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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폭동으로 파리 시내가 불탔다, 는 기사들은 유독 파리를 강조했다. 자유, 평등, 박애 + 혁명의 도시 = 파리. 실은 파리 시내 외곽이 불탔다는 게 정확했지만. 난 잠깐 불붙은 에펠탑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에펩탑의 여전했다. 영업 시간이 끝난 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명품점들의 새 물건들 만큼이나 반짝반짝. 우리가 소위 제 1세계라고 부르는, 그 버젓한 세계에는 저렇게 두 개의 불빛이 존재하고 있는 거다. 어느 쪽이 더 외로울까, 묻는다면 당연히 에펠탑 보다는 외곽이지 라고 대답해야 겠지만. 글쎄. 머뭇거려지는 이유가 뭘까. 아는데 그 모양이냐는 핀잔이 두려운 걸까.
예전 한겨례 신문에 제법 흥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저녁식사가 어땠는지 묻는 방식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드러난다고 한다. 빈곤층은 배불리 먹었니? 라고 묻는다면, 중산층은 맛있게 먹었니? 라고 하고, 부유층의 질문 방식은 차려진 음식은 보기 좋게 나왔니? 란다.
<마리 앙투와네트>라는 영화는 그러니까, 차려진 음식은 보기 좋게 나왔니? 라고 묻는 최상위 계급의 세계가, 영화가 다 끝나가는 마지막 약 7분 가량 배불리 먹었니? 라고 묻는 계급들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되는 스토리의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카메라가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마지막 7분이 아니라, 나머지 115분 이다. 115분 동안 쓸쓸함 조차 화려한 영상이 펼쳐진다. 프랑스 혁명을 7분으로 편집한 이 영화는, 말해준다. 모두가 맛있게 먹었니, 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혁명으로도 아직 멀기만 하다고.
115 > 7 의 세계. 보기 좋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저녁식사는 도대체 언제 쯤이나 가능한 걸까. 마리 앙투와네트를 증오하면서도, 마리 앙투와네트를 원하는 세계. 살다보면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게 새옷과 새구두가 전부인 그런 하루가 있다. 그럴 때면 생각해야 겠다. 풍요로운 인사가 넘치는 환상 속의 저녁 식탁을.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지 서로 서로 몇 번이고 물을 수 있는 그 한끼의 식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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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런풍의 영화를 좋아해서 눈요깃감으로 샀는데 이건 눈요감으로 샀다고 치자! 하기에도 너무 아깝다..ㅠ.ㅠ
영화가 개봉되었을때 혹 했었는데 시간될때 봐두려고 산건데 이렇게 돈이 아까울줄이야.
한번 보고 말았어도 될것을.
그리고 영어 대사가 많지 않다는 기분은 또 뭘까 그나마 공부라도 하련다 라는 맘으로 보려고 했는데..
담부턴 무조건 질르지 말고 꼭 많이 생각해보기..그리고 이제 dvd사제기는 그만 해야겠다.
책이 더 소장가치가 있는것같다. 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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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작년도 최고의 '예쁜' 영화라는 것에는 동의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2시간을 허비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을 것이다. 소피아 코폴라는 "사랑도 통역되나요?"로 얻었던 많은 기대와 재능을 한방에 허비하였고, 커스틴 던스트도 자신의 연기 이력에서 가장 시간낭비한 작품에 출연한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연휴에 2시간을 허비하였다. 그냥 1,000원 내기 윷놀이나 할껄...
영화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쁜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최근에 접한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쁜 연기자와 이쁜 옷들, 음식들, 장식과 세트들... 등등 너무 알록달록하고 이쁜 것들만이 있어서 살짝 만성화되는 느낌도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잘도 이런 이쁜 것들만 찾아냈다는 칭찬을 하도록 만든다.
내용은? 과연 이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만들려고 했는지 의문이 드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생각으로 영화를 보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의 마리앙투아네트를 영화화한 작품중에서 오직 그녀의 시각만으로 작품을 이끌어낸 작품은 이 영화가 최초인 것 같다.
영화는 오로지 그녀의 시각으로만 작품을 이끌고 간다.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로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베르사이유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영화는 끌까지 그녀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때문에 영화는 아름다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녀는 새장속의 새였고 바깥은 전혀 모르는 공간이니까 말이다.
영화는 오로지 베르사이유라는 공간에서 한정되어 이끌어간다. 절대 그곳을 떠나지 않고(유일하게 페르젠을 떠올리는 장면이나 어머니를 생각하는 정도만 베르사이유라는 공간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의 삶에 집중한다. 바깥에 관한 소식과 정치적인 내용은 직접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서 들어지게 되는 정도이다.
어쩌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죄밖에 없다. 물론... 지배자들이 그것을 모르는 것이 최대의 실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역시나 그들은 재수가 없었던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있지 말아야 할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했다는 죄가 있다. 그들이 보다 일찍 태어났다면 그렇게 살다가 죽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몰락의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을 역사적인 인물로 되게 만들었다. 따지면 그들보다 더 개판인 인간들은 남아돈다.
그녀는 전혀 바깥의 삶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단지 이쁜 옷과 음식, 놀고 싶어하는 '요즘' 10대 소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사람이다. 예의와 격식은 별다르게 관심도 없고 감정에 솔직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그런 여자이다. 이런 여자들이야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녀가 자기의 위치와 주어진 조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녀의 세상물정 모르는 10대 소녀와 같은 삶이 영화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그녀가 세아이의 어머니였지만 그녀의 삶과 인생관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베르사이유를 떠나는 그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나 그녀는 재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일 것이고, 그런 사람이 지배하게 만드는 구조를 유지시키는 대다수의 무지한 동의에 있을 것이다. 혁명은 순간적이지만 구조는 지속된다. 영화는 그런것에 전혀 관심도 없고 그런 것을 얘기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게 뭔지도 모를 수 있다. 오직 상부조직의 타락과 만성적 지루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알아서 파악하고 생각하라고 하는 듯이 말이다.
누군가가 말했는지, 문제는 왕이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게 왕이라고 믿는 우리들에게 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설마... 이것이 패리스 힐튼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백만장자들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경고는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농담이 심한 것 같다. |
| 마리 앙투와네트 하면 화려함과 사치, 허영에 가득찬 왕비라는 인식이 가득했던 반면, 이 영화는 오직 10대 소녀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다. 낯선 환경에서 외로움을 달래려 택했던 길이 그녀를 결국 파국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14세를 생각하면 그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치중하고 나를 꾸미기 바빴던 14세는 세상 그 누구라도 같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그녀를 이해하게 된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소통할 수 없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이제 이 작품을 통해 그녀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