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이기 때문에 말해선 안 되는 것들이 우리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여성이기 때문에 침묵해야 되고 여성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되는 것들. 여성이기 때문에 금기시되어 온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성’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나라와 같이 보수적인 사회에서도 남성이라면 상대적으로 여성에 비해 자유로운 이야기가 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유교적,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여성은 여느 사회에서보다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하지만 정작 여성들은 피해를 당했을 때 조차도 침묵해야만 한다. 내가 왜 아픈지 조차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하지만 E. Bass 와 L. Davis 는 저서 The Courage to Heal 을 통해 성폭력을 치유하는 단계 중 하나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자신만의 영역에 문제를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닌 드러내놓고 아픔을 나누는 것. 하지만 성에 대한 원론적 이야기조차도 제한되어 있는 사회 속에서 이런 치유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온갖 감정이 교차했다. 통쾌하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알게 모르게 드는 거부감까지. 익숙하지 못한 것을 처음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는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 교차한다. 게다가 이것이 연극이라나? 믿을 수 없었다. 개인과 개인의 대화로도 힘들 것 같은 내용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공연될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한다니. 하지만 이는 진작에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주저해왔다. Vagina, 즉 여성의 성기를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외딴 곳에 있는 듣도 보도 못한 것이 아닌 여성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다른 것들이 금기의 영역으로부터 탈출하여 세상의 빛을 마주하게 된 지금까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알 수 없는 짜릿함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억압당해왔던 나의 몸에 대한 이야기여서일까, 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다른 이들이 나 대신 해 주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이야기되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몇몇 이들은 이야기를 함에 있어서 빙 둘러 이야기하거나 이야기의 시작을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것들을 털어놓고 났을 때 그들은 그래도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는 말을 남겼다. 여성의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성인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여성이라면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야만 한다. 이 책과 함께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이야기해오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껏 억압당해왔던 여성들이 시도하는 자기 치유의 시작이다. 물론, 그 과정에 처음부터 모든 이들이 참여하진 않을 것이다. 몇몇 이들은 노골적으로 비난하거나 무시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남성의 것들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듯이 여성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책이 더 이상은 특별하거나 민망하게 느껴지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