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 돼지 삼형제. 우연히 둘째 아들 녀석이 읽어달라고 칭얼대길래 보니까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아들이 이상하게 동물들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그 녀석이 들고 오는 책들은 모두 동물과 관련된 책들입니다. 어떨 때는 토끼 책을 들고 옵니다. 어떨 때는 코끼리 책을 들고 옵니다. 그러면서 읽어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아직 한글도 모르는 녀석이 얼마나 읽어달라고 칭얼대는지, 어떨 때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인지 아이가 저를 이해시키는 것인지 이해가 안될 때가 있습니다. 아들이 저를 혼내기 때문입니다. "아빠 그거 아니잖아~!" 그러면 저는 어느새 책을 건성으로 읽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니 한글도 모르는 녀석이 그건 어떻게 아는지 아주 신기할 정도로 잘 찾아냅니다. 오늘도 어쩔 수 없이 한 권의 동화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돼지 책을 읽어달라고 가지고 왔는데, 아기 돼지 삼형제였습니다. 세명의 형제, 그것도 아들만, 그 엄마 돼지도 참 힘들었게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아이가 셋인데, 그나마 첫애가 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이 저마다 집을 지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큰 아들 돼지는 짚으로 집을 짓게 되는데, 늑대에게 단번에 집이 날라가 버립니다. 둘째 아들 돼지는 나무로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참 웃긴 것은 나무로 지은 집이 늑대의 입김 한번에 날라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늑대가 얼마나 힘이 좋길래? 하는 의문을 갖고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웃게 됩니다. 막내 아들 돼지는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대로 벽돌로 집을 짓게 되어집니다. 늑대는 짚푸라기로 지은 집도 한번 날려봤고, 통나무로 지은 집도 날려봤기 때문에, 벽돌로 지은 집도 날라가리라고 생각하고는 힘껏 힘껏 힘껏 불어보지만 도대체 쓰러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집들을 그냥 대충 지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씩 우리는 그런 말들을 합니다. 하다가 귀찮아진다 싶으면 "아~! 그냥 대충해 대충." 그러다가 보니까 수많은 부실들이 나타나는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아들 돼지가 처음에 집을 지을 때, 셋째 아들 돼지처럼 고생하면서 지었더라면, 막내 동생의 집으로 늑대를 피해 피신가는 모습은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아들 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그것에 합당하게 집을 지었더라면 자기 동생에게로 도망가는 창피는 당하지 않았을 거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유비무환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참 유비무환이 안되는 나라로 대표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매년 당하는 물난리로 침수 피해를 당해도, 내년에 똑같은 지역이 거의 똑같이 당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동화책 아기돼지 삼형제를 우리 국민 모두가 읽고 막내를 본받아야 될라는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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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미 알고 있는 아기 돼지 삼형제와 내용이 조금 다르네요. 집을 나온 아기 돼지 삼형제는 각자의 성격에 맞게 집을 지는 것은 같아요. 하지만, 이들이 직접 집 지을 재료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이들에게 짚이나 나무, 벽돌을 달라고 해서 지어요. 첫째 돼지는 짚으로 얼기설기 집을 지어 놓고 둘째 돼지는 나무로 집을 짓고 셋째 돼지는 벽돌로 차근차근 튼튼하게 지어요. 늑대가 나타나지요. 그리곤 첫째가 지은 집을 입김과 콧김을 이용해서 날려 버리고 첫째를 잡아 먹어요. 둘째 집에 간 늑대는 또한 입김과 콧김으로 집을 부셔버리고 둘째또한 잡아 먹어요. 원래 이야기에는 늑대에게 집을 잃은 첫째와 둘째 돼지가 셋째 돼지 집으로 도망쳐 나오는 건데 말이죠. 셋째 돼지는 다른 돼지들과 달리 튼튼한 집을 지어 늑대가 함부로 부셔버리지 못합니다.
늑대는 튼튼한 집에 있는 돼지를 잡아 먹지 못해 돼지를 바깥으로 유인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똑똑한 돼지는 늑대의 꾀임에 넘어 가지 않고 자신의 실속을 다 차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대로 늑대는 돼지집의 굴뚝으로 들어가서 팔팔 끓인 솥에 빠져 죽고 말지요.
판본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고 하네요. 돼지가 잡아 먹히느냐 도망치느냐에 따라서 말이죠. 폴 갈돈은 잡아 먹히는 쪽의 판본을 선택했네요. 그림또한 아이들이 그린 듯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수정에 수정을 했다고 하네요.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예전 동화를 읽다 보면 이제껏 알고 있는 내용과 조금 다른 점을 가끔씩 발견하곤 해요. 아무래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보니 중간 부분에 더하고 빼는 것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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