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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정아라'라는 분이 쓴 리뷰를 읽고, 민음사 판 신곡을 읽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 구입해서 읽고 나서 나의 의견을 적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긴 시간을 들여 꼼꼼히 리뷰어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밝히며 리뷰를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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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곡>을 읽기로 결정한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을 만큼 황당한 이유에서였다. 천병희 씨의 역서와 <파르치팔> 등을 연이어 읽던 나는 숫제 풍부한 주석이 붙은 완역본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때 우연히 김운찬 씨가 번역한 <신곡>을 보게 되었고, 운문시의 형식을 그대로 살려 번역한데다가 수많은 주석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기야 주석이 본문 바로 옆에 달려 있다는 점도 한몫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단테가 살았던 시기는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초기에 걸쳐 있다. 하지만 자랐던 시기로 본다면, 단테의 사상이나 관념은 다분히 중세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곡>이 카톨릭 교리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만 해도 그렇다. 읽다 보면 정말 '전근대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요소들이 군데군데 보이고는 한다.
하지만 중세적 관념을 기반으로 하되, 거기에 함몰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중세적'이라는 표현은 르네상스와 근대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 중심적이 아니라 신 중심적이라는 의미이다. 그 와중에서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숨쉬고 있는 것을 보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단테의 상상력이 가장 빛나는 부분은 '지옥'편이다. 단테의 지옥은 개념도를 그릴 수 있을 만큼 세부적이고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설정되고 묘사된다. 지옥에는 유명한 죄인들이 한가득 모여 있다. 또한 단테가, 혹은 단테가 살던 시대가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은 지옥에 있는 것으로도 묘사한다. 여기에 대해 단테가 편협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나 역시 그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재미'는 있었다. 장미전쟁에 대한 기반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보면서 웃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 지옥 밑바닥의 묘사였다. 그곳에서는 타락천사 루시퍼가 수많은 죄인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극악한 세 죄인을 물고 있다. 중앙에 있는 한 명은 너무나도 당연히 유다이다. 그리고 좌우의 두 명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카이사르 암살 주범을 유다와 동급의 배신자로 놓다니. 카이사르가 역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기는 하지만, 다분히 종교적인 장소에서 이런 대우를 받다니 영 어색했더랬다. 단테가 이탈리아 출신이라 그런 건가?
순간 다른 나라, 혹은 다른 시대의 사람이라면 이 세 명을 과연 누구로 결정할지, 약간 짖궂은 궁금증이 생겼다. 기독교도라면 중앙의 인물은 당연히 유다겠지만, 나머지 두 명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단테의 지옥 자체가 기독교적인 장소이니,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은 중앙에 누구를 넣을까 하는 의문은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연옥 편도 인상깊게 보았다. 연옥은 단테 이전에만 해도 희미한 개념이었지만, <신곡>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한다. 역시 유명한 작품만큼 강한 이미지를 남기는 매체도 없는 법이다. 선과 악의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선과 악이 중첩되며 혼재되어 있고, 지옥편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선과 악이 교차하는 모습은 보는 재미도 이중으로 겹칠 때가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법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름아니라 단테의 조상이 연옥에 있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조상에 대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엄정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의식의 발로였을까, 성인도 아닌데 조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 넣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어느 쪽이든 조상이라고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는 모습이 은근히 신선하게 다가왔더랬다.
개인적으로 천국 편은 좀 밋밋했다. 하기야 찬송과 찬양만이 존재하는 곳이니, 질곡도 굴곡도 갈등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사족을 붙이자면, 난 단테가 개인적인 숙적이 지옥에 간 것으로 묘사한 지옥편을 보고 '자신을 편들어준 사람을 나중에 마구 천국에 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대목은 없다. 천국 편만은 철저하게 기독교의 성인과 신이 세계의 섭리를 주재하는 모습으로 그렸다. 지옥편에서는 뒤틀린 선악 구분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연옥편에서는 선도 악도 아닌 인물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해 주었건만 말이다. 역시 절대선은 칭송할 수는 있어도 재미를 느낄 수는 없는 걸까, 아니면 보편적인 선이 아니라 종교적 선을 다루어서 그만큼 경직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중세 말기의 선과 현대의 선은 다르기 때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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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희극을 뜻하는 Commedia 였으나 1555년 베네치아판 출간시에 성스럽다는 형용사를 덧붙여 Divina Commedia 로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구조적인 텍스트로 유명한데
천상을 지옥,연옥,천국으로 나누어 지옥편 34곡(도입 1 + 33),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 으로 이루어져 있고,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베르나르도스 이 세명의 안내자에 의한 7일동안의 여행을 통해 단테가 신에게로 가는(신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구조를 좀더 살펴보자
연옥 29곡까지는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안내를 받는데 의지의 수련과정으로 소위 개고생의 단계이다.
그리고 단테라고 직접 본인의 이름을 언급한 30곡 55행(그림에서 녹색 동그라미 "단테"부분)은 안내자가 사랑의 상징인 베아트리체로 교체되는 부분으로 지혜의 탐구와 구원의 희망을 암시하면서
관조를 통해 우주의 진리를 깨달으면 신과 하나가 된다는 신플라톤 주의의 대표적인 철학자 베르나르두스를 통한 지성의 완성과정을 뜻한다.
이것은 인간이 예수의 죽음으로 원죄에서는 벗어났으나 지옥, 연옥과 같은 상태를 거치면서 고통을 끌어안아 내적 성찰이 이루어진 후에야 고요하고 신성한 상태로 담담히 신을 만날 수 있으며(신과 하나되는 상태)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각 편의 9곡 부터가 진짜 지옥, 연옥, 천국으로 들어서는것으로 내용의 통일성을, 각 편의 끝은 별로 끝남으로써 형식미를 갖춘다.
"별"은 영원한 진리, 궁극적인 목적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그만 틈새로 보인 별들은 평소보다 더 밝고 또 더 커보였다"(연옥 27곡) 와 같은 표현으로 천국에 가까이 감을 암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당시 사회의 시대적인 배경(당파싸움으로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된 이후 쓰여진) 에 대한 이해와 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들로 주석을 꼼꼼히 읽으면서 해설서도 같이 참고하여 보아야 하므로 쉽지는 않은 편이지만, 간혹 익숙한 등장인물이 나오면 새삼 반갑기도 하고, 재기 넘치는 형벌의 종류, 말로만 듣던 천국구경 등 나름의 재미가 있다.
맛보기로 각 편의 한부분씩만 소개해본다.
지옥은 신의 정의(능력, 지혜, 사랑)를 내리면서 지옥은 신의 공정함으로 만들어진 곳임을 나타내며, 현실에서도 희망을 버리면 지옥이다라는 것.
여기서 "나"를 지옥문으로 하지 않고 실제 나(독자)로 읽으면서 나때문에 슬픔,고통, 버림받은 사람이 있는지 잠시 자기 반성의 시간을...
연옥은 죄를 씻어내는 곳이며 죄의 참회는 ( 9곡에서 계단 ) 생각-말-행위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영혼을 갈고 닦아야만 하는 곳이다.
천국은 사랑으로 가득찬 지성과 기쁨으로 가득찬 신의 사랑이 있는 물질적인 것이 없는 순수한 영역으로(30곡) 지혜(미네르바), 예언(아폴론), 예술(뮤즈)의 수련을 통해 의지의 자유와 영혼의 자유를 갖게 됨으로써 이를수 있다.
천국 31곡에서 33곡까지는 베르나르도스의 기도를 통한 구원을 그린 부분으로 성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함.(강유원박사가)
더불어 신곡은 4월 8일 성금요일부터 15일 사이에 있었던 여행인데, 성금요일은 예수가 고난을 당한 날이며 이날을 위해 작곡된 음악이 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십자가 위 예수의 일곱 말씀>
< 참고도서 > - 인문 고전 강의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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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 있는 신곡 원어완역판은 서해문집에서 발간한 한형곤 교수의 번역, 민음사에서 발간한 박상진 교수의 번역, 그리고 마지막이로 책세상에서 발간된 김운찬 교수의 이 번역본을 들수 있다. 각 번역본이 장점과 단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번역본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가장 명료하고 평이한 번역으로 가독성을 높인 점이다. 신곡의 그 악명높은 주와 시적 모호함을 감안할 때, 명료성에 촛점을 맞춰 과감하게 생략하고 다듬은 번역은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나서 작품에 몰입하게 해주는 경험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형곤 교수의 개역하기 전에 출간된 구판을 읽었는데, 한국어 어법에 맞지 않는 법역도 더러 눈에 띄고 원문의 3행연구 형식을 살리지 않아서 다소 산만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었다. 다른 중역판들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비슷한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봤을 때, 굳이 의역하지 않아도 될 부분을 의역하고 각주를 단다든지(차라리 직역을 하고 해설을 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각 행들의 길이가 지나치게 축약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부분은 아니고 3행연구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길이를 맞추느라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책 디자인도 좋고 가격도 가장 저렴해서 부담이 없는 것도 장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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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구원을 노래한 불멸의 고전. 총 14233행의 장대한 서사시 신곡. (나를 통하여 통곡의 거리로, 나를 통하여 영원의 벌을, 지옥의 문을 지나 들어서자 땅속 깊숙히 들어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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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고전은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전을 찾는 이유는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사람들로부터 그 가치를 분명히 인정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곡' 또한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다. 역자가 지적 했듯이 '전체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방대한 내용과 주제 및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 가 넘치는 까닭에 그에 따른 '배경 지식과 정보'를 갖추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까닭이다.
'열린책들'에서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신곡'은 역자 김운찬 교수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다. 타번역본에 안타까움을 느낀 역자가 오랜시간 공을 들여 번역 했다. 둘째로는 그나마 비교해 볼 수 있는 다른 번역본을 읽어보지 않은 까닭이다.
에는 너무 많아서 그것을 완벽히 이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른 번역본과 비교해 가며 수차례 읽어(도 겨우)야 조금 이해 할 수 있지 싶다.
신곡 자체의 내용은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그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았던, 그 보다 훨씬 고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그가 실제로 사모 했던 여 인 베아트리체를 등장시켜 그들이 자신을 각각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안내한다는 설정이 독특하 게 느껴졌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그 누가 상상하고, 표현해 내려 할까?
못했다. 특히 종교인에게는 민감한 그곳을 비록 일부는 다른 곳에서 참고 했다고는하나 당시에는 지금 보다 더 민감했을 이야기일텐데 그것을 그린 그의 상상력과 표현력 그리고 과감성에 혀를 내둘렀다.
앞서 말했지만 다른 번역본을 보지 못한 까닭에 애석하게도 이 번역판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다른 쪽으로 몇 자 적자면...
삽화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삽화라는 것이 책의 이해를 돕는 동시에 읽는 것이 지루해질 즈음 쉬어가는 시간을 주는 목적이 있는 데, 그것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읽는데 애를 먹었다.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쉼없이 읽어야 하니 어찌 곤혹스럽지 않을까?(하지만 삽화가 없는 이유를 다른 분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되어 다행이다.) 곡 옆에 해설이 붙어 있어 글을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주석이 붙은 책을 읽을 때 반드시 맞 딱뜨리는 문제인 '오로지 본문, 본문 + 모든 해설, 또는 본문 + 필요한 해설' 중 어떠한 방식으로 읽어 야 하나에 빠졌다. 본문만 읽는다면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해설을 동시에 읽는다면 글을 읽는 흐름이 계속 끊 겨 글에 집중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설을 보지 않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가 어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결국 세 가지 중 마지막을 택했다.
해설에 대한 다른 생각은 해설이 글 바로 옆에 있어 보기 편했다는 것이다. 대게 해설은 본문 맨 밑이 아니면, 책의 가장 뒤에 가져다 놓는데 두 가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지 않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뒤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물론 본문에 해설이 있으면 눈길이 자 꾸 가서 본문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지만 - 책을 다 읽고 나중에 볼 것이 아니라면 - 이왕 볼 것이라면 본문과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여건이 허락한다면 '열린 책들'의 신곡처럼 바로 옆 에 붙어있는 것(물론 신곡은 시 형식이라 가능한 것이지만)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흐름이 끊어지 는 것을 가장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에 바라고 바라던 신곡을 읽게 되어 기뻤다. 하지만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해서 아 쉽다. 그렇기에 앞으로 두고두고 보며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