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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을 남기는 약간 무서운 소설책 오츠이치 작가의 17세의 데뷔작!!! 17세의 나이에 인간의 욕망을 감각적으로 묘사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 죽은자의 시선으로 쓰여진 글......기발함이 돋보인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도 많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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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판타스틱 12월호에 실린 온다 리쿠 인터뷰에서 온다 리쿠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면서 문학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로서, 즐기는 쟝르로서의 인식을 기반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고 독자의 시선에 맞추어 서비스 한다는 생각으로, 독자가 즐겁게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글을 읽고, 일본문학은 이제 순문학보다는 쟝르문학이 대세고 쟝르문학이 판을 친다는 것은 독자들이 책을 읽을 때 삶의 성찰이나 사유가 목적이 아닌, 책을 읽는 목적이 글을 읽는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구나 싶었다.
엔터테이너로서의 작가. 뭐 문학을 순수해야된다는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나. 그래봤자, 지루할 뿐이다. 평론가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세계문학의 탑을 차지한 책들. 제목만 유명했지 실제로 그 내용을 읽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나. 끽해야 다이제스트용으로 읽고 읽었다고 떠들어 댄 것이겠지. 서경식도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몇 번이나 포기했다고 하질 않나. 순문학의 거창한 문학이론들 이제 그만 떠들라고 해. 이젠 문학도 엔터테이먼트 사업이라고 하잖아. 쟝르 문학의 엔터테인먼트 기능, 그게 아무나 할 수 일이 아니다. 솔직히 글로 남을 즐겁해 해 준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재능이냐고. 한 때 순문학이 아니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의 편협한 세계관이 부끄러울 뿐이지 뭐. 그래서 독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일본작가들의 노력 가상하다고 생각한다. 돈 내고 기꺼히 읽어주마.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코너에 오츠이치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가 있길래 망설임 없이 집어들고 대출했다. 오츠이치의 <zoo>는 무서웠지만 그 이후에 읽은 <쓸쓸함의 주파수>는 괜찮아서(물론 이 책도 도서관), 이 책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살까말까 좀 망설였다. 워낙 이 책 소개코너에서 천재작가의 탄생을 알린 첫 작품이니 뭐니 해서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으면 빌려 본 후에 구입해도 늦지 않다. 아무리 일본에서 책이 엔터테이먼트의 일종이라고 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 독자를 무슨 바보로 아냐. CSI 수사대가 이 책 읽으면서 웃겨서 배꼽 잡을라.
17살에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17살이 쓴 티 팍팍 난다. 아마추어 글이다. 이야기의 발상은 독특하다. 그리고 재밌다. 독자를 위해 반전서비스까지. 애쓴 것은 용타. 인정하마. 하지만 전개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일뿐. 비과학적이것도 어느정도야 말이지. 과학적인 설득력 없는 이야기만 풍부할 뿐 작가가 이야기를 가지고 무리해서 가지고 놀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소설이 전혀 설득력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 과연 아이들이 놀다가 친구가 죽으면 친구의 죽음을 숨기기에 급급할까 게다가 켄은 시체를 가지고 숨바꼭질까지 하면서 즐기기까지. 아, 물론 소설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내가 우문이라는 것은 안다. 이러한 설정을 가정 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도 알고 있고. 하지만 말이다. 이건 좀 설득력이 약하지 않나. 두 남매가 사쓰키한테 무슨 치명적인 약점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 앉자 있다가 켄의 여동생 야요이에게 사쓰키가 네 오빠를 좋아한다는 고백했다가 화가가 난 야오이가 사쓰키의 등을 탁 치는 바람에 나무에 떨어져 죽은 것인데, 어린 마음에 그 사실을 숨기고 싶다.......
둘. 과연 죽은 사쓰키를 아이들 둘이 옮길 수 있을까. 못해도 살아있을 때도 몸무게 30kg은 나갈텐데... 죽으면 더 빳빳해져 힘들지 않을까. 솔직히 성인인 나도 쌀 20kg 들어 쌀독에 옮겨 놓을라 치면 허리가 뻐근한데. 12살하고 아홉살짜리가 두 남매가 죽은 아이의 몸을 이리저리 들고 옮겨 다닌다는 것이 설득력 no.(그냥 억세게 운 좋은 걸로 치부해!)
셋, 마지막으로 시체 냄새인데, 그 자연적인 것을 숨길 수 있을까. 동네 양반들이 다 축농증 환자란 말이야. 내가 이 비과학성 때문에 네이버나 다음까지 다 뒤져 봤더니, 결과는 이렇더라.
1.사체냉각:체온이 점점 떨어져 24시간 후면 주변 온도와 동일하게 됩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가의 goth는 기다려지지만, 이번에도 천재 타이틀 운운하면 안 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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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를 읽고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 오츠이치의 17세 데뷔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경우에는 데뷔작을 한참 나중에 봤어도 감탄을 했었는데, 오츠이치의 퓨어와 다크의 미묘한 결합을 느끼는 정도 외엔 이 작품은 그냥 평이했다.
후반부에 [유코]라는 작품이 나오는데, 이 또한 평범한 수준이다.
나처럼 [ZOO]를 읽고 많이 좋아하셨다면 이 작품은 그냥 패스하시던가, 그 전에 읽으시는게 나을 듯 싶다.
p.s :200페이지 정도인데 과연 하드커버를 하지 않고 가격대를 낮춰서 추리문고 활성화를 꾀할 수는 없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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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는 톡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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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츠이치의 [zoo]를 읽고, 그 아름우면서도 잔혹한 영상에 반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이야기가 복잡하거나 화려한것도 아니고 대단한 반전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읽는 내내 공포스러웠습니다. 귀신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가 아니라 주인공 아이들의 천진하면서도 잔혹한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이 두 오누이가 자라서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또한 흥미로울 것 같은 생각도 들게 됩니다. 이런 글을 17세의 나이에 써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단편 [유코]를 읽으면서는 예상하지 못한 반전에 나도 모르게 씨익 웃고 말았습니다. 뭐랄까...이 정도 오츠이치의 책을 읽었으면 어떤 반전이 나올지 이젠 예상할 수 있어! 라고 했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가 봅니다.. [유코]는 [여름과-]와는 조금 다르게 귀신이 나올 것 같은.,,등 뒤에서 누가 날 툭 치면 꺄악~ 하고 소리지를 것 같은 공포심에 나도 모르게 손발을 꽉 쥐고 눈에 힘주고 책을 읽는데 집중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 오츠이치다운 허를 찔리는 반전에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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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밖에 들리지 않아>라는 작품은 나와 오츠 이치의 첫만남이었고, 그후에 읽은 <ZOO>는 나를 경악시켰다. <너밖에 들리지 않아>는 오츠 이치의 퓨어계 소설이고, <ZOO>는 그의 다크계 소설이라 같은 사람이 쓴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굳이 말하자면 다크와 퓨어가 적절히 섞여 있는 소설이다. 공포스럽고 잔인하기만 한게 아니라 그 저변에는 숨겨진 슬픔과 아픔이 공존하기 때문에이다. 이 소설집에는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외 유코라는 작품이 있는데, 두 작품 다 마지막 반전이 나를 경악시켰다. 아홉살 소녀가 본 자신의 죽음,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이 단편의 화자는 아홉살난 소녀 사쓰키이다. 사쓰키는 같은 반 친구 야요이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야요이의 오빠 켄은 야요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할 계획을 세운다. 자신의 오빠 켄을 좋아하는 사쓰키에 대한 질투와 원망으로 어이없이 사쓰키를 죽음이란 곳으로 내몬 야요이. 그리고 사쓰키의 죽음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사체유기를 즐기는 듯한 켄. 아홉살, 열한살의 어린아이들이 저지른 짓, 그리고 그들이 사쓰키의 사체를 유기하기 위해 4일동안 머리를 짜내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도와주기까지 하는 한 인물이다. 어린 소년들의 실종 사고와 관련되어 있는 그 인물이 마지막에 드러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난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소설은 보통 범인이 화자가 되거나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되기 마련이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이미 죽은 소녀가 화자가 된다. 아홉살 소녀의 관점에서 바라본 자신의 죽음, 그리고 야요이와 켄이 자신의 사체를 유기하는 모습에서 느끼는 감정,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보이는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답게 천진난만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욱더 가슴 아프다. 특히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 카고메 카고메 놀이를 하는 모습은 공포감보다는 오히려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함정에 빠진다, 유코 이 소설은 도리고에家에서 일하는 하녀 키요네와 그 집의 사람들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일을 그리고 있다.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상인지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키요네가 보는 것이 진실인 것 같기도 하고 마사요시가 보는 것이 진실이기도 하다. 그런 의문은 맨마지막에서 일거에 해소되며, 그 반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잘못된 믿음과 판단의 근거,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이 현실이고 진실이라 믿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낳은 엄청난 사건. 무섭고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오히려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지던 작품이다. 데뷔작의 풋풋함을 느끼는 동시에 오츠 이치의 천재성을 동시에 느끼다 열일곱살이란 나이에 데뷔. 그러다 보니 문장의 흐름이나 전체 스토리의 흐름, 그리고 세부 묘사라든지 하는 것이 좀 매끄럽지 못한 면이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데뷔작이란 사실을, 그리고 그것도 17살이란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런 상상력으로 이런 충격적인 작품을 써낸 작가가 다시 보일 것이다. 독특한 스토리와 설정, 그리고 반전. 공포와 안타까움의 절묘한 결합.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딱 두개의 작품만을 읽은 상태에서 완전히 다른 작가로 착각하게 만든 오츠 이치. 그의 작품은 호러 혹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또다른 지평을 열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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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편소설 두 편을 엮어 만든 책으로 앞에 나오는 부분의 제목은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이고, 뒤에 나오는 부분의 제목은 ‘유코’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쓰키와 야요이는 9살로써 서로 친구 지간 이지만 야요이의 오빠인 11살 켄을 사쓰키가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친오빠를 좋아하는 야요이는 그들이 자주 올라가 놀았던 나무에서 사쓰키를 밀어 떨어뜨려 죽이고 만다. 그리고 오빠인 켄과 야요이는 사쓰키의 사체를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유기하기 위한 사투(??)를 전개한다는 내용이 주요골자이다. 그리고 죽은 아이인 사쓰키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내용의 전개는 사쓰키가 죽었음에도 여전히 사쓰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니까 이건 죽은 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사체 이야기이다. 과연 켄과 야요이는 죽은 사쓰키의 사체를 아무도 모르게 감출 수 있을까? 이야기의 전개는 이처럼 단순하지만 의외로 느끼는 공포는 한여름 밤에 머리가 쭈삣 설정도의 공포감이 절절히 묻어난다. 죽은 아이 사쓰키의 나이가 9살이라는 것과 그 아이를 죽인 아이 야요이 역시 9살 동갑이라는 것, 그리고 야오이와 함께 사체를 유기 하기위한 켄 역시 11살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으로써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가 가득할 이들에게서 느끼는 공포는 의외로 다른 공포물과는 또 다른 섬뜩함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행동에서 올라오는 조용한 공포와, 싱긋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한 켄의 얼굴, 그리고 켄의 당연하다는 듯 한 거짓말까지. 아니 하나 더 그의 사촌누이인 미도리와. 죽임을 당한 사쓰키의 담담한 목소리가 한여름 밤을 식혀주는 소나기와 같이 오싹하기만 하다. 또한, 죽임을 당한 사쓰키(이미 사체가 되었지만)의 절제되고 제3자와 같은 말투는 죽음으로 인한 주인공의 감정을 뒤로한 채 그저 자신 주위를 둘러보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이야기 해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것 또한 이상하게 공포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게 사뭇 신기하다. 두 번째 중편소설의 제목인 ‘유코’의 내용 또한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일본의 명문가인 도리고에 가(家)에 식모로 들어온 키요네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주인인 마사요시의 아내인 유코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생활하면서 그녀가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마사요시가 외출을 한 사이에 그녀의 방을 들어가 실제 아내인 유코는 없고 인형이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을 확인하게 되고, 주인의 망상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그 인형을 태워버리면서 사건은 엉뚱한 곳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다. 이어 밝혀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검고 윤기 흐르는 악마의 열매인 벨라도나, 그리고 줄지어 늘어선 무표정한 얼굴의 일본 인형들과 함께 명문가인 도리고에 가(家) 에 대대로 이어지는 저주의 검은 그림자가 속속들이 파헤쳐진다. 이처럼 명문가의 저택에서 그들의 운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슬픈 괴담은 우리나라에도 흔히 있었을법한 내용으로 읽는 내내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책을 읽고 나서 오츠이치라는 작가의 내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그 중 나의 눈길을 끈 내용이 바로 그의 작품은 잔혹함과 처참함을 기본으로 한 '검은 오츠이치'와, 애절함과 섬세함을 기본으로 한 '하얀 오츠이치'의 두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해가 간다. 바로 이 책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잔혹함과 처참함의 극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으로 ‘유코’는 애절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해가 되니까.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성선설과 성악설은 인간 본연의 성질(성품)이 선한가 악한가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에 등장하는 켄과 그의 사촌 누이인 미도리는 과연 성악설을 대표하는 인물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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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짜리가 작가라니...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은 어린 작가의 때 묻지 않은 문체, 아직 기성문단에 물들지 않은 감각이 너무나도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단편 2개로 묶여져 있었는데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유코’였다. 우선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죽은 주인공 사샤키 시점으로 소설의 전개된다. 사실 죽은 이를 살아 있는 사람처럼 하여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죽은 이의 관점에서 모든 감각을 살리고, 주위 사건을 전개해 나가면서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1인칭주인공 시점이었던 것이 재미있었다. 주인공 사샤키와 야오이는 모두 야오이의 오빠 켄을 좋아했는데 사샤키가 켄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자마자 야오이는 사샤키를 높은 나뭇가지에서 밀어 죽여버린다. 그리고 동생인 야오이가 사샤키를 죽인 것이 아니라 사고사라고 말하는 것을 순순히(?) 믿고서 그 사체-사샤키-를 처리하는 나흘의 과정이 이 소설의 주요내용인 것이다. 사이코패스라고 하던가? 영화 ‘검은집’을 통해 처음 접한 그 단어의 정의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범행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영화 ‘검은집’에서 주인공이 범행을 즐겼다고는 보이지 않아 사이코패스의 정확한 정의를 알기 어려웠는데 이 소설은 사이코패스가 무엇인지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사체를 제대로 유기하기 위해서 켄은 그 행위 자체를 매우 즐겼다.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 그의 동생 야오이에 비해서, 그리고 켄보다 더한 사이코패스가 있었으니 그게 미도리였다. 미도리는 그 소설 처음부터 주변을 빙빙 도는 유괴사건의 범인이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극적 반전을 더하는 인물이었다. ‘유코’는 주인공 키요네가 어린시절의 정신적 충격으로 주인 여자를 불 질러 죽이게 되는 내용이었다. 근데 이 소설의 반전은 주인공 키요네가 정신병자라는 걸 끝끝내 믿을 수 없게 설정해 놨다는 것이다. 소설을 덮고 나서도 키요네가 정신병자인지 주인인 마사요시가 정신병자인지 헷갈렸다. 실은 둘 다 정신병자 같아 보이지만...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소설이었다. 비소설류만 읽다가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휴식을 취한 느낌이었다. 또 오랜만에 기발한 작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