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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내용보기
막스 베버에 따르면 '금욕주의적인 이상'을 위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생성에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금욕주의, 노동에 대한 신성시는 어느나라에서나 강조되는 미덕이다.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것은 "세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성냥을 켠다"는 독일인의 근면성이라고 한다. 또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도 '성냥갑 집' 속에서도 아무 불평없이 무뎃포(無鐵砲)로 저축했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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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에 따르면 '금욕주의적인 이상'을 위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생성에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금욕주의, 노동에 대한 신성시는 어느나라에서나 강조되는 미덕이다. 전후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것은 "세사람이 모여야 비로소 성냥을 켠다"는 독일인의 근면성이라고 한다. 또 전후 일본의 경제발전도 '성냥갑 집' 속에서도 아무 불평없이 무뎃포(無鐵砲)로 저축했던 경제동물 일본인의 힘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한강의 기적'도 마찬가지이다. 전무후무한 생산력을 보여주었던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은 바로 인간에게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하지만 칼 맑스의 사위인 라파르그는 게으름에 대해서 찬양한다. 어쩌면 구소련이 몰락한 것 역시 '플레하노프 운동'처럼 게으름을 격퇴하는 노동영웅을 국가가 조작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나, 실제로 '한강의 기적'은 그 댓가로 수많은 '산업역군'의 피와 살을 먹고서 이룩한 것이 아닌가? 세계 최고의 40대 사망율에 이어, 무수히 발생하는 과로사. 과연 무엇을 위한 발전이며, 생산이며, 노동이란 말인가?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이제 와서 배가 부르니까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삶은 과연 '노동을 위해서 존재'하는가? 과연 라파르그의 장인인 맑스가 말한대로 인간의 본질은 '노동'인가? 매일매일 바쁜 생활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은, '반성의 계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인상깊은구절]
고대의 노예제도를 슬픈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그리스도처럼 프롤레칼리아의 남편과 아내들 그리고 아이들은 벌서 한세기 동안 고통스럽게 고난에 가득찬 갈보리 언덕을 오르고 있다. 한세기 동안이나 강제노역이 이들의 뼈를 부러뜨리고, 피부를 멍들게 하고 신경을 망가뜨렸다. 한세기 동안이나 굶주림이 이들의 내장과 뇌를 산산조각내 왔다. 오! 게으름이여, 이 오랜 고통에 자비를 베푸소서! 예술과 고귀한 미덕의 어머니인 게으름이여, 이 인간의 고통에 위안이 되어 주소서!
4*******i 2001.06.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일상의 공간 속에는 용납되지 않는 게으름
"일상의 공간 속에는 용납되지 않는 게으름" 내용보기
일상적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제약이다. 아니 차라리 그 제약을 알고 그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훌륭한 사원이고 되고 똑소리나는 주부가 되는 것이다. 국가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같은 거대구조의 통제가 그렇듯이,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성질이 그렇듯이, 일상의 미시적 공간도 철저하게 나와는 박리되어 있다. 라파르그는 그것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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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공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제약이다. 아니 차라리 그 제약을 알고 그에 적응하는 것이 우리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훌륭한 사원이고 되고 똑소리나는 주부가 되는 것이다. 국가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같은 거대구조의 통제가 그렇듯이, 시대의 에피스테메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성질이 그렇듯이, 일상의 미시적 공간도 철저하게 나와는 박리되어 있다. 라파르그는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래도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교묘하진 않았던 시대, 즉 자본주의가 익숙해지지 않았던 시절 여기에 두드러기를 일으켰던 우리 조상들의 고투를 배경으로 라파르그는 맑시즘의 의미를 다시 보여준다. 그것이 어째서 영원한 우리의 화두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작업장과 일터는 더욱 각박해지고, 우리의 여가는 작업장의 일들을 보충하는 시간과 장소가 된다. 아니, 차라리 여가 자체가 여가인 것처럼 교육받았던 것들일 뿐이니까, 그나저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예컨데, 지금 여가로 공인된 놀이들 대다수가 나는 재미없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찾고 싶은 것처럼, 본연의 자연스러움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처럼, 더 절망스러운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복원을 말할 것이 없는 우리의 공간처럼, 실천도 없는 것이 지금의 일상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보그스도 철저하게 전제적인 '신비로운 노동'의 등장은 예견하지 못했다. 이것이 사회 속으로 스며들어와, 오늘날 기술혁명에 의해 너무나 쉽게 마모되고, 또 생산수단과 분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의 조작에 너무나 쉽사리 농락당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있다.
e****l 2001.08.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