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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연히 마법에 사용되는 주술도구들을 아내의 방에서 발견한 사회학자 노먼은 아내 탠시가 그것을 믿은 것은 낯설고 작은 대학교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아내의 신경증 탓이고 자신의 무심한 탓이라 여기며 그것을 없애게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마지막 것까지 없앤 순간 이상한 전화를 받게 되고 자신이 학과장이 유력하다고 생각했는데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고 마치 자신이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교수실 창에서 보이는 가고일 석고상이 점점 모양이 변하며 급기야는 모든 사물이 달라 보이는 일이 벌어진다. 도대체 그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그도 신경증에 걸린 것일까? 아니면? 처음에는 도대체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잘 몰랐다. 하지만 마지막에서야 이 작품의 반전은 드러나고 읽을수록 기묘한 환상소설이라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어떤 시사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대학, 그 안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암투, 정치적으로 나가기 위해 학생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낙제생을 낙제시키지 말기를 바라는 학장과 교수의 아내들의 고상한 척하는 모습의 답답함과 시대적으로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강의할 수 없는 교수, 그 틈에 끼어버린 젊은 아내... 노먼은 학과장이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좀 더 좋은 대학으로 옮길 욕심이 있고 나이 든 교수 부인은 젊게 보이려는 욕심이 있고 또 다른 교수 부인은 결혼 전에 잘 나갔을 텐데 남편을 위해 꿈을 접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자신의 자질을 과시하려 하는 등 이런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것들이 마법이라는 소재로 잘 엮어져서 하나의 멋진 소설을 만들어냈다. 1943년 작품이니 작품 속에서 노먼의 말들이 얼마나 충격적일지는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하지만 노먼이 연구하는 원시 사회와 현대 사회가 다르지 않다는 점, 특히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늘날에도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단순히 마법에 대한 환타지 작품이 아니고 환타지, 고딕, 미스터리까지 모든 것이 있는 서서히 독자를 몰입하게 유도하는 작품이다. 마법은 인간이 볼 수 없다는 것, 인식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불완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시시대에도 마법은 있었고 지금도 마법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미신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괴담이나 전설이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도 인간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 알 수 없음이 끊임없이 마법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분명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보다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음을 알았을 때 자신이 오랜 세월 믿고 연구했던 모든 것을 제쳐두고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에 몸을 던져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노먼을 보며 눈에 보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것만을 주장하지 않고 말보다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마법은 바로 이런 마법일 것이다. 지금 당신의 아내가 마법을 쓴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지 남편들이여, 이 책을 읽고 아내를 자세히 보시길... 어쩜 아내의 화장대 깊은 곳에서 흙 한줌, 머리카락 몇 가닥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내도 마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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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jure Wife :: Fritz Leiber 언제부터인가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미신에 심드렁해지기 시작했다. 가령 집안에 쳐진 거미줄은 부의 상징이니 함부로 걷어내면 안된다든지 빗자루질을 할 때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쓸면 복을 내쫓는다는 등의 이야기에 별로 괘념치 않게 된거다. 어렸을 때는 미간에 주름을 잡고 엄숙하게 말하는 어른들의 그 말이 진실인 줄 알고 아예 머릿속 리스트까지 만들어 철저하게 지켰지만, 그걸 지키든 안 지키든 힘든 일은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고난 뒤부터는 도대체 왜 여태껏 그런 말도 안되는 것을 지켜왔나 스스로가 한심해지기까지 했다. 안믿게 된 지금이 더 강해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민간 미신부터 시작해 점성술, 토정비결, 사주, 종교적인 모든 것에 있어서 남들이 그렇다 하면 무조건 믿었던 시절은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을 만큼 멘탈이 약했었나보다. 그래서 그 무렵 딱 한번, 점장이를 찾아가 본 적이 있었다. 곤궁한 처지에서 앞날이 막막해 미래도 지금과 같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어떻게든 미리 엿볼 수 없나, 하는 심정이었다. 허름한 주택집 안에 제단을 마련해놓고 듣도보도 못한 성상들을 나열해 음침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무당 할머니의 몸에 신통한 아기 동자가 빙의되어 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답한다고 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묻지않고 나의 모든 것을 알아맞추려나 하고 기대 반 호기심 반 했지만 주요 약력은 결국 묻길래 맥이 빠졌더랬다. 그런데도 그 할머니가 용한 것 같았다. 진짜로 빙의한건지 연기를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괴이한 목소리를 내며 내가 모르는 나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을 보자니 왠지 모르게 믿고 싶어졌던거다. 사실 확인은 앞날이 닥쳐서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한동안은 그걸 정말 믿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맞는 건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점을 보는 건 이교도적인 것이라고, 결코 맞을 리가 없다고 종교인들은 잘라 말하지만, 나는 사실 기독교나 불교내에서도 미신은 존재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성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에 있어서 그렇다. 신부님의 축성을 받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든지(무슨 효과인지도 모르겠지만), 십자가는 악마를 쫓아내준다든지의 이야기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허무맹랑한 수준의 맹신이다. 신심을 물건에 부여해 눈으로 확인하고 되새긴다는 개념에서 시작된 것이 성물의 진정한 의미일텐데, 그 의미부여가 지나치게 과잉 투여되어 성물이 파괴되면 신심도 파괴되는 마냥 질겁하는 것이다. 행여 십자가나 성서를 훼손하거나 불태우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이 받들어 모신다고 그 벌을 피해갔던 적이 있던가? 상징에 자신의 신심의 무게를 전부 쏟는 것은 그만큼 그 신심이 부족해서라고밖엔 볼 수가 없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일개 미신과 개념상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내 태도는 외견상 무신론자의 오만으로 보여질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믿는 편에 가깝다. 주일마다 성소를 찾지는 않지만 하느님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과 부처님의 존재와 행적 또한 믿는다. 유령을 비롯해 모든 불가사의한 일들도 분명 생기는 일이라 생각하고 UFO의 존재 또한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믿는다기 보다 [믿고싶다] 라고 할지, 드라마 [엑스파일] 식으로 말하자면 [I want to believe]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전달해준 정보를 액면 그대로 가감없이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존재 근거를 존중하되 의심하고 확인해 보겠다는 의미다. 나는 예수님이 도마에게 [너는 보아야만 믿겠느냐] 는 말씀도 일종의 반어법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결국 확인하게끔 해주시지 않았던가. (번외의 이야기지만, 영화 [매트릭스] 는 이것을 상징하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도마Thomas로 설정했다. 그는 자신이 존재 하는 곳을 의심함으로 진실을 깨우치게 된다.) [두려워하되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 내 신심의 개념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라 자연nature이라는 하느님을 늘 두려워하고 공경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인간이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는 지나치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거미줄을 치운다고 재물이 달아난다고? 성물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불행이 찾아온다고? 재물의 여부가 행불행의 여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의 한계이며 미래에 얼마든지 산재해 있을 불행이 무서워 당당히 걸어가지 못하는 것도 인간의 한계다. 이러한 일을 저질렀기에, 이러한 방어막을 치웠기에 지금의 고통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삶의 틈새에 얇은 막처럼 끼워져있는 행복은 외면하고 두껍게 중첩되어 있는 불행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 점을 보고 싶어하는 심리는 현재의 두꺼운 불행의 겹만 보이는 상황에서 미래의 얇은 행복의 막을 보고 싶어하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이 소설은 일견 미신이라고 치부하며 업신 여겼던 것이 무서운 재앙을 가져오더라 라며 미신의 당위성을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 관점에서는 그저 인간의 한계를 일깨우고자 하는 이야기였다고 보여진다. 세일러 부부를 둘러싼 일단의 소동은 결국 카 부인의 젊음에 대한 야심, 즉 자신의 한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야기된 것이 아니었던가. 돌아온 아내 이블린이 [자신이 자신임을 믿겠느냐] 라고 묻는 질문에 남편 노먼은 [의심이 들겠지만 그 의심을 이길 수 있을 것] 이라 대답한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아내가 의심스러울 때마다 아내의 화장대나 서랍을 기웃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와 같이 아내를 믿고 추적하고 찾아내게 될 것이다. 모든 종류의 믿음이란 그래야하지 않을까?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것, 그래서 찾고 탐구하는 것, 그리하여 보다 더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 과학이란 믿음이 그래서 생겨나지 않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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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조명, 부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들, 이상하게 생긴 병들, 그 병들에 담긴 색색의 용도를 알 수 없는 내용물.그리고 그 앞에서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는 정체모를 누군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상상하던 마법에 대한 이미지는 이랬다. 아마도 '백설공주'에 나온 의붓엄마의 모습이 기억속에 꾸욱! 박혀버린 모양이다. '신데렐라'에는 착한 마법을 부리는 요정도 나오지만, 나쁜 마녀의 이미지는 쉽사리 지워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보고도 '분명히 아내가 나쁜 마법을 써서 남편을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불행을 가져다주려고 하다가 들켜서 벌을 받는 이야기일거야!'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다. 표지를 보라. 사악한 것일수록 아릅답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주인공 노먼은 젊은 사회학과 교수로 사랑하는 아내 탠시와 살고 있다. 어느 날 아내의 화장방을 장난삼아 몰래 뒤적이다가, 그 곳에서 마법과 주술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노먼에게 있어, 탠시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그는 곧 아내에게 당장 마법을 그만 둘 것을 권유한다. 탠시는 처음에는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교수진의 아내들도 모두 마법을 사용하며, 당신을 노리고 있다고 흥분하지만, 곧 마법 도구를 없애고 그의 말에 따른다. 그런데, 그 후로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여학생과의 불건전한 루머, 총기에 의한 살해 위협..더구나 주위 상황은 그가 자신이 미쳐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할 정도로 이상하게 돌아가며,탠시를 살리기 위해 흑마술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상황까지 내몰린다.
-탠시는 그의 연구 작업 내내 지치지 않고 능률적인 비서 역할을 해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마법을 사용하는 악인과 선인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대결 구도가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대결은 어디까지나 여자들의 싸움이다. 탠시는 과연 노먼의 '비서'역할만을 한 것일까. 대답은 NO다.책의 배경은 1930년대 미국. 아직 혼전순결이 중요하게 생각되고 있고, 대학은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람들로 가득찬 답답한 공간이었다. 물론 남자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시대에 앞에 나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노먼의 몫이지만 그런 그를 지켜내는 것은 그의 아내 탠시의 몫이다.즉, 단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고, 안전한 세계로 그를 이끌고 있다고 해야 맞겠다. 다른 교수의 아내들도 마찬가지다. 교수인 남자들은 뒤에서 자신들의 아내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학과장이라는 자리에 아내가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정숙하지만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책은 강한 듯 하지만 약한 남자들의 모습과, 순종적인 듯 하지만 뒤에서 온갖 마법을 부리는 탐욕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준다.
-마법은 실용적인 과학이다.- 노먼은 죽음에 다다른 아내를 구하기 위해 마법 안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여 결국 공식을 찾아내고 아내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지금까지 마법은 근거없는 미신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우리가 눈앞에서 보는 마술도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믿으며, 그 속임을 즐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연 근거없는 것인 걸까. 나는 사람의 의지는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예전부터 믿어왔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마술의 중요 요소는 사람의 동기다. 마술이 사람의 동기와 욕망을 고려한다면, 의지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결국 마술도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실용적 과학이 아닐까. 그것을 단순히 미신이다, 쓸모없다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책 앞장에 적힌 것처럼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나도 마법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했고, 작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낄 정도였다. 내가 싫어하는 온갖 과학 법칙 이야기가 나와도 참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내가 정말 마법에 걸린 것이 아니었을까? 독특한 분위기, 곳곳에 숨어있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몇 번 음미해도 좋을 정도로 멋지며 영화로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많은 상을 휩쓴만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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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쓰는 아내랑 산다는 느낌은 어떨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 느낌은 한편의 흥미 진진한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였다 첫 부분은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이 반복되는 삶 가운데서 다른 직장 사람들과 그 아내들과의 미묘한 갈등이 좀 지루하다 싶었는데... 아내가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정말 한 순간도 책을 놓치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책의 내용의 전개에 따라서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느낌.. 여지껏 봐왔던 영화 속의 어떤 장면들과 오버랩이 된다고 할까..? 특히 마지막의 반전은 .... 추리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멋진 환타지 소설의 세계에 빠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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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은 아내인 탠시가 마법을 쓰는 것을 알고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노먼... 마법을 믿지 않는 편에 적을 두고 있었다. 우연하게 아내 탠시의 화장방을 보기 전까지는.. 화장방에서 탠시가 원시주술마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노먼은 탠시가 마법을 쓰지 않기를 바랬고 탠시는 마법의 주문에 필요한 부적과 여기 저기 숨겨져 있던 마법을 위한 것들을 태워버리게 한다. 노먼은 탠시의 말 즉 마법으로 인해 자기를 보호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다른 남자들은 아내들의 마법 덕분에 보호되고 있는 것도 믿지 않았다.
우연히 아내의 방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마법을쓴다..정말 기막히고 코막히는 상황이 될 수 있을것 같다!. 나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신기하기는 하겠지만 ~! 배우자가 새롭게 보일것 같다, 웬지 다른 매력도 느껴 질것 같은 느낌 ..!
오랜만에 유쾌하고 미스테리한 판타지를 읽게 되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 소중한 시간을 갖게 된것 같다 ~.
아내가 마법을 쓴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밌을것 같다 ~! 무더운 여름밤에 딱 어울리는 판타지 SF 미스테리 소설한편을 잘 만나것 같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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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 오싹하네요. 뒷부분으로 가면서 오싹해집니다. 줄거리를 잠간 보자면, 노먼 세일러는 아내 탠시의 (마법적인) 도움으로 헴프넬이란 지방의 대학에 사회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한 사이 화장방을 뒤지다가 아내의 마법물품을 보게 됩니다. 아내를 설득하여 자신을 보호하던 여러가지 '손'(?)을 모아서 태웁니다. 아내가 (의도적으로) 잊고 있던 것을 혼자 태운 직후부터 아내는 홀가분해졌지만(?-탠시의 표현이고 실제로는 다른 듯합니다) 노먼은 각종 공격을 받게 됩니다. 탠시는 갑자기 가출을 하고 노먼은 아내가 남긴 그리고 보낸 쪽지를 따라 아내에게 갑니다. 그리고 아내의 주문대로 마법의식을 시행하지만 아내는 영혼을 빼앗긴 상태로 돌아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진실을 알게 된 노먼은 각고의 노력으로 아내의 영혼을 찾으려 합니다. 기타 등장인물, 해럴드 거니슨 학장(아내 헐다), 폴라드 총장(딸 그레이슨, 아내 헨리에타), 하비 소텔(아내 이블린), 린시컴 카 교수(아내 플로라), 시어도어 제닝스(퇴학생). 그런데 제목은 '아내를 마법으로 불러내는 것' 아닌가요? 내용은 아내가 마녀인 것이지만. 100730/1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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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스미스 주연의 맨인블랙이라는 영화를 보면 인간의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지구에 와서 지구인들 사이에 섞여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다. 일상생활에서 늘 마주치는 이웃이자 평범한 인간 구성원으로 자각하고 있을뿐이다. 때로는 우연한 기회에 외계인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때는 어김없이 비밀요원들이 나타나서 그 기억만을 지워놓는다. 그러면 그 사람의 뇌리에서 외계인이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다시 평범한 일상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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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에 비해 몇가지 아쉬운점이 눈에 띈다.
분명 원서는 뛰어난 작품이었을 것이다는 짐작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는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어떤 형태이든 마법이 존재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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