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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달에 한두 번을 보더라도 내친 김에 말이 안 나오는 영화를 하나 더 보았다. 덴마크 사람인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감독이 1928년에 만든 <잔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 / The Passion of Joan of Arc>이다. 이름난 영화이지만 본 적이 없어서 언젠가는 보아야지 하는 마음만 갖고 있었던 영화다.
프랑스 하원 도서관에 있는 재판 기록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었다. 그 재판 끝에 프랑스 사람들 앞에서 영국 군인들에 맞서 앞장서서 싸웠던 잔다르크는 죽게 되었다는 것.
잔다르크가 영국군에 잡힌 다음 불에 타서 죽기까지를 흑백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미리 알았다. 그런 탓에 이 영화가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5세기에 벌어졌던 장미전쟁은 막을 내렸으니까. 몸으로 싸우던 싸움은 끝났고, 그저 말싸움만 남았기 때문. 그런데 볼수록 빠져들면서 내가 왜 여태껏 이 영화를 안 보았을까 뒤늦게 뉘우치게 되었다.
얼른 보면 엉성한 듯하지만, 짜임새가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감독의 솜씨는 빼어났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잔다르크의 얼굴과 눈빛만으로도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눈물 짓고 여린 마음이 오락가락하기도 하지만, 잔다르크는 꿋꿋하게 죽어갔다. 우리네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 같이...
2.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눈으로 보고 목소리를 귀로 같이 듣는 요즈음 영화와는 달리,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소리를 글로 바꿔 장면마다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연기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지만 글자가 나오지 않는 장면은 배우들이 말하는 입을 보면서 짐작하고 마음속으로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 짐작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쏠쏠했다.
창을 든 병사들이 줄지어 둘러싼 재판정에 발목에 쇠사슬이 묶여있는 잔다르크가 불려온다. "제 이름은 프랑스말로 '잔'이라 합니다. 고향에서는 '자네트'라 부릅니다." 그러자 재판관이 묻는다. "몇 살이냐?" 잔다르크는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한다. "열아홉 살쯤 된 것 같은데요." 제 나이도 잘 모르냐며 재판관과 이웃한 사람들이 함께 킥킥거리며 비웃는다.
재판관이 다시 묻는다."하느님이 널 보내셨다고?" 사로잡힌 터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잔다르크지만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말한다. "프랑스를 구하기 위해...그래서 제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면 너는 하느님이 영국 사람들은 미워한다고 생각하느냐?" "하느님이 영국 사람들을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에서 모두 물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여기서 모두 살고 싶다면 말이죠!"
이 말을 듣고 영국 군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안 좋은 말을 내뱉는다. 글자로 나타내지 않았으니 보는 내가 짐작할 뿐이었다. 아마도 이런 말이었으리라. "미친년! 아가리 닥쳐!"
3. 재판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성직자들인 듯했다. 잔다르크가 믿는 믿음을 갖고 재판하는 것을 보면. 그래서 그들과 잔다르크가 묻고 답하는 모습 속에는 호기심과 시샘이 넘쳤다. 그들도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지만 한번도 겪지 못한 일을 잔다르크는 겪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넌 성 미카엘께서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다고 말했다. 어떤 모습이시더냐?" 어떤 이는 옷을 들어 날개처럼 펄럭이며 묻는다. "날개를 다셨더냐?" 다른 재판관은 머리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왕관을 쓰셨더냐?"
저들이 모르는 세상을 보았다고 하기에, 재판관들은 궁금해서 마구 묻는다. "어떤 옷을 입으셨더냐?" "사내인지 계집인지 어떻게 알았더냐?" 심지어 "벌거벗었더냐?"고도 했다. 그러자 잔다르크는 퉁박을 놓는다. "하느님께서 옷도 입을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머리는 길었더냐?"고 묻자, 웃음을 지으며 따진다. "왜 머리를 잘랐을까요?"
잔다르크가 머리를 짧게 하고 사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사내가 물었다. "너는 왜 사내 옷을 입었느냐? 네게 계집 옷을 주면 입겠느냐?" 잔다르크는 잘라 버린다. "하느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이 끝나면 다시 옷을 바꿔 입을 것입니다."
4. 제 딴에는 믿음이 깊고 많이 안다는 사내들이 모였지만 아직 풋내가 나는 어린 계집인 잔다르크를 어찌 해볼 수가 없다. 그래서 고문 도구를 갖고 으름장을 놓거나 달래기도 하지만, 끝내는 윽박지른다. "잘 들어, 잔. 네가 보았다는 환영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악마로부터 나온 것이다." "너는 성 미카엘이 아니라 사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야!"
이렇게 으르고 달래는 이들한테 잔다르크는 한결같다. "전 정말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모합니다. 악마가 절 보냈다고 하시는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내게 아픔을 주기 위해서 악마가 당신을 보냈어요. 당신도, 당신도, 그리고 당신도..."
영화 속에서 잔다르크가 하는 말들을 듣고 있으니까 내게는 15세기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요즈음 이 땅에서 겪는 일로 느껴졌다. 성직자들이 하느님이나 예수님의 말씀과 동떨어진 일을 벌이고, 말씀을 핑계삼아 제 뱃속을 채우거나 제 속셈을 챙기는 쪽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잔다르크가 이 땅에 온다면 엉터리 믿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또다시 불에 타지 않을까 싶다.
5. 1928년에 찍은 영화라는 생각을 버리니까, 이 영화는 요즈음 영화보다 내 눈길을 더 끌어갔다. 잔다르크를 맡은 마리아 팔코네티는 처음부터 끝까지 안쓰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했다. 사로잡혀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과 뜻없는 말들을 나눌 때, 화면 가득 잡히는 얼굴에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오거나, 죽는 것이 무섭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려고 불덩이를 마다치 않을 때는 잔다르크의 아픔이 내 가슴 속을 파고들어 후벼 팠다.
잔다르크의 한 마디가 끝나면 그에 맞서 말하는 이의 얼굴로 카메라는 옮겨가고, 서로의 얼굴을 견주어 비춰주면서 이들이 내세우는 바가 같지 않고 다름을 보여주었다. 잔다르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음을 나타낼 때는 재판관들이 한사람씩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귓속말을 하거나 잔다르크의 말에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꾸짖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짜맞춤이 물 흐르듯 좋았다.
그래서 카메라의 움직임이나 찍은 장면을 나중에 잘라 짜맞추는 일에서 감독의 노련한 솜씨가 드러났다. 재판정의 모습을 보이거나 많은 사람을 보여줄 때를 빼면, 말하는 이의 얼굴에 카메라를 바짝 붙여서 화면 가득 얼굴과 얼굴에 나타나는 작은 움직임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는데, 다른 영화에 견주면 돋보였다. 또 그 때는 흑백밖에 찍을 수가 없었지만 컬러가 아니라 흑백으로 영화를 찍은 것이 잔다르크의 가슴속에서 나오는 아픔과 슬픔을 더 깊이 있게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영화 속에서처럼 눈물 흘리며 하느님의 말씀에 따르고자 애쓰는 잔다르크의 모습이 칼을 들고 앞장서서 싸우는 잔다르크 영화보다 나로서는 더 가슴에 와닿았다. 또한 낱말 맞추기 하듯 영화 속에서 배우가 말은 하지만 글로 나타내지 않았을 때 그 말을 짐작하는 맛이 나한테는 달짝지근했다. 저 장면에서는 이렇게 했겠지, 저렇게 말했겠지 하면서 혼자 짜맞추면서 보았다.
그래서 별은 망설이지 않고 다섯을 주었다. 사내들은 어디 가고 여리디 여린 계집이 프랑스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못마땅했지만.
"하느님, 죽음을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아픔을 주시진 마옵소서!" 불덩이를 마주하면서 내뱉는 잔다르크의 마지막 말에 내 가슴 속에서도 불덩이 하나가 올라왔다. 울컥...
6. 처음 이 영화가 프랑스에서 만들어져 나왔을 때 좋은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필름마저 잃어버려 다시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는데, 1981년 노르웨이의 정신병원에서 장농 안에 있던 본디 덴마크판을 찾았다는 것. 프랑스말로 옮긴 다음 세상에 내어놓아 이제 우리들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 디뷔디는 사놓고 오래 묵혀두었다. 여든다섯 해나 지난 영화여서 화면은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다. 가끔은 비가 오기도 하고, 흐릿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는 본디 영화 한 편에다 가락과 노래를 끼워넣은 영화 한 편을 같이 넣었다. 짧지만 감독과 작품을 우리말로 알려주는 글도 덤으로 들어있었다. 이쯤이면 괜찮은 디뷔디다.
리처드 아인혼의 노래 "빛의 목소리 Voices of Light"가 들어간 영화는 잔다르크의 안타깝고 애틋한 모습과 잘 어울렸다. 그렇지만 뒤에 깔리는 가락과 노래가 있는 영화와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 본디 영화 가운데 하나만 고르라면, 나는 아무런 소리가 나오지 않는 본디 영화를 고를 것이다. 처음에는 소리가 영화에 어울리는 듯했으나, 오히려 82분동안 소리조차 없는 것이 잔다르크의 아픔을 더 깊이 느끼게 해주는 듯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