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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성석제보다 더 한 이 이야기꾼은 죽었던 오생을 부활시켜 우리 앞에 떡-하니 내놓는다.
만물의 배후에 와습이 있다고 주장하여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오생. 민국 59년 엄동 엊그제, 전동차에 치었으면서도 사지육신 멀쩡히 살아 돌아온 오생. 그의 부활에 세인들은 '뜬금없이 개헌안을 발의한 대통령 대하듯' 하지만 식구들은 "불알은 그대로 있냐", "와습은 이런 놈 안 데려가고 뭐하냐"며 '데퉁맞게 지청구를 놓는'다.
부활하기 전이나 부활한 후나 와습을 타파하려는 오생의 사고(思顧)는 변함없지만, 변함없는 오생과는 달리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이제 세상은 스프 없이도 라면을 '맛있게' 먹는 곳이 된 것이다. 오생은 이런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자살기도를 위해 떠난다.
투신자살을 위해 떠난 한강에서 오생은 '수질오염을 염려해' 자살을 만류하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오생에게 라면 하나를 끓여주며 노인은 대뜸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학교 다닐 때 말썽만 피우더니 기어이 소년원에 갔고 면회를 가자 대뜸 '아부지, 이번에 나가면 오토바이 한 대만 사주세요. 내가 한 번만 딥따 폭주족 하고 나선 딱 맘 잡을게요.'라는 막둥이 이야기다. 노인은 그 막둥이에게 군말 없이 오토바이를 사줬단다.
오생이 '그러다가 또 무슨 사고 치면 어쩌냐'고 하자 이 노인 왈. "사고 무섭다고 안 사주면 더 큰 사고 칠 거 아냐? 그것보다...... 봐, 얼마나 폼나겠어? 나는 평생 어깨 펴고 한번도 다녀 보지 못한 서울 한복판을 빠라바라밤 요란 망측한 경적을 울리며 내달리는 우리 막둥이를!"
그쯤에서 킥 하고 웃음을 삼키는 노인의 모습. 오생은 그 오토바이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며 대지와 인간과 역사, 마침내 자기 자신까지 새롭게 발견한 청년 에르네스또 체 게바라의 모터싸이클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자신 있게 말할 지적 능력은 없다. -그거 그래도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니어요? - 문제? 하긴 문제가 있긴 좀 있겠지? 폼나게 달리는 것도 그래. 그래봤자 맨 허공을 가르는 거지, 빽도 없는데다가 벌써 별까지 단 그 애가 뭘 잡을 수 있겠어? 하지만...... 글쎄, 산다는 게 말이지 ......
아아. 이 노인의 이야기는 도무지 끝이 없다. 아마 노인은, 오생을 위해, 이야기를 끝내지 않기 위해 세헤라자드처럼 무수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또 풀어놓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소설 속 노인의 역할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거대담론의 붕괴, 신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체제. 이러한 사회의 쳇바퀴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좌절하고 방황하며 누군가를 미워하고 또 누군가에게 미움 받는다. 그렇게 우리는 대상 없는 증오와 환멸 속에서 세상을 향해 고통스런 한숨을 내뱉는다. 이렇게 팍팍한 삶. 김남일은 노인의 말을 빌려 그러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 우리를 다독인다.
-필리핀에도 우리 잔치국수하고 비슷한 게 있다던데, 한번은 우리 며늘애가 그걸 만들다가 다짜고짜 우는 게 아니겠어? 보는 내가 더 짠하데...... 뭐, 옛날에 엄마가 만들어 준 걸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던 기억이 나서 그랬겠지. -그래서요? -내가 그랬지. 아가, 프란체스카야. 실컷 울어라. 그래야 자꾸 기억하게 되고, 우리 같은 사람들, 나중엔 그 힘으로 버티면서 살아가는 거란다.
대개 사람들은 '삶은 고통'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남일은 '삶은 고통'이나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 말한다. '스프 없는 라면'같은 세상에서 스프 없는 라면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그 희망의 끈으로 삶을 긍정하며 사람과 함께,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끊임없이 추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뻔하고 지극히 상투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고 능글맞게, 구수하고 맛있는 입담으로 우리 앞에 풀어놓는 김남일 앞에서 독자는 그저 깔깔거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빛바랜 당증' 한 장을 들고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거리를 헤매는 ‘오생’의 시대착오적 좌충우돌은 설정 그 자체로 유머러스하다. 그러나 이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상 우리 사회의 허무주의와 무기력. 물질만능주의와 신자유주의다. 결국 <오생의 부활>은 알레고리 형식의 소설이다. 채만식의 <논이야기>를 읽듯, 깔깔거리며 웃다가 이내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마는.
박연옥은 말한다. 김남일의 소설에서 '기억'은 ‘잿더미가 된 기억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면 어쩌지’ 하는 염려와 ‘더 이상 불씨가 남아 있지 않고 꺼져버렸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길항하는 감정의 ‘밀고 당김’이라고.
아아. 우리의 오생은 결국 어찌 되었을까.
ⓒ Hyang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