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씨)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히브리서 기자는 "주께서 유다로 나심이 분명하다"(히 7:14)고 하였다. 유다로 말미암아 오실 것을 창세 전부터 예정하셨다. 그 시작은 아브라함-이삭-야곱(야곱의 4째 아들)이며 왕권은 다윗으로 보여주셨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 예수의 죄 사함의 복음은 유대인으로 시작되었지만 로마의 권세워 도로, 신구약 중간시대의 지혜의 통해 온 세상으로 선포되었다. 그 초기의 과정에 여러 논쟁이 있었던 것을 정리한 것이 초대교회사이다. 차분히 정독, 숙독을 하면 좋다. 초대교회사의 여러 책과 비교해가며 살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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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그리스도교)의 기원> 유대교는 모세의 율법을 기반으로 한 유대인의 민족종교이며, 1세기 무렵에는 여러 종파로 갈려졌는데, 그리스도교는 사두개파를 제외한 나머지 종파에서 조금씩 떨어져나와 구성된것으로 알려진다. -바리새파: 모세의 교리와 율법 및 전통에 엄격하여 로마에 대항함. 바울은 바리새파였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여 비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함. -사두개파: 모세의 교리는 따르되, 은밀히 친로마였음. 부활에 대해서는 모세 한참 이후에 나온 교리라 하여 배척함. -에세네파: 엄격한 공동체 형성(쿰란공동체 라는 설이 있음). 재산을 공유하며, 돈을 분배하는 초대교회와 닮은 모습. 구약 성경의 예언을 연구했으며 요한은 예수의 등장을 예언함. -나사렛파: 모세의 교리는 따르되, 율법과 전통은 은 따르지 않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음.
<유대적 전통으로부터 독립> -유대교(모세교) : 타민족 배척 -유대적 그리스도교 : 타민족 수용, 그러나 유대적 율법 고수 -이방인 그리스도교: 바울에 의해 유대적 율법으로부터 해방 => 현재의 기독교가 된다 예수의 부활로 민족종교라는 개념이 없어지고(=보편성 확보) 그리스도교가 비유대인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자 이방인에게도 모세의 율법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주장이 생겼는데,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라는 관념으로 율법을 대신함으로써 이방인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정치적으로는 135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축출했는데, 이것으로 예루살렘이 일시적으로 정통성을 잃어버린 효과로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한 로마의 교회도 정통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 교리적 : 바울 - 정치적 : 하드리아누스 황제 < 영지주의의 대두> 2세기 경에는 신지식의 학문과 그리스도교를 혼합하는 형태가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우주발생론과 창세기 제1장은 거의 같을 정도로 영지주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마르키온은 「대립」에서 유대교 하나님이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인 하나님과 얼마나 다른 가를 입증하며 구약성경을 폄하했고, 켈수스는 기독교 예배에 쓰이는 찬송이 비범하고 아름답게 들려서 그 정서적인 효과가 비판기능을 무디게 만든다고 비평했다. 교회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정당성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1.권위의 정당화: 하나님의 대리자와 교회는 공식적으로 지정된것만 인정함 2.신약의 형성:1세기에 그리스도교 성경은 단지 구약성경이었고(70인역) 신약은 구전으로 유포되었다. 그러나 영지주의자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신약(4정경 복음서)을 저술하였다 3.신앙의 규준: 구약성경으로부터 신약성경에 이르는 하나님의 섭리의 통일성과 형식의 표준화를 정립함 결국 모세 율법을 고집하던 입장과, 그 반대로 구약성경을 완전히 버릴것을 주장한 입장이 모두 배척되고 사도바울의 중용적 노선이 받아들여졌다 교회는 구약성경이 불편함에도 정통성의 문제 때문에 구약성경을 끌고가야만 했던 것이다. <확장과 성숙> 4세기에 이르러 교회당은 공공의 건축물 양식을 갖고 의식적인 절차를 정립하게 되었다. 교리적으로는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스토아주의의 윤리를 도입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에 영혼의 고양을 통해 응답하고, 사랑의 실천을 추가함으로써 완성시켰다. 특히 저스틴은 아래 세가지를 취합함으로써 종교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모세오경의 신적 속성 -바울의 보편적인 도덕적 양심의 가치와 타당성. -플라톤의 로고스를 신적 로고스로 정당화(진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전체로서 현존해 있다) 콘스탄티누스는 제국과 동일시 되는 보편적 종교가 필요하여 유일신인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태양신 숭배에서 같은 유일신교인 기독교로 옮겨가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그리스도교는 이제 의식적으로 일반 백성들을 향했으며, 정책적으로 제국의 결정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태양의 탄생일(동지)인 12월 25일이 되었다. 한편, 교회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소유권을 갖는다는것은 악으로 여겼으므로 노예해방에 긍정적이었음에도 로마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노예제를 따랐다. 4세기 후반 교회의 힘이 강해져 사회정책에 영향을 미칠수 있게 되었으나 기득권의 경제적인 지원(기부금)을 받고 있었으므로 여전히 노예제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지는 못했다. <삼위일체 논쟁>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가 대표적이다. -아리우스파 :삼위일체 부정, 성부>성자>성령 -아타나시우스파 : 삼위일체, 성부=성자=성령 (니케아 공의회에서 승리) 콘스탄티누스는 325년 니케아공의회를 열어 삼위일체를 인정함으로써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와 더불어 21개조의 교회법을 공표 및 예루살렘 교구에 명예를 부여했다. 로마교회는 앞서 보았듯이 2세기에 이단과의 투쟁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내세워 정통성의 확립함으로써 성립되어 니케아 공의회에서 지위가 확보되어 영적, 법적 권위의 중심이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니교도였다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논란이 많던 삼위일체론을 교리적으로 완성했다. 당시 마니교는 논리적인 이론으로 대단한 호응을 얻었고, 교회에도 많이 침투했으므로 이들을 구분해내야했다. *마니교도를 구분하는 방법: 미사때 잔을 받는가의 여부 (마니교도들은 음주를 죄악시 했기 때문에 성찬때 떡만 받고 싶어했던 것이다) <금욕주의와 수도원> 교회의 힘이 강해지면서 주교는 재판에까지 간섭하고, 유력한관리들에게 추천과 청탁을 했다. 사람들은 주교가 영적 뿐 아니라 세속적 이익의 대변자까지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교회가 타락해가자 욕망을 억제하는 플라톤주의가 금욕주의, 개인주의에 영향을 미쳐 독거수도의 경향이 나타나 수도원이 확산되었다. 수도원은 사회에 문화와 교육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금욕주의 관련한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옮겨본다. *베네딕투스 수도회 평민들로 구성된 베네딕투스 수도회는 나태해지지 않도록 노동을 하게 했으며 성경을 낭독하고 성무일과를 수행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글을 가르친것이 금욕 및 학문으로 대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요한 크리소스톰 398년 요한 크리소스톰은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되었는데, 고매한 인격에 열정적이기까지 해서 눈치없이 적극적인 개혁과 적폐청산 및 모두까기를 시행해버린다. 결국 부자들과 기득권의 미움을 사서 추방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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