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평화주의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데,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 종교단체가 그 주인공들이다. 20대 중반 까지는 나 역시 병역거부자들에 대해서 냉정하다 못해 증오의 시선으로 봤을 때가 있었다.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에서 나오는 민족주의든지 아니면 기독교적 가치관이었던지, 그들의 세상에 대한 불일치와 행동들은 온통 이해 못하는 것들이었다. 이 책은 병역거부라는 것이 역사적으로나 세계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고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처리되었으며 그들(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이 어떻게 투쟁하였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이 우리나라나 여호와의 증인들만의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평화와 종교를 통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기실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기인한다는 사실과 단순히 개인의 일신의 신변을 위해서 행하는 피상적인 사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여지껏 우리는 이단들의 변명이라는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단순하고 간단하게 생각해 왔던가....오늘날 우익기독교 목사들이 판치는 교계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평화의 의미는 왜곡되고 정당한 전쟁, 국가에 대해 복종하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시선을 흐리게 했던 목소리들에서 벗어나 올바른 평화의식과 전쟁에 대한 무가치함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책이었다. 도입부를 넘어가면서 병역거부에 대한 교회사적 증명을 하기 때문에 교회사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은 어렵거나 따분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주 유익한 부분이었고, 작가의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변증은 정말 재미나고 감동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점이었다. 만약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부분만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물론 기독교적 멘트들을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 책을 지금에서야 읽는 것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비겁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만약 이 책을 군대가기 전인 20살의 내가 읽었다면 과연 그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판단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결과가 어찌되었건 참 많이 괴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항상 주변의 나와 다른 소외된 것들에 대해서 관용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항시 내 마음에도 간직되고 있는 주님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관용의 바구니에 각각의 열매들을 담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을 끊임없이 읽고 자신의 우매한 아집들을 깨트려야만 가능한 법이다. 그것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 한국사회에서 전쟁과 평화는 한국의 근대(약19세기 중반 이후) 이후 지금 현재까지 절대절명의 주제다. 오늘도 우리는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고민과 논박을 거듭하고 있다. 근대와 더불어 시작된 한국의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이 갈등의 한가운데 설 수 밖에 없었다. 기독교에 대한 명제는 평화의 종교다. 하지만 유럽에서와는 다른 이유이지만, 한국의 기독교도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되지 못했다. 일제시대에는 거의 기독교 전체가 전쟁과 폭력을 옹호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제에 저항을 위한 폭력을 옹호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친일로 인한 일본제국주의의 지지를 위한 전쟁 옹호였다. 시대가 바뀌어 해방이후는 그 광적인 전쟁에 대한 자기 정당성이 극대화 되었다. 바로 공산주의에 대한 성전이라는 명제 때문이었다. 해방공간에서의 백색테러, 기독청년이 주축이 된 이북청년단의 집단 린치와 학살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것은 남북전쟁과 그 이후의 남북대치 상황에서 누구도 딴지 걸수 없는 기독집단의 대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사탄의 세력이며, 그들에 대항하는 모든 것은 이미 성전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80년 광주에서도 '빨갱이'라는 한 단어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고, 교회를 대표하는 어느 세력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교회조차 평화와 비폭력을 주장하지 않았던 한국사회는 폭력성에 물들어 갔으며, 이미 성년이 된 우리 대부분은 학교, 군대 등을 포함한 모든 사회조직, 심지어 교회에서 조차 폭력에 심신 노출되었으며, 근본적인 폭력성에 물들어 갔다. 그런 우리의 눈에 간디는 너무나 위대했지만, 연약해 보였고, 루터 킹 목사는 존경할 만하지만 위험하고 과격해 보였다. 그리고 지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 많은 피뿌림으로 얻는 정치적 민주화에 힘입어, 평화주의가 조금씩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소수 종교인 여호와의 증인들의 대명사가 된 병역거부가 이제는 불교도를 비롯한 일반인에게 확산되고 있으며, 대체복무를 위한 법제 마련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한기총 등의 보수집단 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거부에 관심도 없고, 이것을 오히려 이단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반공에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아니다. 기독교 내의 젊은이들이 문제다. 많은 이들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다. 기독교 평화주의? 이들에게 고민거리가 되어본 적이 없다. 다만 보수적인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등 교회 지도자들의 성경의 권위를 뒤에 엎은 협박성 주장에 고개를 주억이며, 기회있을때 한표 행사할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김두식 교수의 "칼을 쳐서 보습을"은 너무나 소중한 책이다. 폭력의 사회에서 보수적인 교인으로 살아온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얼개는 일반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평범할 수 만은 없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은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접촉점을 가지고 시작된 책은 평화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성경과 현실에서의 평화주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으로 그 설득력을 높여가며, 문제의식을 던져 준다. 이 책은 읽는다는 것은 괴로움을 동반한다. 한국사회에 살면서 모든 감각과 이성을 물든인 폭력성의 실체를 자신 안에서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익숙해진 사고의 구조와 반응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의 방식으로... 여지껏 폭력과 보복에 익숙해진 나의 대응방식이 옳지 않기에. "정당한 전쟁","예수님은 폭력을 사용했는가", "사형은 정당한가" 등의 주제가 가슴에 깊이 세겨지는 내용이었다. |
| 이 책은 평화주의(pacifism)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의 정의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초대교회는 평화주의를 견지해왔지만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이 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여 '정당한 전쟁'을 주장하는 이론이 주류가 되고 아직까지도 그런 흐름은 계속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런 흐름에 거슬렀던 이들에 대한 가혹한 핍박이 있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차츰차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되는 게 이 책의 전반부까지의 이야기이다. 후반부는 '정당한 전쟁'이론이 성경적이라기 보다는 권력과의 타협에서 비롯된 이론이며,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데 이용되었을 뿐 전쟁을 막아본 적은 없는 이론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의 대부분은 반대를 위한 반대임을 논증하고 있고. 결론적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가 속히 입법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정당한 전쟁을 논증하면서 "죄 없는 자의 생명을 빼앗는 것에 대한 정당화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그런 적은 없었지만, 특히 지금과 같이 대량살상무기가 발전할대로 발전한 지금 죄 없는 자의 생명을 빼앗지 않고도 전쟁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지 W. 부시가 이 점에 대하여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전쟁을 일으켰는지 궁금하다. 우리 한국교회는, 안타깝게도 주류적인 흐름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단 문제로 둔갑을 시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보니 예수님부터 초대교회에 이르는 평화주의 대신 '신성한 국방의무' 같은 얘기만 하고 있고. 한마디 더, 몇 다리를 건너 전해들은 얘기이지만, 누가 김두식 변호사님께 제자 가운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하겠야고 물었다고 한다. 그 대답이, 이미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고 그런 결정을 내린 이가 있다고 한다. 무조건 말리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 땅에서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힘들다고. |
| "칼을 쳐서 보습을"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글이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글이다. 김두식의 글이 박노자, 한홍구와 다른 이유는 그 바탕에 있는 기독교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를 기독교의 본연의 모습인 평화주의로 풀어가려고 한다. 기독교의 전쟁과 평화의 역사를 보고 현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관용을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여러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리고 대체복무에 대한 고민을 사회 구성원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홍구의 한겨레 기고문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사족: 기독교 출판을 하는 뉴스엔조이에서 아직 입금도 하지 않았는데 책을 보내왔다. 책을 받고 바빠서 며칠동안 입금을 하지 않았는데, 전화 한통 오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어디서 이런 일들을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