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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므살 소녀가 그 동안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로부터 떨어져 도쿄의 변두리 친척 할머니 집에서 머물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를 매우 잔잔하고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 2007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품질보증 Q마크'가 붙은 작품이다. 다소 간이 좀 들 배인 듯한 느낌이 전반에 흐르기에 일본 사람들보다 보통 짜게 먹는 습관을 갖은 우리 한국사람들이 읽기에는 짭잘한 감자칩이라도 곁들이지 않으면 읽다 졸아버리기 딱 좋은 작품이란 느낌이다. 몇 차례 일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읽으며 느낀 점은.. 무어라 딱히 정의하기 힘든 정서적인 괴리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작가 아오야마 나나에는 1983년생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스믈 여덟이다. 2005년 「이웃집 남자」라는 자전적(?) 장편소설로 스믈 세살의 나이에 등단, 일본 문학계에서는 나름 주목받는 신인. 2007년(스믈 다섯)에 쓴 이 작품은 그녀를 (국제 어두운 밤하늘 협회의 후원을 받던 이름없이^^)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비교적 큼지막하게 빛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밝은 별'로 만들어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읽으면서 그리 큰 감동이나 문학적 성취감을 별반 맛 볼 수 없었던 게, 나의 문학적 식견의 일천함 때문인지, 정서마저 번역할 수 없는 외국소설이 갖는 선천의 한계 때문인지, 그저 한일간에 존재하는 정서적 괴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좀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그저 '상표만 믿고 사버린 엉성한 기획상품'을 손에 들고 망연자실해하는 느낌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이 작품 바로 전에 접했던 비슷한 또래의 숙녀가 쓴 국내작품의 아우라가 너무 커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과 동시에 구매한 '전아리'의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를 바로 먼저 읽은 덕에 비교 아닌 비교가 되어버렸다. 두 작가의 역량내지 두 작품의 문학성을 저울질할 능력도, 그럴 생각도 애초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두 작품을 연이어 읽은 것이 이 작품에 대해 더 시니컬해질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걸 부인하기는 사실 힘들거 같다.
스므살의 소녀와 일흔이 넘은 할머니,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색적인 생활의 이야기가 비교적 절제되고 깔끔한 터치로 전개되지만.. 이렇다할 사건 없이 잔잔히 흐르기만 하기에, 무언가 낚일 것을 기대하며 고요히 흐르는 강물만 하루종일 쳐다보다 허탕을 치고 돌아서는 강태공의 허탈함이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책. 그런 기분마저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고수가 아니면 '뭥미?'라는 단어를 무의식적으로 마지막에 떠올리 수도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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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속내를 들킨 듯한 기묘한 멋쩍음
치즈 짱은 프리타이다.
될 수 있으면 이대로 젊고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될 수 있는 한 피부를 두껍게 해서 무슨 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억센 손톱으로 원하는 건 무엇이든 움켜쥘 수 있는 강인한 신인류가 되고 싶었던 20대 초반의 세상에는 두려운 것이 너무 많았다. 그때 나의 소망은 치즈 짱과 같았다. 가능한 한 세상 안에 빠져들지 않고, 어떤 것에도 진심이 되지 않고, 그래서 상처입지 않고 싶었다. 작고 두꺼운 껍질 안에 덩치만 커다랗고 속내는 물렁한 나를 우겨넣고서 껍질 밖의 세상으로부터 연약한 나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언제나 담담하고 조용하게, 그렇게 살면 기쁨은 포기해야 할지라도 적어도 아픔은 맛보지 않으리라.
칠순의 깅코 씨는 미묘하다. 처음 본 사람은 노망을 의심할 만큼 확실히 미묘한 할머니이다. 당연히 젊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체념해야 하는 늙은이가 왜인지 당연한 모든 것들을 은근슬쩍 무시한다. 무시하고서 겸연쩍어 하는 모습도 없다. 탱탱한 피부도 아니면서 치즈 짱의 고급 화장품을 훔쳐 쓰고, 칠순의 늙은이면서 남자친구와 함께 댄스를 추러 다니고, 자신만만한 젊은이들의 잔치인 발렌타인데이에 곱게 차려입고 초콜릿을 사러 간다. 지금껏 키우던 고양이들의 개별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체로키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고양이를 추억한다.
"제가 없어지면, 제 사진도 걸 건가요?"
모든 고양이가 체로키가 되어도, 지금 나는 존재하고, 언젠간 존재했었던 존재가 될 것이다.
나만큼이나 물러터진 치즈 짱이었지만, 한편으로 오오, 이 여자 제법 강단 있는데, 하며 은근히 감탄한 면도 있다. 후지타의 교제의 시작을 알리는 제의에 선뜻 네, 할래요, 라고 대답한 것처럼 치즈 짱은 세상에 대해 위축되어 있어도 결국은 다시 시작하곤 했다.
2007. 8.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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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는 띠지의 문안이 먼저 눈에 띄었지만, 수상작이든 아니든, 일본 소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국내 출판계에서, 또 하나의 일본소설이 나왔다는 것은 그리 주목되는 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요즘 일본소설 내용의 주류에서 조금 비켜 있다. 사랑, 혹은 일탈 등 약간의 자극적 요소가 늘 배어있는 것이 일본소설인데, 이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스무살 소녀의 일상이 담채화처럼 보여진다. 이 책은 스토리라인 위주로 읽어서는 안 되는 소설이며, 주인공이 읊어대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와, 문장 곳곳에서 보여지는 인생의 정의가 이 책의 진주 역할을 한다. '나 같은 건 세상에서 낙오되겠죠?'라고 불안한 듯 묻는 소녀의 질문에, 일흔살 먹은 깅코씨는 대답한다 '세상은 안도 밖도 없어. 세상은 하나야' 이런 식의, 간단한 대답 속에서 기나긴 문장을 대신하는 격려와 위안을 주는 것.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채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불안한 '프리터' 생활을 해가지만, 이 책을 읽을 수많은 우리나라 독자들, 특히나 고등학교건 대학교건 학창시절을 마감하고 사회로 편입되기 직전의 불안한 청춘들에게 많은 위안과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극적인 소설의 범람 속에, 너무나도 맑고 풋풋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깊이로 전개되는 소설을 읽게 되어, 독서의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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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とり日和 :: 靑山 七惠 주부로서 바깥 출입이 적은 나는 대부분의 인간 관계를 인터넷을 통해 맺는다. 주부라고 꼭 집에만 있으란 법은 없지만 만날만한 대화 상대가 별로 없다는 핑계로 그리 적극성을 띠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자연스레 '엄마 커뮤니티' 에 어울릴 기회가 생기기는 하지만 다소 비주류적인 교육 철학을 가진 탓에 잠시간만 그 무리에 있어도 금세 불편함을 느끼게 될뿐더러 아이 외에 다른 관심사를 맞추려 해도 사람수가 제한되어 있는 주변 공간에선 아귀 맞는 상대를 찾기도 어려워 어느 순간부터는 더이상의 노력도 기대도 안하게 되버렸다. 스스로의 이러한 자기 변명적 태도를 자책하고 반성해서 '꼭 관심사를 맞출 필요가 있는가' 하며 대화를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관심사를 제외하고 하는 대화란 대체로 피상적이어서 쉽게 물리고 관계에 의무감만을 갖게 만들어 오히려 더 큰 고민을 싸안는 시점까지 왔다. 그것을 탈피해보고자 '관심사' 만으로 뭉치게 되는 인터넷 커뮤니티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지만 여기는 여기대로의 딜레마가 있었다. 서로가 본질의 모습을 가린 채 오로지 '관심사' 만 이야기 하는 비중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1년이고 2년이고 '이웃' 을 맺고 매일같이 가족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한다해도 돌이켜보면 정작 그 상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친해졌다고 말을 터놓고 댓글로 우정을 과시해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상대와 진정 '친하다' 할 수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한쪽이 언제든 온라인을 끊어버리면 그대로 끊어지는 관계가 다반사였다. 그러한 관계에 혁신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실물의 만남' 밖에 없다는 생각에 어떤 인연이든 기어이 만나려고 바깥 자리를 주선했는데, 외부 만남에 소극적이어서 인터넷으로 들어왔던 내가 결과적으론 사람을 외부에서 만나고자 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체현하게 된 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초반에는 일시적 충만감을 주었으나 갈수록 지리멸렬해져갔다. 서로의 의지에 비해 주거지의 거리가 멀다거나 직업이 달라 시간대를 조율하기 어려운 점 등 현실적 제약이 가장 큰 이유였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만남은 뜻이 안맞는다고 거부하고, 뜻이 맞는다는 가상의 만남은 그것이 가상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거부하고, 고르고 골라 뜻도 맞고 대면할 수 있을만한 상대가 있는가 했더니 물리적 제약으로 거리를 좁힐 수 없다는 둥, 어느날 깨닫고 보니 나는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모든 관계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결실을 보려 한다한들 피곤한 노력이 불가피 했다. 그것이 사실 [관계] 라는 것에 있어서의 필수불가결한 의무이자 책임일텐데, 받아 들이지 못했던 나는 그 회피를 [관계의 허망함] 이라 제멋대로 이름 붙히고 모든 노력을 포기한 채 차라리 '혼자' 가 되는 것에 익숙해지기를 바라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혼자' 가 되는 방법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적어도 몇가지의 연습이 필요했다. 누군가 찾아와도 그리 반가워하지 말아야 하며 그러다 나가도 그리 서운해하지 말아야 했다. [만남] 으로 대신했던 시간들을 혼자서 유용할 무엇들로 채워 넣어야 하기도 했다. 타인을 보며 부러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기대하지도 말아야 했다. 그것이 어렵다면 되도록 타인을 '안 보고' 살아야 했다. 철저히 '혼자' 가 되어 그저 스스로 마음 편하고 즐거워야만 했다. 그러나 그 '도피의 갈망' 이란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의 산물이었던가! 수면 위에 버둥거리며 떠있는 것이 버겁다고 '잠수' 해봤자 숨막히는 것은 결국 자신인 것을, 사실은 살려달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주의를 끌려는 투정에서 발현되는 심리인 것을, 사람이 사람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피에 기록되어 알고 있는 것을, 애써 거부함으로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을 반복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으랴. '혼자' 가 되고싶다는 건 뭘까. 사람이 진정 '홀로' 가 되는 것을 바랄 수가 있을까. 사실 그건 그저 자기영역의 확보라는 정체성 불안의 대리 욕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혼자' 가 되고 싶다는 말은 누군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개별의 존재로서' 봐달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와 같은 타인은 없기에, 타인을 만남으로서 내가 나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줄, 그런 상대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 진정 '혼자' 가 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그동안 깨달음 같은 것이 있었어도 말로 잘 정리할 수 없었던 것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비로소 글귀를 찾게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치즈가 '홀로' 이고자 깅코씨를 떠나는 것은 분명한 자기정체성을 찾고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구나. 아니, 설령 당장은 찾지 못했어도 그것을 찾기 위해 '혼자' 로서 타인과 '관계' 하기 위해 세상에 발을 딛는 거구나, 하고. 내가 진정 '혼자 있기 좋은 날' 을 맞이하기 위해선 전철처럼 스쳐 지나가도 다시 찾아오는 타인을 기다리고, 맞이하고, 타거나 내리고, 보내야만 하는 것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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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늦든 빠르든 그 순간이 찾아 온다. 그건 바로 '독립'이라는 순간이다. 태어나서부터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성장하다가 언젠가는 그 곁을 떠나 혼자가 된다. 하지만 그건 가슴 설레고 떨리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긴장과 불안을 동반하기도 한다. 스무살의 치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로 왔다. 역이 보이는 자그마한 단독주택에 사는 깅코씨의 집에 얹혀살게 된 치즈는 프리터로 생활하고 있다. 치즈가 어머니의 곁을 떠나 독립하게된 것은 어머니가 중국으로 가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즈가 어머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낯선 집, 낯선 사람, 낯선 일. 큰소리치며 엄마곁을 떠났지만 치즈는 막상 자신이 새로 접하는 모든 것에 대해 낯설다. 하지만 조금씩 깅코씨와도 친해지고, 남자친구도 새로 사귀고, 새로운 아르바이트에도 잘 적응해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다. 가벼운 도벽 증상이 있는 치즈. 그녀는 깅코씨, 새로운 남자친구 후지타, 깅코씨의 남자친구 호스케씨등의 작은 물건을 훔치고 그것을 신발통안에 넣고 가끔 열어 보는 순간을 즐긴다. 마치 그 속에 그들과의 모든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처럼. 어린 아이가 자신의 체취가 묻은 담요나 인형에 집착하는 것처럼. 그런 것은 치즈는 어머니 곁에서 몸은 독립한 것은 맞지만 아직 마음은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벌써 일흔이 넘은 할머니인 깅코씨는 스스로를 잘 가꾸고, 자수를 놓고, 댄스도 배우고, 호스케씨와의 사랑도 잘 이루어져 간다. 오히려 스무살의 치즈보다 더 활기찬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해 오던 이십대와 칠십대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두 사람의 생활이 뒤바뀐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스물살이라면 꿈 많고 행복한 시절. 뭐든 다 이룰수 있는 나이. 그리고 아직 길고 긴 세월이 있는 나이이고, 일흔 하나라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 완고한 나이, 그리고 세상에 대한 재미를 못느끼는 나이라고. 그러나 현재의 삶에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해하는 건 오히려 깅코씨이다. 물론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어쩌면 아직 치즈는 어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더 불안하고, 더 전전긍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외롭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란 건 누군가 대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누군가에게 위로받는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치즈는 깅코씨와 함께 하면서 그런 것을 자연히 깨달아가게 된 것은 아닐까. 치즈와 깅코씨의 대화, 그리고 깅코씨의 연륜이 담긴 촌철살인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잔잔히 퍼져 나간다. 고교시절까지를 세상의 안쪽, 대학시절을 그 중간단계, 그후 시절을 세상밖이라 생각했던 나도, 세상에는 안팎이 있다고 생각했던 치즈도 모두 틀렸다. 세상은 하나라는 깅코씨의 말이 큰 여운을 남긴다. 현대의 가정과 가족, 사회상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게, 조용하게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혼자 있기 좋은 날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할 꺼리와 여운을 남겼다. 모든 것은 처음이 어려운 법. 특별하다고 할 수도 있고,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과정. 치즈는 그 첫발을 떼기가 두려웠지만, 그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치즈의 그 용기있는 한걸음에 용기를 얻어 또다른 한발을 내딛는 독자들도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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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단의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아오야마 나나에의 『혼자 있기 좋은 날』을 읽었다. 「2007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라는 거대한 문구가 관심을 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문학이 쓰나미처럼 한국 도서계를 강타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 크게 부각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고 하겠다. 다만 무라카미 류와 이시하라 신타로를 위시한 일본 문단의 거물들과 일본 평단, 독서꾼들의 찬연한 찬사의 평이 끊이지 않는 점은 이례적이라 할 만하다. 아오야마 나나에를 수식하는 이러한 이례적인 현재성이 내가 그녀의 작품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의무를 결정짓게 만들었다.
200 페이지가 채 안되는 하드커버의 앞 표지에 고독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겨 있는 한 여인의 얼굴이 담겨있다. 표지를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마치 거꾸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하는 여인의 표정은 우울하면서도 목마르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마치 누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어, 하는 외로움과 두려움의 내면상태를 보여주려는 듯 양장본의 첫 표지를 넘기는 데 몇 분여의 시간을 소요케 한 묘한 비쥬얼이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다가 갑작스런 엄마의 중국 교환 유학으로 인하여 이별하게 되고 먼 친척 할머니 집에서 얹혀 살게되는 1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소 무뚝뚝하고 표현을 절제하는 할머니 깅코 씨와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스무 살 치즈의 만남, 더욱이 50년이 넘는 상이한 세대의 만남은 불편하고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일상의 관계에서 매번 상처를 겪어왔던 치즈는 타인에 대한 겁과 두려움의 각을 세우며 살아가는 아이다. 지하철 플랫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교제한 후지타와의 만남도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두려움이 교차되면서 치즈를 압박한다. 우려했던 이별은 현실 앞에 직면하게 되고 매번 겪었던 일이지만 실연의 아픔은 크고 무겁기만 하다.
나이가 갖는 공력은 절대적인 것인가? 70세가 넘는 할머니 깅코 씨의 삶은 언제나 소소하고 평온하다.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치즈의 일상이 불안정하고 두렵고 냄비 같은 젊은 날의 초상이라면 깅코 씨의 일상은 안정적이고 평온한 인생의 득도 수준이다. 치즈와 깅코 씨와의 소소한 대화는 많은 것을 얘기하지 않는 최대한의 절제미로 표현된다. 발렌타인 데이, 사교댄스, 크리스마스 등의 젊은 날의 소유물이라 여겼던 것에 대한 깅코 할머니의 적극적인 영위와 자기만족은 치즈에게 요상스러운 질투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정작 치즈 자신에게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치즈의 소소한 도둑질은 관계의 한 방법으로 묘사된다. 치즈는 깅코 씨의 인형, 호스케 씨의 은단, 후지타의 담배 등 얌채스런 손버릇으로 모은 이것저것들을 자신 만의 신발상자에 보관한다. 신발상자 속의 자잘한 것들은 치즈의 일상을 함께 하는 자들과의 사회성을 간접적으로 충전할 수 있게 한 소중한 보물이자 안식처와 같은 것이다. 치즈는 마지막 깅코 씨의 집을 떠날 때 어떤 물건은 제자리에 돌려 놓고 어떤 것은 자신의 방을 두르고 있던 고양이 사진 액자 뒤로 숨겨 놓는다. 자신의 존재감이 죽지 않도록, 그리고 개성이 상실되지 않기를 원하는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관계가 주는 아픔과 상처에 번민하며 약한 자로 살아야 했던 치즈.. 깅코 씨의 집에서의 1년여의 관계에 대한 인생수업을 통해 혼자서 회사의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버젓한 어른으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삶의 기쁨이자 또 다른 도전이다. 데이트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가던 중 건너편 어린 아이의 소소한 모습이 관찰된다. 신발을 벗고 지하철 창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어린 아이를 엄마가 성가시게 나무라면서 돕고 있다. 간신히 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아이의 포니테일을 나부끼는 모습을 바라보는 치즈의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은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치즈는 어린 아이를 관조하면서 바로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시간대를 현재에 통합하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소설의 각 장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로 설정하고 있다. 사계절의 풍경과 등장인물의 일상을 오묘한 담채화처럼 그린 묘사, 문체의 절제미, 뚜렷하고 분명한 표현, 인간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문구와 주옥같은 장면. 지하철역과 그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1년간의 이야기는 한달음의 진도로 완독할 수 있는 집중력을 제공한다. 개인과 개인의 만남, 개인과 사회의 관계, 그리고 변화되는 것에 적응하고 대처하는 인간의 절제된 내면을 담백하게 그려낸 이 작품에 나는 평점 4개 반을 부여하는 용단을 보였다. 미래가 없어도 끝이 보여도 어쨌든 시작하는 건 자유다, 라고 외치는 주인공 치즈의 관계에 대한 상처와 치유, 회복을 담담하게 그린 『혼자 있기 좋은 날』을 '혼자 있기 좋은 날'을 즐기는 이들에게 '혼자 있기 좋은 날'에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책장을 덮은 뒤 얼마 전 당뇨로 쓰러진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지난 주말 병문안으로 대전에 다녀왔는데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외손주를 쳐다보는 외할머니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 외할머니는 항상 나를 볼 때마다 10만원을 주셨다. 단 한 번도 거르시지 않았다. 설날이든 추석이든 그 외의 어떤 만남에서든지 언제나 10만원짜리 봉투를 내 호주머니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여느 친척 어르신들과는 달리 어떤 충고나 인생의 조언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 얘기를 들어주시고 철저히 거기에만 반응하셨다. 그러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시며 대견해하셨고 기뻐하셨다. 외할머니에게 나라는 존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쁘고 흐뭇한 존재였던 것이다. 어렸을 적에는 혜안이 부족하여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어떨 때는 수백 마디의 말과 위로보다는 한 번의 웅숭깊은 침묵과 기다림이 더욱 많은 것을 전해줄 때가 있다라는 것을..
Written by 다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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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가장 먼저 눈에 띄인...그런 책이였다.
그다음은.. "세상밖은 험난하겠죠? 저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라는 문구가 눈에 띄인 책이였다.
나 역시도 책의 주인공인 치즈짱처럼.. 아니..어쩌면 20대를 접어든 모든 사람들이라면.. 같은 생각과 고민을 가지고 있을것이다. 대학교2학년까지 다니다가 휴학을 해버린 나는... 츠즈짱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독립이라는 문제도 그렇지만.. 20살이 넘어서..혼자서 자기 삶을 책임져가며 부모님께 의지를 하지 않으며 살아간다는 것... 집에선 아이지만..밖에서는 나를 성인으로 대한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있다. 그래서 마냥 아이처럼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난 22살이나 되었지만 아무것도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을 해본적이 없다는걸 알고있다. 치즈짱은 20살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며 살아가지만...나는 아직 아르바이트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점에선..치즈짱에 비해 너무나 부끄러운 내자신이 한심했다.
치즈짱은 대학에 가지않고 바로 돈을 벌며 살아가고 있다. 반면..대학에 들어간 나는..졸업이 다가오면서 취업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밀려와서 휴학을 했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난에 당연한듯이 시달리고 있다. 그런점에선..치즈짱이 어쩌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든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보니.. '그다지 가지 않았어도 되었을걸..'이란 생각을 했었다. 차라리 공부에 관심이 없다거나..공부를 열심히 할 자신이 없다면.. 비싼돈으로 대학에 가는 것보단... 치즈짱처럼 자기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자신을 책임진다는 것은...어렵고도..무섭고..두려운 말이다.
치즈짱과 나의 차이점이 또 있다면.. 그것은 용기이다. 치즈짱은.. 독립을 위해 과감히 자기 자신은 세상에 던졌다. 혼자도 살고 돈도 벌면서 자기 앞가림도 하고.. 그것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난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난 혼자서 할수있는게 별로 없다. 치즈짱처럼 독립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고.. 아직...세상속에 나를 던지지 않았다. 가족이라는..정확히 말하면.. 부모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아직까지도 힘들다. 치즈짱의 용기가 나에게도 조금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치즈짱과 나는... 고민이나 생각면에선 같지만.. 그렇지만 실질적인 행동이나 결단력은 다르다.
같은..그렇지만 다른.. 그건..."치즈짱"과 "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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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가 되면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어하는 여성이 먼 친척벌 되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독립하기전에 사겼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 생긴 남자친구와 잘 되어가나 싶더니 주인공보다 더 멋진 여자애의 등장으로 깨져버린 사랑이야기, 청춘 남녀의 사랑이 쉽게 깨지는 반면, 할머니의 댄스교습소 남자친구와의 우정도 사랑도 아닌 관계는 계속해서 유지가 잘되어 간다. 두번이나 사랑을 식혀버리고 자기를 위해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는 20대여성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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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기 좋은 날 (2007년 아쿠타가와 상 수장작)
[미니 느낀점] 무색에 가까운 이 책은 엄마의 품을 벗어나 알을 깨고 첫 발을 내 딛는 병아리 같은 이야기이다. 20살의 치즈(스스로의 '지혜'로 '수'를 누리라는 뜻)는 대학을 포기한 채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도쿄로 이사한다. 엄마는 함께 중국에 가길 원했지만 치즈는 아무래도 일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자유를 얻었으니 당연 중국은 사절이다. 그렇게해서 먼 친척인 일흔살의 킹코씨 집에 머물면서 그녀는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의 날개짓을 해본다. 독립을 목표로 도우미와 역 구내매점 판매원 그리고 정수기 회사인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직 목적은 돈을 모으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귄 애인과 권태기를 맞이하고 치즌 아무래도 헤어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예감된 이별은 적중했고 새로운 사랑이 그녀에게 찾아온다. 사사즈카 역 프랫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중 한 사람이었다. 큰 키에 항상 깔끔한 차림의 모습은 늠늠해 보였다. 결국 그의 이름이 '후지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용기내어 자주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웃어 보았다. 어느날 그의 갑작스런 데이트 신청으로 연인사이가 되었다. 치즈이 동거녀인 엉뚱하면서 늙음을 잊고사는 듯한 깅코씨는 사교댄스에 다닌다. 20살의 치즈보다 더 젊게, 더 멋지게, 더 재미있게, 더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인생의 허무함을 알기에 하루 하루를 즐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치즈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런 깅코씨가 부럽고 멋져 보였다. 자신을 위해 화장을 하고 데이트를 즐기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소녀와 같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청춘이라는 시가 문득 떠오른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청신함을 말한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는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 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인간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혔을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눈이 멀고 흰 머리가 희근희근해져서 노인이 아니라 생각의 늙음이 노인이라는 시이다. 내가 본 치즈는 젊고 피부는 탱탱했지만 노인이었고 깅코씨는 비록 손가락 크기만한 주름이 얼굴에 가득했지만 그녀는 청춘이었다. 서로 같은 공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다시 봄을 맞이한다. 그 사이 치즈는 후지타와 이별을 하고 엄마는 중국 남자가 생겨 언젠가는 결혼 할거라 넌지시 일러 놓는다. 완벽히 이제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기 싫어 외로움이 무서워 사람을 찾고 찾았지만 결국 끝은 항상 혼자였다. 언젠가는 깅코씨도 죽겠지하는 슬픈 생각을 해보았다. 지독한 그리움과 함께 또 다시 봄이 왔다. 봄은 늘 새롭다. 그리고 그녀도 이제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정식사원이 되었다. 정식사원이 되면서 강코씨의 집을 나와 회사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이제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찾아옴을 느낀다. 혼자 있기 싫어 외로움과 맞서지 않으면 그녀는 평생 이곳에 눌러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독립을 결심한다. 엄마의 품속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처럼 세상은 그녀에게 두려움이었지만 깅코씨 말대로 세상은 안도 밖도 없으며 젊을때는 고생을 해야하는 법이다. 그러면 훗날 치즈가 50년 후에는 깅코씨의 모습이 되어 여유를 찾는 법을 배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작가(아오야마 나나에)가 대학 졸업 후 첫 사회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마음을 글로 표현한거라 한다. 그녀는 24살 나이에 작가로써 인정도 받고 동시에 직장생활도 겸하고 있다. 내가 24살때 뭐 했을까? 생각해 보니 그 먼 옛날일처럼 까마득하다. 그리고 왠지 가장 어려운 일이 가장 쉬울 것 같은 생각을 해보았다.
[책속의 말] 들어가기 싫다고 생각했다. 감정을 넣어 소리내 말해보았다. 소리를 내는 순간 거짓말같이 여겨진다. 어느쪽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드어가기 싫다든가 들어가고 싶다든가 그런거에 상관없이 가라고 해서 온 것이다.
상자 속에 얼굴을 박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 속에 있는 것들은 시간과 더불어 퇴색해간다. 저마다의 냄새를 잃어간다. 나도 변했을까?
나가기 싫다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혼자가 되보고 싶다는 이 기분을 무시하면, 나는 언제까지고 여기 눌러 앉아 아무것도 모른채 평생을 마치게 될지도 모른다.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미래가 없어도 끝이 보여도 어쨌든 시작하는 건 자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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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대했던 것 만큼은 아니었다 가볍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으나 너무 소소하고 평범했다. 문장이나 글솜씨도 그리 뛰어나다고 할 수 없었다.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빌려봤다면 만족했겠으나 돈주고 산 나는 조금 후회했다.
아쿠가와타상 수상을 크게 내걸고 있는데 일본에서 그 상이 얼마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책이 한국작가가 쓴 것이었다면 출간은 되었을지 몰라도 상은 받지 못햇을 거라고 생각한다.
글쎄 다른 리뷰들은 평점이 꽤 높은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는 못주겠다. 솔직히 돈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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