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글쓰기의 추격자 -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영도』
"글쓰기의 추격자 -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영도』" 내용보기
나의 글쓰기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롤랑 바르트는 오늘날의 글쓰기 모태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시대(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인간 본질의 표현에 몰두하기보다 대자연에 대한 지식에 몰두해 있었던 16~17세기 초엽이 지난 뒤 의식의 분열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본질적 탐구가 시작되었고, 문학의 형태는 비로소 바뀌기 시작했다.
"글쓰기의 추격자 - 롤랑 바르트 『글쓰기의 영도』" 내용보기

 

나의 글쓰기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롤랑 바르트는 오늘날의 글쓰기 모태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데올로기와 시대(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인간 본질의 표현에 몰두하기보다 대자연에 대한 지식에 몰두해 있었던 16~17세기 초엽이 지난 뒤 의식의 분열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본질적 탐구가 시작되었고, 문학의 형태는 비로소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대상의 공허한 우묵함에 결부된 실존적 감정들ㅡ기이함의 느낌, 친근함·혐오·만족감·관례·파괴ㅡ 따위가 부상했고 도구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언어 자체가 문제로 떠올랐다. 플로베르는 글쓰기의 장인으로서 문학을 가치-노동으로 보는 계기를 보여줬다. 말라르메는 언어의 파괴로 문학을 대상으로 보게 만들었다. 바르트는 글쓰기가 시선의 대상, 만듦의 대상, 파괴의 대상을 통과하여 오늘날 부재의 대상이 되는 마지막 변신 중이라고 보았다. 이 책 제목인 ‘글쓰기의 영도’는 그런 활동을 담은 부정의 운동 자체이자 글쓰기를 완성할 수 없는 무력감을 담은 중립적 글쓰기를 뜻한다. 작가는 그가 속한 사회와 유리될 수 없고 언어에 대한 고유한 도덕이 없는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바르트의 문학관을 담은 이 에세이는 그의 첫 문학 평론집이다.

「글쓰기란 무엇인가?」 “언어체(langue)는 한 시대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이다.…… 어느 누구도 준비 없이는 작가로서의 자유를 언어체의 불투명 속에 끼워 넣을 수 없다. …… 작가에게 언어체는 어떤 친근함을 멀리 정착시키는 인간적 지평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친근함은 매우 부정적이다. 카뮈와 크노가 동일한 언어체를 말한다고 언급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지 않은 예스럽거나 미래지향적인 모든 언어체들을 차별적 작업을 통해 상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폐기된 형태들과 미지의 형태들 사이에 정지된 작가의 언어체는 자산이라기보다는 극단적 한계이다. 그것은 되돌아보는 오르페우스처럼, 그가 한편으로 자신의 방식이 지닌 안정적 의미와, 다른 한편으로 자신의 사회성을 나타내는 본질적 동작을 상실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의 지리적 장소이다. …… 파롤은 수평적 구조들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의 비밀들은 그것의 낱말들과 동일한 선상에 있다. 그것이 감추는 것은 그것의 연속이 드러내는 지속 자체에 의해서 매듭이 풀린다. 파롤 속에서 모든 것은 제시되며 즉각적으로 마모되게 되어 있다. 언어적 표현과 침묵, 그리고 그것들의 움직임은 어떤 폐기된 의미를 향해 돌진한다. 이것은 흔적 없는 즉각적인 이동이다. 그 반대로 문체는 수직적인 차원만을 지니고 있으며 개인 자신의 닫힌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그것은 물질에 대한 어떤 경험에 입각해 그 자체의 불투명성을 구성한다. 문체는 결국 은유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작가의 문학적 의도와 육신적 구조 사이의 방정식일 따름이다.” “문학의 의식 영역으로 정치적·사회적 사실들의 확장은 새로운 유형의 필자(scripteur)를 생산해 냈는데, 그는 투사와 작가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며 전자로부터는 참여적 인간의 이상적 이미지를, 후자로부터는 씐 작품이 하나의 행위라는 관념을 끌어낸다. 지식인이 작가를 대체함과 동시에, 문체에서 완전히 해방된 투사적 글쓰기가 잡지들과 에세이들에서 태어난다. 이 글쓰기는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직업적 언어와 같은 것이다.”(「정치적 글쓰기」) 「소설의 글쓰기」는 “그 나름의 차원들과 한계를 만들어 내고 그 나름의 고유한 시간·공간·인구, 그 나름의 수집된 대상들과 신화들을 소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적인 글쓰기는 존재하는가?」 “고전주의적 시는 산문의 장식적 변주로만, 하나의 기교(다시 말해 테크닉)의 산물로만 느껴졌지 결코 다른 언어나 특별한 감성의 산물로 느껴진 게 아니다.…… 이 테크닉은 대화의 법칙들보다 더 아름답고, 따라서 보다 사회적인 법칙들에 따라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정신으로부터 완전 무장해 나온 내적 사유에서 벗어나, 명백한 관례 자체에 의해 사회화된 어떤 말을 기획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보들레르가 아니라 랭보에서 출발하는 근대적 시에서 이와 같은 구조에서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전주의적 시의 형식적 명령들을 어떤 정비된 전통적 방식에 따라 수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결과 이제부터 시인들은 언어의 기능과 구조를 동시에 포괄하는 하나의 닫힌 고유한 자연으로 자신들의 말을 확립한다. 따라서 시는 장식물로 장식되거나 자유가 절단된 산문이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환원 불가능하고 상속받은 게 없는 어떤 질(質)이다. 그것은 더 이상 속성이 아니라 실체이다.…… 시적 언어가 담화의 내용에 의존하지 않고, 어떤 이데올로기의 중계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구조가 나타내는 유일한 효과를 통해 대자연을 철저하게 문제 삼을 때, 더 이상 글쓰기는 없고 문체들만이 있다. 이 문체들을 통해서 인간은 완전히 돌아서서 객관적 세계와 대결한다. 역사나 사회성의 어떠한 모습도 거치지 않은 채 말이다.”

1, 2부는 문학과 역사,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검토하는 신비평의 관점으로 1953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쓴 개별 작품 비평을 3부로 실어 1972년 다시 나왔다. 3부에는 라 로슈푸코의 잠언집, 발자크의 백과전서, 사토브리앙, 프루스트, 플로베르, 쥘 베른과 대니얼 디포의 비교, 프로망탱, 피에르 로티에 대한 비평을 살펴볼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의 해석을 동시에 담고 있는 바르트의 해체 비평은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  비문, 오문이 더러 있어 에러

 

 

 

g******i 2019.12.19.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바르트의 첫 평론집
"바르트의 첫 평론집" 내용보기
冊 이야기 2015-134   『글쓰기의 영도』 롤랑 바르트 / 동문선       이 책은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는 신고식으로 내놓은 최초의 평론집이다. 그는 특별히 기호학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기호학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문학이나 대중문화에 적용했다. 이 책에서도 바르트는 ‘정치적 글쓰기’라는 타이틀로 프랑
"바르트의 첫 평론집" 내용보기

이야기 2015-134

 

글쓰기의 영도롤랑 바르트 / 동문선

 

 

 

이 책은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하는 신고식으로 내놓은 최초의 평론집이다. 그는 특별히 기호학에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기호학을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문학이나 대중문화에 적용했다. 이 책에서도 바르트는 정치적 글쓰기라는 타이틀로 프랑스 혁명가들의 고전주의적 글쓰기와 마르크스주의적 글쓰기를 비교한다.

 

 

그렇다면 바르트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그는 언어체는 한 시대 모든 작가들에게 공통적인 규정들 및 습관들의 조직체라고 표현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언어체가 전적으로 작가의 파롤(parole)을 관통하는 하나의 고유한 자연(nature)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다.

 

 

 

@ ‘파롤은 무엇인가?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langue)와 파롤(parole)로 구분했다. 랑그는 언어체계’, 파롤은 언어수행이라고 표현된다. , 랑그란 언어활동의 체계 또는 규범이고 이러한 랑그를 바탕으로 한 각 개인의 언어행위를 파롤이라고 한다. 따라서 파롤은 개인적인 발화행위이다. 체계의 구체적인 실현이기 때문에 무한하다.

 

 

정치적 글쓰기

 

모든 글쓰기들은 구어에 낯선 울타리적 특성을 나타낸다. 글쓰기는 소통의 도구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언어상의 어떤 의도가 다만 통과하는 열려진 길이 아니다. 파롤을 통해 흘러가는 것은 어떤 무질서 전체이고, 이 무질서는 순식간에 소진되는 운동, 무질서를 영원한 유예 상태로 유지시키는 그 운동을 파롤에 부여한다.”

 

 

반면에 글쓰기는 단단해진 언어, 그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언어라고 한다. 그 자신의 지속에 유동적인 일련의 근사치들을 맡겨야할 책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글쓰기는 작가가 하나의 특수한 정치적 사회에 뿌리박고 있음을 의례적으로 나타냈으며, 보즐라(프랑스의 문법학자이자 언어학자)처럼 말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권력 행사에 자신을 결부시키는 것이었다.”

 

 

바르트는 마르크스주의적 글쓰기에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가? 프랑스의 혁명적 글쓰기가 과장적이라면, 마르크스주의적 글쓰기는 완서적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주의적 글쓰기는 형태의 울타리가 어떤 수사학적인 과장으로부터도 말솜씨의 두각으로부터도 오지 않고, 기술적인 어휘만큼이나 특수하고 기능적인 어휘로부터 비롯된다.” 프랑스의 혁명적 글쓰기가 피로 물든 권리나 도덕적 정당화를 위한 수단이었다면, 마르크스주의적 글쓰기는 하나의 지식언어로 제시된다. 여기서는 글쓰기가 일의적이다. 그 이유는 하나의 고유한 본성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시즘은 그것의 언어가 끝나가는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순수하게 정치적인 행동들과 합류한다.

 

 

글쓰기와 파롤

 

지금부터 1백 년도 넘은 시기에 작가들은 일반적으로 프랑스어를 말하는 여러 방식들 - 그것도 매우 상이한 방식들 - 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은어(隱語)라고도 표현 할 수 있는 이 언어들은 문학에 스며들었지만, 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발자크, , 모니에, 위고는 발음과 어휘에서 매우 비정상적인 어떤 형태들을 복원하는데 즐거움을 느꼈다. 도둑들의 언어, 농부의 사투리, 바르지 못한 독일 말, 수위의 언어 따위 등이다. 반면 사회적 언어는 어떤 본질에 매달린 연극적인 일종의 의복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사회적 파롤에 토대한 문학 언어는 그것을 한계 짓는 묘사적 힘을 결코 떨쳐버리지 못한다.”그 이유는 언어체의 보편성은 청취의 사실이지 발화의 사실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말투는 집단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은 자신의 언어 영역에 국한 될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의 계급을 벗어나면, 그가 내뱉는 첫마디는 그를 그의 모든 역사와 함께 드러내 주고, 완전히 그의 위치를 설정해주며 그를 공개적으로 나타내준다.

 

 

이 책은 바르트가 문학과 역사,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중심으로 검토된 글쓰기에 대한 열 개의 단편적인 신비평을 묶어 1953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1972년에 개정되면서 개별 작품들에 대한 여덟 편의 독립적인 연구가 추가되었다. 라 로슈푸코의 성찰 혹은 금언과 잠언, 샤토브리앙의 랑세의 삶, 프루스트와 이름들〉 〈플로베르와 문장등이 실려 있다.

 

 

 

 

 

이달의 사락 s******5 2015.07.1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롤랑 바르트, 중립적 글쓰기 그리고 우울한 열정
"롤랑 바르트, 중립적 글쓰기 그리고 우울한 열정" 내용보기
내가 처음 접한 롤랑 바르트의 모습은 에세이스트나 모럴리스트가 아니라 기호학자, 담론분석가의 면모였다. 특히 기호학에 심취한 문예비평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 바로 《글쓰기의 영도》였다. 잘 알다시피 〈글쓰기의 영도〉(1953)는 문학과 역사,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한 바르트의 첫 평론집이다. 여기서 글쓰기의 영도는 중립적 글쓰기, 백색의 글쓰기로 묘사된다.
"롤랑 바르트, 중립적 글쓰기 그리고 우울한 열정" 내용보기

내가 처음 접한 롤랑 바르트의 모습은 에세이스트나 모럴리스트가 아니라 기호학자, 담론분석가의 면모였다. 특히 기호학에 심취한 문예비평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이 바로 《글쓰기의 영도》였다. 잘 알다시피 〈글쓰기의 영도〉(1953)는 문학과 역사,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탐구한 바르트의 첫 평론집이다. 여기서 글쓰기의 영도는 중립적 글쓰기, 백색의 글쓰기로 묘사된다. 여기에 잠시 문학사의 흐름을 대입해 본다면, 고전주의 시대의 '투명성의 글쓰기'에서 탈근대의 '중립적 글쓰기'로의 전환을 읽어낼 수 있다. 누군가 수전 손택의 글쓰기를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는데 그 사람은 분명 롤랑 바르트를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내가 처음 접한 중역본과 국역본의 편집체계가 많이 다르다. 번역의 질을 따진다면, 중역본의 완승이다. 편집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타이페이에서 출간된 이유증(李幼蒸)의 중역본은 <콜레주 드 프랑스 문학기호학 강의 취임연설>(1977)과 네 편의 <문학 에세이> 그리고 〈글쓰기의 영도〉(1953)와 〈기호학의 원리〉(1964)가 실려 있고, 부록으로 <바르트 연구>라는 제목 하에 수전 손택의 논문 <글쓰기 자체: 롤랑 바르트론>(1981)과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람들은 문학과 어떻게 얘기하는가>(1971)가 실려 있다.  수전 손택이 스승 롤랑 바르트를 논하는 글은 그녀의 책 《우울한 열정》(1980)에서도 역시 만나볼 수 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니 《우울한 열정》을 읽을 때 내가 언젠가 읽었었다는 기시감이 강하게 들었던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김웅권의 국역본은 <글쓰기의 영도>(1953)와 <신비평 에세이>(1972)가 전부다. 그러니깐 1965년판에 수록된 <기호학 원리>가 빠져 있고 대신에 1972년판 <신비평 에세이> 8편으로 환치되어 있다.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씌어진 독립적인 문예 비평인 <신비평 에세이>는 모두 8편이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라 로슈푸코: 《성찰 혹은 금언과 잠언》, 《백과전서》의 도판, 샤토브리앙: 《랑세의 삶》 ,프루스트와 이름들, 플로베르와 문장,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프로망탱: 《도미니크》 ,피에르 로티: 《아지야데》. 

z***a 2012.09.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