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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도둑맞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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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시대를 관통한다고 하죠?  제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소설인데요, 왜 고전이 고전인지 알게해준 책입니다. 책이 쓰여진 시대의 상황은 2022년인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제 부자가 착함까지도 가지고 있는시대라고 하죠. 욜로와 플렉스 등으로 자신의 소비를 과시하는 세상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소외된 사람들을 아우를수 있는 정책들과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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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시대를 관통한다고 하죠? 
제가 오랫동안 좋아하던 소설인데요, 왜 고전이 고전인지 알게해준 책입니다. 책이 쓰여진 시대의 상황은 2022년인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제 부자가 착함까지도 가지고 있는시대라고 하죠. 욜로와 플렉스 등으로 자신의 소비를 과시하는 세상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소외된 사람들을 아우를수 있는 정책들과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인상깊은 구절: 

“나는 돈을 받아 그의 얼굴에 내동댕이치고 그를 내쫓았다. 나는 그를 쫓아보내고 내가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나를 스스로 뽐내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방은 좀 전까지의 내 방이 아니었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r*****1 2023.05.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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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님의 숨겨진 명작들
"고 박완서 작가님의 숨겨진 명작들" 내용보기
첫번째 이야기 도둑맞은 가난가난을 도둑 맞았다. 오로지 나만의 감정과 자존심이던 가난을. 그것도 부자놈에게 도둑 맞았다 아버지의 부도로 시작해 어머니의 의미모를 경제적 낙관으로 만들었던 가난. 그리고 세상에 오로지 나만 남겨 놓고 삶을 놓아버린 네명의 가족들. 그렇게 나의 가난은 완성되었다. 삶의 미련으로 가난으로 선택한 사랑. 사랑인지 월세와 연료비를 아끼기 위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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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이야기 도둑맞은 가난

가난을 도둑 맞았다. 오로지 나만의 감정과 자존심이던 가난을. 그것도 부자놈에게 도둑 맞았다

아버지의 부도로 시작해 어머니의 의미모를 경제적 낙관으로 만들었던 가난. 그리고 세상에 오로지 나만 남겨 놓고 삶을 놓아버린 네명의 가족들. 그렇게 나의 가난은 완성되었다. 삶의 미련으로 가난으로 선택한 사랑. 사랑인지 월세와 연료비를 아끼기 위한것인지 만난 상훈이라는 놈의 품에서 소중히 아껴서던 가난인데. 그놈은 부잣집 아들로 가난을 체험하기위해 가난의 세계로 왔다는 허세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다.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을 가난을 빼앗아 가 버렸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서 느꼈다” (작품중)

우리는 가끔 가난의 코스프레를 본다. 딱 4년에 한번씩. 평상시에는 입어보지 않던 옷을 입고. 평상시에는 잘 써보지도 않건 꼬깃 꼬깃한 지폐를 들고. 한번도 들어보지 않던 검정비닐 봉지를 들고 인사를 한다. “한 표 부탁드립니다 “ 라고 한번도 굽히지 않던 허리를 굽혀가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판타지에 빠져버린다. 저 사람은 우리의 가난과 고통을 이해 할거라고. 그 사이 우리는 가난을 도둑당하는 것도 모른체.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모른체. 잊지마라. 가난은 자존심이다

두번째 이야기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우리가 느껴보지 못한 고통과 공포의 날들 전쟁. 그시대에는 세계적으로 흔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한 그날들은 우리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고 바라는 전쟁. 그 전쟁속에서도 의연하게 피어난 두송이 할미꽃. 두 할머니의 강인한 삶의 교훈이 젊은 사람들을 일깨우는 한편의 두가지 에피소드가 담긴 이야기.

전쟁통에 한 마을은 붉은기가 쳐든 인민군이. 한번은 국토를 수호하는 국군들이. 점령되는 마을. 그렇게 바뀔 때 마다 죽는 마을 남자들. 마을은 이제 아낙네들만이 남아 공포의 밤을 서로 껴안고 지샌다. 하다못해 마을인근에 들어온 미군들은 밤마다 “섹시 해브 예스? 섹시 해브 예스?” 를 외치며 양색시를 찾아 해메고. 이윽고 아낙네들이 모인 집까지 다다르는데. 공포의 그밤을 헤쳐나가기 위해 나선이는 마을에서 인덕이 많고 연세가 많은 할머니이다. 누구나 무서우니 아무리 할머니라도 나이가 많을 뿐 여자는 여자인데. 그런 미군의 소굴로 용기 있게 들어간 할머니의 용기에 미군들은 한바탕 웃고. 넘치는 욕망을 이해한다.

그리고 또 한의 어르신 첫경험이 없는 일명 수총각은 총알에 맞아 죽는다는 전설로 마을을 나서는데 그 역시 용기 있는 할머니와의 하룻밤으로 총각 딱지를 떼고 전쟁에서 살아남는다. 그 총각은 그 노인이 징그럽다 생각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천명 50세가 된 지금. 그것은 무의식적 휴머니즘 이었으리라 믿는다

다소 생소하고 충격적인 이야기지만 전혀 허무맹랑하지 않은 두 에피소드는 전쟁이라는 공포의 시대에 피어난 의연한 할미꽃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겨울나들이
아저씨의 훈장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이야기들은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네. 우리네 어머니가 겪음 이야기들이다.

삶은 다르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모습이 다르고 형편이 다를뿐 시대를 거스르지 못하고 적응하는 우리의 이야기는 다 같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곳의 단편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박완서일 것이다. 그분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다 읽고 싶어지는 밤이다.
y******4 2020.04.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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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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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이 가을에 문득, 반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네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렇게 보고 또 보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도둑맞은 가난>은 단편집입니다. "상훈이가 오늘 또 좀 아니꼽게 굴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주인공 '나'는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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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이 가을에 문득, 반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네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렇게 보고 또 보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도둑맞은 가난>은 단편집입니다.

"상훈이가 오늘 또 좀 아니꼽게 굴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

주인공 '나'는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여성입니다.

달동네 단칸방에서 돈 몇 푼 아껴보자고 남자에게 동거를 제안합니다.

그 남자가 바로 상훈이.

말끔하게 생긴 녀석을 처음 만난 건 오 원짜리 풀빵을 굽는 포장 친 구루마 앞.

길거리에서 파는 풀빵을 종이냅킨에 곱게 싸서 먹은 뒤 그 냅킨으로 입언저리를 자못 점잖게 꾹꾹 눌러 닦던 모습을 꼴불견이라 여겼던 게 첫인상.

그런데 반대로 상훈이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허겁지겁 풀빵을 먹는 '나'를 보곤 "너 그렇게 먹고도 목 메지 않니. 어디서 차나 한 잔 사 줄까?"라는 수작에 얼마나 웃음이 났는지.

그 이후로 이 얼간이가 마음에 들어서 저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니 같이 살자고 꼬드긴 것.

진심은 상훈이가 좋았던 건데 자존심 때문에 제가 먼저 좋아한다 고백하길 기다리는 중.

뭔가 어리버리한 상훈이와의 동거는 주인공 '나'의 가난을 견디게 하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가난.

지독한 가난.

가난의 비극.

아버지의 회사가 망하면서 시작된 가난을 어머니는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주인공인 내가 일하러 간 사이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네 식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들.

가난 속에서도 아둥바둥 살아보려는 막내딸을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인데

주인공 '나'는 꿋꿋하게 살아갑니다.

살아야 되니까.

그러다가 상훈이를 만났고, 혼자 산다기에 나와 같은 고아인 줄 알고 동거하자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라면 주인공의 이런 모습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만

70년대였으니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상훈이가 아직까지 나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안 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까지는 가난이고 뭐고, 과거의 비극이고 뭐고, 조금은 달달한 로맨스를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상훈이 녀석입니다.

주인공 '나'의 가난은 도둑맞았습니다. 못된 도둑놈.

2016년에도 세상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난마저도 모조리 도둑맞는 세상. 징글징글한 세상.

오 원짜리 풀빵은 천 원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a*****7 2016.10.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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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북클럽 후기 (동네서점 베스트컬렉션 x 박완서)
"3월 북클럽 후기 (동네서점 베스트컬렉션 x 박완서)" 내용보기
(정확히 같은 책이 도서 목록에 올라와있지 않아 임의로 같은 단편이 실려있는 다른 책을 설정했습니다.)이 책과는 작년 여름 제주도의 예쁜 책방 ‘어떤바람’에서 만났다. 박완서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등을 통해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입시 공부를 위해 파편적으로 글을 읽은 경험 외에 작품 전체를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음을 깨닫고 책을 샀었다. 그 후로도 몇 개월 동안
"3월 북클럽 후기 (동네서점 베스트컬렉션 x 박완서)" 내용보기
(정확히 같은 책이 도서 목록에 올라와있지 않아 임의로 같은 단편이 실려있는 다른 책을 설정했습니다.)

이 책과는 작년 여름 제주도의 예쁜 책방 ‘어떤바람’에서 만났다. 박완서 작가님은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 등을 통해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입시 공부를 위해 파편적으로 글을 읽은 경험 외에 작품 전체를 읽어본 적은 거의 없었음을 깨닫고 책을 샀었다. 그 후로도 몇 개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아껴놓던 책이었는데, 봄을 맞아 드디어 읽어보았다. 단편집이다보니 한 편 읽고 하루를 보내고, 일상을 살다가 꺼내들어 또 한 편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고도 반가움보다는 계산이 앞서는 현실적이고도 징그러운 심리를 날카롭게 묘사하신 부분에서는 굉장히 찔리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들 그렇구나 하는 묘한 위로도 받았다.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표현은 워낙 유명해 속담처럼 익숙했었는데, 직접 원래의 이야기를 읽어보니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가난에 대한 무서운 통찰이 느껴졌다. 가난을 도둑맞은 후에 ‘나’의 일상을 구성하던 집안의 살림살이들이 너무나 지저분하고 더럽게, 무겁게 느껴졌다는 부분이 정말 공감되었다. 나 역시 내가 문제라고 느끼지 않았던 것들을 갑작스레 지적받고 난 후의 절망과 부끄러움을 경험한 적 있기 때문이다. 무지가 악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짧은 이야기로 크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문학의 힘을 다시금 느꼈고 특히나 박완서 작가님이 아주 좋아졌다. 앞으로도 동네서점과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자주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4 2023.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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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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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시기: 2008. 5.31.   <도둑맞은 가난>   주인공 '나'의 가족은 가난을 못 이겨 자살을 택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가족들을 경멸하며 가난과 맞서기 위해 꿋꿋하게 산다. 허름한 단칸방에 살며 공장에서 일하는 '나'는 생활비를 아끼자며 상훈이에게 동거 제의를 한다.   '나'가 가난에 맞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반하여 상훈이는 사실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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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시기: 2008. 5.31.

  <도둑맞은 가난>

  주인공 '나'의 가족은 가난을 못 이겨 자살을 택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가족들을 경멸하며 가난과 맞서기 위해 꿋꿋하게 산다. 허름한 단칸방에 살며 공장에서 일하는 '나'는 생활비를 아끼자며 상훈이에게 동거 제의를 한다.

  '나'가 가난에 맞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반하여 상훈이는 사실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가난에서 인생을 배우라고 방학 동안에 공장에 보낸 것이다. '나'는 상훈과 세상에 대해 모순과 배신을 느낀다.

  어느 누구에게는 처절할 수밖에 없는 가난이 어느 누구에게는 유희가 되는 모순. 그런게 바로 세상이다. '나'가 가난을 택하지 않았듯이 상훈에게도 죄는 없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살아내야 하는 인생의 몫이 다를 뿐이다. 다만 어느 누구도 감히 타인의 생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나'의 가난과 '나'를 멸시하는 상훈의 의식은 잘못되었다.

  이 소설은 박완서 초기의 단편인데 반전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장애가 있는 딸을 가진 설희 엄마의 꿋꿋한 모습과 북에 있는 오빠를 둔 '나'의 두려운  삶의 태도는 다르다. 설희 엄마는 화가인 남편이 미국에서 보험업을 하자 남편을 따라 이민을 가게 된다. 그런 설희 엄마가 부러워서 '나'는 틀니가 주는 격렬한 아픔을 느낀다.'나'가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 나라가 주는 제약의 중압감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 물론 모든 국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제 나라를 떠나는 소망을 갖는다. 한때는 '아메리칸 드림'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한국인들은 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은 걸까.

  나도 한때는 이 나라를 몹시 떠나고 싶었다. 정확히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에게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구속과 제약과 속물적인 사고 방식, 그런 것이 싫었다. 한국 사회는 지독하게도 획일화되어 있고, 그 질서에서 벗어나면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국인의 삶의 모습은 거의 모두 비슷비슷하다. 모두 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미친 소들의 투기장 같았다.

  그러나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하면서 부터 내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나 인간 세상은 다 같지 않을까. 내가 이 나라에서 숨 막혀 한다고 다른 나라에선 숨통이 터질까. 내가 이 나라에서 타인과 소통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갈증을 느끼는데 다른 나라에선 어떨까. 한 언어로 말하고 있는 사회에서도 이 모양인데 다른 나라에선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이 나라를 뜨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 타인의 삶에 적당히 관여하면서(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게), 관여는 하되 판단하지 않으면서,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고나니, 사람과 세상이 달라보였다. 고마움마저 들었다. 사람과 세상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삶의 철학은, 그냥 살자이다. 어디에도 얽매임 없이 그냥 살자.

  <겨울 나들이>

  주인공 '나'의 남편은 이북에 노부모와 아내를 남겨 두고 어린 딸만 데리고 피난 온 사람이다. '나'는 평생을 가족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아왔지만 남편이 자신이 아니라 전처의 딸을 모델로 그림 그린 것을 보고 자기 삶의 허무함을 느끼고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나'는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여자와 치매가 걸린 그녀의 시어머니가 살고 있는 여인숙에 투숙한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애써 모른다고 한 도리깨질에 눈치를 챈 인민군이 아들을 죽인 이후로 치매에 걸려 고개만 흔들며 산다. '나'는 노파의 고개짓에 자신이 헛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아들을 못 잊어 정신을 잃은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는 며느리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 '나'는 이북에 온 가족을 두고서도 자신과 한 평생을 내색 없이 살았던 남편의 심중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이란 절대 헛되지 않다. 그 누구의 삶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 의미에는 깊고 낮음이 없다. 위인전에 오를 만한 인물의 삶이든 초로에 묻힌 이름 모를 인물의 삶이든 삶은 모두 제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

  이 단편은 민담형식이다. 전쟁통에 남자들을 잃은 마을에서 여자들을 지키기 위해 어느 할머니가 희생을 했다는 이야기와 숫총각은 제일 먼저 총알을 맞는다는 미신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어느 노파가 자신의 몸을 총각에게 주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총각은 노인에게서 희생이 아니라 성적 욕망을 보았다는 조금은 꺼림직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서 여자란 족속은 아무리 늙어도 여자일 수밖에 없다고, 죽는날까지 여자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분명 아가씨, 아줌마, 할머니는 '여자'와 다르다. 그렇다면 여자란 무엇인가. 여자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따진다면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모두 어느 보편화된 호칭이 아닌 개별화된 인격체로 불려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저씨의 훈장>

  아저씨는 피난 내려오면서 아들 대신 조카를 택한 삶을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기고 살며 주인공 '나'는 그런 아저씨를 멸시했다. 아저씨가 늙어 치매에 걸리자 성공한 조카 내외는 아저씨를 제대로 모시지 않는다. 아저씨의 비참한 말로를 지켜보는 주인공 '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아저씨는 죽어가면서 평생 헌신했던 조카가 아닌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마음의 이끌림을 거부하더라도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훈장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위선이고 가식이다. 좋아하지 않는데도 좋아하는 척 해야 하고,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구입해야 하는 물건들이 바로 훈장이다. 타인에게 칭송받기 위해 가슴에 매단 훈장은 허위와 위선의 상징이다.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사는 것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진정성이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직접 모시기 싫어서 봇짐 장수를 하는 떠돌이 여자를 데려와 시아버지를 모시게 한 며느리와 아들. 떠돌던 여자는 할아버지가 죽으면 13평의 집을 받기로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하지만 같이 살다 보니 어느새 잔 정이 들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죽자 아들 내외는 그 여자를 내쫒으려 작정한다. 그런 사실에 억울함과 더러움을 느끼면서도 여자는 자신의 돌아갈 길로 가뿐히 떠난다.

  박완서는 치매 걸린 노인을 자주 소재로 삼는다. 치매 걸린 부모를 앞에 두면 자식의 위선이 드러나고 그런 위선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 박완서의 화두일까.

  사회적인 윤리의 잣대는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한다. 우리나라처럼 유교적 의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윤리는 때로 제약이고 구속이다. 제약과 구속으로 부터 초월하기 위해서는 진정성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하면 된다. 단, 타인에 대한 존엄성을 간과하지 않고. 그런데 그러기가 또한 쉽지 않다. 사회적 인간으로 살면서 사회가 주는 제약과 구속, 잣대와 평가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일까.

  타인에 대한 이해? 역지사지? 그런 것들에 매달릴수록 더욱 숨통이 막힐 것이다.

  나를 타인에게 이해시킬 필요 없듯이(절대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하다) 타인을 나의 삶 속에 억지로 들여오게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면 타인은 그 모습을 나라고 인식할 것이다.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그것은 타인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평가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허나,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사람을 속여선 안 된다. 나를 속이는 것이 내게 불행을 안겨 주듯이 타인을 속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내 삶에 애정을 갖는다면 타인의 삶을 유린하고 침범해서는 안 된다.

  <해산바가지>

  '서로 깊이 좋아하면서도 일부러 만날 기회를 만들 필요없이 생각만으로도 푸근해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며칠만 목소리를 못 들어도 궁금증이 나서 전화질이라도 해야 배기는 친구가 있다.'

  그 전화질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친구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몹시도 우울했다. 이유는 며느리가 또 딸을 낳아서란다. '나'는 내리 딸만 낳았는데도 시어머니가 항상 해산바가지를 준비하며 손녀들을 정성으로 챙겼다. 그런 시어머니였지만 치매에 걸리자 아들 내외를 엿보는 등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다. '나'는 효부로 살아야 하는 관습에 얽매여 숨 막힌 삶을  살다가 시어머니를 요양원에 맡기기로 한다. 그러나 지붕 위의 둥근 박을 보고 시어머니의 아름다운 정신을 기억한다. 그 후 '나'는 위선을 버리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이 단편은 두 가지의 다른 주제가 있다. 하나는 아무리 인간의 정신이 황폐해졌다 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대우 받아야 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인간이 위선을 버리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평소 주위 사람들로부터 '까칠하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듣기도 한다. 이 두가지 반응은 상반되었지만 사실은 하나로 일맥 상통한다. 즉 나는 그때그때마다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말과 행동이 표현되기 때문에 때로는 냉정하게, 또 때로는 따뜻하게 보이는 것이다.

  일견 이런 나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하다는 것과 나의 행복이 타인에게 불행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의 삶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위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직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항상 혼자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의 행위로 타인이 행복할 때도 있다. 타인의 행복을 보는 것 또한 나의 행복이다.

  위선을 버리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위선을 버리는 순간 사람과 세상에서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2008. 7. 6.

r****a 2008.11.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