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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보면 화려해보이기 그지없는 시대. 바로 서양의 중세이다.
수많은 문화와 예술작품이 이룩되었고 태양왕과 절대왕정이라는 철옹성에 둘러쌓인 이 시대는 정말로 감히 넘볼수 없는 위용을 뽐낸다. 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그들을 지배했던 귀족과 왕족들보다 몇백갑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고있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위를 유영하기 위해서 물아래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두 발이 있듯이. 우리에게 새겨진 중세의 이미지에는 지배층이 되지 못한 보잘것없고 나약한 인간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다.
인간에게도 계급이 있고 그 계급에 따라서 누가 누군가를 지배하고 학대를 일삼아도 무방했던 그 시절에.. 너무나도 많은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된 지배층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만을 오만하게 뽐내었을뿐 정작 자기가 행해야할 의무에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될 새신부를 빼앗아 강제롤 겁탈하면서 '초야권'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오히려 그 더러운 얼굴을 뻔뻔히 들고다니고,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잘보살피고 돌보기는 커녕 오히려 괴롭히고 서슴없이 죽음으로 몰아넣던 지배층에게 피지배층이 반감과 역겨움을 느끼겐 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세워진 '바다의 성당'은 다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고귀한 성당을 만들때 오히려 낮고 평범한 외양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성당임을 표방하며 세워졌다. [바다의 성당]의 작가 일데폰소 팔꼬네스는 이런 바다의 성당이 세워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이 먹고살기 부족함 없을정도의 땅을 가졌던 자유농이 귀족들의 싸움으로 소작농으로 전락하고, 늦은나이에 맞은 아내를 '초야권'이라는 이름아해 망가트려버리고, 버려진채 죽어가던 아들을 위해 귀족으로부터 도망쳐야했던... 광인 할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건 아버지 베르나뜨, 그리고 도망자에서 환전상으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하게된 아르나우. 이 삼대의 이야기는 정말 처절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행복하게 살아갔을 것을... 귀족으로 인해 아버지 베르나뜨는 아내를 빼앗기고 도망자신세가 되고 아르나우는 자신의 사랑을 잃어버린다. 모든것이 다 그 말도안되게 부조리한 귀족들 탓이었다.
하지만 아르나우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들지 않는다. 그냥 처참한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지 않고 아버지의 처참한 죽음을 생생히 기억하며 마침내는 그들을 향해 침을 뱉고 조롱했으며 자신의 사랑마져 강탈해갔던 그들앞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리고 [바다의 성당]은 자신의 등에서 피를 내면서 돌을 옮기던 짐꾼 아르나우가 환전상이되고 남작이 되고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며 아르나우의 지지대가 되어준다.
[바다의 성당]은 우리가 알고있는 귀족들의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못살고 더럽고 처참한 소외자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들이 처해있던 불합리한 사회적 상황과 그들에게 지워진 엄청난 의무들.. 그리고 그 의무에 반하는 대접들... 읽으면서 이 이야기에 빠져들수 밖에 없는 것은 베르나뜨나 아르나우, 그리고 창녀가 되어버린 프란세스까에 이르기까지 나름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자세히 그련낸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그런 극한 상황이 한 사람을 어떻게 투지에 불타오르게 하고 또 어떻게 그 사람이 변해가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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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나라에서나 민중(??)들의 고난이 국가와 민족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이 소설로 스페인의 민중의 삶들을 살펴보며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민중(백성)들의 삶과 비교되는 점은 까달루냐의 시민들의 자발적인 전쟁참여 등이 보다 자주적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130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후반 그리고 조선개국이 1392년인점에 비추어 양국간의 역사비교도 자못 흥미롭다.
스페인 민중들의 삶, 열정, 그리고 애환과 고려, 조선시대의 옛선조들의 삶, 열정, 그리고 애환 중에 국가의 근간을 이룬 뭇백성들의 애환이 생생이 눈앞에서 겹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변호사인 작가의 사건의 빠른 전개는 자칫 지루할 뻔한 장편소설 읽기를 흥미롭게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페인 민중들의 삶을 살펴보며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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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으로 된 "바다의 성당"은 그 한 권 한 권의 두께도 엄청나서 읽기까지의 미룸이 계속되었다.
첫 장면부터 망나니 같은 영주로 인해 신부와 신랑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모습이 묘사되면서
하지만 나의 이러한 분노와는 달리 농노인 베르나뜨는 아들 아르나우를 위해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는가'싶은 악인들이 판을 치고
하지만 그것은 베르나뜨와 아르나우만의 고통과 부당함이 아닌 것을
이 책은 사실 영웅을 만들고 통쾌한 복수극을 보여주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동화처럼 은혜를 갚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부자가 되기도 하지만
아르나우는 그저 소설 속의 인물일 뿐이라고 그래서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갔다고 하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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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428페이지, 25줄, 28자.
아르나우는 페스트가 번질 때 유태인 아이들을 보호해 주게 됩니다. 그 인연으로 라켈과 주세프의 아버지인 하스다이와 그 종 사핫과 알게 됩니다. 유태인의 사업은 보호를 빙자한 강탈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하스다이는 아이들을 보호해준 대가로 아르나우를 환전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사핫이 기옘이라고 개명하고 옆에서 돕게 됩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게 되자 뿌익에게 보복을 하는데, 국왕이 까스띠야를 물리치는데 기여한 공로로 남작으로 임명하면서 피후견인인 엘리오노르와 결혼하도록 합니다. '어중간한 보복은 또다른 보복을 부른다.' 가 생각납니다. 드디어 바르셀로나의 영사까지 오른 것을 정점으로 이제 뿌익과 엘리오노르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엘리오노르는 아르나우를 종교재판소에 밀고합니다. 종교재판소에서는 재산을 몰수할 수 있기 때문에 재판을 강행합니다. 마르 건 때문에 떠났던 기옘은 주세프의 편지를 받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왕자와 담판을 벌이고 또 종교재판소를 적당한 조건으로 회유합니다. 조안은 엘리오노르를 찾아가 그녀를 태워죽이고 자신도 죽습니다.
귀족과 결혼하면 귀족으로 편입이 된 모양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통 낮은 신분으로 내려가지 않았나요? 자녀들의 경우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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