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전 어느날 간송미술관에서 추사의 글씨를 만났을때 까막눈이었던 내 자신이 너무나 한스러워 한문공부를 시작했었고, 2002. 3월초 호암미술관의 격조와 해학을 통해 추사의 글씨를 공부하는 중에 완당평전을 만났다. 참으로 반가와서 내용을 볼 필요가 없었다. 이책을 읽고나서 5년전 간송미술관의 간송과 완당의 관계가 드디어 밝혀졌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젊은시절 위창 오세창선생을 만나 그 훌륭한 금강안으로 완당을 비롯한 국보급의 미술품을 수집할 수 있었으며, 위창오세창은 역매 오경석의 아들로 아버지의 감정안을 이어받았으며, 역매는 이상적의 제자였고, 이성적은 완당이 참으로 아꼈던 애제자였다. 그동안 간송과 위창에만 머물어있던 관심이 이렇게 완당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니 참으로 대단한 완당 바람이었다. 그 완당바람은 지금 간송미술관의 최완수선생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들을 통해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절대로 끊을수 없는, 물리적인 끈이 아닌 정신적인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 아름다운 바람. |
| 완당평전? 완당이 누구지? 아! 추사 김정희. 그 사람이 위인전에 나올정도로 위대한가? 이런 무지한 물음들로 이 책을 시작했다. 처음 100여장을 넘어가는 것이 정말 힘든 책이었다. 전공이 서양의 학문이라서 이 책이 더욱 곤혹스러웠는 지도 모른다. 허걱! 지면 곳곳에 널려있는 경구와 한자들. 처음에는 책의 삽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차왔다. 하지만 읽을 수록 느껴지는 완당에 대한 호기심과 그의 학문에 대한 정열, 그 예술혼을 느끼기위해 자세를 고쳐 앉게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도 김정희가 연경에 가서 느낀 감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한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 끝없는 학구열.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해 천자루의 붓을 동강내는 지극한 노력. "구만구천구백구십분의 일은 지극한 노력으로 얻기 힘들지만 그렇지 못할 것도 없다."는 김정희의 말은 위인다운 당당함과 자신감의 표현으로 다가왔다. 읽다가 혹시 완당이 사대주의자가 아닐까 했지만 청의 학자들을 지도하고 당당히 자신의 논조를 피력하는 모습에서 새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이 나같은 인문학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었는데 저자의 필력이 그 부분을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는 책이다. 완당못지않은 유홍준님의 노력과 정열도 존경스럽고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뜨게 해준 점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을 표현한 한마디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숭산심해)."라는 문구가 가슴에 저미어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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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체게바라 평전』의 폭발적인 인기를 전후해서 평전 문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고, 좋은 책들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터라 나로서는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선현들에 대한 알려진 평전 작품 하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이런 차에 여러 권의 답사기와 미술 평론으로 유명한 유홍준 선생이 추사 김정희의 평전을 썼다기에 나는 재빨리 책을 구입해서 살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위대한 학자들이 많았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의 학문이나 생은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학문적 전통도 거의 계승되지 않았다. 전 국민이 추사 김정희의 이름은 널리 알고 있지만 정작 추사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이러한 학문적 단절의 골이 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식과 대중의 괴리, 학문적 단절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평전 문학이다.
평전은 그 사람의 생애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독자로서는 읽기 편하고 쉽지만, 한 인물의 생애를 가지런하게 써내려 가야 하는 필자에겐 곤혹이 아닐 수 없다. 생애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업적에 대한 학문적 이해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인물이 되어보는 역사적 상상력이 있어야 한 편의 좋은 평전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전은 쓰기도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더욱이 지식인, 정치인, 종교인, 예술인 등 여러 가지 방면에 걸친 총체적 인간상을 추구했던 유가적 혹은 동양적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필자 자신도 문학, 역사, 철학, 예술 등에 관한 충분한 물감들을 파레트에 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평전은 그 자체가 필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영하는 예술 작품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평전 문학의 질과 양은 그 나라의 인문학적 성과를 재는 잣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유홍준 선생의 『완당평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아낌없이 보여준 역작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자신은 선학들이 이미 부분부분 설계해 놓은 것을 종합하여 성실히 시공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 책에 들인 공력을 가늠해 볼 때 적어도 작가 자신의 팔뚝아래 수많은 원고지들이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면 이만한 책이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완당의 생애를 다섯 단계로 나누어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① 태어나서부터 연경에 다녀오는 24세까지의 수업기, ② 연경을 다녀온 25세부터 과거에 합격하는 35세까지 10년 간의 학예 연찬기, ③ 관직에 나아가는 35세부터 제주도로 귀향가는 55세까지 20년간 중년 활동기, ④ 55세부터 63세까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하는 9년간의 유배기, ⑤ 제주도 귀양에서 풀려나서부터 세상을 떠나는 71세까지 8년간의 만년기(晩年期).
필자는 연대기에 맞추어 완당의 작품 두루마리를 펼쳐 보여주며 독자로 하여금 느끼고 감상할 수 있게 하면서, 적절하게 완당이 쓴 편지들을 더하여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하였으며, 한시 작품들을 통해 완당의 뛰어난 감수성을 살필 수 있게 한다. 그것들이 필자 자신이 지닌 맛깔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런 글쓰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노니는 듯 하여 잔잔한 감동의 파동이 가슴에 일어나게 한다. 이러한 재능은 필자의 천재적인 역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여러 권의 답사기를 통해 독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맛이다.
또한 필자는 완당이 평생 동안 중국과의 학예 교류를 통해 국제적 학자로 자리잡았으며, 피나는 수련을 통해(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그에 걸맞는 위상을 남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의 팔뚝 아래 비문 309개의 글씨를 갖추고 있었던 완당의 입고출신(入古出新) 정신은 필자의 팔뚝 아래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발하며 펼쳐진다.
죽는 날까지 "나머지 일분의 공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완당 선생의 치열한 삶의 정신을 이 책을 통해 모두들 한번 느껴 보시길 바란다. 그의 도도하면서도 깐깐한 성품이 허허로움을 얻어 가면서 예술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주목하여 본다면 어느새 자신이 완당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좋은 평전 작품들이 많이 쓰였으면 하는 소망을 빌며, 유홍준 선생 자신의 공부도 더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
| 완당이라면 아니 추사 김정희라면 대한민국의무교육자라면 모를사람이 없는 위인이라 할 수있다. 대략 알기에도 오만한 성격과 명필이라는 것과 제주도로 유배다녀와서 더욱 진일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여건상 그 이상알기에는 무리가 따를 뿐더러 부끄럽게도 김정희님의 초상도 책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더 나아가 그 당시 완당이(명필보다도) 대단한 석학이라는 것과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문가도 아닌 일반독자가 보기에는 너무 괴이하고 어려운 책이었다. 저자가 늘 주장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약을 살 때 보는 '주의 부작용' 만큼이나 무책임하지않나 싶다. 대부분의 문제는 본인이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문제이다. 그만큼어려운 만큼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권은 가급적 사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말 그대로 '부록' 이다. 이런 교양서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
| 유홍준 선생님은 매우 특이한 분이다.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은 대부분 말이 어눌하고 말재주가 좋으신 분들은 글이 말을 못 따라가기 마련인데 유홍준 선생님은 이 두 가지에 다 능하시다. <완당평전> 또한 유홍준 선생님의 빼어나 글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일반인들에게 추사 혹은 완당이라는 호로 불리는 김정희 선생에 대해서는 그동안 추사체라는 독특한 글씨를 쓰시는 분으로만 알려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김정희 선생이 얼마나 세계(당시는 중국이 중심이지만) 학문의 주류로 살아오셨는지 알게 되었다. 지나간 사람에 대한 평전은 단지 그 사람을 기억만 하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의 인물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당시 중국이라는 선진문물을 접하고 그 배운 바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던 김정희 선생의 사례는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외국의 학문사조가 판을 치는 지금의 현실에 그 장단점을 적절히 해석하여 우리의 나아갈 바를 제시할 수 있는 학문적 토대의 마련이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완당평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