죠? 인상깊은 구절: “나는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그를 내쫓았다.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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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도둑맞은 가난 가난을 도둑 맞았다. 오로지 나만의 감정과 자존심이던 가난을. 그것도 부자놈에게 도둑 맞았다 아버지의 부도로 시작해 어머니의 의미모를 경제적 낙관으로 만들었던 가난. 그리고 세상에 오로지 나만 남겨 놓고 삶을 놓아버린 네명의 가족들. 그렇게 나의 가난은 완성되었다. 삶의 미련으로 가난으로 선택한 사랑. 사랑인지 월세와 연료비를 아끼기 위한것인지 만난 상훈이라는 놈의 품에서 소중히 아껴서던 가난인데. 그놈은 부잣집 아들로 가난을 체험하기위해 가난의 세계로 왔다는 허세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을 가난을 빼앗아 가 버렸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서 느꼈다” (작품중) 우리는 가끔 가난의 코스프레를 본다. 딱 4년에 한번씩. 평상시에는 입어보지 않던 옷을 입고. 평상시에는 잘 써보지도 않건 꼬깃 꼬깃한 지폐를 들고. 한번도 들어보지 않던 검정비닐 봉지를 들고 인사를 한다. “한 표 부탁드립니다 “ 라고 한번도 굽히지 않던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판타지에 빠져버린다. 저 사람은 우리의 가난과 고통을 이해 할거라고. 그 사이 우리는 가난을 도둑당하는 것도 모른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모른체. 잊지마라. 가난은 자존심이다 두번째 이야기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고통과 공포의 날들 전쟁. 그시대에는 세계적으로 흔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날들은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는 전쟁. 그 전쟁속에서도 의연하게 피어난 두송이 할미꽃. 두 할머니의 강인한 삶의 교훈이 젊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한편의 두가지 에피소드가 담긴 이야기. 전쟁통에 한 마을은 붉은기가 쳐든 인민군이. 한번은 국토를 수호하는 국군들이. 점령되는 마을. 그렇게 바뀔 때 마다 죽는 마을 남자들. 마을은 이제 아낙네들만이 남아 공포의 밤을 서로 껴안고 지샌다. 하다못해 마을인근에 들어온 미군들은 밤마다 “섹시 해브 예스? 섹시 해브 예스?” 를 외치며 양색시를 찾아 해메고. 이윽고 아낙네들이 모인 집까지 다다르는데. 공포의 그밤을 헤쳐나가기 위해 나선이는 마을에서 인덕이 많고 연세가 많은 할머니이다. 누구나 무서우니 아무리 할머니라도 나이가 많을 뿐 여자는 여자인데. 그런 미군의 소굴로 용기 있게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 미군들은 한바탕 웃고. 넘치는 욕망을 이해한다. 그리고 또 한의 어르신 첫경험이 없는 일명 수총각은 총알에 맞아 죽는다는 전설로 마을을 나서는데 그 역시 용기 있는 할머니와의 하룻밤으로 총각 딱지를 떼고 전쟁에서 살아남는다. 그 총각은 그 노인이 징그럽다 생각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천명 50세가 된 지금. 그것은 무의식적 휴머니즘 이었으리라 믿는다 다소 생소하고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은 두 에피소드는 전쟁이라는 공포의 시대에 피어난 의연한 할미꽃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겨울나들이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이야기들은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네. 우리네 어머니가 겪음 이야기들이다. 삶은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이 다르고 형편이 다를뿐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적응하는 우리의 이야기는 다 같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곳의 단편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박완서일 것이다. 그분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다 읽고 싶어지는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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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이 가을에 문득, 반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네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렇게 보고 또 보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도둑맞은 가난>은 단편집입니다.
"상훈이가 오늘 또 좀 아니꼽게 굴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주인공 '나'는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달동네 단칸방에서 돈 몇 푼 아껴보자고 남자에게 동거를 제안합니다.
그 남자가 바로 상훈이.
말끔하게 생긴 녀석을 처음 만난 건 오 원짜리 풀빵을 굽는 포장 친 구루마 앞.
길거리에서 파는 풀빵을 종이냅킨에 곱게 싸서 먹은 뒤 그 냅킨으로 입언저리를 자못 점잖게 꾹꾹 눌러 닦던 모습을 꼴불견이라 여겼던 게 첫인상.
그런데 반대로 상훈이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허겁지겁 풀빵을 먹는 '나'를 보곤 "너 그렇게 먹고도 목 메지 않니. 어디서 차나 한 잔 사 줄까?"라는 수작에 얼마나 웃음이 났는지.
그 이후로 이 얼간이가 마음에 들어서 저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니 같이 살자고 꼬드긴 것.
진심은 상훈이가 좋았던 건데 자존심 때문에 제가 먼저 좋아한다 고백하길 기다리는 중.
뭔가 어리버리한 상훈이와의 동거는 주인공 '나'의 가난을 견디게 하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가난.
지독한 가난.
가난의 비극.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면서 시작된 가난을 어머니는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주인공인 내가 일하러 간 사이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네 식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들.
가난 속에서도 아둥바둥 살아보려는 막내딸을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인데
주인공 '나'는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살아야 되니까.
그러다가 상훈이를 만났고, 혼자 산다기에 나와 같은 고아인 줄 알고 동거하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라면 주인공의 이런 모습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만
70년대였으니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상훈이가 아직까지 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안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까지는 가난이고 뭐고, 과거의 비극이고 뭐고, 조금은 달달한 로맨스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상훈이 녀석입니다.
주인공 '나'의 가난은 도둑맞았습니다. 못된 도둑놈.
2016년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마저도 모조리 도둑맞는 세상. 징글징글한 세상.
오 원짜리 풀빵은 천 원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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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같은 책이 도서 목록에 올라와있지 않아 임의로 같은 단편이 실려있는 다른 책을 설정했습니다.) 이 책과는 작년 여름 제주도의 예쁜 책방 ‘어떤바람’에서 만났다. 박완서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등을 통해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입시 공부를 위해 파편적으로 글을 읽은 경험 외에 작품 전체를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음을 깨닫고 책을 샀었다. 그 후로도 몇 개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아껴놓던 책이었는데, 봄을 맞아 드디어 읽어보았다. 단편집이다보니 한 편 읽고 하루를 보내고, 일상을 살다가 꺼내들어 또 한 편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도 반가움보다는 계산이 앞서는 현실적이고도 징그러운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하신 부분에서는 굉장히 찔리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들 그렇구나 하는 묘한 위로도 받았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표현은 워낙 유명해 속담처럼 익숙했었는데, 직접 원래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가난에 대한 무서운 통찰이 느껴졌다. 가난을 도둑맞은 후에 ‘나’의 일상을 구성하던 집안의 살림살이들이 너무나 지저분하고 더럽게, 무겁게 느껴졌다는 부분이 정말 공감되었다. 나 역시 내가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들을 갑작스레 지적받고 난 후의 절망과 부끄러움을 경험한 적 있기 때문이다. 무지가 악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크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문학의 힘을 다시금 느꼈고 특히나 박완서 작가님이 아주 좋아졌다. 앞으로도 동네서점과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자주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