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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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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연쇄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길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곳곳에서 폭력이 난무해 왔다. 하지만 지난 9.11 테러는 분산되어 보이던 폭력을 하나의 가시적 영역 안에 모으는데 기여(?)했고, 테러로 인한 죽음이 타인 아닌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안에 우리 모두는 빠지고야 말았다. 텔레비전을 켜면 볼 수 있는 몇몇 충격적인 영상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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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연쇄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길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분쟁의 역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곳곳에서 폭력이 난무해 왔다. 하지만 지난 9.11 테러는 분산되어 보이던 폭력을 하나의 가시적 영역 안에 모으는데 기여(?)했고, 테러로 인한 죽음이 타인 아닌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안에 우리 모두는 빠지고야 말았다. 텔레비전을 켜면 볼 수 있는 몇몇 충격적인 영상들이 우리 자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즐거울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아무리 약육강식이 세상의 질서라곤 하여도 내가 살기 위한 또 다른 전쟁, 즉 대 테러전쟁이 정당한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테러를 두고 문명간의 충돌이라 일컬은 학자가 있었다. 미국의 오만한 태도로부터 그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었고, 심지어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수많은 견해가 난무했지만, 여전히 지난 9 11일은 미궁 속에 빠져있다. 또한 잇따른 폭력과 그 폭력을 진압하기 위한 또 다른 폭력에 의해 우린 신음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은 지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테러를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늦었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고, 이는 지금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구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우리가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테러하면 비서구적인 집단, 비기독교적인 집단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테러의 주체로서 국가까지 포함시키고 있었다. 합법적으로 성립한 한 국가의 정권을 전복하는 행위, 자신과 경쟁하는 입장에 놓인 국가의 테러집단을 지원하는 행위 등 미국을 비롯하여 많은 국가들이 암암리에 해온 모든 활동이 테러의 영향 하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생각해온 것과는 다소 다른 방식이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는 이론으로만 접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미국에 의해 악의 축의 일환으로 규정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한 때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현재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탈레반 외에도 많은 테러 집단들이, 마치 토끼 사냥 후 사냥개가 잡아 먹히는 것[兎死狗烹] 마냥, 서방 세계의 합법적 지원에 의해 강성해졌다가 서방에 의해 다시금 테러 집단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이 책은 이를 두고 블로우백blowback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미국이 만들고 강화시켰으나 결국 미국을 공격하게 된 조직의 행동을 뜻한다는 이 용어는 미국에만 사용될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현재 미국이 쥐고 있는 패권이 다른 나라로 넘어갈 경우, 이는 미국 아닌 다른 국가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테러리즘이 폭력인지 혹은 저항인지, 마치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명백한 입장을 취하길 기대하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어느 쪽 입장이 옳고 또 그른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이 근절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는 말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듯했다. 개인, 집단, 비단 국가에 의한 것일지라도 테러 그리고 전쟁은 모두 범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으로써 테러와 반테러의 반복에 의한 파괴행위는 저지되어질 수 있다고 이는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대테러 전쟁은 테러를 종식시키는데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집회 결사의 자유 제한, 사형 확대, 가혹한 구금 등이 테러를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정당화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보다 더 좋은 결론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달의 사락 q*****2 2007.10.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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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근본, 그리고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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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에 테러에 관한 이야기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최근의 프랑스 공항의 알몸 투시기 도입 또한 테러에 대한 대비책 중에 하나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현재는 테러의 위험에 대하여 거의 '편집증'적인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9.11 이라는 WTO의 붕괴라는 압도적인 비쥬얼이 전 세계인의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 미국이 주창하고 나온 '테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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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에 테러에 관한 이야기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최근의 프랑스 공항의 알몸 투시기 도입 또한 테러에 대한 대비책 중에 하나라는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현재는 테러의 위험에 대하여 거의 '편집증'적인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은 9.11 이라는 WTO의 붕괴라는 압도적인 비쥬얼이 전 세계인의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 미국이 주창하고 나온 '테러와의 전쟁' 때문이기도 하다.

WTO의 붕괴 이후 테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상 보편화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대부분은 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이며 테러라는 비인도적인 방법에 대한 비판론적 관점으로 치우쳐 있다. 물론 WTO의 붕괴는 그 만큼이나 많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광경을 만들어냈고, 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적 특성은 그만큼이나 우리가 테러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하기 힘들 정도로, 테러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굉장히 섬세한 문제로 존재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테러를 폭력이라고 생각하는가 저항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거의 대부분은 테러는 폭력이며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비인도적인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약간 바꿔볼까? 최근에 다시 수면위로 올라온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과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테러. 그리고 비정규 군인과 농민등 여러 계층이 참여한 '독립군'의 투쟁은 폭력이었나, 저항이었나.

사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개인의 가치관에 기인할 뿐더러, 더욱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교육학의 문제로까지 접근되는 문제이기에 이 질문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더러 이 글에 있어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근본적인 의의는 이 질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워온 것은 그들을 '의사'라고 칭하는 것 만큼이나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것은 비폭력적인 한국을 무력으로 침공하고 약탈한 '왜놈'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대한민국의 독립이라는 정의를 이루기 위한 행위이므로 옳다. 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고, '외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 그들이 그것을 '옳다'라고 판단할 지는 미지수이다.

이런 논의를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안중근'이나 '윤봉길'이라는 특정 인물의 행위의 정당성을 침해하려는 행위는 곧바로 매국-친일파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약간의 불안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해야할 것은 확실하게 해야한다. 반테러는 테러의 '비인간적'인 요소를 지적하며 그것의 '부정의'함을 자신의 정의로 삼는다. 그러나 테러는(한국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나름의 정의를 지닌다. 즉 테러와 반테러의 충돌은 각각 공존할 수 없는 정의의 충돌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테러리즘, 폭력인가 저항인가'는 단순히 테러라는 행위가 만들어내는 비인간적인 비쥬얼에서 한 걸음 떨어져 테러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테러와 반테러간의 상관관계부터 시작하여 테러의 종류를 분석하고 근본적으로 테러라는 행위 자체를 분석하는데 힘을 쏟는다. 그렇기 때문에 '테러'라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접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작품은 한계를 가지는데, 테러라는 행위를 지구상에서 없애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해서 존재해 온 보편적인 이상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실상 이 책이 추구하는 것이 테러라는 행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테러라는 행위를 분석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정도로 테러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치열하게 분석해 놓고서 내놓는 대안 치고는 너무 허망한 느낌마저 든다.

분명히 '테러'는 없어져야 할 행위이다. 그러나 테러가 존재하는 이유를 직시하고 그것이 만들어지는 원인을 생각해보면 과연 우리의 책임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그들의 잘못이었을까,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게다가 우리의 역사의 특이성이 가지고 있는 '테러리즘' 또한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작품은 단지 테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 테러가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온 우리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강론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e*******a 2010.06.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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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에 대항하기 인간의 본능,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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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테러, 실종, 암살 등 ‘행동을 통한 광고’로 얘기되는 테러리즘은 상대방에 대한 폭력적 분노의 표출이다. 학문적 정의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테러의 원인에 대한 3가지 이론이 있다. 실패한 근대화, 문명의 충돌, 1차 테러와 2차 테러, 즉 서구식민주의 팽창과 그 후 계속된 정치적, 경제적 지배라는 1차 테러가 그로 인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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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테러, 실종, 암살 등 ‘행동을 통한 광고’로 얘기되는 테러리즘은 상대방에 대한 폭력적 분노의 표출이다. 학문적 정의로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으로 위협하는 것이다.


테러의 원인에 대한 3가지 이론이 있다. 실패한 근대화, 문명의 충돌, 1차 테러와 2차 테러, 즉 서구식민주의 팽창과 그 후 계속된 정치적, 경제적 지배라는 1차 테러가 그로 인해 주어진 불공평과 고통에 대한 절망적인 응징인 2차 테러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과 사회 전체의 안전과 불평등이 테러와 연계되어 있다. 억압받으면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는 문화집단은 정치적 열망의 목소리를 높이려 들면서 요구사항을 내세워 테러에 가담하기도 한다.


만약 테러에 든 비용이 50만 달러이고 피해액이 500억 달러라면 ‘파괴’를 통한 보상 비율은 1:10만이나 될 것이다. 하지만 국가에서 테러에 굴복하여 정책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로는 테러에 강대국이 개입하기도 하는데, 테러가 전적으로 ‘약자의 무기’만은 아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추악한 작업을 할 때 테러라는 형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국가 수호를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방법도 가능하다고 정당화된다.


테러리스트들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면서 공격하고자 하는 사회의 새로운 취약점을 파악한다. 테러리스트들은 생화학 무기를 장악하려 시도하기도 하고 핵무기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영국 브래드퍼드 대학의 평화학 교수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세상에 폭력이 끊이지 않으니 대학에 이런 학과가 개설되어 있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인간 역사 3,500년 가운데 분쟁이 없었던 시간을 꼽아보니 고작 300년도 안된다는 어느 학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테러리즘도 분쟁의 범주 속에 포함될 것이다. 폭력은 인간의 본성인 모양이다.

s*****o 2009.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