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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관심있으신 분이시라면 읽어보시길...
"고전에 관심있으신 분이시라면 읽어보시길..." 내용보기
선생님의 중국문학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름 걸고 쓰신 책이라면 안 봐도 어떨지 짐작이 가네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수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셨던 선생님이십니다.   학생들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려고 노력하시던 모습,그 진정성이 느껴졌던 수업이었습니다.   고전에 관심있는 분들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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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중국문학사 수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름 걸고 쓰신 책이라면 안 봐도 어떨지 짐작이 가네요.

 

대학에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수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셨던 선생님이십니다.

 

학생들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려고 노력하시던 모습,그 진정성이 느껴졌던 수업이었습니다.

 

고전에 관심있는 분들 꼭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선생님 수업 들었던 무수한 사람들 중 한명이 지나가다가 너무 반가워서 써 봅니다.

g********e 2007.11.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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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참얼굴과 마주하기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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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기획이 담겨 있는 (대중국)중원 만들기의 교범이다”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한 가지 시각만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뒤에 덧붙이지만 분명 이러한 논리는 아주 낯설게 들린다. 우리가 배워온 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논어”라면 4대성인중 하나인 공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인 仁에 대한 가르침을 집대성해 놓은 경전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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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공자의 기획이 담겨 있는 (대중국)중원 만들기의 교범이다”

저자의 주장이다. 물론 한 가지 시각만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고 뒤에 덧붙이지만 분명 이러한 논리는 아주 낯설게 들린다. 우리가 배워온 상식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논어”라면 4대성인중 하나인 공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인 仁에 대한 가르침을 집대성해 놓은 경전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경전이 불순한 목적과(?) 정치적 판단, 정략에 의해 만들어졌다니...... 저자의 주장을 좀 더 깊이있게 파고 들어가보자.


공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 중원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춘추시대다. 형식적인 주황실의 천자도 있고 이를 따르는 제후국도 있건만 중국은 약육강식의 위태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감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변방의 소위 오랑캐가 끊임없이 침략해 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국을 하나로 통합할 구체적인 이데오르기가 필요했다. 이 때 공자는 오랑캐를 이용하기로 한다. 즉, 대중국을 넘보는 상종못할 짐승같은 오랑캐라는 존재들에 맞서 문명국인 중국을 지키는 이데오르기를 만드는 것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잘 나가는 오랑캐 나라에서 사느니, 차라리 망가진 중원에서 살겠다”


“논어”안에 담긴 예의범절, 仁을 뒤집으면 그것은 중국이 유일한 문명국임을 내세우는 근거로 작동하는 이데오르기가 된다. 중국의 또 하나의 경전인 “시경”도 중국내에서 전래되는 여러 시들을 한데 모아, 각 지방정권에 배포함으로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이질적인 요소(다른언어, 문화등)를 통합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사실은 “고전”은 단순히 활자화된 텍스트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역사와 사대상황을 벗어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고전과 역사를 되짚어 본다면 우리는 보다 실체적인 진실, Fact에 근접할 수 있다. 결국 고전의 참얼굴은 살아 생생히 움직이는 시대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공자가 오랭캐에 대해 말했던 독설을 상기해 보자. 정말 성인이라면 오랑캐도 한족과 동일한 仁 으로 같이 살아나가야 할 존재가 아니었을까? 오랑캐에 대한 공자의 편견은 공자도 성인이기 이전에 편견과 인간적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공자는 제자인 자로를 빗대어 제명에 죽지 못할 것이라는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자, 이제 먼 과거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공자가 살았던 시대, 지금처럼 대량으로 활자화된 ‘책’이 존재하지 않았다. 비단에 글자를 적을 수도 있었으나, 비단은 고가이므로 대나무같은 곳에 축약된 몇 개의 글자를 새겨넣는 정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이니, 공자의 말씀인 “논어”도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기억으로 편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자가 말했던 것들이 제자들의 왜곡된 기억, 그리고 제자들 각자의 입맛에 맞춰 재편집과정이 있었으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비단 “논어”같은 중국고전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성경의 신약도 그러하다. 예수의 말을 전해들은 제자들의 기억력과 생각은 다 제각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위정통신약이외에 외경이라 불리는 여러 버전의 성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는 이유는 존경받는 성인이나 경전들을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진실(fact)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외피속의 내면의 참얼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생각된다. “살아 움직이는 동양고전들” 이 책은 박제화된 경전의 활자속 이면의 진실을 찾아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맛이 독특하며 씹히는 맛이 제법이다.


논어부터 맹자, 장자, 순자, 사기, 시경, 노자, 춘추, 초사, 장자, 묵자에 이르기까지 때로는 저자의 시각으로, 아니면 시대상황속에 경전들을 투영해 놓고서 경전이 나오게 된 뒷배경을 캐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시각으로 따라가다 보면 좀 비약이 심해진 부분도 있는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 역시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보면 즐거운 독서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묵자이야기다. 중국내에서 최초로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공산주의 전형의 이념을 추구했던 묵자.... 비참한 공산주의의 종말처럼 묵자도 인간의 본성적인 이기적인 욕심을 간과했기에 그저 실패한 역사의 한페이지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런 묵자가 되살아난 것은 서구열강세력의 강대함을 깨닫게 된 근대중국이 서구사회를 따라하기위한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즉 서구사회의 박애, 사랑, 겸애등의 정신을 자국내에서 오래전 폐기처분했던 묵자에게서 되찾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무엇이든 세계최초, 최고를 지향하는 중국은 이미 오래전 중국에서 그러한 이념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내세움으로서 위신을 깍이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불교를 받아들이는 과정 역시 말도 안 되는 ‘노자’를 끌어들이게 된다. 중국고대전통사상인 도가에 맞서 더 높은 문화인 불교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생각해낸 궁여지책이 ‘노자’란 이야기다. 전설속에서 노자는 서쪽으로 떠나게 되는데, 길을 떠난 노자가 인도에서 붓다가 되었다는 것이다. 훗날 중국은 불교와 도교를 적절히 혼합시켜 노장사상을 만들어내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어거지 합리화의 역사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고구려를 중국내 지방정권이었다고 우기는 것들이 고대부터 중국인의 오랜 마음속에 내재된 우월주의적 중화사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지혜를 주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그러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만남에 관한 것이다. 백이와 숙제를 통해서다. 충성과 고결의 상징인 백이와 숙제는 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하며 굶어 죽었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백이와 숙제 사후 삼백년간은 아무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융통성없는 못난 사람일 뿐이었다. 그 못난 사람을 고결한 위인으로 만든 것이 공자였다. 공자가 치켜세우자 삼백년간 잠들었던 백이와 숙제는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공자가 백이와 숙제를 다시 치켜세운것은 유가사상의 충성스러움을 대변해주는 좋은 사례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시대와 공간조차 초월한 만남을 통해 역사의 판단이 변해버렸으니, 누구를 만나느냐하는 것은 어떻게 사느냐 못지 않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


이제 긴 여정의 글쓰기를 마쳐야 할 시간이다. 이 책을 통해 “고전”은 구태의연한 옛 사람들의 언행의 기록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고전이야말로 몇천년의 세월을 두고 축적되어 온 유구한 역사가 주는 지혜를 담고 있는 소중한 보고이다. 문제는 그 소중한 지혜에 어떻게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다.


표피적으로 영웅심을 가지고 성인들의 말씀 토씨 하나하나에 외경심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식으로는 아무런 교훈도, 영감도 얻지 못한다. 죽은 지식의 카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고전을 바라볼 것인가?


그것은 “고전”의 주인공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 시대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에야 진정한 "고전“과의 만남을 통해 피와 살이되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재적 고전읽기, 역동적 고전읽기, 살아 움직이는 고전의 참얼굴과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우리가 고전의 참얼굴을 마주하기위해 그 시대를 공부하기란 쉽지 않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그것들에 전념해온 결과물인 이런 책들을 통해 고전의 참 얼굴과 대면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몇시간의 투자로 “고전”의 참얼굴에 다가설 수 있다면 참으로 즐거운 독서여행이 아니겠는가?

j******7 2007.12.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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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의 대화가 우리의 현실을 살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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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 천 년도 더 지난 시기에 중국에서 쓰여 진 많은 책들이 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니 대나무(죽간)에 기록한 글들이다. 이런 고전들이 시공간이 다른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안티쿠스.2007년)은 위의 의문에 답을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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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 천 년도 더 지난 시기에 중국에서 쓰여 진 많은 책들이 있다.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니 대나무(죽간)에 기록한 글들이다. 이런 고전들이 시공간이 다른 우리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안티쿠스.2007년)은 위의 의문에 답을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으로 고전에 있는 텍스트를 그 자체의 ‘결대로’ 읽는 한편 그 안에 스며있는 제반 맥락(context)을 ‘폭 넓고도 속 깊게’ 복원하여 읽는 ‘내재적(immanent) 일기’를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논어>의 독법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한 번 들어보자.

내재적 읽기의 핵심은 ‘해당 텍스트가 생성되는 시점에 텍스트에 내재했던 결을 읽어내는 것, 즉 그 시대의 가치관과 환경, 또 저자의 사상 등을 이해한 상태에서 고전을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해당 고전 텍스트에 있어서 저자의 글쓰기 관습, 통사, 문자의 탐구에 익숙해야 한다고 하니 고전을 직접 읽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맹자>라는 책을 이해하려면 맹자라는 인물에 대해 우선 알아야 하며, 또한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戰國時代, BC 453~BC 221)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 <노자>란 책을 읽을 때는 항상 <논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노자가 늘 공자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문을 보면 공자가 “군자는 한 용도에만 쓰이고 마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 (君子不器)”고 하자, 노자는 “큰 그릇은 완성이 미뤄진다(大器晩成)” 고 말하고 있다. 즉 노자의 텍스트는 공자를 비교대상으로 삼았기에 <논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노자>도 읽어낼 수 없다는 의미니, 책을 읽는 순서는 <논어>를 먼저 읽고 난 후에 <노자>를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2부는 고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시경, 詩經>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시(詩)라는 말은 원래 <시경>에 실린 고대 중국의 노래 가사를 가리켰다. 이 <시경>은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춘추시대 중기인 기원전 6세기 무렵까지 민간이나 조정에서 불리던 노래 가사를 모아둔 책이다. 그런데 이 시경에 수록된 시는 아주 음란한 시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경전이란 의미가 통치의 정통성과 합법성의 원천이 되어야 하는 책인데 이런 책에 음란한 부분이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을까? “누가 봐도 선정적인 시를 성인이 그대로 놔둔 까닭은 음란했던 세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또 <시경>이 경전인 이류를 텍스트 바깥에서 찾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경>은 아주 깨끗해서 사람들을 교화하는 책인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면 읽는 이가 음탕한 자라는 것이다. “음란함이 <시경>의 텍스트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해석부분이라 할 수 있다.


<장자>에 대한 부분을 읽어보자. 중국에게 있어서 이민족들은 모두 오랑케였다. 즉 자신들만이 문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민족들은 모두 미개인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오랑케의 문명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바로 ‘불교’였다. 즉 유교를 통한 통치에 우선을 두었던 그들에게 불교라는 외래 종교가 중국에 들어온 것이다. 자신들이 그동안 얕보았던 오랑케의 사상이 중원에 주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자존심이 상할 만한 일을 중국인들은 어떻게 해석해 내었을까? 이 부분에서 노자가 등장한다. 중국인들의 습성이 일단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 속도와 정도가 상상을 벗어나는 게 중국인의 습성이라고 한다. 즉 중국인들은 도가를 방법적으로 활용하여 불교라는 외부의 상당한 도전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 즉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경전을 통하여 외래 종교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핑계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 책을 쭉 읽어가면서 고전이 시공간을 떠나서 오랫동안 살아있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도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심성이 있는 것인데, 고전은 그러한 보편적인 부분에 대해 유의미한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고, 또한 시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함으로 보편적인 부분을 두텁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지적인 책으로 고전 읽기의 길라잡이 해당하는 의미 있는 책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중국 문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e****n 2007.08.19. 신고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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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늘 보던 밥상이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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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늘 보던 밥상이 아니네.   동양고전을 접하게 되는 것이 입시에 대비한 공부할 때가 주로 많았다.   원문 나열에 뜻 풀이한 고전 해설서가 대부분이었다.   평소에 늘 보던 밥상처럼 변화가 없다고 할까?   뜻 풀이 외우기에 바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고   필요한 시험이 끝나는 순간 손에서 멀어지고 다시 들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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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늘 보던 밥상이 아니네.

 

동양고전을 접하게 되는 것이 입시에 대비한 공부할 때가 주로 많았다.

 

원문 나열에 뜻 풀이한 고전 해설서가 대부분이었다.

 

평소에 늘 보던 밥상처럼 변화가 없다고 할까?

 

뜻 풀이 외우기에 바쁘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않고

 

필요한 시험이 끝나는 순간 손에서 멀어지고 다시 들려지지 않았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읽을 것인지,

 

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구슬 자체로만 굴러 다니지 않아야 할 일이다.

 

 

범접하기 힘든 성인의 경전처럼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자기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될 때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밑천없이 장사 할 수 없듯이 고전 읽기도

 

밑천이 드는 수고를 해야한다고 강조 하고 있다.

 

종자돈 마련하는 셈치고 읽으라는 권유가 수긍이 간다.

 

 

읽으면서 꾸준한 말걸기와 폭넓고 속 깊게 복원하여 읽으라고 한다.

 

'한비자'가 '이사'의 모함으로 옥에서 음독 자살을 한 지 13년 후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했다.

 

그것은 '한비자'에 제시된 견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도입,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일제국을 건설코자 했다.

 

결국 한비자는 진시황을 통해 자신의 포부를 펼친셈이 되었다.

 

비록 그 제국이 오래가지는 못했지만

 

'진시황'과 '한비자'의 만남은 고전을 방법적으로 활용하면

 

어떤일까지 가능한가를 보여주었다.

 

 

논어에는 공자가 살며 접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고민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읽는 이의 문제의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논어의 핵심은 다양할 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깨우친 논어의 핵심을 제시하고있다.

 

각자 읽으면서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깨우친바를 가지면 되는 것이 아닐까.

 

 

k*****3 2007.08.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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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새로움이란 건 있을 수 없다" 내용보기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고대에도 벌써 '쓰여지지 않은 새로운 걸 쓸   수 있다면!'이라고 절규했던 작가가 있었다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들어맞다 생각했   다. 이 책에는 그 유명한 공자, 노자, 순자 등 그야말로 대가들이 등장한다. 그런   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내용이었다. 기존의 인식   을 뒤엎으려던 니체가 떠오르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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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고대에도 벌써 '쓰여지지 않은 새로운 걸 쓸

 

수 있다면!'이라고 절규했던 작가가 있었다더니 정말 그 말이 딱 들어맞다 생각했

 

다. 이 책에는 그 유명한 공자, 노자, 순자 등 그야말로 대가들이 등장한다. 그런

 

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내용이었다. 기존의 인식

 

을 뒤엎으려던 니체가 떠오르고, 말장난으로 이루어진 돈키호테가 생각나고, 장자

 

의 일종의 '낯설게 하기'가 나왔을 때는 입이 딱 벌어졌다. 물론 '낯설게 하기'란

 

단어는 저자가 쓴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 골격은 같았다. 내가 근대 서양 작품을 공

 

부하면서 접했던 내용들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이미 고대 중국에서 기초가 세워져

 

있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세계가 진보하고 있다고 믿기 마련이지만 사실은 그렇

 

지도 않는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생각을 캐내고 그렇게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라

 

고나 할까.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우리가 정해놓은 기준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다. 있다-없다 식의 이분법, 법, 규범 등의 모든 제도들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원래 자연에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계몽주의로 절정

 

을 맞아 합리주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한 거리를 제공해준다. 이미 보르헤스가 영향을 받은 장자의 일화을 우리도 곱씹어

 

보기로 하자.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밭을 흥겹게 날아다니다 깨어나서는 "혹 내가 사람이 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

 

고 있다.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요즘 추세에 정말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이

 

야기를 읽기 쉽게 얇은 책에 담아냈다. 이 책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는 읽는 사람

 

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법이니까. 

l****a 2007.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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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세계를 횡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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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언급하는 동양 고전들은 이름만 들어도 묵직하다. 논어, 맹자, 도덕경, 장자, 한비자…… 등등이 기껏 3cm나 될까 말까 한 책 안에 담겨 있었다. 얇은 두께답게 저자는 책 속의 인상적인 부분만을 인용한다. 천여 개가 넘는 해설서가 나왔다는 논어를 또다시 해설하면서 그는 “배우면 고지식해지지 않는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배움을 확실히 한다”는 기존의 해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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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언급하는 동양 고전들은 이름만 들어도 묵직하다. 논어, 맹자, 도덕경, 장자, 한비자…… 등등이 기껏 3cm나 될까 말까 한 책 안에 담겨 있었다. 얇은 두께답게 저자는 책 속의 인상적인 부분만을 인용한다. 천여 개가 넘는 해설서가 나왔다는 논어를 또다시 해설하면서 그는 “배우면 고지식해지지 않는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배움을 확실히 한다”는 기존의 해석보다 독자를 더 끌어당기는 부분이다. 문(文)의 본뜻대로 책의 결을 읽고자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논어에서 공자는 세상만사를 초월한 성인도 아닌, 배우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출생이 비천했다고도 하고 상갓집 개와 같았다는 비유에 “맞다, 맞아!”라고 답하기도 한다.

 '난해한 고전‘이라는 고정관념은 ‘곤’이라는 생선(?)에 대한 난해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장자>에서 확 깨지기 시작한다. 저자 마음대로 비벼먹는(?) 서술의 막판에서 “천하가 침체하고 혼탁하여 진지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 않은 치언을 무한정 늘어놓았고, 그 뜻이 깊이 가라앉아 있는 증언을 참으로 여겼으며, 속내를 사물에 빗대어 담은 우언으로 내 뜻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라는 말에서 독자는 기가 쭉 빠져 버린다.

 알쏭달쏭한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신이 허탈해지는 경험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나 잡아봐라~”식의 우언을 건네는 고전보다는 친절한 고전이 훨씬 많은 것이 다행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시경>처럼 본 내용은 자연스런 사랑 노래임에도 후대 사람들의 윤색이 덧붙여져서 윤리적인 방향으로 오해되기 십상인 책들이 <장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의 현실이다. 한유, 정이 등 성리학의 거장들로부터 ‘잡스럽다’는 인신공격성 비난을 줄기차게 들은 순자의 책들이 나은지 <논어>나 <시경>처럼 신성시(?)된 책들이 나은지는 의문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동양 고전들>을 다 읽고 난 기분은 고미숙의 추천사대로 거대한 스펙트럼을 단번에 횡단한 기분이었다. 한켠에서는 노래자가 공자를 꾸짖기도 하고, 장자가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마천이 ‘약동하는 허구’를 <사기> 안에 집어넣으려 고군분투하고 있기도 하다. 피와 살이 튀는 액션 영화보다도 더 치열한 논쟁과 또 이어지는 논쟁, 무언가 고차원적인 신선놀음 같으면서도 어느 샌가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말싸움들을 지켜보면서 드는 감정은 그야말로 즐겁다. 어느 순간 고전과 현대의 연결장치, 인터페이스가 되어 있었다.

s****a 2007.07.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