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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이거 대단히 재미집니다. 제가 딱 좋아하는 타입의 소설이었습니다. 작렬하는 묘사랄까. 생생한 현장감이 거의 출발 비디오 여행 수준이었다니까요. 작가는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이고요, 이 작품 또한 쥬라기 공원처럼 과학 지식을 토대로 쓴 소설이고 그 과학의 골자는 유전 공학입니다. 현대 사회가 유전자 연구를 어떻게 오용하고 있는가를 고발하는 이 작품은 마치 전문 과학서적에 버금가는 신지식의 활로를 활짝 열어주심에도 불구하고 아우, 쉬워. 너무 쉬워서 앵무새도 이해해.
일단 말씀드린대로 묘사가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시종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을 하는 원숭이 데이브와 역시 말을 하는 앵무새 제라르가 등장하고부터는 가히 환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의 행동과 상황 묘사가 예술적으로 그려집니다. 흡사 스티븐 킹을 연상케하는 디테일한 묘사와 생생한 현장감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읽고 싶을 정도로 사람을 빠져들게 합니다. 개나 고양이도 읽으면 빠져들지 몰라. 어찌나 그 상황들이 생생한지 엄청나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함에도 그들이 누구인지 전혀 헷갈리지 않고 착착 기억이 날 정도예요. 그러니까 어떤 설명 속에서 거론되었던 인물들이 아니라 무슨 상황속에서 벌어진 현상을 묘사하던 과정 중에 소개되는 방식인지라 소위 말하자면 스스로 연상 기억학습법에 의해 이야기와 인물이 저절로 암기되어지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억삼이, 억마디 하면 그중 세 마디만 사실이랄 정도로 뻥이 심한 사람이라고는 해도 이건 진짜라고요. 책 읽은지 며칠 됐는데도 전, 지금도 여기 나오는 애들 이름 다 기억해. 물어보면 다 대답할 수 있어. (하나 정도는 모를 수도 있겠다) 그 정도로 상황묘사가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단순히 재미만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유전자가 특허가 되는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와, 그거 좀 곤란하든데? 일례로 십수년 전에 유행했던 사스가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을 때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 병의 유전자 특허 문제 때문에 섣불리 연구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질병 유전자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었던 관계로, 혹은 그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가 소송이라도 붙으면 그 금액이 천문학적인 숫자이기 때문에 누구도 아무렇게나 질병 유전자 연구를 쉽게 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실제로 질병 유전자를 개인 혹은 한 기업이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경우가 꽤 있어, 어떤 병이나 기타 고칠 수 있는 기술력은 충분히 됨에도 불구하고 그 특허 사용료가 엄청나서 손을 대지 못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랄 수 있는데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발견한 A 회사가 그 유전자에 특허를 내버리면 아무도 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당연히 치료법 연구도 못하는 거죠. 현재에도 그런 종류의 질병 유전자가 일개 개인 혹은 단체에게 묶여있는 경우가 꽤 되나 보던데. 오빠 금발 머리 유전자 사주세욤. 네?
그러고보니 언젠가 다국적 기업 제약회사들의 음모론을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이미 완치율 100%의 신약을 개발하고도 시중에 풀지 않는 여러가지 이유들을 들은 기억이 있는데 생각은 나질 않네요. 아무튼 그게 아마 그런 기업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참지 못해 나온 직원이 양심 선언하면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유전자 특허 또한 그런 형태의 잘못된 권익이 상당한가 봅니다. 읽다보면 이 유전자라는 거, 상당히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극화된 이 소설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습니다. 이 작품의 소재를 옮긴이의 글에서 한 단락을 발췌하여 말씀드려보자면, <오늘 우리집 앵무새가 미적분 숙제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짜증이 심했던 엄마는 얼마 전에 받은 유전자 대체 요법을 받고 상냥한 아줌마가 되었다. 아참, 며칠 전에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셨다. 별로 슬프지는 않다. 그간 정기적으로 모아둔 유전자 샘플을 가지고 다시 복제하면 되니까> 십수년 전 배아줄기세포가 세간에 화두가 되었던 시절에 우린 그런 얘기를 했었더랬습니다. 저게 성공하면 이제 약국이나 병원 같은데 가서 아우, 요즘 왼쪽 눈 시력이 좀 떨어져서 그런데 새걸로 바꿔 껴주세요, 하는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상기에 나온 역자의 가설이 이 소설의 줄거리와 매우 유사합니다. 말하는 앵무새와 침팬지, 그냥 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 유전자와 결합되어 거의 인간과 유사한 행동을 하고, 마약 중독이나 푹력성이 심한 사람에게도 성숙 유전자를 주입하여 그 성격 자체를 바꾸는 사례들이 소개되는 데요, 우와, 놀라울 따름이지요. 정말 쇼킹 했던 건 생물 들의 유전자를 변형해서 그들의 몸 한 부분을 광고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에 붙은 광고판처럼 날아가는 새나 바다 속 물고기의 등판에도 기업 광고 로고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인거거든요. 유전자 조작으로. 띠딩띵띵, 우와. 실으다. 대박 실으다.
얼마 전에 에단 호크와 우마 서먼이 주연으로 나오는 <카타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도 유전자가 발달한 미래 사회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못보신 분들 보세요.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도 그 영화와 맥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유전자 특허 시대가 향후 어떻게 인류를 위협하게 될지도 콕콕 집어 주시는 마이클 씨, 요즘은 대체 뭘 하고 지내시나? 끝으로 번역도 아주 좋습니다. 번역 문장, 묘사가 아주 감칠나게 입에 착착 감길 정도로 좋고요, 문장 호흡, 리듬감도 좋고 무엇보다 그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쉽게 풀어내느라 고생 좀 하셨을 거로 여겨집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노력이 담긴 번역이었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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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근육 한 조각을 떼어내는 일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픔? 흉터? 그런 것은 상관도 없었다. 내가 정말 화가 났던 건 내 근육 한 조각을 소유(?)하고 있던 병원에서 다른 병원에 그 근육의 샘플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을 때 그들이 그것은 내 것이 아니고 병원 것이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했던 때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생명공학에 대해 유전자 특허를 신청하기 위해 별별 유전자를 다 만들어 내는 코미디같은 모습, 회사의 중요한 상품을 빼돌려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하고 다시 그를 잡으려는 현상금 사냥꾼, 시신을 파는 의사, 빠른 특허를 위해 무조건 인간에게 실험을 하고 보는 연구원, 종교의 힘으로 유전공학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사람과 아랫사람의 성과를 도둑질하는 높은 사람, 말하는 오랑우탄에 산수하는 앵무새에 인간의 유전자와 결합되어 탄생된 휴먼지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씨실 날실처럼 얽혀 작품은 유전공학의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내 눈길을 가장 끈 것은 백혈병을 고치려던 한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생체 실험을 당했고 병은 나았지만 그의 세포는 이미 그의 것이 아닌 세포를 산 한 회사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또한 그의 몸 속 세포와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자손손의 세포가 상품으로 자신의 것이 아닌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마치 그때를 떠오르게 해서 섬뜩했고 분노했다. 맨 앞에서 언급한 내 이야기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다. 이것이 이렇게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말한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대세에 따라 법을 잘 만들어 과학자들이 정도를 지켜 실험하게 하자고. 맞는 말이다. 어느 제약회사 하나가 어떤 유전자를 소유해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유전자에 대해 돈을 내야하고 병원이 치료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어 더 비싼 진료비를 내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모순을 줄여보자는 얘기 도 지지한다. 어찌하든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일 테니까. 황우석 사태가 났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모든 연구자와 학자를 매도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그들의 연구가 불치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연구의 당위성과 인간의 존엄성에 기여하리라는 것도 분명하다. 부작용도 있겠지만. 그리고 치료제, 치료 방법은 개발이 되었는데 정작 돈이 없어 죽어야 한다면, 그 치료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면,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목숨을 잃고 있지만 이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작가가 자료 조사도 많이 하고 너무 황당하게 쓰지 않아 쥬라기 공원보다 훨씬 읽기 좋았다. SF라기보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미래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당장의 내일 일도 모르는 인간이. 이런 걱정과 우려, 기대에도 미래는 현재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좋은 작품이었다. 기대 안하고 봤는데 정말 괜찮은 작품을 편견 때문에 읽지 않고 넘어갈 뻔 했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 중이다. NEXT, 이것은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바로 지금, 지금을 관통하는 경고의 이야기고 우려의 목소리다. 바로 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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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야기(좀 잡스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일상생활은 짧은 시간만 지나도 좀더 편리해지고 여가는 늘어나며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에덴동산에는 대책없는 여가를 자신의 사소한 재능을 뽐내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어느샌가 서점가엔 그런 made in NET 서적이 자리를 넓히기 시작했고 이젠 조금이라도 남의 시선을 끄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고 책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소설의 경우엔 더욱더 그렇다.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허구의 이야기'라는 명목하에 단지 재미만 있다면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평면적 상상력으로 뒤덮인 소설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 수가 적을 때는 나름의 검열을 거치며 책을 고를 수 있었지만 그 수가 많을 때는 오히려 역검열이 일어나버린다. '단지 재미있는', '단지 즐거운' 이야기들의 급류속에서 가치있는 이야기들은 그 물살에 가려져버리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덮으면 거기서 감상이 끝나버리는 이야기가 아닌, 정말 새로움으로 넘치고, 눈 앞의 책을 덮어도 머릿속에선 페이지의 팔랑거림이 멈추지 않는 이야기들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정말 원하는 이야기를 건져내는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으니, 바로 이야기꾼을 먼저 찾는 것이다. 탁월한 이야기꾼은 잠시 쉴 때가 있을 망정, 멋진 이야기를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내가 항상 리스트에 올려두고 있는 그 멋진 이야기꾼 중, 최상위라고 말해도 될 작가가 바로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책 이야기(줄거리를 언급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불필요한 감정적 서술 따윈 하지 않는다-. 역시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라이튼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페이지 속 인물을 꿰뚫으면서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는 서술 방식은 이야기를 좀더 깔끔하게 만들어줬다. 무엇보다도 '이건 마이클 크라이튼이다!'라고 소리치도록 만들어준 것은 역시 소설이 다루고 있는 분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었다. 책의 말미에 실려있는 참고 서적들에 대한 이야기만도 8페이지에 이른다. 그 분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쉽게 넘어가버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그는 냉철히 지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곳곳이 등장하는 전문 정보에 독자들이 지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이 작가의 빠질 수 없는 재능임에 틀림없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눈 앞의 페이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전문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리라.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는 소설을 그저 허구의 이야기로 남겨두지 않는다. 픽션과 펙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는 유전공학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유전자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거론한다. 그 분야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그저 수용적 자세만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러한 무지를 악용하여 상업적 목적을 이루기에 바쁜 기업과 대학의 피폐를 지적하고 있다. 단순히 생명윤리를 언급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언급하고 끝내기만 하는' 현실에 대한 질책을 담아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은근히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하지만 않을 뿐, 그러한 문제들을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소설이 끝난 뒤, 거의 항상 '이 이야기는 완전히 허구다'로 시작하는 작가 후기 대신, 직접 쓴 '유전자 특허를 중지하라'라는 하나의 논설문이 들어가있다. 그는 단지 생명공학 붐을 이용해 킬링타임용 소설을 팔아먹을 생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현대 과학과 기술 그리고 기업에 대한 희망과 우려를 담아내어 소설이 끝나면 현실이 그려내는 또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넥스트' 역시 마찬가지였고 오히려 그런 경향이 가장 강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외적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여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서, 새로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 '넥스트'는 지금까지의 '크라이튼 표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각 작품들마나 개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넥스트'의 경우는 좀더 두드러졌다. 예전까지 그의 소설들이 굵직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거기서 조금씩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을 그려냈다면, '넥스트'는 다수의 가지들이 서로 얽히고 섥혀 동시다발적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전개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번 소설이 전작들이 비해 조금은 복잡하고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비중 있는 인물들로 이루어진 일행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나름의 길과 방법으로 서로를 연결시키는 가지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소설들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넥스트'에 와서는 좀더 본격적으로 쓰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점. 그의 소설 중 최근 작품들은 공간 혹은 시간적 제약이 걸려있었다. '콩고'에서는 정글, '쥬라기 공원'과 '잃어버린 세계'에서는 섬, '타임라인'에서는 14세기 프랑스, '먹이'에서는 사막 한가운데의 연구시설. 하지만 '넥스트'에서는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공간적 제약도 없고 시간적 제약도 없다. 왜 그럴까. 물론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유전자 공학'의 특징에 원인을 두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전자 공학은 단지 '지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래엔 더욱더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기업과 대학이 연관되어 그 영역은 정의 할 수 없을 만큼 넓어질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도 모든 사건을 종결지으며 끝내지는 않는다. 단지 이야기 속 인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의 흐름 속에서 잠시 벗어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낸다.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것만 같은 '유전자 공학'의 어두운 급류와 그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감각에 대해 작가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으로 짧게 언급한다. '그 말에 헨리는 소름이 끼쳤다.' 잡다한(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다. 누군가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이 감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든 말든 별 관심 없다. 그보다 이걸 읽을 사람이 딱히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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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마이클 크라이튼의 책은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 책 또한 마찬가지다. 좀 난해한 내용이 담겨서 몇번씩 읽어본 구절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세계, 유전공학에 대한 새로운 모습. 세포의 소유와 유전자의 주입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깃들어 있다. 마치 소설이 아니라 논문이라 기사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데이브와 제라르의 모습은 사실 충격이었고, 자연을 이용한 광고는 내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엄청난 광고의 홍수 속에 살고있는데 사막이나 바닷속 생물들에게까지 광고 문구를 넣을 수 있다니.. 기사로 들어간 황우석 박사의 일화는 정말 창피했다.
그리고 그의 참고문헌을 보면서 소설가도 이 정도라면 박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소설로 여겼지만 결코 쉬운 소설은 아니었다. 자연에 대해, 내 몸에 대해 더욱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하지만 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이대로 죽고 싶다. 그저 치매에 걸리지 않고 늙으면 늙는대로 주름 가득한 모습으로 살다가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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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 바라고 원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인간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프라이버시 침해 등으로 인류 존재자체를 위협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산업혁명부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이해타산에는 상관없이 자신의 발전과 성취감에 만족하고 더 나아가 편리하고 윤택한 생활에 그 목적을 두고 인류발전을 위해 기술개발과 과학발전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현재.. 그리고 미래에는 자신의 명예와 부의 축적을 목적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술개발과 과학발전이 인류행복을 위해서만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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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Crichton. Next. 이 원경 역. 넥스트(Next, 저자: 마이클 크라이튼). 김영사, 2007. 본서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단순히 소설이라고만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소설이면서도 사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본서는 소설로서 윤리적 안내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들에게 새로운 윤리의식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렇지만 본서를 들고 읽기 전에 우선 표지를 보면 우리의 독서 감각을 일깨우며 끌어당기는 내용들이 있다. 표지에는 이러한 말들이 있다. “기아, 전쟁, 페스트... 더 이상 인류의 재앙이 아니다! 21세기 가장 큰 공포는 유전자 조작에서 시작된다!” 표지를 쓴 사람은 계속해서 이렇게 권유한다. “전 세계를 강타했던 게놈 프로젝트에서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황 우석 박사 사건까지! ‘지적 소설’ 장르를 개척한 테크노스릴러의 거장 마이클 크라이튼이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는 유전공학을 파헤쳤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시시각각 대두되는 새로운 가능성이 교묘히 뒤섞이며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이 놀라운 과학 팩션(faction)에 주목하라!” *괄호 안 영어는 필자의 것임. 그리고 이어지는 세 가지 초록색 문장들은 매우 중요한 말들로서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인간의 유전자는 3만 5천 개,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겨우 400개에 불과하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죄를 미워하되, 유전자를 탓하라!” “유전자․DNA․세포는 최고의 블루오션?!” 이 세 가지는 많은 논쟁거리이지만 중요한 이슈나 논의의 제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의 윤리의식에 던지는 중대한 질문! 이제 새로운 선택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글 가운데 상업적으로 주목을 끌게 하는 말이 일차적으로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DNA를 최고의 블루오션이라고 하는 것은 마지막에 보여주는 윤리의식과 관계하여 고려해야 할 말이다. 즉 윤리의식을 고려하지 말고 DNA 연구를 하라고 하면 상업적으로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의 질서와 인간에게 올 가능성이 있는 재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 수를 가지고 인간과 침팬지의 구별을 유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개라도 다르다면 다른 것이고 더 많은 쪽에서 더 적은 쪽으로 또는 더 적은 쪽에서 더 많은 쪽으로 진화했다는 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본서에서는 더 많은 쪽에서 더 적은 쪽으로 진화한 것이라는...또는 그 반대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 침팬지와 인간의 조상을 하나로 본다면 증명해야 할 요청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오래 전에 일어난 진화론의 재현이 아니라 하더라도 정말 오랜 세월이 가면 진화하는 것이며 침팬지가 변하여 사람이 될 수 있는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DNA와 침팬지를 구성하는 DNA의 수로 본다면 공통적인 DNA로서 구별을 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무생물과 생물의 구별도 없어지고 진화론적 입장에서 생물의 종을 구별하려는 가운데 모든 생물을 DNA의 차이로 구별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인간은 DNA로만 볼 수 있는가 이다. 또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DNA는 언제부터 다르게 진화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정말로 생물과 무생물을 분자로만 보고 구별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인가? 그렇게 생물과 무생물은 차이가 없는 것인가? 필자는 생물과학에 무식하여 지금 표현하고 있는 것 자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을 신봉하는 가운데 창조는 종의 기원을 보는 진화론과 확연히 다르게 생각한다. 필자는 진화론을 반대한다기보다는 생물의 종 자체에서 어느 정도 사용하지 않거나 많이 사용할 경우 진화라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이 바꿔지는 진화는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돌연변이만으로 종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돌연변이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돌연변이는 돌연변이이지 그것을 보편화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말이다. 특히 유전자는 그렇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새로운 종을 만든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그러한 이상한 종이 출현하여 인간을 두렵게 만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얻어 새롭게 만든다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한다. 필자가 본서에서 읽은 내용 가운데 중요한 하나를 발견하였다(154쪽). 저자는 따옴 표를 붙이고 “‘창세기 1장 28절과 2장 15절을 보면, 주께서 인류에게 지상의 모든 생명체를 돌볼 책임을 부여하셨다고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신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주신 장엄한 생태적 다양성을 관리하는 성실한 집사로서 주님의 뜻에 답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에게 받은 소명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관리하는 집사입니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본문의 따옴 표가 어디서 끝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기의 내용은 성경을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으로 사용하고 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있지만 어느 한 곳도 인간의 마음대로 하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많은 논쟁거리가 되어왔지만 그것은 인간의 삶의 한계 내에 한정시키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관리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변종을 만들게 하신 것이 아니고, 정의롭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결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생명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범위 내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많은 논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한 것은 기독교에서 이 성경 구절에 대한 해석은 본서의 해석과 달리할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작가의 말을 매우 신중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전자 특허를 중지하라.” 여기서 저자는 다섯 가지를 말한다. “1. 유전자 특허를 중지하라... 2. 인간 세포 사용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라... 3. 유전자 검사 결과 공개법을 제정하라... 4. 연구를 금지하지 말라... 5. 베이-돌 법을 페지하라.” 이러한 말들은 본문을 읽으면 얼마나 신중하게 한 말인가를 알 수 있다. 독자는 읽기 전에 본서 뒤에 있는 해설을 먼저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설은 전문가로서 현재의 바이오텍 현실을 잘 알게 해 주는 좋은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불치병이라고 하는 어려운 병들을 고치고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손을 델 수 없다는 질병을 위해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연구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과학자들은 호기심이 없이는 연구의 진전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이 모든 것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류를 위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윤리법을 제정하여 한계성을 느끼게 해야 한다. 지침이 없다면 인간은 쉽게 다른 방향으로 가기 쉽다. 인간이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언제고 완전한 합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을 위하는 길이라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본서의 내용은 완전히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인간은 질병으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겪었을 것이다. 하여간 본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깨닫게 하고 윤리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서평자: 맹용길, 전 장신대 기독교와 문화 교수 및 학장, 현재는 경기도 양주에서 농사를 짓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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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처럼 말하는 오랑우탄과 앵무새가 거리를 활보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유전자에 이야기에 귀가 열리고 있지만
노란수박, 오이고추... 뭐 이런 마트만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농산물들도 유전자 변형을 통해 만들어 진 것이고 미니 애완동물, 미니 과일, 미니 야채들은 TV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더이상 신기할 것이 없는 것들이었다.
책의 내용보다 마지막의 작가가 유전자 사업에 대한 조언이 더 기억에 남는다. 황우석박사의 이야기로 세상이 떠들썩 했을 때에도 줄기세포니, 유전자이니 보다는 저것이 진실일지 거짓일지만 생각했던 나이지만
나는 작은 세상안에서 사사로운 일들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같은 시간 지구 어딘가에서는 정말 책속의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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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이 많아서였을까? 아니면 독자에게 알려 주고 싶은 내용이 많아서였을까? 쉽게 읽어지지 않는 책이었다. 중간 중간 나오는 어려운 단어들과.... 그리고 여기저기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 한 번만 읽고도 이 책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진 않는 것 같다. 유전자 연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고자 쓰여진 소설인가 보다는 생각...
사실 한 번만 읽고는 생소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두 번까지는 읽고 싶지는 않다. 짧더라도 하나의 에피소드쯤으로...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이 되는 것도 아닌데 띄엄띄엄 이어지는 것도 조금은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었다.
내용보다는 구성이 정말 맘에 들지 않았던 책이다. 내용은 정말 재미있을 듯 싶은데, 책의 구성이 흥미를 떨어뜨린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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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읽기 시작한 책이 점점 무서워진다. 역시 마이클 클라이튼은 사람을 사로잡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유전자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국민 대다수가 알고 있을 듯 싶다. 줄기세포, 황우석, CSI, 친자검사 등....
물론 가공이긴 하지만 유전자는 점점 괴물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무척이나 섬뜻했다.
내 세포가 아니 그 일부인 유전자가 공공재산이 된다면 심지어 사유재산이 되어 내 맘대로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소설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기업은 유전자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특허로 등록하고 있다. 이 연구결과가 과연 개인이나 사기업 또는 어떤 한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있는가?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내 몸의 유전자도 그렇게 되는 날이 오는 건 아닌가?
이제 IT시대를 지나 BT시대가 온다고 한다. 정말 유전자를 블루오션이 여기는 듯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정말 장미빛 전망처럼 나아질 수 있을까? 저자는 이대로 간다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듯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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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완전히 소설입니다. 지나치게 과장된 상황도 많고 억지도 보입니다. 뒤에 붙여진 몇 가지 별도의 주장 때문에 억지로 구성한 게 아닐까 싶네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병행되는 구조여서 굳이 줄거리를 추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읽는 내내 졸려서 혼났습니다. 표지에 붙은 '뭐뭐 이후의 가장 뛰어난 소설'이라는 표현이 무색합니다. 수배자 사냥꾼 바스코 보든과 돌리. 연구원 톨먼. 잭 왓슨은 투자가인데 릭 디엘의 회사 바이오젠을 삼키려다 아예 버린다. 그런데 자신이 보겔만의 부전마비로 죽게 되자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다. 릭 디엘은 컨설턴트를 받아들이는데 나중에 보니 다른 사람이 가로채어 들어온 것이다. 물론 댓가는 회사가 망하는 것. 변이 앵무새 제라르는 게일 본드의 집에서 남편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제이미 옆에 머무른다. 프랭크 버넷의 딸 알렉스, 외손자 제이미. 헨리 켄덜, 아내 린, 아들 제이미, 아들(?) 유인원 데이브. 해부학자 마티 로버츠, 조수 라자. 레트로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조시 윙클러. 하나같이 제대로 된 사람은 거의 없는 판국입니다. 얼키고 설킨 것이야 의도적인 것일 테니 논외로 하고요. 100301/10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