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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방송되었던 대하사극 <왕과 나>의 주인공인 내시 김처선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세종 때 내시로 궁에 들어가 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여러 임금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며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내시 김처선의 삶을 팩션형식으로 그린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사기>라는 역작을 만든 사마천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거세를 하고 궁권생활을 한 내시들의 삶은 어떠했을지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격변기였던 조선 초기를 살아온 주인공답게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이 다루어진다. 그 중에 가장 핵심적 부문은 역시 연산군 생모인 윤씨폐비 사건을 둘러싼 궁중의 암투와 내시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단순한 모함을 넘어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고 권력을 향해 나아가려는 군상들의 모습이 박진감있게 그려진다. 역사서에는 왕을 비롯한 실질적 권력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사실 역사의 그늘에 묻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어간 스토리이다. 왕을 지척에서 모시던 내명부의 여자들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거세를 당한 왕의 남자인 내시들의 역할도 상당했음을 느끼게 된다. 주인공은 거세당한 인간으로 주변의 사대부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내시들이다. 하지만 실질적 권력을 향한 마음이나 주변의 아름다운 여인들에게서 느끼는 남자로서의 욕망은 똑같이 존재하는 법이다. 주인공 김처선은 내시지만 결혼을 하고 첩을 두고 양자를 두면서 살아가고 있고, 정치의 전면에 나서려는 욕망을 여전히 살아있는 법이다. 이 책은 숙명적으로 상처받은 존재인 내시의 삶을 그린다. 비록 몸은 거세당했지만 인생마저 거세당하지 않겠다는 몸무림을 치는 존재들이다. 살아남기 위해 또는 권력을 잡기 위해 내명부의 여인들과 손을 잡기도 하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음모도 서슴없이 꾸민다. 연산군의 생모인 윤씨를 몰아내기 위해 내시들과 후궁들은 모함과 권모술수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연산군 즉위로 처절한 복수극이 전개되는 것은 역사공부를 통해 이미 배운 내용들들이다. 주인공 처선은 학문적 소양도 있고, 세상을 보는 눈도 있고 왕을 모시는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우여곡절 끝에 내시부의 수장인 판부사가 된다. 폐비윤씨와 약속을 지켜 목숨을 걸고 연산군을 지킨다. 하지만 즉위 후 방탕한 생활을 하는 연산군에게 목숨을 건 직언을 하고 결국 연산군에게 잔인하게 살해되는 비운을 맛보게 된다. 과연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받으면서도 왕의 남자로서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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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고 다니던 여자가 내시로 신분을 위장하고 궁에 들어가서 세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내시부 중에서도 왕을 모시는 사람은 '상선'이라는 존재로 가장 높은 지위에 속한다. 지위가 높다고 하면 권력이 있는 것다는 것이고 그만큼 감내해야 할 몫도 많아진다. 정치에 휩쓸려 죽임을 당하는 경우도 심상치 않게 있을 것이다. 김처선은 세종대 내시부에 들어가서 문종과 단종 그리고 세조와 예종 성종에 이어 연산군까지 여러 왕을 모시며 정치생활을 했었던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다. 여러 임금을 모셨다면 그만큼 오래 산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왕들의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왕권이 그리 오래 유지도지 못하고 자주 바뀌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그로 인해서 극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당파싸움이 일어나고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특히 연산군을 마지막으로 모시면서 그가 겪어야 만 했던 심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은 상상하기 조차 힘들다. 결국 그는 아기때부터 세자를 거치며 자신이 직접 보살펴왔던 연산군에 의해서 죽임을 맞이하게 된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자신이 왕을 구하는 것이 내시의 보임이기는 하나 너무 허무한 죽음앞에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가 죽은 후에도 연산군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않고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 또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통치 시절 하루에도 몇십명씩 죽어야만 했던 그 안타까운 목숨들은 어찌할꼬. 실록에서는 철저하게 왕의 이야기를 쓰고잇다. 그로 인해서 내시들의 생활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이 책은 김처선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쌓았기에 더없이 충실한 소설. 단지 허구라 보고 지나가기에는 작가의 자료수집이 아까울수도 있겠다. 실제로 존재한 인물을 그리고 있기에 어느 정도까지는 고증을 바탕으로 했고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만 작가의 상상력을 더했다고 본다면 그것이 가장 정확할 듯 하다. 내시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윗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사람들이다. 경호원이기도 하고 비서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누구보다 자신이 모시는 사람들의 편인 존재들이다. 세자같은 경우에는 어려서부터 돌보아 마치 자신의 자식같이 가르치면서도 돌보아야 할 상전이기도 하고 세자가 왕이 될 경우 자신 또한 높은 자리를 보장받고 권력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권력중심의 중앙에 위치한 직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처선 또한 그랬다. 자신이 모시던 왕이 승하한 후 분명히 자신이 그 지위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 법. 내시부의 모든 지지를 받고 분명히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건만 자신이 생각한 그 자리는 다른 이에게로 넘어갔다. 그 모든 것은 다 권력다툼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밀려나고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러움. 그것은 궁에서 나가라는 것과 마찬가지였겠지만 김처선은 그 다툼의 중심부에 서기보다는 한발 뒤로 물러남을 원했다. 그런 선택이 현명했을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다시 찾는데는 말이다. 오랜 시간 많은 왕들을 거치면서 그들의 최측근으로 셨던 김처선을 통해서 그 당시의 역사를 다시 보게된다. 같은 일을 보더라도 다른 주인공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달리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알지 못했던 내시부의 일상들 그리고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들 그리고 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행해졌던 모든 권력분쟁의 소용돌이들. 그 중심부에 있었던 김처선을 통하여 생생하고 느낄수가 있게 된다. 소설인듯 역사서인듯 재미를 주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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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물처럼 쏟아지는 최근 역사 소설을 읽는 재미를 남달리 맛보게 된 나는 얼마전 사도세자의 고백이란 책을 읽고선 두 손에 걸려든 책이 바로 <왕과 나, 김처선>이었다. 연산군을 배경으로 한 '왕의 남자'란 영화도 있지만, 여기서 왕의 남자는 내관 내시를 염두에 둔 말이다. 사내 구실을 하지 못할지라도 왕의 측근으로 모시며 청운의 기개를 펼치고자 했던 왕의 남자들이란 모티브가 심금을 울린다.
서두에 예종이 죽을때 그의 석연찮은 죽음 뒤에 도사리고 있는 어두운 음모가 독자를 소설 속으로 흡입하는 첫번째 단서가 된다. 왕을 독살했을 것이라는 추측,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열쇠를 누가 맡을 것인가? 독자로 하여금 처선이 앞으로 암투와 혈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있을 것임을 예측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성종을 둘러싼 정 소용과 윤씨의 갈등은 정 소용의 오라버니 정환지와 내시부 상선 한필주의 대립을, 내시 정귀수와 김처연의 대립을 낳았고, 내시 습생 조원과 형조참의 신경민의 조연급 등장 인물의 활약이 이 소설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약방의 감초였다. 임금을 독차지하려는 후궁의 보이지 않는 암투에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가 결탁하여 이야기의 하일라이트는 어느 한쪽이 희생양이 되어가는 처지에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만큼 박진감이 넘쳐 흐른다.
이 책에서는 정 소용이 악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윤씨는 어쩔수 없는 희생양이 되었다. 역사소설이 추리소설이 될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명확한 역사적 근거가 소수인터라 내가 본 다른 책에서는 윤씨의 정 소용에 대한 질투가 심하여 그를 저주하고 독살하려 했다고 진술한다. 또하나, 윤씨가 성종과의 사소한 부부싸움 끝에 용안에 손톱자국을 내었으나 다시 화해한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다른 역사서에서는 용안의 손톱자국이 결국 윤씨가 폐위하는 사건을 이어진 것으로 드러난다. 성종과 윤씨의 화해가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성종의 고집스런 결단으로 윤씨를 사사케 했으나, 다른 역사서에서는 인수대비의 의지로 폐비 윤씨의 사사가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으니, 이 책에서는 줄거리의 풀롯을 살리기 위해 소설적인 재미를 더하는 선택을 위해 강한 허구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사 추리소설을 보는 맛이란 서로 화해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강렬한 복수심을 동반한 죽고 죽이는 액션도 있지만, 내시부의 벼슬을 뜻하는 상약, 내시부의 벼슬인 상온, 내시부 사무실인 내반원 등 몰랐던 역사 용어를 알아가는 재미, TV에선 조연으로만 등장하는 내시들의 진득한 삶의 현장이 고스란히 저자의 상상력 속에 그윽히 담겨 마치 옛날 할머니가 해주신 식혜를 먹는 잊을 수 없는 재미처럼 느껴졌다. "대궐에 들어온 지 50년 전하를 업어서 키우고 보위에 오르도록 받을어 온 것이 제 평생의 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네 내시를 임금의 심부름이나 하는 자로 알고 있습니다. 배알도 없는 버러지 같은 자로 알고 있습니다. 임금은 우리를 벌레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생산도 못하고 대를 잇지 못하는데 어떻게 벌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필주가 이원호에게 자학하는 대목에 이르러 내시의 한에 깊이 공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융은 들으라! 너는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포악한 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지하에 있는 내가 부끄럽구나. 당장 흥청을 파하고 근신하라!" 가슴에 묻어두었던 정사의 뜻을 일필휘지하는 마음으로 고한 그의 거룩한 충정이 내 가슴 속에서 한없이 울 뿐이다. 책을 모두 읽은 지금.. 김처선, 그가 그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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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내시하면, 남성성의 상징을 잊어버린 이유만으로 변성기 전의 그것도 간사한 목소리로 전혀 비중 없는 것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고정관념처럼 그려졌던것들, 또는 금기시 했던것들이 재 해석되고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처선이다. 사실 내시라고 해서 아무나 왕의 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내시도 양반가의 자식이라야 그 자격이 주어졌다고 한다. 궁녀나 내시들은 관료의 이름을 절대 알아서는 안되는 규율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이들이 알게 모르게 국정에 얼마나 깊게 관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암튼 본 소설은 김처선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그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강직하게 반대세력에 맞서 싸웠다고 말하는것 같지만 전개는 그가 살기 위해 끌려다니는듯 보였다. 마지막에 설렁한 끝맺음이 아쉬웠지만 좋은점은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았던 부분을 재해석을 통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리뷰와는 살짝 다른 여담을 하자면... 역사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역시 소설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 몇줄 만으로도 드라마적 전개로 몇백장에서 몇천장의 소설이 만들어진다. 역사적 배경 특히 인물을 재구성한 소설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 "역사를 바로알자"라는 슬로건의 운동이 적절하게 시작된다. 이 소설 또한 읽다 보면 역사적 배경과는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책은 국사책이 아닌 그야말로 소설이다. 아마도 역사 소설로 정확한 고증을 찾는다면 무리가 있을듯 싶다. 독자로서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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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은 영웅들만 주인공이 되는 줄 알았다. 내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시에 대한 고정관념은 너무나 잔인하다. 남자가 아닌 남자. 줏대없는 모습.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가느다랗고 찢어진 목소리. 그게 전부이다. 그들에 대해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어느 정도 허구가 차지했다손 치더라도 충격이고 신선이었다. 내시가 내시가 될 수 밖에 없던 사회적 환경과 그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왕의 보좌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던 사실, 그리고 부인과 양자까지 들여 한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모습. 이 모든 것을 알게 해준 작품이다.
김처선은 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까지 여섯 임금을 모셨던 야망과 권력을 지닌 내시였다. 이야기는 처선을 총애하던 예종이 독살되었다는 가설로 시작한다. 처선은 예종의 죽음이 평범하지 않은 죽음임을 감지하고 그 뒷조사를 하려고 하나 판부사내시에서 한필주에게 밀리면서 결국 궁에서 나와 7년간 가정을 꾸리며 은둔하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궁에 가있다. 결국 성종의 총애를 받았던 윤씨의 왕비 간택을 앞두고 한필주로부터 다시 궁으로 나와달라는 부름을 받고 내시 생활을 다시 하게 된다. 하지만 윤씨를 둘러싼 후궁들의 계략과 암투 그리고 인수대비의 미움, 급기야는 성종의 총애를 잃게 된 윤씨는 폐비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사약을 받기에 이른다. 이후 연산군이 즉위하고 사약을 받아 피를 토하고 죽었던 윤씨의 옷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윤씨의 친정어머니가 연산군에게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게 되면서 연산군의 광기어린 폭정이 시작된다. 윤씨의 신뢰를 받았던 처선은 어떻게든 연산군을 보호하며 그를 왕위에 올려놓았지만 그의 폭정을 참지 못하고 직언을 하다가 결국 그토록 보호하고자 했던 연산군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다. 본인이 죽임을 당할 것이고 자자손손 그 죽임이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늘날 처선 한사람이 아쉬운 것도 그때문이리라.
마지막에 처선이 연산군에게 호통을 내리는 장면은 그 카리스마가 세상을 휘두를만하다. 그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영혼을 담아 연산군에게 직언을 한다.
"융은 들으라! 너는 만백성의 어버이로서 포악한 행위를 일삼고 있으니 지하에 있는 내가 부끄럽구나. 당장 흥청을 파하고 근신하라"
내용을 언뜻 보면 한낱 내시에 불과한 처선이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싶지만, 작품에서는 전적으로 처선의 시각으로 역사가 풀이되고 서술된다. 신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절대적 권력자도 아닌, 한 사람의 내시가 인간으로서 왕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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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에 있어 가장 많이 드라마화 된, 소설화 된 왕은 단연 연산군이다. 작년 한 해 영화와 연극에서 독점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왕 또한 연산군이었다. 올해도 여지없이 성종과 폐비 윤씨와 연산군과 각종 사화들로 버무려진 핏빛 조선왕조사가 브라운관에서 펼쳐지고 있다. 왕의 남자였던 광대 대신 내시를 앞세워 암투와 음모가 횡행하는 구중궁궐의 음습한 권력투쟁의 장으로 자못 장대하게 초대받는 듯하다.
동명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지만, 원작은 아닌, 그러나 시류에는 딱 맞아떨어지는 『왕과 나, 김처선』은, 거침없이 쏟아지는 역사소설의 범람 속에서 그리 특징적이지 못한 평의한 한 권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왕을 보필하며, 비서가 되었다가, 밀정이 되기도 했다가, 권력의 핵에 맞닿아있는 이들의 수족이 되어 암투를 조장하고, 돕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여겨지던 내시의 영역을 당당히 정사로까지 확장시키려는 시도는 그리 만족스럽다고 할 수 없다.
역사소설이 무기로 삼을만한 새로운 역사적 재구성과 재해석보다는, 기존의 야사를 그대로 빌어 와 익히 보고, 듣고, 읽어왔던 갈등구조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중견작가의 필력이 드러날 만한 탄탄한 서사는 어디론가 실종되고, 온통 직접적으로 풀어쓰고 있어 노출되어버리는 설정들에 실소가 나올 만큼 긴박감과 압축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화려한 궁궐 안에서 가장 비천하고 냉대 받는 이들인 내시가 지존을 모시며 행할 수 있는, 소명의식 넘치는 정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그리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연산군이 연이어 일으키는 사화에 맞서 당당히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처선을 내세우긴 하지만, 그의 사사롭지 않은 대의명분이 소설 속에서조차 그리 흥미롭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내시부에 관한 치밀하지 못한 묘사들이 김처선과 그를 둘러싼 궁중의 전문 관리능력집단인 내시들의 세계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만들고 있진 않은지. |
인상깊은 구절술수가 많은 자는 술수로 죽는 법이다.
너 혼자 죽는 것은 상관이 없다. 허나 다른 사람까지 사지로 끌고 들어가서는 안된다. 교만한 자는 자신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인다. 왕의 남자 혹은 왕의 비서로 왕의 뒤에서 그림자 정치를 했던 사나이, 내시 내시 그들은 누구인가..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왕과 나? 이건 드마가 제목인데 싶었는데, 그 밑에 이름 석자 김처선. 김처선이 누구지? 생소한 이름이었다. 읽어보니 내시에 관한 이야기.
작가 이수광님은 꽤 유명한지라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의 주인공 김처선은 세종 때 내시부에 들어가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연산군까지 여러 임금을 모신 이이다. 내시를 통해 보는 조선 왕실의 이야기이다.
낯익은 이름들이 나오고, 소설같지 않은 그때의 시대 상황으로 쉬이 빨려 들어갔다. 보통 왕의 입장에서 아니면 관리들의 입장에서 본 소설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글은 오랜만이다.
읽으면서 느꼈던 교훈이라 하면 김처선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늘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장면에서 조원이 그것을 보고 확실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좀 의아스러워하면서도 눈여겨보던 장면이다. 생활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나의 행동을 본받아 그 사람이 변화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제대로 산 사람이 아닐까 싶은...
나의 말과 행동과 배려하는 마음들을 더 키울 수 있어야하겠다.
평소 내시라 하면 목소리가 가냘프고 공손한 몸가짐으로 허리를 잔뜩 숙인채 걸어가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내시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을 아픔들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특별 교육이라 하여 인과란 것이 있는데 인과는 고통을 견디는 것으로 바늘로 손톱 밑을 찌르기, 거꾸로 매달기, 곤장 맞기, 코로 물 먹기와 같은 잔인한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이는 대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한필주가 뇌물을 먹었다는 상소에 성종이 호통을 쳤다. 왜 뇌물을 먹었느냐? 소인을 죽여달라는 말에 뇌물을 받은 연유가 무어냐고 묻자, 소인이 전하를 모시게 되자 당상관이며 당하관들이 찾아와 뇌물을 주었다. 백냥을 가져온 사람에게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 뇌물이 작아서 그러는 줄 알고 5백 냥을 가져옵니다. 5백냥을 거절하면 소인이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모함을 합니다. 5년 전에도 소인은 모함을 받아 죽을 뻔한 일이 있다. 허면 받은 뇌물을 모두 어찌 했느냐? 소인도 뇌물을 주었습니다. 정승 판서에게 뇌물을 주고 서헌부와 사간원에 뇌물을 주었습니다. 네 무엇 때문에 뇌물을 주었느냐? 소인을 모함하지 말아달라고 뇌물을 주었습니다.
이런 현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한편의 사극드라마를 보는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긴 책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었을 내면의 상처들을 나 또한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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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김처선
왕의 남자 혹은 왕의 비서로 왕의 뒤에서 그림자 정치를 했던 사나이....내시!
[미니 느낀점] 책을 통해선 내시들의 세계를 알수있었던 왕과 나, 김처선. 사실 내시라하면 남자 구실을 하지 못하고 천대받은 사람이라 난 생각했다. 여자도 아닌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삶을 살아가는 그저 등을 굽실거리며 '네네~~'하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로 그저 생각했다. 내시에 대한 나의 상식 수준이 여기까지 였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너무 다른 내시의 삶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 옛날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상종집 여식들이 흔히 궁녀로 내시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가끔 예외도 있다. 양반집 여식중에서도 환관이 되는 자들도 있었다. 내시들이 하는 일은 국왕이니 비빈들의 명령을 전달하고 온갖 일을 하지만 직위에 따라 왕을 보위하기도 하고 책사로도 활약했으며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며 왕의 조언자로도 활동했다. 그들의 역할이 다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중 하나가 어렸을때부터 받은 엄격한 교육으로 본다. 그들이 끊임없이 학문을 닦아야 하는 이유중 하나가 시험에 통과하지 않으면 엄한 체벌에 가해지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공부는 끝이 없구나하는 생각과 인정받으려면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많은 내관이나 나이어린 내관이나 할것 없이 끊임없이 학문을 닦는 모습을 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워야하는 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랬던 사실은 내시들의 사생활이었다. 내시들은 궐 밖에서 생활하는 내시부가 있고 궐 안에서 내반원이 있어서 출퇴근하는 내시들도 있다. 직급이 높아지고 재력이 되는 내시들 중에는 결혼도 하고 첩까지 두는 내시들도 있는 가 하면 대를 이을 수 없기에 양자를 들여 자식을 두는 내시들도 있다. 내시들도 사람인지라 아내도 두고 싶고, 자식도 두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나마 그렇게 할수있는 내시들은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 내시들이 태반이고 어릴적부터 궐안에 들어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야 하는 내시들이 대부분이어서 동성애자들도 많이 있다. 끓는 청춘을 감당하지 못해 내시들끼리 사랑을 하는가 하면, 궁녀들과 남몰라 사랑을 즐기기도 한다. 내시가 왕의 남자라고 하면, 궁녀들은 왕의 여자가 아닌가! 왕의 손길을 닿지 못한 궁녀들은 평생 처녀로 늙어야 하니 그들의 속사정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그래서 외로운 내시와 궁녀가 만나 사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그들의 운명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 걸리면 혹독한 곤장을 피할 수 없으므로 그들의 사랑은 남몰래 피어오르는 욕망일 뿐이었다. 김처선은 세종 때 궁으로 들어와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까지 모두 7대의 왕을 모시는 내관이었다.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에 내시마저 그를 어려워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의 바른말은 왕들에게도 곧잘 퍼부어져서 한편으로 총애를 받는가 하면 한편으로 그 때문에 궐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김처선은 문종때부터 내시부 습생으로 내시부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단종과 세조를 거치면서 김처선은 내시부에서 점점 기반을 잡아가다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했을 때 19세 홍안의 나이로 잠들듯 고요히 독살을 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 성종이 즉위하게 되는데 새로운 왕이 등극할때마다 내시부는 새롭게 개편이 된다. 처선의 주위에는 그가 판사부 내시가 될 것을 기대하는 내시들의 잔뜩 모여들었고, 당연히 스스로도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시의 자리는 인목대비의 편에 붙었던 한필주가 되고 자신은 무임이 되었다. 무임이라 하면 임무가 없는 내관으로, 내시부에서 나가라는 명이나 다름없었다. 새로운 개편에 실망한 김처선은 후배 내시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 집에서 아내와 함께 한적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한필주가 김처선을 다시 궁으로 부르고 김처선은 무슨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였는지, 아니면 내시의 운명이 그의 천직이었는지 알수 없지만 7년만에 다시 궐안으로 발걸음을 들여 놓게 된다. 그 사이 성종은 한명회의 따님인 공혜황후를 중전으로 맞이하였으나 대궐에 들어와 얼마되지 않아 죽고 그 후 여러 후궁을 두기 시작했다. 그 중에 정소용과 엄 소용은 모두 명문가의 규수들인데 또 후궁중에는 전하의 승인을 입은 자 중에 궁녀 출신인 윤 숙의도 포함되어 있었다. 김처선은 윤 숙의를 어릴적부터 보아 잘 알고 있었다. 윤 숙의는 성종보다 열 두 살이나 많은 서른 두 살 나이에 성은을 입었으니 대비전에서 좋게 볼리가 없었다. 여인들의 투기속에서도 윤 숙의는 회임을 하여 성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다. 결국 중전의 자리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피비린 나는 전쟁이 시작되고 말았다. 윤 숙의 승리로 결국 중전이 자리의 앉지만 여인들의 암투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싸움의 연장전일뿐이었다. 윤 숙의는 왕비로써의 자리를 지키기 보다는 성종의 사랑에 독차지 하기 위해 투기와 질투에 눈이 멀어 그릇된 행동을 함으로써 오히려 성종과 점점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 사건의 계기로 결국 중전의 자리에서 쫓겨나 폐비가 되고 후에 있을 일을 생각하여 또 다른 음모에 의해 젊은 나이에 폐비 윤씨는 사약을 마시고 운명하게 된다. 죽기 전 윤씨가 처선에게 목숨을 걸고 지켜달라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처선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다해 원자인 연산군을 보위에 까지 오르게 한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연산군이었지만 왕이 되고나서 그는 폭군에 매일 같이 기생들과 잔치를 벌리며 정사는 돌보지 않고 점점 귀머거리 왕이 되어갔다. 특히 기생 출신인 장녹수를 총애하기 시작하면서 학문을 기피하며 술과 춤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사이 연산군은 자신이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사건을 듣게 되면서 더욱 폭군으로 변해갔다. 잔인하리만큼 궐안은 피바다가 되어 흘러갔다. 어릴적부터 연산군을 엎고 길러온 처선은 보다못해 결국 생모를 대신해 그를 꾸짖기 시작했다. 누가 감히 왕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내시의 신분으로 말이다. 하지만 무엇인가 결심을 하듯 처선은 한치에 흔들림도 없이 바른말로 연산군을 책망했다. 처선의 뼈아픈 소리를 듣다 못한 연산군은 처선을 발로 밟고 때리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그는 용서를 빌기는 커녕 더 큰소리로 왕을 꾸짖기 시작했다. 결국 화를 피할 수 없었던 처선은 연산군의 칼자루 아래 목숨을 잃었다. 대신들도 하지 못한 일을 내시 김처선은 이루고 말았다. 그 누가 왕에게 바른소리를 할수 있겠는가! 시대의 의인은 자리에 있지 않고 정직함에 있는 듯 하다. 그는 별볼일 없는 천한 내시에 불과했지만 역사의 기억속에는 영원히 의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것이 바로 역사인듯 하다. 이미 흘러버린, 묻혀버린 역사이기에 다 알수 없다지만 그 역사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분명 시대마다 위인은 탄생되니까 말이다. 그 위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닮아갈수 있다면 지금 사는 우리의 삶에 향긋한 꽃이 피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여인들이 펼친 시기와 질투와 투기를 보면서 그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하고 마음을 잃게하는 가장 무서운 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그 결과 폐비 윤씨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녀가 중전으로써 소임을 다했더라면....만약 그녀가 후궁들의 모함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더라면.....만약 그녀가 질투에 눈이 멀어 왕을 지치게 만들지 않았더라면.....아름다운 여인으로 현숙한 여인으로 가만히 있어도 향기가 베어나오는 모든 백성들의 어머니로 남았더라면 그녀의 운명은 달랐으리라 난 생각한다. 비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강직한 마음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지켜나간다면 분명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으리라 난 믿는다. 나 또한 그런 여인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할줄 아는 사랑스런 여인이 되고 싶고 다른 사람때문에 찾는 행복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행복을 찾는 여인이 되고 싶다. 그런 여자가 진정 아름다운 여자가 아닐까 난 생각한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한들 그 사람이 나의 인생을 살아주는게 아니니까. 그러기에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고 어떤 인생을 사느냐는 나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다. 오늘도 멋진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기위해 다시 한번 크게 나를 위해 웃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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