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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휘파람을 부는 것은 참된 철학의 방법이 아니다.-W. V. O. 콰인-
노양진의 『상대주의의 두 얼굴』에서 지은이의 말에 나오는 인용 구절이다. 책임없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나 뒹구는 시절, 누구에게 말을 걸 것인지 스스로 이해하기 힘든 말로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때에 아주 적절한 책이 나왔다. 그동안 이해한 상대주의는 아무렇게나 이해하거나 행동해도 상대주의라는 말로 모두 무마된다는 식으로 오해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상대주의에 대한 오해이다. 노양진은 이러한 상대주의에 대한 오해와 함께 상대주의에 신체적 의미 지반을 보여준다. 상대주의 아니면 체계의 철학을 선택하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아니라 상대주의를 선택하더라도 그 안에서 "우리가 받아들이고 공존할 수 있는 상대주의의 본성"(p. 7.)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모두 10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목차를 보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대주의의 지형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1장 서론
제2장 퍼트남의 내재적 실재론
제3장 퍼트남과 철학의 재건
제4장 굿맨의 세계 만들기
제5장 로티의 철학 비판
제6장 로티의 듀이 해석
제7장 체험주의적 접근
제8장 데이빗슨과 개념체계
제9장 번역은 비결정적인가?
제10장 대립없는 상대주의
하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독자에게는 이 책으로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천천히 읽다보면 노양진이 이 책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문제가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북의 대치 상황, 현재 진행되고 있는 탈레반과의 인질 교환 협상, 우리 조악한 인간 조건 안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대화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체험주의적 태도를 갖고 바라본다면 이 문제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까지 저자의 출판물을 살펴보면, 노양진은 이전에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체험주의(Experiencism)'를 소개하는데 한 몫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체험주의를 바라본 저자의 첫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나로서는 이전의 저작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현재 논의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우리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런지 몰라도 우리의 조건을 해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하지만 체험주의는 우리의 조건을 해명한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이 '다르다' 또는 '상대적이다'라고 의미 있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모종의 공통 지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공유된 지반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주어진 어떤 것들 사이의 차이 자체는 의미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철수와 영희는 달라"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수와 영희 사이에 어떤 공통 지반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편 "철수와 사자는 달라"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앞의 것과는 또 다른 어떤 지반이 전제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모든 차이들은 항상 그 차이의 크기를 규정하는 공통 지반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개념체계들 사이의 차이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개념체계들 사이의 차이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차이의 의미를 제공하는 어떤 지반이 전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p.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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