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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저자 고종석 씨에 대해 부러움과 질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말을 소재로 하여 이처럼 사회 현상 전반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하는 생각과 함께, 그의 해박한 지식이 정말 부러웠다.
우리말과 글에 관련된 지식 덕분에 밥을 벌어 먹고 있다고 하지만, 내게 우리말과 글은 참 어려운 존재이다. 때때로 마주치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각종 문학 작품과 시대의 연관, 작가들의 인생 등 미리 알고 있었다면 더 재미있는 수업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다. 때로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때우며 넘기곤 할 때, 이런 책은 매우 커다란 자극제가 된다. 러시아 출신임에도 우리 나라 사람보다 우리 나라의 역사와 말에 대해 더 해박한 박노자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부러움을 느꼈었지만 그의 경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이 책보다 우세한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사회의 이모저모를 말과 글을 소재로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말들의 풍경”은 이미 작고한 유명한 비평가 김현의 책 제목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대학 때였나, 하여튼 몇 년 전 그의 책을 우연히 얻게 되어 좀 읽다가 내 수준이 낮아서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덮어 놓았던 것이 있는데, 꼭 그 책이 아니더라도 그의 글을 한번쯤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
말들의 풍경은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된 말들의 풍경이라는 연재물을 모아서 책으로 낸 것이다.
일간지 연재물이었던 만큼, 그 주제가 다양하다. 언어학, 정치, 경제 등등 그 경계에 제한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한 소재라도 글 속에는 그 심각함이 중화되어 무겁지 않다는 점이 이 글의 장점이 아닐까?
책의 내용은 말(한국어)와 관련된 저자의 지식이나 의견과 더불어, 말을 위시로 한 그 주변의 풍경, 세태를 아울러 보는 저자의 생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말들의 풍경은 개개의 글이 연재순으로 정리되어 있을 뿐, 각각의 글이 하나의 개연성을 가지고 이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쓴 한 권의 책이지만, 그때그때의 글은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개중에는 읽는 사람에게 잘 읽히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 글의 처음은 작가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사회/세태의 여기저기를 다루면서 그 범위를 넓히다가, 점차 언어, 한국어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렇게 흘러가는 글을 마지막에 이르면, 오로지 한국어와 그 주변에 초점을 맞춘다.
나에게 있어 책의 시작은 약간 지루했고, 중반을 지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재밌게 읽은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단일 언어 사용국가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을 지칭하여 바이링구얼 또는 디글로시아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기에도 학명에서의 차이가 있다. 바이링구얼 이라고 하면 두 가지 이상의 언어가 동등한 지위로 사용되는 경우이고, 디글로시아라고 하면, 두 개 이상의 언어가 차등적 지위를 가지고 사용되는 모습을 뜻한다.
이미 얼마전부터 단일민족이라는 단어를 듣기 힘들게 되었듯이, 점차 우리의 말도 단일언어의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다. 책의 저자는 외국인 근로자가 일하는 일터를 디글로시아로 정의한다. 실제로, 근로현장에서는 한국어, 그리고 근로자의 본국의 언어, 그리고 그 사이의 소통을 위한 영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같은 국가 출신의 근로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형성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 우리나라도 필연적으로 두 가지 이상의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최근 우리는 인터뷰 또는 토론을 자주 접하게 되는 기회가 많다. 그러한 인터뷰나 토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생생하게 이야기를 듣게 할수 있고, 각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설득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 온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실은 인터뷰란 40여 년 전 미국인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이 명명한 의사사건에 속한다. 인터뷰나 토론의 경우도 그렇다. 인터뷰와 토론의 현장, 패널, 모두 그 토론이나 인터뷰를 마련한 미디어에 의해 결정된다. 카메라의 시선과 각도, 청중의 반응 이런 모든 것이 그렇다.
최근의 미디어의 경향의 정보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가짜를 얼마나 진짜 처럼 보이게 하는가에 더욱 치중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미디어를 바라보는 대중 역시 어느 것이 진짜고 어느것이 가짜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해 졌다.
아쉽게도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정보의 질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술의 발전과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좋았던 것은 말들의 풍경은 마치, 수필이나 일기를 읽는 것 처럼 지은이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간을 간접 경험하고, 또 이제는 고인이 되었거나, 늙어버린 그 당시의 젊은 작가들과 그들의 책에 대해 알게 된 점이라고 하겠다.
대량 생산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새롭게 쏟아지는 책과 미디어를 쫓아가기도 바쁜 속에서 어느새 현 시점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될 것들과 배울 것이 있는 과거를 소홀히하고 있었던 것 같아 슬그머니 반성을 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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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은 처음인 것 같다. 저자에 대한 칭찬이 너무 많아 조심스러웠는 지도 모르겠다. 그 조심스러움이 여전한 지, 첫 책으로 우리말에 대한 책을 들었다. 전공과도 연관되고, 부담도 덜 할 것 같았다.
좋은 책과 나쁜 책을 나누는 기준은 크 부분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작은 부분에서 드러난다. 특히, 수필은 그렇다. 우리말에 대한 글과 한국의 글쟁이들에 대한 글 두 부분으로 나누어 진다. 특히, 한국의 글쟁이들에 대한 글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특별한 시선이 두드러진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한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고, 반대쪽 책들은 잘 읽게 된다. 반대 쪽의 수 많은 글쟁이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괜찮다. 읽을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읽고도 그 가치를 모르는 경우다. 임재경 같은 분들이 그런 경우다. 정운영도 약간 비슷한 경우다. 그의 문체의 가치를 내 공력으로 어찌 알랴. 저자는 이런 수많은 나의 작은 내공에 의해 가려진 글쟁이들을 발굴해 낸다. 글쟁이들에 대한 관심은 특히 문체에 집중된다. 저자는 각 저자가 가진 삶과 그들의 문체를 절묘하게 또는 객관적으로 연결시키며 판단한다. 이건 여담인데, 읽다 보면 저자는 아주 냉정할 때가 있다. 김윤식이나 전혜린에 대한 평가는 뜻밖에 냉정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을 존중한다면서도, 글의 중반에 이루어진 냉정함의 여운은 너무나 강하다.
책을, 특히, 저자의 글쟁이들에 대한 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 간결하며 나만의 생각을 닮을 수 있는 문체를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른가.
글을 쓰다 보니 책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빠졌다. 이 부분은 고등학생들도 읽어 두면 좋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 이용해도 좋겠다. 언어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을 흥미롭게 써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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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인가 오프라인 서점에 책 구경하러 갔었던 적이 있었어요. 매번 순서는 똑 같은데 1층 소설 코너 잠시 훑어보고 2층은 그냥 지나 3층으로 올라가서는 국어와 관련된 코너 쪽으로 가면 인문 사회 교양 코나가 있어서 그쪽 보다가 심심하면 어린이 코너에 가서 저학년 창작동화 코너에가서 동화책을 읽곤 하지요.
인문 교양 코너에는 여러가지 책들이 있었는데, 철학 영화 종교 한국어 능력 시험 문제지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요. 그 중에 눈에 들어 온 책이 고종석 씨의 <말들의 풍경>이랍니다. 얼른 메모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가 온라인 주문을 할 기회가 있어서 낼름 주문을 했지요
'말들의 풍경'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인 것 같았지요. 킁킁 어딘가 정말 오래된 책에서 풍기는 책냄새가 나는걸요. 문학을 공부한 사람치고 비평을 공부한 사람치고 한 번은 들었을 법한 이름이 있습니다만 그 이름 바로 김현이지요. 문학평론가 김현의 책 제목 중에 하나에요. 고 선생님도 책머리에 밝혀두고 있답니다.
<말들의 풍경>은 한국어에 대한 산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정말 풍경이기도 하지요 산책과 풍경이란 말은 저의 사전에서는 여유로움이란 의미가 더해져있습니다. 산책도 걸으면서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본다는 의미이고 풍경도 인물을 받혀주는 뒷부분이니까요. 언저리라고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드는 겁니다. 하지만 풍경이니 산책이니 해도 고 선생님의 글은 교양을 넘어서서 전문적 영역까지 취급합니다. 음운론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면 그 깊이는 전공자들도 좀 더 배워야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가끔씩 언저리를 보여주시다가 그 언저리에 비친 단상 중에 하나를 잡아서 자세하게 보여주시는데요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치된 글 구조라고 하면 될까요. 독자들에게 긴장의 끈을 풀 기회를 잘 안 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말들의 풍경>은 여러 개의 짧은 글이 모여 엮은 글집이라고 생각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이 주제이고 그 다양한 변주가 글로 탄생된 것이지요. 그 단상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표준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문학작품을 통해 개인의 언어를 평가하기도 하고 지시어와 호칭어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한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백성의 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표준어의 폭력과 백성의 말 언어는 생각의 감옥인가라는 부분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참 그러고 보니 전혜린의 언어를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 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의미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당연히 눈이 가더라구요
표준어의 폭력이라는 말은 정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표준어의 폭력에 굴신하여 경상도 지방 고유의 억양과 어휘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각자 자기 고장의 말들이 열등한 말들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방언을 쓰는 일은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랍니다. 표준어의 폭력에서 벗어날 날이 빨리 오길 바래봅니다.
백성의 말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말 바로쓰기>라는 책의 언어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붙인 소제목인데 백성의 말이란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문자로 표현되는 순정한 언문일치를 주장하신 이오덕 선생님의 이야기에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입말살이가 살아야 글말살이가 풍요로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배우고 생각하다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 언어가 생각을 제약하는지 생각이 언어를 제약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의미와 언어가 합쳐지고 그 언어라는 도구로 사유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언어는 생각의 굴레가 되겠지요. 왜냐 자신의 생각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로 규정될 수 없으면 설명이 불가능하니까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말들의 풍경>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 제게 언젠가 사두고 한 번 읽고 책장에 꽂힌 책 중에 고종석 선생님의 글 <감염된 언어>가 있거든요 이 책도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어라는 필생의 화두가 관통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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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새삼스런 찬미.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영향이 크다. 한국인이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가 일본어와 중국어인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에 동아시아 삼국의 언어가 모두 올라와 있다는 아이러니는 어찌할 것인가. 요즘 작가들 가운데는 '언어의 마술사'라고 꼽을만한 이들이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나는 영문과 출신의 젊은 소설가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작가로 발돋움하고픈 야망이 있다면 영어로 글을 쓰라고 권하고 싶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고종석은 대표적인 '국사모' 유형이다. 이 책《말들의 풍경》은 저자가 한국일보에 한 해 동안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저자의 한국어 산책에 공감이 가는 일면도 있고, 반대하는 구석도 없진 않다. 가령 광고카피에 관한 저자의 예찬에 나는 다소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모국어를 망치는 대표적인 잡범이 둘인데 하나가 광고카피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잡지라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광고문안을 최신문학으로, 카피라이터를 시인으로 극찬하는 것은 거북함을 안겨준다. 이런 입에 발린 멘트는 신방과 학생이나 광고학과 학생들 앞에서나 써먹고 함부로 대중적인 지면에 올리지는 마시길 바란다.
전혜린과 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정말 불문학자 김화영이 이어령의 명의만 빌어 전혜린 추도문을 쓴 것인가. 정말 뜻밖이다. 이를 암묵한 이어령은 또 뭔가. 고종석은 일기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유족의 심사를 이해못한다고 했다. 나는 이해가 되는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고종석은 문인의 정체성을 대체 뭐라고 보는가. 가장 좋은 면만 보이는 게 문인의 덕목인가. 웃기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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