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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정신]이라는 원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 가정을 뛰쳐나와 고뇌하는 발테르라는 한 청년이 방황과 혼란을 거듭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며, 세상을 알아가는 힘겨운 여정을 담고 있다. 가정도, 부모도, 친구도, 사랑도 그를 세상 속의 안정과 안주 속에 데려다주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 헤매는 한 마리 고래였던 것이다.
‘질서, 무질서, 삶, 죽음, 빛, 어둠. 내 존재에 대해 의식하게 되었던 순간부터 나는 내 자신에게 질문만을 해댔다. 그것은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어쩌면 그 어떤 의문도 갖지 않는 게 현명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 아니었고 단 한 번도 현명해 본 적이 없다.’
어릴 적부터 조숙했던 주인공은 악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엄마의 편을 들던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에 꿈틀대고 있던 사고들을 이해하기에 아버지는 실패한 술주정뱅이였고 어머니는 그 이해의 폭이 넓지 않았다.
‘세상은 고통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는 주인공은 결국 특수한 세상으로 빠져들고 그곳에서 유일했던 안드레아라는 친구를 만난다. 더 지적이고 더 세상을 많이 알던 친구의 말과 사고에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힘 있는 우정을 마음에 품고, 세상 사람들이 내는 욕심과는 별개의 욕심, 즉 생존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욕심을 부리는 주인공은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해나가는 듯 보인다. 또한 우연히 마주한 사랑을 통해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날개를 펼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다른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이 세상이 너무 속되었다. 때마침 그에겐 커다란 마음의 짐이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그는 아버지를 찾았다가, 그의 유일한 친구를 찾아 나선다. 물론 친구는 그와는 다른 친구의 세상을 살았다.
‘자넨 어떤 선택을 했나? 난 모르겠어. 상상할 수도 없네. 본능적으로 느끼기에 자넨 아주 멀리 달아난 것 같아. 호랑이와 발톱이 잘린 집고양이들이 있지. 내 손톱들은 다 닳았지만 소파 위에 있지는 않아. 어느 날 난 피곤을 느꼈어. 이게 전부라네. 난 굴을 하나 선택했고 그 안에 머무르고 있어. 여기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길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저주받은 인간이 일을 하는 동안 마약과 같은 생각들은 인간에게 달라붙어 혼란을 만들어 내지.’
불을 마음속에, 운명 속에 품고 태어난 이들이 땅이라는 세상에서 겪는 고뇌와 방황을 거쳐 결국은 바람에 날리는 낙엽 같은 운명에 자신을 맡기기도 하고 또는 임종을 앞둔 수녀님이 해준 말처럼 가장 단순한 것, ‘사랑이 관심’이라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수없이 접은 페이지를 다시 읽으며 곱씹는 동안 느낀 것은 당장 다시 한 번 읽기엔 지루함이 느껴지는 터라 용기가 안 나지만,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에 꼭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접은 페이지마다 내면의 자신을 찾아 방황하던 세상의 정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람, 땅, 흙이 해주는 얘기들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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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는 주인공 발테르의 삶을 3부분으로 나누어 그의 성장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한다. 챕터는 3개로 나뉜다. 첫 번째 불은 청소년기를 말하며 발테르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이야기, 정신병원에 들어가 만나게 되는 안드레아와의 이야기이이다. 두 번째 땅은 청년기로 발테르가 고향을 떠나 로마에서 접기 닦기 일을 하다가 글을 쓰게 되는 과정, 그리고 한 번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세 번째 바람은 장년기로 고향에 돌아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화해하는 과정, 친구인 안드레아를 찾지만 못 찾게 되고 이레네 수녀와 함께 지내며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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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래와 창녀>가 생각이 난다. 고래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
아릿한 느낌이 엄습해온다. 언제나 침묵을 지키는 아버지. 그리고 내 편인줄로만 알았던 어머니의 배신. 발테르는 어머니도 함께 아버지를 욕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않았다. 믿어왔던 것에 대한 배신. 발테르는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나는 배경음이었다고, 나는 저절로 열렸다가 닫히는 문이었고 삐걱이는 침대였고 갑작스러운 기침소리였고 재채기였다고, 자신은 그 모든 것이었다고. 후에 성인이 된 날 어머니가 선물해준 시계를 내려놓고 떠난다.
"난 이제 더 이상 당신들의 시간을 살고 싶지 않아요. 내 시간을 원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그 갑갑했던 시간 속에서도 한줄기 싹트는 무언의 사랑이 있었다. 안드레아. 사랑보다 우정이 훨씬 더 심오하다는 것을 알게 된 둘은 서로를 생각한다, 기다리고 그리워한다. 사람은 만나면 헤어진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한 숙명의 결과라기 보다 서로를 감당하기에, 아니 서로를 생각하기에 지나친 사랑이 만들어 낸 결과일까. 둘은 헤어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서로에 대한 생각의 합의점을 찾아 낼 운명에 다다르게 된다. 언제나 매순간 기억해내려 애써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 반대로 불현듯 스치듯이 기억이 나는 사람. 그러나 둘 중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것인지는 모르는 것이다. 발테르는 안드레아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있었지만, 어쩌면 용기가 나지 않았는가 보다. 안드레아에게서 한 줄기 빛인 편지가 오기까지 그는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보면.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두 가지 있지. 하나는 예술이고 하나는 행동이야.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행동에는 어떤 종류의 혼란도 내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술보다 위에 있지. 이런 사실을 이해한 예술가는 랭보 한 사람뿐이었어. 그는 처음에 시를 쓰다가 아프리카로 가서 무기를 팔았지."
갑갑했던, 지옥같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와의 함께였던 삶을 뿌리치고 나아갔던 세계는 발테르에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 같더니 끝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다. 그리고 자아를 찾지 못해 헤매이고 서성이는 그 즈음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땅 속에 그저 묻혀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고는 어떠한 동요도 일지 않는다. 아주 비릿한 성장통을 발테르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고통에 대한 대가로 자신을 더 매몰차게 내던지는 것이었을지도. 그러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내려간 고향. 떨어질대로 떨어진 자신의 자존심과 성공에 대한 타락은 고향 가는 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며 듣게 된 말, "미안하다, 미안해." 발테르는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고 아버지가 죽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동안 아버지를 증오하기만 했다는 데에 대한 후회감이었을까. 아니, 후회는 아니었을것이다. 발테르만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없었을 뿐.
집을 둘러보다가 안드레아의 편지를 발견해낸다. 여유롭지 못한 느낌의 난필의 편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오래된 친구, 어쩌면 한 평생을 통틀어 자신을 찾아줄 유일한 사람 안드레아를 만나러 갈 시간.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끝에 맞이하는 것은 친구의 무덤뿐이었다. 유품 중 발견한 노트에서 안드레아는 발테르에게 자신의 길고도 긴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리고 안드레아의 옆을 지키던 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발테르는 점점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가 된 마냥 자아를 찾아내려간다.
언젠가 읽었던 사르트르의 <구토>. 그의 쉼없는 호흡, 문체의 그 호흡을 느끼고 사르트르, 그가 생각하는 모든 느낌, 기대, 행동 하나하나까지 글로 옮겨 놓은 그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구토가 일었었다. 이 책, 사르트르의 호흡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발테르, 그가 생각하는 하나하나를 글로 옮겨 내려간 문체. 그러나 그 속에서는 구토가 일지 않는다. 한 번쯤 겪어 보았음 직한, 자아에 대한 멀고도 험난한 길 찾기를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보았기 때문일까. 어쩌면 글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치만 하나하나 곱씹어 가며, 아니, 굳이 곱씹지 않아도 그저 읽어내려가는 동안 글 한 자, 한 자가 나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한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기억되는 느낌. 성장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이념이 꽤나 심오하다. 나는 발테르와 함께 호흡했고 일정 부분 이상 발테르의 머릿속을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다. 발테르는 안드레아의 벗이었고, 나 또한 안드레아의 하나뿐인 친구였다. 침묵으로 한 온종일 일관했던 발테르의 아버지는 곧 나의 아버지 같았고, 생각속의 미칠듯한 동요 또한 내가 겪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지러운 느낌과 같았다. 함께 호흡한다. 그리고, 나는 발테르의 삶을 살았다. 이제 남은 것은 내 인생을 살아가는 것. 쉼없는 자아찾기, 나도 이제 시작이다.
"그제야 나는 아주 이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삶이란 직선이 아니라 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원할 때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그 후 정확하게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하나의 틈은 세상으로 우리를 내려 보내기 위해 열려 있었고 또 다른 틈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빨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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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삶의 의미를 무엇으로부터 찾느냐는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마다 삶에서 우선시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돈과 명예에 의미를 두고 어떤 이는 사랑, 또 어떤 이는 종교에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가슴에 무엇을 품었느냐에 따라 삶의 길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길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사람들은 모두 같은 질문을 한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삶의 의미, 그것은 일부러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있는 삶의 의미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리라. 가까이에 존재하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다 여기는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더 높은 곳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불행과 고통이라는 감정이 찾아왔을까.
'세상은 고통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었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오로지 화(火)로 가득 채워져 있다. 부모님을 부정하고 자신을 부정한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화(火)로, 한 순간에 세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불로 자신을 태운다.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성인이 된 후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지만 삶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주인공에게 새로움이란 없다. 희망이란 것은 그에게 낯설기만 하다. 오로지 절망만이 있을 뿐이다. 불처럼 위험하게 살아가던 그는 어머니의 마음 같은 땅에서 편안함과 행복이 아닌 혼돈과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게 된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부러지지 않듯이 행복 또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을. 바람은 손에 움켜 쥘 수 없듯이 행복도 손에 쥐려고 하면 빠져나가 버린다는 것을. 이 책 <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의 주인공은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치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에야 삶과 화해하고 삶을 긍정적인 자세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냥 좋았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 체 무턱대고 마음을 줘버렸다. 우선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제목에서 강렬한 따뜻함이 느껴졌는데, 상처 입은 영혼을 껴안아 줄 것 같은 넓은 가슴을 지닌 바다 속에서 평화로움을 누리는 고래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지에 프린트되어있는 고래도 물론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불만에 가득차서 화만 내고 있는 주인공 때문에 따뜻함을 느끼기는커녕 처음의 좋은 느낌조차 깡그리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인공의 마음속에 있던 불이 꺼져버리고 땅으로부터 버림받은 그 순간, 주인공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삶이 힘겹지 않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사랑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듯 내가 겪는 고통과 슬픔이 가장 아파보이기 마련이다. 자신을 용서하고 화해하도록 주인공을 도운 수녀님도 자신만의 고통을 간직하고 있다. 신을 섬기는 사람은 고통도 슬픔도 고독도 느끼지 않으리라, 행복 안에서만 살아가리라는 생각은 성급한 오해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므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세상 이면에는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요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는 것이 인생의 숙제가 되어 버렸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자신의 삶이 의문투성이라 생각하고 실망스럽다 여기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삶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준다. 바로 당신 앞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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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 의 원제인 ANIMA MUNDI 는 세계영혼?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다. 한국판 제목은 의미심장한 내용을 암시하지만 원제인 ANIMA MUNDI가 더욱 책을 잘 표현한 것 같다. 아무런 수식과 꾸밈없이 거침없이 표현한 것이 닮았다고 할까? 책은 크게 3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있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외부와 내부의 간섭으로 오염되는 시기, 자신의 2발로 당당히 서기 위해서 불완전한 상태에서 독립을 실행하다 상처받고 무너져 내리는 시기,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밑바닥, 즉 깊은 바다에서 부터 깨달음을 얻고 서서히 변화되는 완성의 시기. 시대 상을 반영하는 것일까? 책에 있는 내용은 대체로 우울하고, 어둡고, 회의적이고, 비판적이다. 주인공을 둘러 싼 사람들은 행복과는 하나씩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달고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치고, 읽고 있는 나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참 우울하다. 라는 생각이 책을 덮을 때까지 내 머리에 남아있었으니... 인생에서의 고달픈 삶을 회의하며 도착한 곳에서 주인공은 단순하지만 정확하고 강력한 기쁨의 법칙을 깨닫게 되지만, 그 또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마다 아마 다른 느낌을 전달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분좋은 책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기분 나쁜 한권이 될 수도 있다. 개개인마다 다르게 다가 오는 점이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일 듯 하다. 사색의 시간을 원한다면, 인생의 원리를 알고 싶다면, 왜 인생이 직석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원을 그리는 것인지 알고 싶다면,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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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나 타마로'의 변신은 무죄다.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이탈리아 작가. 그녀는 <마법의 공원>(고려원,1996), <마음가는 대로>(고려원,2003), <어떤 사랑>(자음과 모음,2005)등을 출판했다. <마법의 공원>은 늑대아이가 성장하는 동화책이고, <마음가는 대로>는 비극적 여성3대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랑>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5가지 단편으로 모아놓은 단편소설집이다. 작가는 상처받은 영혼을 소재로 선택하지만, 줄거리도 결론도 작품들이 제각각이다.
'수산나 타마로'의 작품은 자신의 색이 분명하여, 매번 신간을 보는 재미는 남다르다. 신간 <나는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고래였다>(인디북,2007)은 1998년 출판된 <아니마문디>를 다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발테르와 안드레아, 두 젊은이를 축으로 펼쳐지는 성장소설로서 <불> <땅> <바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불> 주인공 발테르는 아버지를 지독하게 증오한다. 자라는 동안 주인공에서 말한번 제대로 붙여주지 않고, 어머니를 통해서만 말을 한다. 또한, 어머니를 구박하고, 늘 술에 취해 사는 아버지답지 않은 인물이다. 성장하면서 집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고, 방황하는 발테르는 결국 알콜 중독증 치료소로 가게 된다.
<땅> 치료소에서 안드레아를 만나 그와 정신적인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치료소를 나와서 로마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작가가 된다. 글을 잘 쓰지만, 대중적인 글이 아니라서 인기를 얻지 못한다. 자신을 도와주던 유명인의 와이프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배신당한다.
<바람> 발테르는 안드레아를 찾아 수녀원으로 간다. 그를 반기는 건 안드레아가 남겨놓은 안드레아의 숨결이 느껴지는 방과 노트뿐.
소설은 불, 땅, 바람을 거치며 성장하는 인물을 이야기 한다. 그 성장은 모두 가까운 이의 죽음과 함께 하며, 슬픔을 이겨낸 자만이 성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불에서 발테르는 수은이다. 영원히 무질서 속에 있도록 운명 지워진. 땅에서 발테르는 카멜레온이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로든 변신해야만 하는. 바람에서 발테르는 고래의 호흡이다. 깊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는.
역자는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화해할 때 자신의 감추어진 가장 맑고 투명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게 되고 더 이상 다른 사람과 다툴 수 없게 된다고 타마로는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면 남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이해하면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용서함으로써 용서를 받게 되고 죽음으로 진정한 부활을 얻게 된다.’ 이런 상태는 바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영혼과 정신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부분이다"
수난나 타마로는 현실을 힘들어 하는 이들을 위해 늘 글을 쓴다. 심오한 작가의 글을 읽고나면 삶에 깊은 통찰을 배우고, 희망을 배운다. 때론 자극적일만큼 비참한 사람들의 생을 이야기하고, 때론 특이한 사람들의 생을 이야기하지만, 결론은 한결같다. '현실을 이겨내고 성장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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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삶에 대한 무질서로 인해 고민하는 발테르를 보게 된다 내면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 방황하는 발테르는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하여 혼란스러움 가운데 불면증에까지 시달리는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가치관조차 정립되지 않아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보게 되는데 발테르는 자신의 불안정한 자신의 심리를 “틈새”라고 자주 표현하고 있다 3장(불, 땅, 바람)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인공 발터가 어린시절의 불과 청소년 시절의 땅이라는 시기를 거치며 자기를 찾기 위해 방황하고 고민하다가 3장 바람이라는 청년기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찾게되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비록 자신을 찾게되는 동기가 주변인의 죽음을 통해서이지만 불과 땅을 거치며 형성되었던 발터의 염세주의가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고 발테르의 자기 성찰을 통해 시원함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드는 느낌을 말씀드리면 처음 도입부의 호기심을 지나 후반부에서부터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서 주인공의 고뇌와 감정 등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어 이 책의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독자가 주인공의 세계 속으로 깊이 있게 빨려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책의 글귀가 아름답고 서정적이라는 것이다. 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글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 나는 어머니의 말들은 공중으로 날아다녔고(26쪽) - 펜이 종이 위에 놓이자마자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54쪽) 하지만 이 책의 단점은 대화 보다는 자기 독백이 많다 보니 읽는데 지루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다 또한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상태가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단점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에 충분한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렇듯 이 책은 읽으면서 이 책을 통해 위로 받고 현재 갖고 있는 상처에 대한 공감을 가질 수 있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타마로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치적인 문제들이 아니라, 파괴적인 위험 요소들이 점점 늘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목소리,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었다”라는 역자의 말이 기억에 여운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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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인공 발테르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청소년기의 삶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체 많은 의문들을 가지고 영혼의 방황을 했던 시기였다.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로 인해 발테르는 더욱 방황했다. 결국 그는 술 때문에 알코올 중독증 환자를 치료하는 곳으로 실려 가는데 그곳에서 안드레아를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안드레아는 발테르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서로 영혼의 친구가 되었다. 발테르가 그곳에서 나온 후 성인이 된 후에는 고향을 등지고 로마로 떠나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데 로마에서도 그는 많은 시련을 겪는다. 우선 일자리와 돈 그리고 여자 때문에 그는 많은 고통을 겪게 되고 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그는 다시 고향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데 예전에 그를 괴롭게 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라 아니라 너무 허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은 서로 화해하게 되고 모든 미움의 마음을 버린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그는 자신의 옛 친구였던 안드레아를 만나기 위해서 떠나는데 결국 그는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지내고 있었던 이레네 수녀에게서 많은 것을 듣게 되고 또 깨닫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인간으로 다시 변하게 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방황하고 찾고 있었던 질문의 해답도 그곳에서 얻게 되고 방황도 끝을 맞게 된다. 이 소설은 기존에 있던 책과는 다른 느낌을 다가온다. 왠지 철학책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자신의 영혼이 방황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언제나 마음속에 의문 하나씩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나온 것과 같이 우리들도 언젠가는 또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문들을 풀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사람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이 책에서도 나왔지만 사람들은 잠재되어있는 파괴성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는 잠재적으로 내제 되어있는 파괴적 본능을 들어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요소를 이겨내고 자신 안에 있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 즉, 자신의 맑은 영혼을 발견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가끔씩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