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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크고 중요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
"가장 크고 중요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 내용보기
모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c.s.루이스를 읽지 않았다면 간첩이라고 말하여야한다. 더구나 고통의 문제는 내가보기에 그의 책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먼저 c.s.루이스의 명성과 위대함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은 다음 그의 책을 읽은 나는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기에 -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린 읽기 속도와 매우 어려움에 꽤 힘겨워했
"가장 크고 중요해 보이는 '문제'에 대해" 내용보기
모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c.s.루이스를 읽지 않았다면 간첩이라고 말하여야한다. 더구나 고통의 문제는 내가보기에 그의 책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먼저 c.s.루이스의 명성과 위대함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은 다음 그의 책을 읽은 나는 생각보다 철학적이고 사변적이기에 -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린 읽기 속도와 매우 어려움에 꽤 힘겨워했다(아마 몇몇 사람들도 그랬을것이다) 순전한 기독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그렇게 단순한 시각이나 감성적인 차원에서의 주장,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접근은 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 저 위에 있는 다양하고 고차원적인 무척 어렵기도 한 원리들과 인식론적 접근으로 본질적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가끔 아주 어려웠던 철학원론 시간의 교수님의 모습이 언뜻 생각나기도 하는 느낌이다. 먼저 '고통의 문제'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다 아는 대 명제이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세상이 자기 힘이나 뜻대로 되지 않고, 세상의 불공편함에 대해 알게되고, 대학에서는 막스를 만나게 되고, 수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그러한 갈등들 가운데 자기 자신의 고통을 만끽하며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것 같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어느정도 신앙이 성숙되었을 때 매우 중요한 문제 - 예정론과 자유의지에 대한 문제에 부딪쳐서 (내가 생각할 때 대부분 해결못하고 낙심하거나) 그냥 신을 버리고, 또는 그 문제는 문제대로 내버려둔 상태로 살아가는 것 같다. 고통 - pain 이라는 것은 인간 본연의 문제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한계성을 가지고 그것은 때때로 고통의 형태로 찾아온다. 인간에게 있어 좌절, 절망만큼 큰 문제는 없으며 그때 우리는 '초월적 존재자'를 바라보게 된다-정확히 말한다면, 원망이다. 신기한 사실은 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거의 모두 신을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신에 의한 꼭두각시이자 모든 것이 예정된 개별적 무가치한 존재라는 딜레마에 빠졌을때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곤 한다. 사실 누구나 다 말하듯이 c.s.루이스의 말한 내용들을 멋지게, 한눈에 들어오게 간략화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할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통은 '신'으로부터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전지전능한 신-God은 매우 완전한 자유의지와 공평한 원리 속에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셨다. 이를테면 우리가 아픈것이나, 사고가 나거나, 직장에 짤리거나,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신의 의지에 의한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문제는 '나' 또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이 책은 -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 신은 인간을 이러한 상태로 버려두었고, 우리에게 왜 의지와 신과의 갈등이 생기는지, 진정한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하여 알수있다.
j****c 2005.08.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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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왜 이러실까라고?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라고?" 내용보기
시련이 찾아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만지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죠. 오히려 시련이 없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도 그런 자를 사생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걸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저런 재앙이 일어날 수가 있어? 사랑의 하나님이 저렇게 하시다니… 등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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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찾아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만지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죠. 오히려 시련이 없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도 그런 자를 사생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 걸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저런 재앙이 일어날 수가 있어?

사랑의 하나님이 저렇게 하시다니… 등등 이 말들은 크리스천이건 아니건 간에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입에 담는 말입니다. 하나님 대신 신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절대자를 인식한다는 차원에선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 자신도 수없이 하는 말들이지요. '왜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등등은 나의 안 좋은 일 발생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단골메뉴였죠. 이 말들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왜 '죄 없는 나에게'가 될 수도 있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원망 섞인 투정도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 불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기독교적 변증학자의 거장 C.S 루이스의 책 고통의 문제는 이런 현대인들의 어리광적인 질문들을 참 친철하게도 잘 풀어주고 있습니다.-그의 친절성은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도 그 고민을 해왔을 것이지만, 고통에 관한 문제는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인간들에게는 잡힐듯하면서도 달아나는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속 시원히 말해주기를 같은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다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얘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더 답답해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는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 순간 고통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입니다.

'왜 나에게…' 먼저 우리는 '왜'라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합니다. 왜라고 질문하는 것은 전지전능하다고 인정하는 하나님을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크리스천인 우리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이 말속에는 그가 하시는 모든 것을 믿고 따른다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하지만 '왜'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고백한 모든 것을 부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지요. 피조물로서 그에게 순종하고 그의 뜻을 따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저자는 전능자에 대한 '자기양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에 나타난 가장 큰 현상이 바로 자기 자신을 찾은-또는 보고 있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은 결국 하나님과 계속 멀어지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지요. 그래서 크리스천의 평생과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져만 가는 자신을 그분께 내어드리는 행위 즉 자기양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보다는 현대로 올수록 더욱 힘들어지지요.

요즘 CF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자아 즉 나라는 존재인 것입니다.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 그리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고 속삭이는 사단의 그럴듯한 꾀임에 인간은 스스로 자족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꾸만 창조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것의 종말은 다 아는 바와 같이 지옥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행복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입니까?라고 질문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지 그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행복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잘 뜯어보면 그런 행위들의 대부분의 자신 외에는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그런 것들이 대부분 아닙니다. 여기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갈등이 옵니다. 우리는 자꾸 자신이 좋아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쓰고 있고, 하나님은 피조물이 그런 쓸데없는-정말 쓸데없는 것이라 여길 것입니다.- 생각들을 접고 그분께 순종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급기야 가장 귀하게 만들었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이 피조물을 하나님은 그냥 두시지 않습니다. 시련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 행위는 그가 창조주의 마음에 찰 때까지 계속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래서 평생 동안 계속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있는 다음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시련이 구속의 필수 요소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이 이미 구속되었거나 더 이상 구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시련이 멈추지 않을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이 말이 두렵습니까? 아니면 받아들여집니까? 시련을 그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전적인 자기양도를 하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특별한 사명이 있어 고난을 받는 분들이 있겠지만 돌이키기 위해 사용되어진 시련은 그칠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에 고난만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프겠지요? 저자는 우리가 잠깐 느끼는 행복들은 산재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가족과 행복한 날을 보낸다거나, 좋은 공연을 감상한다거나 하는 그런 행복들은 우리가 평상시에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영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행복들은 다음 행복들로 대체되지 않으면 유효기간이 너무도 빨리 끝나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결국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찾아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만지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죠. 오히려 시련이 없다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도 그런 자를 사생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세상사람들이 찾는 행복을 똑같이 추구하고 있다가 시련을 받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사실 대부분은 이것 때문에 힘들지 않겠어요?- 경험상으로 하나님은 봐주시는 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작건 크건 시련이 계속되니 말입니다. 아마도 평생에 이런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어떤 부모가 곁길로 나가는 자식을 그냥 두고 보고 있겠습니까?

얼마전 유투브라는 UCC전용 사이트에 한 외국인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비꼬는 영상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고 말해놓고 지옥을 만들어서 거기에 보낸다는 둥 요즘 인간들이 하나님께 가진 불만들을 희화화 시켜서 만든 영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옥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독히도 거부한 인간의 영혼이 가는 최후의 장소라는 것, 사랑한다고 죄를 해결 받지 못한 그들까지 용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부터가 뒤틀려진다는 생각은 오만한 인간들은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로지 지금 자기에게 해를 입히는 하나님이 미운 거죠.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습니다. 자기양도를 끊임없이 연습해가야 한다는 것. 시련을 달게 받고 그 뜻의 중심을 살펴야 한다는 것.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 어렵지만 천국에 가는 날까지 해야 하는 일이지요.

이 책은 제가 말한 것 외에도 심오한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내 견해가 짧아 다 말씀은 드리지 못한 것 뿐입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일 뿐이라고 겸손을 취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들어 쓰셨고 지금도 쓰고 계십니다.

 

써놓은지 좀 되었지만 요즘 좀 힘이 들어서 다시 읽으니 힘이 됩니다.



t*****i 2009.07.1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고통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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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의 책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신앙의 깊이 있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얻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루이스의 책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의 책이 너무 '지성'에만 치우쳐 있다고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루이스의 지성적인 면이 훨씬 더 좋은 점이 있다. 그리고, 그는 이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의 변증가로서 기독
"고통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 내용보기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 C.S. 루이스의 책을 읽는 다는 것 자체가 신앙의 깊이 있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통찰력을 얻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루이스의 책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의 책이 너무 '지성'에만 치우쳐 있다고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루이스의 지성적인 면이 훨씬 더 좋은 점이 있다. 그리고, 그는 이성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기독교의 변증가로서 기독교를 사람들에게 심어주려면 지성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는 고통의 문제일 것이다. 왜 우리들은 고통을 당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할 것이다. C.S. 루이스의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우리들에게 고통이 없는 것이 이상한 것이다 라고 말할수 있다. 우리들이 당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있어서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화나 재앙의 문제가 아니다는 것이다. 고통의 문제에 대해 심도깊게 관찰하고 싶다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b*******r 2004.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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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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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고전을 뽑으라면 단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일 것이다. 1940년대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도움을 주는 책이다. cs 루이스의 책을 읽다보면 믿지 않을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설득력이 강하고 책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는 전문 신학자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글들이 더 설득력을 배가 시키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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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한 고전을 뽑으라면 단연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일 것이다. 1940년대에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도움을 주는 책이다. cs 루이스의 책을 읽다보면 믿지 않을 수 없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설득력이 강하고 책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그는 전문 신학자도 아니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글들이 더 설득력을 배가 시키지 않나 싶다. 이 고통의 문제 책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고통을 왜 주셨으며,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이 고통이 단순히 인간의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동물들의 고통까지 다루고 있다. 총 10장의 주제를 가지고 하나씩 풀어 나가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와 닿은 부분은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내용이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고 그 오해가 고통까지 이어진다고 말한다.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고통을 알아가는 첫 걸음이라 생각한다. 순전한 기독교에 이어서 다시 cs 루이스에게 설득당한 책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게 만든 책이다.
s*****l 2004.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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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고마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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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논리라는 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고통이라는 그리고 신학이라는 넓은 망망대해에 C.S. Lewis라는 항공모함을 만나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드리게 된다. 신학자, 과학자, 그리고 모든 철학자의 모습은 그의 겸손한 모습을 닮아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학문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또 다 채웠다고 해서 언제나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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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우리는 논리라는 기제를 사용하게 된다. 고통이라는 그리고 신학이라는 넓은 망망대해에 C.S. Lewis라는 항공모함을 만나게 된 것을 너무나 감사드리게 된다. 신학자, 과학자, 그리고 모든 철학자의 모습은 그의 겸손한 모습을 닮아야 되지 않나 생각된다. 학문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또 다 채웠다고 해서 언제나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항상 모자라 하며 자기 부정을 통한 극의 추구는 인간이 자칫 말못하면 이룩할 수 있는 사상의 바벨탑을 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이 책을 두고 두고 보고 싶다. 그리고 그가 쓴 또 다른 책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j******8 2003.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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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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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부터 그 내용의 대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을 다른 이들이 책이나 설교를 통해 많이 인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왜그럴까 따져보니, 이 책이 '고통'뿐만이 아니라 고통을 실마리로 하여 신학 전반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2,3장에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하여(신론), 4,5,장에는 타락하여 악한 인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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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부터 그 내용의 대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내용을 다른 이들이 책이나 설교를 통해 많이 인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왜그럴까 따져보니, 이 책이 '고통'뿐만이 아니라 고통을 실마리로 하여 신학 전반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2,3장에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하여(신론), 4,5,장에는 타락하여 악한 인간에 대하여(인간론) 서술하고 있다. 6,7장에는 고통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고 있고(구원론), 그리고 8장에는 고통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들의 최후인 지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천지창조, 타락, 천국과 지옥, 신론, 인간론 등등 교회가 성립된 이후 끊임 없이 교회 안팎에서 논의되었던 이야기의 대강은 알고 있어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l*******e 2003.07.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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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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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작가로 변증가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준 인류 공통의 주제인 고통을 다른 제목에 끌려 책을 들었다. 그는 역시 교수와 변증자 답게 고통의 문제를 세분했다. 크게 인간의 고통과 동물의 고통을 나누었다. 인간의 고통은 우리가 지금겪고 있고 우리가 직접체험하고 당하고 경험하는 것이라면 동물의 고통은 짐작하는 것이고 인간의 경우로 생각해서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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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작가로 변증가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준 인류 공통의 주제인 고통을 다른 제목에 끌려 책을 들었다. 그는 역시 교수와 변증자 답게 고통의 문제를 세분했다. 크게 인간의 고통과 동물의 고통을 나누었다. 인간의 고통은 우리가 지금겪고 있고 우리가 직접체험하고 당하고 경험하는 것이라면 동물의 고통은 짐작하는 것이고 인간의 경우로 생각해서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 속에 있다. 동물은 죄를 지을 수도 없고 덕을 세울수도 없다. 다만 다만 인간의 생각에 빗대어 희망사항이나 바람을 이야기 할 뿐이다. 그는 신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주제를 쉽게 다룰수가 있었고 이 제목으로 책을 내는데 상당한 번민을 서두에 피력하였다. 9개항목으로 나누었는데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인간의 고통을 1,2부로 나누어 설명하려고하고 있다. 정답과 명쾌한 해답이 없는 문제를 다루었다는 작가적용기를 높이 사야하겠다
d****s 2002.09.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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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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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문제 』 The problem of pain   저자: C S 루이스 :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년 11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번역: 이종태 출판: 홍성사 발간 한국에서 2002년 2월 28일   Q 좋은 책을 소개하여 주시지요. A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인생 누구나 알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고통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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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의 문제 』

The problem of pain

 

저자: C S 루이스 :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년 11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

번역: 이종태

출판: 홍성사

발간 한국에서 2002년 2월 28일

 

Q 좋은 책을 소개하여 주시지요.

A 신앙인이나 비신앙인이나 인생 누구나 알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은 고통의 문제에 대하여 철학적, 신학적 방법론으로 그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책입니다. 고통이 왜 인간세계에 있는가? 그 원인은 무엇인가? 고통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입니다. C. S 루이스 가 쓴 < 고통의 문제 >란 책 입니다. 홍성사에서 출판하였습니다

 

Q C.S 루이스 라는 분의 이름을 많이 들어 본 것 같습니다.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지요 특별히 <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쓰신 분이 아닌가요? 모르는 청취자들을 위하여 좀 소개하여 주십시오.

A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평신도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영화로 많이 알려진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입니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한국에 < 반지의 제왕>이란 영화로 잘 알려진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Q <고통의 문제>의 책의 핵심내용은 무엇입니까?

A 냉철한 지성과 따뜻한 시선으로 기독교 사상과 신앙의 전파에 노력했던 20세기 위대한 사상가 C.S.루이스가 쓴 '고통에 관한 잠언' 입니다. 인간에겐 왜 고통이 찾아오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깨닫기 원하시는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절절하게 끌어낸 고통에 관한 사유의 총체가 자연스럽게 천국(내세)을 향한 소망으로 잘 이끌어지고 있습니다.

 

Q 일반적으로 < 고통의 원인>은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문제가 아닌가요? C.S 루이스의 책에서는 어떤 대답을 하고 있습니까?

A C. S. Lewis는 고통을 신경계통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자신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영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즉, 고통의 문제를 인간의 항구적인 죄의 문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C.S 루이스는 6장 <인간의 고통>이라는 장에서 존 헨리 뉴만이라는 신학자의 말을 인용합니다. “ 이간은 단순히 개선될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놔야 할 반역자들이다”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영혼은 인간적으로 자신에게 상황이 유리할 때는 아집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이 따를 때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잠시나마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게 된다.

인간은 고통을 통하여 만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고통이 주는 일차적인 영적 유산입니다. 나아가 지금 인간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다는 모든 주관적인 의지를 꺾게 되는데 이것이 고통을 통하여 인간이 나아가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 때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이 고통을 통하여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발견하여야 할 더 좋은 것을 추구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자아를 완전히 양도하는 일에는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Q 매우 어렵습니다. < 고통, 고난> 좀 쉽게 말씀하여 주시지요

A 인간은 욕심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다른 말로 자아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자아 즉 욕심을 버릴 때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이 결국을 고통을 가져옵니다. 고통은 결국 자아의 열매입니다. 그 자아를 버리는 것이 고통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다시금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역설적이지만 아담이후로 인간은 자아를 찾아 하나님을 떠났지만 결국 그것이 고통을 가져오게 되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자아를 버림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 했는데, 역시 교리는 설명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Q. 결국 고통이 하나님을 찾는 구원과 연관된다는 말이네요

A 예 고통이 어디서 왔나? 근원적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사고입니다. 루이스는 철저히 철학적입니다. 그러나 그속에 신앙이 함께 존재합니다. 그래서 C.S 루이스의 책을 읽으면 많은 무신론자들이 유신론자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신앙이 아니라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고, 이렇게 어려운 <고난, 고통의 원인>을 찾아주고 논리적으로 대답하여 줍니다.

 

Q 고통을 통한 구원의 단계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 고통을 통한 구원은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1. 고통의 역설: 타락한 이 세계가 구원받는 과정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

1) 하나님의 절대 선하십니다.

2) 인간은 자아라는 욕심을 따라서 타락 했고 그것은 고통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3) 하나님이 구원을 위하여 악을 사용하십니다.

4) 인간들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2. 시련의 지속성: 이 세상이 구속함을 받기 까지는 고통은 지속됩니다.

3.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께 자기 양도는 전적으로 신학적인 것으로서 정치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4. 이 세상에 때때로 좋고 행복한 것이 있지만 그것은 다 임시적인 것입니다. 비유로 여관이 집은 아니다.

5. 고통의 총화는 없습니다.

고통 x가 또 다른 고통 x와 합쳐져서 2x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개인이 당하는 고통은 그 자체로 최고의 고통입니다.

6. 모든 악 중에 고통만이 살균 소독된 악입니다. 고통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고통은 증식하지 않으며 이것이 지나면 기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Q 좀 다른 질문을 해보지요 인간만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고통을 겪나요? 혹시 C.S 루이스의 책에서 이런 특이한 질문에 대답을 하나요?

C. S. 루이스는 동물의 고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1. 동물은 어떤 고통을 겪습니까?

동물에게는 의식내지 영혼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이 알 수 없으며 다만 구원받는 인간이 지상에서 경험한 사랑의 관점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연민으로 알 수 있습니다.

2. 동물세계의 질병과 고통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전통적으로 동물의 고통은 인간의 죄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C. S. Lewis는 악마적 존재에 의하여 기인되었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타락 이전에 동물세계의 타락이 있었다는 관점입니다.

3. 동물의 고통과 하나님의 정의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습니까?

동물의 불멸성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다만 짐승도 인간에게 종속적인 동물이므로 전체 유기적인 차원에서 인간과의 관계에서 동물의 구원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다만 동물에게는 의식과 영혼이라는 차원이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처럼 구원이라는 말은 적용되기 힘들다고 합니다.

 

Q C.S 루이스는 평신도라고 알고 있는데 전문신학자 못지 않게 교리를 책으로 썼습니다/ 저자 개인적으로 루이스의 고통은 어떤 종류의 것입니까?

A 루이스는 두 개의 세계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는 예술적 환희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고통의 세계입니다. 그는 산책을 하다가 가만히 멈춰 서서 하늘과 땅에 대한 감상을 공유하고, 영혼의 숨결같은 노래 소리를 들으며 환희하며, 비밀스럽고 상상적인 환상성의 세계를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감각기관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환희/고통'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지녔던 그이기에 그가 인식한 고통이 더욱 강렬하게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실제로 그는 고통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마음의 고향인 어머니와 아내를 암으로 여의었습니다. 그는 두 여인의 고통스러운 단발마의 비명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경련의 떨림을 인생의 유년기와 황혼기에 겪었습니다. 즉 그는 9세 때 어머니를 암으로 여의었고, 58세에 죠이와 결혼하여 4년 후인 62세에 아내와 사별합니다. 아내도 어머니와 같은 병으로 죽었습니다. 어머니와 아내의 고통으로 얼룩진 절망적 죽음, 이 두 사건이 '그의 가슴 핵심부를 눈물로 적시게 했습니다 그뿐아니라 또 하나 그에게 고통을 준 것이 있다면 광란의 제 1, 2차 세계 대전이었습니다. C.S 루이스가 겪은 고통은 개인적·세계적이었습니다.

 

Q. 신앙적으로 고통이 유익이 있습니까?

A. 본서 C.S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는 천국과 지옥도 이야기 합니다. 본 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옵니다.

"고통은 죽은 세계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확성기"

"나는 대수난을 받은 영혼 안에 위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나는 소망없는 환자의 중병이 온유와 강직의 보화를 낳는 것을 보았다"

신앙인의 고통은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인간들을 하나님의 사랑안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합니다. 루이스는 어머니와 아내의 고통을 보면서 고통의 신학적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본서를 반드시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될것입니다. 모든 고통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s******1 2012.1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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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선하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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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이 있는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인간은 불평등한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악인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인간이 존재한 후부터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든가? 성경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은 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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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이 있는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인간은 불평등한가?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왜 악인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은 인간이 존재한 후부터 끊임없이 던져왔던 질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든가? 성경은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말한다. 과연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불평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는 분이 아니다. 일하시는 분이지만 그가 우리의 이성과감성을 통제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 선하신 분이다. 선함은 사랑과 비교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 곧 사랑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놀라우며 참된 의미에서 우리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가 더 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다. 자기의 사랑의 자가 고통의 문제에 빠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다. 인간이 고통 가운데 있을 지라도 말이다.
k****e 2005.1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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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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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8.12.13 11:05   C.S 루이스 3부작 中 하나라서 역시 엄청 많은 기대를 걸고 읽기 시작한 책. 하지만 생각만큼 녹록치는 않았다.   마치 숨쉬는 것처럼 살아이는 비유는 여전히 그만의 "한 문장"의 위력을 실감케 해줬지만, 그 "한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음이 너무 아쉬웠다. C.S 루이스 책 치고,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읽는 내내 약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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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08.12.13 11:05

 

C.S 루이스 3부작 中 하나라서 역시 엄청 많은 기대를 걸고 읽기 시작한 책. 하지만 생각만큼 녹록치는 않았다.

 

마치 숨쉬는 것처럼 살아이는 비유는 여전히 그만의 "한 문장"의 위력을 실감케 해줬지만, 그 "한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음이 너무 아쉬웠다. C.S 루이스 책 치고,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읽는 내내 약간 고행하며 읽은 느낌? --;

 

어쩌면 고통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어서 아직은 그의 진심어린 열정을 치밀한 논리로 다듬은 그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나를 포함해서 지금껏 가져왔던 질문, "왜 하나님이 정말 전지전능한 Omnipotence의 존재라면, 악을 없애지 않고 이렇게 세상을 죄악과 고통의 상태로 방치하는가. 악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의 반증이 아니냐!" 에 대한 대답에 생각할 많은 여지를 남겨 놓는다.

 

선과 악으로부터, 인간과 신, 정신과 물질에 대한 어마어마한 그의 논리적 사유와 그 모든 개별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짐을 설명하는 탁월한 지적 통찰이

조만간 다시한번 이 책을 읽게 만들지 싶다.

강추다.

x*****5 2014.1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