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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고 있는데, 느긋하게 반대방향으로 걸어가고 있거나 느티나무 아래에서 유유자적하게 부채질하며 누워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용주' 시인이다. 그가 일구어 낸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하는 삶의 또 다른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내 마음에도 여유가 깃든다. 그는 2003년에 책과 음악 CD와 20킬로그램 쌀 한 포대와 된장 고추장 등 기본양념 몇 가지만 가지고 치악산 금대계곡 질아치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일하고 싶으면 조금 하고 싫으면 말고 하면서, 최소한의 것으로 굶어죽지 않으면서 제 멋대로 자연 속에서 뒹구는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
계속 내 리뷰를 읽어 온 이웃분들 중엔 "또 정용주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마음에 끌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글을 사랑하게 되고 , 그가 쓴 책들을 찾아서 읽어야 되는 것을!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시시콜콜 알고 싶어한다. 숲속에서의 삶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9년 째 치악산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그의 삶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의 글은 인간적인 향기가 풍겨오고 글은 서정적이고 유머러스해서 읽는 이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글을 자꾸 읽게 된다. <숲속의 게으름뱅이>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으므로 숲속의 삶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에겐 저절로 관심이 생긴다.
지금은 산사람이 되어 그 곳에서 조화로운 삶을 잘 살아가고 있지만 그도 처음부터 바로 적응하고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치악산으로 들어간 지 며칠이 안 되었을 때 그는 짐을 대충 정리하고 허리가 아프도록 실컷 자고 있어났다. 그리고 계곡에가서 물을 마시고 얼굴을 씻고 이를 닦았다. 그런데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그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황당했다. 이제부터 할 일도 없고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는 사람이다. 어디 오라는 곳도 없고 찾아 갈 곳도 없다 생각하니 앞뒤로 첩첩이 막힌 초록의 능선과 파란 하늘이 막막하게 느껴지면서 이상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거 내가 인생을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점심 때가 다 되도록 마루에 앉아 마음을 안정하지 못한 채 갈등에 빠졌었다.(40쪽)
너무나 급작스럽게 주어진 그 많은 자유가 오히려 불안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니… . 알 것 같다. 쉴새없이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이루어 내어야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현대인이야말로 할 일이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겠는가. 특히나 부지런해야 한다고 누누히 교육을 받아 온 새대들은 절대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면서 '게으름'을 '여유'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겼으며 '느림'에 대한 추구도 많아졌다. 늘 목표를 세우고 뭔가를 이루어야 된다는 신념이 강했던 나같은 사람에겐 정용주 시인의 삶은 참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인간의 본질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배고플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놀고 싶을 때 노는 것!
자연 속에 있으면서 좋은 점은 그들로부터 삶을 느끼는 것이다.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아도 깨우쳐지게 해 주는 삶이 자연 속에서의 삶인 것 같다.
손으로 고랑을 메우고 부드럽게 두드려준다. 바싹 말라 열매처럼 굳어진 파 씨는 흙 속의 깊은 어둠에서 숨을 터트리고 깨어날 것이다. 모든 목숨은 고립된 어둠 속에서 최초의 숨을 쉰다. 어둠의 시간들이 머리에 푸른 싹을 달아준다.(61쪽)
'모든 목숨은 고립된 어둠 속에서 최초의 숨을 쉰다. 어둠의 시간들이 머리에 푸른 싹을 달아준다.'
이 얼마나 멋지고도 의미 깊은 문장인가! 그러고 보면 사람들도 엄마의 어두운 자궁에서 최초의 숨을 쉰다. 그 어둠의 공간과 시간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모습과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지혜을 담을 수 있는 머리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과 만나기 위해 만반의 준비는 환한 곳이 아닌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어둠'을 절망이나 불량스러운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숲에서 나는 제일 늦잠꾸러기. 잠 끝에 귀가 열리고 이불 속에서 눈을 뜨면 졸졸 물 흐르는 소리, 밤나무가지에서 가래나무로 고야나무로 산목련나무로 옯겨 다니는 새소리, 능선이는 마당에서 놀도 두 마리 칠면조는국국 거리며 풀잎을 쫀다. 가슴털이 붉은 콩새는 강아지 밥그릇의 사료를 훔쳐 그루터기에서 콕콕 쪼아 먹는다. 문을 열면 이슬 묻은 초록의 이파리들, 아침 해살이 비껴들어 툇마루에 따뜻한 방석을 깔아놓는다.(52쪽)
나도 말년에는 숲속의 게으름뱅이로 살아가고 싶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삶을 느끼고 그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이번 달 말경에는 치악산 금대계곡으로 정용주 시인을 만나러 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