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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행복한 아바타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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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 바탕의 까만 소녀 모습의 표지가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처음 책을 접할 때는 청소년 성폭력에 관련된 소설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3명의 청소년들의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아를 찾아가를 그린 건강한 청소년 소설이다. 처음부분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이 산만하고, 복잡했지만. 나의 청소년기를 생각해보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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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색 바탕의 까만 소녀 모습의 표지가 눈길을 끄는 책이었다.
처음 책을 접할 때는 청소년 성폭력에 관련된 소설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은 3명의 청소년들의 힘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아를 찾아가를 그린 건강한 청소년 소설이다.
처음부분 아이들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이 산만하고, 복잡했지만. 나의 청소년기를 생각해보면 나도 이렇게 산만한 심리구조와 정서를 가졌던 것 같은 느낌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럴까... 그런 구도가 내게는 친근하고, 청소년들도 그런 마음으로 공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세 아이는 참 많은 상처를 가진 청소년기를 보낸다.
용서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던 알콜중독 아빠, 사촌오빠의 성폭력, 혼자된 엄마의 방황, 아빠의 외도와 무당 엄마, 자해, 원조교제, 성추행하는 선생님까지...
이 아이들의 사방에는 온통 상처와 불안뿐이다.
그러니 내가 아바타라면 다시 세팅해 주고 싶지 않겠는가?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책속에 등장하는 3명의 아이들은 소설속에서 단순히 그려진 모습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볼 수 있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이며,
지금도 그러한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말이 건강하게 끝나서 다행이다. 주인공들이 대견하다. 

같은 아픔을 가진 아이들 이라면 같이 아파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상처를 토닥일 수 있고,

이런 아픔이 없는 아이들이라도 시대의 친구들의 아픔을 공감하며, 또 다른 상처와 아픔을 토닥일 수 있으리라.

d*****m 2007.11.0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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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작정하고 쓴 책인가 보다. 하지만...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로 작정하고 쓴 책인가 보다. 하지만..." 내용보기
요즘 여러가지 바쁜 일 때문에 이 책을 먼저 딸에게 읽으라고 줬다. 다 읽었다기에 어떠냐고 했더니 좀 어렵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기에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책도 많이 읽는 편이라지만 역시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봤다. 읽으면서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소화하기에는 무리였지싶다. 그냥 어떻게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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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가지 바쁜 일 때문에 이 책을 먼저 딸에게 읽으라고 줬다. 다 읽었다기에 어떠냐고 했더니 좀 어렵단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기에 역시 나이는 어쩔 수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책도 많이 읽는 편이라지만 역시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읽어봤다. 읽으면서 아차 싶었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소화하기에는 무리였지싶다. 그냥 어떻게 글자는 읽는다 쳐도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역시나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괜히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빨리 알게 해 준 것은 아닌가,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의 생활을 괜히 접하게 해준 것은 아닌가하는 노파심까지 든다. 물론 평범이라는 단어의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고 다분히 주관적이거나 통속적 또는 세속적인 냄새가 풍기지만 이 시대에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해본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상쾌하고 뿌듯한 그런 책이 있는가하면 이 책처럼 무겁고 가라앉는 책이 있다. 특별히 결말이 좋아서 기분까지 좋아지는 책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과 같은 또래의 딸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런 류의 책은 많이 불편하다. 단지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 게다. 즉 작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를 탓하는 것이다. 왜 하나같이 세 명의 아이들이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은 것일까. 뭐, 류화의 가정은 평범한 것 같아 보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말을 약간 바꿔야겠다. 왜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겪은 것일까라고.

 

어찌보면 이산이 자신을 누군가가 조종하는 아바타라고 생각하며 부르짖는 절규 내지는 착각은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속마음을 대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억지로 행동하고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 살아가는것 같은 느낌이 문득문득 들기도 하니 말이다. 작가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 아니었을까 여겨지지만 난 자꾸 여자 아이들의 생활만이 기억에 남으니 어쩌면 좋은가. 무당인 엄마를 둔 이산, 알코올 중독인 아빠를 잃고 엄마와 살고 있는 화자인 영주의 공통점은 바로 성추행을 당한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얼굴이 무지 예쁘지만(여기서는 '예쁘기 때문'이라고 은근히 말한다.)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하는 류화는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내 생각의 가지는 여기서 맴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앞으로 셋이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으려나,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려나(무엇이 정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만 든다. 거기다가 한 가지 더. 내 딸은 절대 이런 세상이, 이런 아이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게 하고 싶다는 이기적인 욕심.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며 다시 한번 변명 겸 합리화를 해본다.

 

작가의 말에서 아예 드러내놓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어쩌면 궤변처럼 흐르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고. 솔직히 불편했다. 그러면서 작가는 이 책은 어차피 소수를 위한 책일 뿐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러면서도 다수에게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그 강요에 이끌려 이렇게 다 읽었잖은가. 사회 부조리는 점점 늘어가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불편한 책을 만나야 하려나.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이렇게 만나서 그 부조리가 없어진다면 얼마든지 만날 용기가, 아니 준비가 되어 있다. 뭐, 이까짓 불편함쯤이야...

l*****8 2007.10.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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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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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피하고 싶은 상황 설정에 당황스럽고 자꾸 뭔가를 들킨 것 같아 불안하게 책장을 넘겨야 했다. 이건 아마도 어느 정도 작가가 예견한 독자의 반응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나의 불편했던 10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었기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10대는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불행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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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피하고 싶은 상황 설정에 당황스럽고 자꾸 뭔가를 들킨 것 같아 불안하게 책장을 넘겨야 했다.
이건 아마도 어느 정도 작가가 예견한 독자의 반응 중 하나였을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 이유를 알았다.
 
나의 불편했던 10대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었기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10대는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불행하거나,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되거나, 불미스런 일을 당하거나 자행하지 않은채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다만 그 내면은, 어쩌면 누군가의 아바타인지도 모를 나의 일상에 끊임없는 의문과 회의를 품은 채 요동치고 있었을 것이다.
 
한 친구가 생각났다.
이손이나 류화의 형상만큼이나 구체적으로 그 친구와의 관계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정리되지 않은 그 친구와의 관계, 그 관계가 지금의 나에게 미쳐온 영향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나의 성장과정에 대한 기~인 생각,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모든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머리를 쓸고 지나갔다.
 
이 불편한 책을 읽고 나자 그 친구가 생각난 게 참 신기했고 그러고도 한참이나 더 그런 상념의 조각들을 주워 모으며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이상했다. 이거, 일종의 성장 소설 아니었던가...? 나는 지금도 자라고 있는 건가? 아직도 진행중인건가? ㅎㅎㅎ
 
'내가 누구인가?'
'나는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걸까? 나는 온전히 나일까?'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에게, 특히 소녀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와 같은 아줌마들도 때로는 곰곰...생각,이라는 걸 하게끔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들킨, 기분이다.
 
b*****g 2007.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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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와 치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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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대작(大作) '아바타'가 인기를 끌면서 정치판에도 '아바타 선거'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 용어는 독설로 유명한 진중권씨가 "정운찬 총리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아바타다. 충청도 유전자를 가진 아바타를 선택해서 충청도로 내려보낸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했다. 원래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단어다. 신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 또는 지상에 내려온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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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대작(大作) '아바타'가 인기를 끌면서 정치판에도 '아바타 선거'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 용어는 독설로 유명한 진중권씨가 "정운찬 총리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아바타다. 충청도 유전자를 가진 아바타를 선택해서 충청도로 내려보낸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치권에 등장했다.


원래 아바타는 힌두교에서 유래한 단어다.

신이 지상에 내려오는 것, 또는 지상에 내려온 신의 화신(化身)을 뜻한다.

현재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분신(分身)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아바타 선거란 정치적 실력자들이 자신의 분신을 내세워 지방선거를 치른다는 의미다.

예를들어 친이계, 친박계 라는 용어도 '이명박 아바타', '박근혜 아바타'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이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정치적 터전인 대구경북은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아바타 선거'라는 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 공천을  놓고 보면 우선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구도가 당내 주류와 비주류의 대결로 갈 공산이 높다.

대부분 기초단체장 선거도 아바타 선거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바타'는 신뢰와 약속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관중들에게 던져준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나는 누구의 아바타'라는 말들이 나오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유권자들은 정신을 차리고 인물을 평가해야 한다.

자아 정체성이 없이 계파만 들고나온 후보를 지지해선 안된다.

이번 지방선거가 치킨게임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터닝포인트다.

치킨게임은 게임 이론 모델 중 하나로, 가상 자동차 게임에 사용되는 용어다.

차에 탄 두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마주 보고 돌진하는데, 이 때 한 쪽이 먼저 피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된다.

그러나 먼저 핸들을 돌리면 그 사람이 치킨, 즉 겁쟁이가 되는 게임이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계속된 미국과 소련간의 군비(軍備) 경쟁도 치킨게임에 비유됐다.


불멸의 청춘스타 제임스 딘이 출연하는 영화 '이유없는 반항'에 등장하는 자동차 경주도 일종의 치킨게임이다.

차를 몰고 낭떠러지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한 경주였지만, 1950년대 미국의 자동차 문화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16세가 되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갓 면허를 딴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제 이같은 치킨게임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지난해에 걸쳐 전개됐던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가격인하 경쟁을 언론에서 치킨게임으로 규정하면서 치킨게임이란 말은 다시 보편적인 낱말로 다가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한 반도체 수요감소가 군웅할거하던 세계 반도체 시장의 치킨게임을 촉발했던 것이다.

결과는 삼성전자의 완승.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 치킨게임의 승자로 거듭나며 시장을 독식하기 시작했고, 세계 IT업계의 지존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올들어 대만과 일본업체들이 반격을 다짐하며 증설에 나서고 있어 세계 반도체 시장은 또 한 차례 치킨게임 돌풍이 예고되고 있다.


최근엔 치킨게임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양상이다.

도를 넘은 법원과 검찰의 갈등, 이마트와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유통공룡 빅3의 치고 받기식 가격인하 경쟁도 그렇지만, 세종시를 둘러싼 한나라당 친이와 친박간 여-여 대립은 치킨게임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금기시하던 분당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고 있지만, 어느 한 쪽도 핸들을 꺾을 의사가 없어 보인다.

아바타와 치킨게임

정치인들보다 오히려 국민들이 마음을 더 졸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h*****k 2010.02.09.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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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에서 벗어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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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   친구에게서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이 책의 주인공. 어쩐지 우리랑 닮은 것 같아.”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비관론자라도 되는 거야? 라는 장난식의 물음에 내 친구는 조금은 묘한 표정으로 “아니. 그냥 환경이.”라며 잘라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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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

 

친구에게서 이 책을 받아들었을 때 “이 책의 주인공. 어쩐지 우리랑 닮은 것 같아.”라던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이 비관론자라도 되는 거야? 라는 장난식의 물음에 내 친구는 조금은 묘한 표정으로 “아니. 그냥 환경이.”라며 잘라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만 갸웃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고에 다닌다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 단지 이 두 가지 뿐. 이외의 것들은 모두 다른 것이었다. 그래. 이 책이 우리랑 닮은 것은 첫 구절에 불과했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학교는 하나의 전쟁터로서, 가식과 위선이 가득한 세계이며 ‘선생’이 ‘학생’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자신들에 대한 ‘순종’과 ‘복종’ 뿐이다. 오직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고 말해주길 바라며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좁은 틀에 맞춰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세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학교다. 이런 교육 때문에 학생들과 선생.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는 가식과 위선, 거짓이 판을 치고 있다. 오직 상대가 바라는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서. 상대가 생각하는 좋은 이미지로 남기 위해 우리들은 가식과 위선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학교라는 작은 세상에서 선생이라는 정복자들에게 휘둘리는 나를 보며 줄곧 생각했었다. 왜 나는 누군가에게 휘둘려야만 하는 거지? 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고 남에게 이해시키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면 학생들이 절대 반항하지 못하도록 ‘내신점수 감점’이라는 협박을 내걸면서 왜 그들은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만 하는 걸까? 게다가 나는. 아니 우리 학생들은 왜 그런 시시한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서까지 내신 점수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우리 모두는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내가 살아야 하니까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 사람에게는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것은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데 어째서 선생들은 학생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지 않고 자신들 멋대로 조종하려 드는 걸까? 중·고등학교 6년에 대학교 4년을 선생들에게 조종당하는 것도 모자라 나머지 인생까지 지배당해야 한다면 이 세상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이곳에서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당하고만 있는 것도 너무 억울한 일이라서 맞서 싸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바타는 지금 날 보고 웃고 있다.

방실방실 잘도 웃는다. 감정 상태를 '기쁨'으로 설정해 놓아서 그렇다.

저 아이가 사실은 울고 싶다면… 저 아이는 언제, 어떻게 울까? -영주 독백 중-

 

내가 하고 있던 고민을 이 책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도 영주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얼굴에 두꺼운 가면을 쓰고 생활해가는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사람. 언제나 ‘나’라는 자아는 가슴 깊숙한 곳에 가두어두고 부모, 친구, 선생님이 보고 싶어 하는 ‘나A’로 생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웃고 싶지 않은데도 웃어야만 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치는, 주체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 그게 얼마 전의 내 모습이었다.

 

어깨가 무거워 기지개 한 번 제대로 피지 못 할 정도로 잔뜩 굳어서 생활해야 하는 것에 지쳐 ‘자살’을 생각 했던 적도 있었고 써지지 않는 글 때문에 위로 받지 못한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생각만 할 때도 있었다. 언제나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고, 혼자이길 바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렇게 흥청망청 살아가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자살’이라는 것이 유일한 도피처가 아니라고. 그렇게 답을 얻은 날,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들어온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서가 아니라 드디어 답을 찾아냈다는 안도감에서였다. 이제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그 뒤로 나는 매일같이 글을 썼다. 글을 쓸 때, 진정한 ‘나’를 바라볼 수 있다고 느낀 나는 죽어라 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 나는 진정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언제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가 누구인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남이 생각하는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인물이 중요할 뿐. 그동안 나는 단지 내가 누구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주체성을 잃어버렸고, 조언 해 주는 사람 없이 혼자라는 생각에 우울증까지 겹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할 뻔 했었던 지난날의 나는 ‘어른’으로 가기 위한 자격이 있는지 시험 받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에 빠져 살면서 나는 조금씩 변화해 갔다. 가끔씩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면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초조해 지는 것만 빼면 나 자신 말고는 관심이 없었던 나는 점점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들과 조금씩 말문을 터가면서 ‘친구’라는게 어떤 건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를 떠나서 상대를 존중할 줄 알고,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친구가 아닐까? 이것저것들에 치이며 받았던 마음의 상처를 품고 살았던 어둠에서 빠져나와 밝은 빛을 걸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해준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라는 책에게 감사하다.

b*****l 2009.08.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