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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로 육박해 오는 르네상스 미술품들의 의미
"삶의 한가운데로 육박해 오는 르네상스 미술품들의 의미" 내용보기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이지만, 이 책의 독후감은 아무래도 미술사 관련서적을 읽었다기보다는, 미술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와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쪽으로 기운다. 비전공자로서도 전혀 난처함이나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미술에 갇히지 않은 저자의 접근방식 덕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
"삶의 한가운데로 육박해 오는 르네상스 미술품들의 의미" 내용보기
저자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이지만, 이 책의 독후감은 아무래도 미술사 관련서적을 읽었다기보다는, 미술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와 정치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더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쪽으로 기운다. 비전공자로서도 전혀 난처함이나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미술에 갇히지 않은 저자의 접근방식 덕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문학이나 사회학에 더 익숙한 일반인들에게 부담 없이 읽힐 듯하다. 이 정도면 술술 읽히는 정도가 아니라 탐독(耽讀)에 값할 만하다. 사실, 책제목이 다소 딱딱한 감이 있어서, 지나치게 전문적인 관련 용어들이 삼엄하게 진을 치고 책읽기의 의욕을 무참하게 꺾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운 감도 없지 않았지만, 저자의 시선이 가진 매력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관례적인 미사여구와 그만그만한 찬사들, 동의할 수 없는 감탄들이 그림소개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제1장, '14-15세기 피렌체의 가족예배실 벽화 읽기'를 통해서 일찌감치 씻을 수 있었다. 풍부한 도판으로 뒷받침된 꼼꼼하고 차분한 분석은 오히려 두 번째 미덕이라 해야 할 것이다. 눈길을 끄는 가장 큰 미덕은, 명화(名畵)로 교육받아 온 과정에서 이미 감상의 대상으로서는 화석이나 다를 바 없이 자동화되어 버린 그림들이 저자의 분석을 통해 여전히 흐르는 당대의 맥락 속으로 그 의미가 되살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지된 과거의 유물(遺物)로 박제되지 않고, 순수회화의 고귀함으로 정지되지 않고, 구체적 삶의 맥락 가운데서 생생하게 그 작품의 현실적 필요와 힘이 충분히 느껴졌다. 저자가 동사무소에 걸린 어색한 포즈로 서 있는 대통령의 사진이 갖는 의미를 물을 때, 클린턴의 정치광고가 5백년이나 된 르네상스 지도자들의 낡은 수법을 답습하고 있음을 지적할 때, 오래된 미술품의 의미는 우리들 삶의 한가운데로 육박해 온다. 저자가 신비의 갑피(甲皮)를 벗기는 것은 미술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술품을 주문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부풀려진 이미지를 만들려 했던 르네상스의 귀부인이나 정치가들이 '예술 창작의 후원자'라는 빛의 베일을 벗고 까탈스럽고 말 많은 단골손님이나 상품 주문자의 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면, 르네상스 예술에 가장 큰 기둥이었던 교회 역시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중세 말, 자본주의 싹트기 시작할 때, 교리로는 고리대금업을 금하고 면죄금으로 이윤추구의 죄의식을 사하였던 교회의 이중적 모습 역시 적나라하게 지적된다. 심지어 성화(聖畵)의 주제까지도 고리대금업자들의 이해가 반영되어 <세금을 내는 예수>가 그려진 사실을 읽으면, 성화에 대해 갖는 우리의 종교적 편견과 경직된 사고(思考)에 실소를 금할 수 없게 된다. 벨베데레 정원을 지어 고대 조각을 장식하고 베드로 대성당의 대규모 증축에 착수하여 1508년 미켈란젤로에게<천지창조>를, 라파엘로에게 서명실의 벽화와 '엘레오도로의 방'의 벽화를 주문한 교황 줄리오 2세의 인문주의 정책의 허상을 밝히는 대목에 오면 필자는 한층 더 단호해진다. 현실을 개혁하기보다는 학문과 예술, 신학까지도 자신의 이미지와 개념을 미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교황에게는, 모여든 학자와 설교자, 화가들이 사실상 교황의 이미지 메이커들, 흥행사에 불과했음을 입증한다. '르네상스 교회에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미화가 아니라 개혁이었다'고 저자가 말할 때, 그는 미술이 정치의 도구가 되어 권력의 요구에 부응한 과거 역시 냉정하게 드러내는데,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는 깔끔하고 세련된 갤러리에 갇힌 오늘, 우리의 미술품이 우리 사회에서 담당하고 있는 기능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3장 '광장과 미술 그리고 정치이념'에서 이제는 예술품으로만 그 역할이 정지되어 버린 <다비드>상의 제작 과정과 원래 위치, 위치 변경을 둘러싼 공화국 피렌체 시민들의 논의와 관심을 설명하는데, 광장과 조각이 정치이념을 살아 숨쉬게 하는 공간환경으로써 기능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 예술이 시민들의 생활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한다. 독자가 이 부분을 읽으며 서울 거리에 세워진 동상들과 이곳저곳의 광장들을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외에도 저자가 이사벨라 데스테의 미술후원의 성격을 들여다 보며 중앙 문화에 대한 선망을 고급 키치로 메울 수밖에 없었던 변방의 욕망을 읽어내는 장면 역시 독자로 하여금 우리의 문화 형편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깨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장면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이 책은 그 미술품을 가능케 했던 '르네상스의 사회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의 문화와 예술'을 생각게 한다. 221개나 되는 고급스런 도판이나 친절한 해설, 메디치 가(家)등,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흥미로운 스케치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만만치 않은 즐거움임을 인정해야겠지만, 단순한 호기심이나 약간의 지적 허영심만으로 책을 덮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이곳'을 고민하게 하는 저자의 피할 수 없는 진지함 때문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이 책은 르네상스 미술의 주문자와 그의 목적을 밝힘으로써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다. 책 제목에서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라는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르네상스 미술의 후원자는 엄밀히 말하면 '후원자'이기보다 '주문자'라고 함이 적합할 것이다. 이들은 미술의 진흥을 위하여 뒤에서 도와주는 공익의 후원자가 아니고 미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이용한 정치가, 세력가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후원자라고 번역하는 patron의 어원은 후원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patron의 이탈리아어 patrono는 수호자protector, 후원자supportor, 단골손님client의 뜻으로 쓰이지만 그 어원은 고대 로마 시대 '평민의 보호자', '노예의 주인'에서 기원하니 더욱 의미하는 바가 크다. 르네상스 시대의 주문자와 미술가의 관계를 보면 이들의 후원의 관계이기보다 주종에 가까운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h*****5 2002.04.2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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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들의 미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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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일 전에 이 책의 저자이신 이은기 교수님의 중세 미술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이 분이 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매번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성당과 교회, 궁전, 그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접하게 되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예술품들에 대한 감상과 그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왔는데, 이 책을 통해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에 대한 많은 이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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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일 전에 이 책의 저자이신 이은기 교수님의 중세 미술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생겨 이 분이 쓴 책을 찾아 읽게 되었다. 매번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성당과 교회, 궁전, 그리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접하게 되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예술품들에 대한 감상과 그 이해의 폭을 조금씩 넓혀왔는데, 이 책을 통해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시대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에 대한 많은 이해를 도모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전공한 저자의 연구 주제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은 것인데, 아직 이탈리아에 가보지 못한, 하지만 몇 년 안에는 꼭 가볼 예정인 나로서는 좋은 공부가 되었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 미술은 결코 독립적일 수 없었다면서 미술은 언제나 부가 있는 곳에 함께 했으며, 부는 또한 권력과 짝을 짓고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즉, 중세와 르네상스의 교회, 궁, 교황청은 미술과 부, 그리고 권력이 모이는 곳이었으며, 화가는 자신들의 재능을 팔고, 재력가는 그림을 통해 부를 과시하고, 권력자는 그들의 힘을 선전하는 곳이었다는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은 독립된 주제를 가진 여러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주제들이 다들 흥미로웠다.

 

 

가장 먼저 14세기와 15세기의 교회 내 가족 예배실을 들여다보며 미술과 사회의 변화 양상을 묘사하고 있다. 무덤을 교회에 안치하는 관습은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있어 왔지만 주로 순교자, 성인, 왕실 등이 그 대상이었는데, 13세기 말부터 상인계급이 부상하여 경제와 정치 주도권을 잡으면서 그들 또한 교회 안에 묘실을 가지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교회의 교리가 도덕의 기준이 되었던 중세 말에 교회에서 금지하던 이윤추구와 일종의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바로 그 상인 가문들이었다는 말이다. 게다가 13세기와 14세기의 교회는 가난을 실천하고자 하는 탁발수도회 소속의 교회들이 가톨릭의 큰 흐름을 형성했기에 상인계급이 교회 안에 무덤을 마련하는 일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을 살펴보면 탁발수도회가 신흥 상인 가문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 교회의 건립과 장식을 이러한 상인들이 후원하여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교회는 상인과 은행업을 하는 신흥부자들이 죄의식에서, 그리고 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마련해주어 서로 win-win했다는 것이다.

 

 

즉, 상인 부자의 입장에서는 기부금을 냄으로써 죄를 씻고, 교회 안에 묘자리를 마련하며 이를 대중에게 보임으로써 가문의 선전까지 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탁발교회들은 죄를 사하여줌으로써 예배실을 장식하고, 교세를 확장하며, 복지 후생사업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14세기 초의 가족 예배실은 상인 가문의 재원으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종교적인 내용의 벽화로 그려진 데 비해, 15세기에는 교회 안의 벽화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가족의 개인사가 더 중요시되는 모습으로 크게 변모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 사례로 피렌체 시내에 있는 교회들 안의 가족 예배실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경향은 그 당시 사회에서 이윤추구와 은행을 통한 이자소득이 점점 정당화 되었다는 사실과 15세기 전반에 주변국가와의 전쟁으로 국가예산이 크게 요구되자 성직자와 교회건물에도 세금을 부과했던 사회적 상황들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이어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제도 무척 흥미로운 것이었다.

 

 

길드 중심으로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중세 말이었던 14세기 시에나의 캄포 광장, 시민대표로 공화제가 형성된 15세기에서 16세기 초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 교황의 권한이 확장된 16세기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의 형성과 여기에 설치된 조각들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우선 캄포 광장 앞에 건립된 시청 안에 있는 벽화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의 알레고리와 효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당시 시에나를 지배하고 있던 9인 정부의 치적과 그 당시 생활상을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또한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놓여 있는 유디트, 다비드, 헤라클레스 조각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그 당시 세속정치의 중심인 광장에 구약성경의 인물과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가져다 놓은 이유는 정치적인 노림수 때문이라 한다. 유디트 조각상은 원래 메디치 가문의 개인 재산이었는데, 이것을 광장에 옮겨 놓은 이유는 메디치 가문 덕으로 오만한 적을 물리쳤으며 이로써 피렌체에 평화와 번영, 복지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공언하고자 했기 때문이라 한다. 독재자를 제거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는 이미지를 가문과 연결시켜 자신들에게 향하던 정치적 비난을 막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또한 다비드 상은 원래부터 현재 있는 그 자리에 놓여지기 위해 주문된 것이 아니고, 대리석 또한 미켈란젤로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라면서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결국 다비드의 주문과 제작 목적은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공화정 정부의 건물 앞이라는 상징적인 위치에 놓여지게 된 것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되고 있는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에 대한 언급도 자못 인상적이었다. 교황의 명령에 따라 미켈란젤로가 조성한 이 광장에 왜 이교도의 산물인 로마 시대 조각들을 모아 시청 앞에서 수장하고 로마 황제를 광장의 구심점에 두었는지 그 이유가 설명되고 있다. 교황이 이렇게 한 목적은 옛 로마의 전설과 황제의 권력을 카피톨리네 언덕에 되살려 놓으려는 것으로 그 당시 실추되었던 교황권 회복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특히 이 광장 중심에 놓여 있는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에 대해 재미있는 언급이 있는데, 중세 동안 로마의 황제상들은 이교도의 상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기마상으로는 아우렐리우스 상만이 남아있는 이유가 이를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오인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세 번째로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는 그 당시 유행처럼 번진 고대 조각품 수집에 대한 것이었다. 그 당시 고대의 발견은 14세기 인문주의자들에 의해 비롯되었으나 미술품의 수집과 진열은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의 목적에 따라 추진되고 가속화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시작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서재에 고대 조각들을 수집해 놓는 것이었다고 한다. 과거의 인물이나 신상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과거를 알고 이와 대화하는 인문학적 관심의 소산으로써 그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곧 이어 이러한 고대 조각들을 서재가 아닌 개인 정원에 수집하여 남에게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소유자의 안목과 재력을 짐작하게 하는 척도가 되었으며, 이러한 수집이 크게 유행하여 품위유지와 부의 과시용품이 되자 16세기에는 원작을 복제하거나 작은 크기로 만들었으며 모조품 또한 성행하였다고 한다. 특히 고대의 원작을 갖기에는 재력과 권력이 부족했기에 복제품과 모조 조각으로 거처의 품위를 지켜야 했던 이탈리아 북부 작은 도시 만토바의 여주인인 이사벨라 데스테의 수집품들이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에 많이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에 작년에 가보았던 그곳의 인상적인 소장품들을 새삼 다시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이사벨라 데스테의 미술 후원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 또 다른 한 장을 할애하여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미술품 주문과 수집은 애호를 넘어선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었다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그린 초상화는 거절했다는 사례를 들고 있다. 또한 메디치 가의 미술후원에 대한 이야기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미술을 아주 효과적인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성경의 인물이나 역사 사건의 인물과 대치시키도록 주문하면서 무슨 색, 어떤 모습, 어떤 배경, 어떤 사물을 넣으라는 것까지 화가에게 지정해주었다고 하니 그림 주문자의 파워가 엄청났다고 하겠다. 특히 이렇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는 초상화 만한 것이 없었다면서 이탈리아 중부 동쪽에 위치한 우르비노의 공작이었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초상화와 메디치가의 공작이었던 코시모 1세의 초상화를 자세히 뜯어보고 있다. 몬테펠트로의 초상화에서 보는 이의 시선을 아래로 두어 주인공을 조금 치켜보게 하는 시각을 적용한 것과 갑옷을 입고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각각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식 사진과 비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코시모 1세는 갑옷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갑옷을 입은 장군으로 자신을 그리게 한 것도 모자라 자신을 역사적인 인물인 아우구스투스와 비교하고, 신화 속 인물인 헤라클레스에 견주며, 구약성서의 영웅 모세와 동일시하고 온 가족의 초상을 성 가족의 모습으로 나타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 당시 메디치 가문이 처한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군주로 군림하기 위해 자신을 영웅의 모습으로 부각시키고, 윗대의 정통을 잇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술책이었다고 한다. 이 책 후반부의 주제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가지 주제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교황의 인문주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와 우피치의 전시물 변천사였다. 우선 가톨릭 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주거공간이었던 교황청의 서명실에 그리스 철학을 주제로 한 아테네 학당이 그려져 있는데, 과연 가톨릭 교황의 주거공간에 어떻게 이교의 철학자들이 그려질 수 있었는지 매우 탐구적인 주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실 개인도서실로도 사용했던 그 방 벽화의 네 가지 주제인 신학, 철학, 문학, 법학은 당시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는 분류였다는 것과 벽화의 도상들이 인간의 지식은 모두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해석이 유효한 것 같았다.


 
이어서 우피치의 변천사를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현재 전시는 시대순으로 체계 있게 관람자가 편안한 위치에서 중요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했지만 이것은 20세기에 발달한 미술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고 16세기 당시와는 많이 달랐다고 한다. 이를테면 메디치가의 조상들의 초상화가 회랑을 둘러가며 걸려있었고, 회화는 지금의 3분1 정도만 있었으며 무기나 귀중품, 수학도구들과 천체과학 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공간에 있던 회화와 조각, 과학기구와 무기, 광석들이 서로 다른 박물관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후반 계몽주의와 미술의 아카데미즘이 비롯되면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토스카나 공국이 오스트리아로 넘어간 이후 우피치는 공공 미술관화 되었다는 것이다. 갑옷과 무기도 없애고 공방도 없애고 조각과 회화 이외의 것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는 말이다. 이후 르네상스 그림까지도 순수 회화로 보려던 20세기 모더니즘 회화 개념과 박물관의 대중교육적인 기능이 미술품의 심미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사회문화적 관점을 배제한 전시를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 비롯된 문제인식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란 역사의 문맥에서, 그리고 교회라는 공간 상황에서 독립된 예술품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전시를 통해 다양한 실험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을 조형적인 완성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또는 이미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간의 인식 작용으로 보는 시각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도시마다 공공미술관이 들어서며 후원자는 이름을 남기되 미술의 향유자는 대중이 된 현 시대에 미술의 민주화가 진정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세기 미술가들은 부르주아들의 취향을 선도하였으며, 20세기에는 전위의식으로 무장한 미술가들이 대중의 감수성을 키치라 업신여겼다면서 보통사람들에게 되돌려진 것 같았던 미술관은 또 다른 형태의 제도적인 권력 기관이 되었다고 언급한다. 미국이나 일본, 스페인이나 한국의 미술관에서도 우리가 만나는 작품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피카소와 헨리 무어 작품이 있어야 구색이 맞고, 프랭크 스텔라와 엔디 워홀이 있어야 현대미술관이라는 논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중요시 여기라고 강요 받고, 또 자진하여 이들을 숭상하고 있다면서 500여 년 전 르네상스 사회에서 그랬던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정말 생각해 볼만한 화두를 던지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고 있는 것이다.

d****o 2015.11.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