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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비극 시인 아가톤은 그의 집에서 친분이 있는 친구 몇을 초대해 술 한 잔 하고자 했다. 이 반가운 소식에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을쏘냐! 주빈의 애인 파우사니아스, 문필가 파이드로스, 의사 에리크시마코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 정처 없이 사색하며 걷고 있던 소크라테스까지, 이들은 한걸음에 아가톤의 집까지 내달린다. 그러나 어제 과음해서 그런가 몸이 마음만큼 따라주지는 못했나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성에 대한 접근방식은 오늘날의 그것과는 달랐다. 이들은 정상적이지 못한 체위 혹은 상식에서 벗어난 성적 행동에 대한 보편적인 규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대 그리스에는 이성애,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세 가지 성애가 공존하고 있었다. 물론 이중 어느 특정한 성애를 보편적 규범, 신이 부여한 질서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성이란 규제되지 않은 방종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들은 그것을 규제하는 방식이 오늘날과는 달랐다. 이들은 성의 윤리적 문제로 양적인 문제(강도, 횟수)와, 질적인 문제(능동과 수동)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질적인 기준은 ‘성관계 속에서 역할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남성은 성관계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 했다. 능동적 기능이란 성 관계에서 ‘남성적’이라 불리는 역할, 다시 말해 삽입에 의해 정의되는 ‘능동적’기능과 관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고대 그리스에서 자주 다루던 문제였으며, 특히 아르테미도로스의 「해몽의 열쇠」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스인의 윤리 덕목인 ‘절제’와 ‘능동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 바로 동성애이다. 그들은 육체적 영원성에 도달하기 위해 여자에게 가서 후손을 얻고, 정신의 영원성을 얻기 위해 미소년에게 가서 그의 머릿속에 자기 생각의 씨를 심어주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에 그 어떤 성행위보다 큰 의미를 부여했다.
고대 그리스 귀족들은 자신들의 특성들을 가리킬 때 ‘좋음’이라는 말을 썼다. 그리스인들이 ‘좋음’을 지칭할 때 쓰는 단어인 ‘agathos’는 ‘고귀한, 온화한, 용감한, 능력이 있는’ 등을 의미한다. 이와 병행하여 ‘평민적인, 비속한, 저급한’등의 개념이 ‘나쁨(kakia)’의 개념으로 바뀌어간다. 그러나 이때의 ‘나쁨’에는 아무런 비난의 의미도 들어있지 않았으며, 단지 겁이 많고 소심한 품성을 지녔거나 스타일이 엉망인 사람들을 지칭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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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중이라 오독, 오해 여지 있으며 향후 수정할 수 있음/스크롤 압박 주의)
요즘 눈 뜨면 읽는다는 자세로 푸코 원 저작과 강의록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다. 푸코 말년 저작 “성의 역사” 시리즈는 제목 때문에 안타까운데 사실 성의 역사 자체를 깊이 분석한다기보다는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 ‘성’이라는 영역이 주체화, 자기 통치와 타자 통치에 관해 가졌던 독특한 면모를 드러내기 위해 언급한 소재 중 하나일 뿐이고, 다른 영역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 특별히 '성'을 언급한 이유는 '쾌락'이 인간 삶에서 가장 ‘강한 힘’을 미치는 영역 중 하나이기도 하고, 몸에 관한 영역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작동했던 기술을 드러내기 편한 분야이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사실 푸코는 자기 생애에서 내내 지식, 권력, 정신의학, 규율기관(사법, 처벌), 통치 기술 등 다양한 영역을 소재로 삼아 역사(이론 나열X)적으로 특정 시기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례를 발굴해 분석을 시도해왔다. 개인적으로 ‘자기 배려’를 다룬 2차 문헌에서 이미 많이 접한 내용이라 읽지 않았는데도 이미 읽은 기분이 드는 책이었는데 이번에 완독했다. 2편을 먼저 읽었고 곧 3편을 읽을 예정이며 1편은 막 구입해두었다. 푸코 제자들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성의 역사” 1편/2, 3편을 구분해서 논의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1. ‘쾌락의 활용’ 방법 문제에서 도덕/윤리에 대한 관심 푸코는 “성의 역사” 2권 내내 자신이 이 작업을 시도하는 이유는 성의 역사(특히 근대식 심리학적, 욕망에 집중해 분석하는 이론) 자체를 나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대-중세에 나타난 삶의 양식으로서 구체적인 기술들을 분석함으로써 당대 사람들이 자기나 타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주체화했는지를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주 거칠게 정리하면 서구 역사적으로 근대와 같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도덕’ 성격이 아니라, 고대에는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과 자유롭게 맺은 관계가 삶으로 드러남으로써(자기 통치) 타자에 대한 관계 맺기나 통치도 가능했고, 중세에는 자기(자신과 영혼에 대한)에 관한 모든 것을 고백해야 하는 제도를 종교적으로 만들었다. 늘 그랬듯 이 책에서도 푸코는 역사적 문헌을 파헤치는 작업을 거쳐 각 시기에 나타난 구체적인 삶의 양식들을 드러냄으로써,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논의하고 있다. 주체화 관심자로, 도덕/윤리를 공부해온 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인상 깊었다. 아래에는 다소 길지만 공부를 위해 관련 내용을 인용해둔다.
푸코는 이 책 서두에서 도덕과 윤리를 구분해보고 있다. 일단 도덕에 ‘금욕’적 면모가 포함됨을 인정하고 설명을 시작하는 듯하다. 이 부분에서 근대 규율에 입각한 도덕은 ‘규약지향’에 가깝고, 그가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시공간인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에 나타난 양식은 ‘윤리지향’에 좀 더 가까운지 더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 따르면 윤리는 좀 더 자유로운 주체가 단순하고 덜 엄격한 삶의 양식, 공식, 원리를 가지고 자기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자율적으로) 적용해 보인 행동으로 나타났을 테다. 푸코는 종교개혁 이전 중세 가톨릭 제도에 대해 금욕주의적 영성운동들이 주기적으로 법률화, 규약화에 항거해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푸코는 이 책 서두에서 고대에 나타난 ‘윤리’로서 삶의 양식 특성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앞으로 당대 양생술, 가정관리술, 연애술, 진리와 맺는 관계(여기서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분석하겠다고 책 내용을 개괄하고 있다. 규율도덕이 익숙한 근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아래와 같은 푸코의 문제의식이 흥미롭고 새로웠으며, 실제로 푸코가 읽어낸 구체적인 면모가 의미 있었다. 즉 그는 이 작업에서 고대(정치에 참여할 시민인 자유인이나, 자기-가정-국가를 통치해야할 남성)인들이 그런 삶의 기술을 왜 필요로 했는지, 그들이 그러한 기술을 구사해서 얻고자 했던 효과를 드러내 보이고 있어 재미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성이나 쾌락이 불러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구조를 보고 있노라면, 푸코가 다른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했던 작업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수행한 작업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푸코는 이 책에서 내내 삶의 형식(방식)이 가진 전략, 기술 예술적 면모를 강조해 드러내고 있다. 그러한 양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편적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적절하게 선택한 방식에 대한 문제였다. 푸코는 이 문제에 대해 근대적 도덕보다는 윤리에 가깝지 않느냐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실존의 미학 논의에서 ‘윤리’, ‘태도ethos’라는 개념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고대 철학 전체를 봤을 때 ‘자연’(타고난 본성, 계절 상황 등)에 따라 적절하게 삶의 양식을 선택하고 행동을 관리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였을 테다. 푸코가 ‘자기의 테크놀로지’ 등 삶이 가진 ‘기술적 측면’을 드러내고, 이 책에서도 양생술을 중요한 한 장으로 배치하여 논의한 이유일 듯하다.
2. 세 영역: 양생술, 가정관리술, 연애술, 그리고 진실과의 관계 “주체의 해석학”: http://blog.yes24.com/document/10404936 에서 푸코는 고대 안에서 다시 그리스(소크라테스) 시기와 헬레니즘 시기(기원 후 1-2세기) 주체화 양식을 구분해 분석한다. 이 “성의 역사2”에서도 아직은 전자에 집중해서 분석하는 편에 가까운 듯하다(“성의 역사3”에서 다음 시기와 중세를 분석하는지? 아직 읽기 전이라). 전자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 푸코는 “주체의 해석학”에서 “알키비아데스”를 언급하며 앞으로 통치자가 될 알키비아데스가 수행해야 했을 자기 통치(자기 인식)를 중요한 문제로 다룬다. 비슷하게 여기 “성의 역사2”에서도 자기 통치-타자 통치, 가정관리-도시통치 기술의 동형성이 중요한 이슈이다. 고대에 ‘자기가 자기와 자유롭게 관계 맺어야 하는 사람“은 자유인인 성인 남성이었다. 그들은 정치에 참여해야하는 시민이었다. 그들은 대중이 보기에 ’통치할 성향과 능력‘을 갖춘 자로 ’드러나 보여야‘ 했다. 푸코가 보기에 ’양생술‘은 자기 몸을 계절이나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술, ’가정관리술‘은 가장이 아내와 재산을 잘 통치하되 외부에서 주어진 규율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예를 들어 가정을 잘 돌보는 아내라는 특별한 지위를 존중하기 위해 외도하지 않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킴) 실천, ’연애술‘은 장차 정치에 참여해야할 소년이 자신이 그러한 자질이 있음을 연애 상대에게 인정받으면서도 그 연애를 함부로 수락하지는 않고 적절히 처신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미덕을 드러내 보이기를 다루고 있다. 푸코는 이 세 분야에서 고대 그리스인 자유인인 남성들이 어떻게 자기와 타자를 통치하는데 자기 자신과 적절한 관계 맺기 및 삶의 양식 선택을 잘 활용했는지 드러내 보인다. 특히 그가 보기에 전과 달리 소크라테스-플라톤 철학적 맥락에서 ’진정한 사랑‘에 관한 정의를 내리는 흐름이 생겨났다. ’진실‘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자기 자신을 관리하며 선택한 삶의 양식을 상황에 따라 적용해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통치 능력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 인정‘ 받는 자유인 남성들의 모습이었다.
‘가정-국가 이질동형성’(가정관리기술-도시통치기술 동형성) 때문에 통치할 사람이 ‘절제’ 능력을 가졌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했다. 자기 통치에서 절제가 어려운 사람은 통치할 때 ‘권력 남용, 폭력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었다. 이렇게 당대에 “절제와 권력 사이의 연계”가 있었다. 그러므로 특히 장차 정치에 참여할 소년은 대중들 앞에서 (연애술에 있어) 절제에 관한 ‘시련’, ‘시험’을 받는 맥락이 있었다.
푸코가 책 내내 강조하는 부분은 당대 문헌에서는 세밀한 외부 규율인 도덕 법칙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책을 도덕·윤리 교육 맥락에서 읽고자 할 때, 당대에는 어떤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읽을 수 있었다. 그러한 교육은 중세나 근대처럼 세밀한 외부 규율 없이 단순하지만 상황에 따라 주체가 자발적으로 선택, 적용 가능한 큰 공식이나 원리로서 삶의 양식 가르쳐주기에 초점을 맞추었을 듯하다. 이 책에 따르면 당대인들은 ‘미덕’을 드러내 보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 가정과 도시도 잘 다스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제(아스케시스)’를 실천한다. 그 절제는 “개인이 스스로를 도덕적 주체로 세우는 데 필요 불가결한 실천적 훈련으로서의 아스케시스”이다. 쾌락에 예속되지 않도록 절제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성 뿐만 아니라 행동과 영혼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세에는 ‘고백’ 문제로, 근대에는 (심리학 등등) 욕망 해석 문제로 변하게 된다(아마 “성의 역사” 다른 시리즈들에서 더 깊이 논의했으리라 기대).
3. 자유, 진리 푸코를 몰아 읽으면서 계속 부딪치는 단어가 ‘자유’, ‘진리’이다. 푸코는 여러 강연과 글에서 역사적으로 다양한 시공간에서 일어났던 ‘진리 게임’을 논의한다. 그는 권력이 관계 문제이고, 권력-지식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권력 관계망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진리 게임’을 벌인다. 푸코가 이 시리즈 마지막 장에서 소크라테스-플라톤 논의에서 ‘진정한 사랑’ 이슈가 생겨났음을 굳이 짚고 넘어가는 의도가 있었을 듯하다. “향연” 등지에서 엿볼 수 있는 소크라테스-플라톤 논의에서 진정한 사랑은 그야말로 ’본질‘적이며 정신적인 사랑만으로도 성립 가능, 소년만이 주체인 연애술과는 다르게 나이가 들어서도 ’우정‘처럼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 일종으로 변형되었다. 당대에 이성을 가진 인간은 ’인식=실천(앎=삶)’이 이루어져야 진실한 삶을 사는 인간이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삶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타자 통치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고 믿었다.
4. 실존의 미학 푸코 후기 저작이라 ‘미’, 아름다움을 포함하는 문장이 자주 등장하고 있어 다 옮겨두었다. 표현은 존재의 미학, 삶의 방식, 가시적 미와 같은 방식으로 변주한다. 특히 요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삶의 양식이 ‘현시’된다는 부분이다. 특히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몸으로 실천한 기술들을 무엇으로 선택했는지는 어떻게든 자기나 타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드러나 보인다’. 푸코가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실존의 미학을 연관시켜 언급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앞으로 “성의 역사3: 자기 배려”에서 또 언급하리라 기대한다.
고대 문헌을 분석한 내용이라 지금 읽으면 여성들이 분개할 만한 지점이 많은 책이기는 했는데 푸코가 ‘그러한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려고 의도적으로 가져온 부분은 아닌 듯하다. 당대에 결혼한 아내가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한 부분이 (현대인인 여성으로서 선호와 별개로) 흥미로웠다. 결혼한 아내를 실제로 아름답게 만드는 미덕은 가정에서 자기 할 일을 잘 하는데서 드러난다. 당대 사람들은 심지어 그런 행동(살림살이?)을 통해 아름다운 육체까지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한편 소년이 보여야 할 아름다움은 통치자로서 힘과 용기를 드러내 보이는 육체적 힘, 건장함 등등이었다(성인 남성이 소년에게 연애를 거는 문화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스럽게? 연약하고 예쁜’ 소년이 인기 있었으리라는 편견이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 푸코는 여러 차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장치 좋은 통치자가 될 역량을 보이는 소년은 (유력자인) 성인 남성에게 연애 대상으로 선택되어, 연애술이라는 시련, 시험에서 어떤 처신을 보이는지 검증, 평가 받았던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피에르 아도,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 http://blog.yes24.com/document/11015475 속 주장처럼 고대에 철학이 ‘삶의 양식’이었다면 소년이 연애술에서 보이는 ‘삶에 관한 자기 자신의 선택’ 역시 일종의 철학적 실천이었다고 볼 수 있을 테다. 그 그리스 소년이 처한 시련(추종자에 대한 처신, 연애술) 상황에서 스스로 적절한 수행을 통해 자신이 지배력(능력과 자질) 있는 자임을 드러냈다. 그러므로 푸코는 소년에게 ‘철학에 대한 훈련’이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철학을 갖추어 나갈수록 그는 자기 통치, 타자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실존의 미학이 존재의 ‘미덕’을 ‘현시’하는 일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는데 장차 통치자가 될 자질을 보이는 소년에게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의 처신에 관한 ‘평판’이 존재했다. 푸코에 따르면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도시에 속한 사람들은 공동의 예술 작품처럼 소년의 삶을 함께 만들어갔고, 소년은 통치자로서의 권위를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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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책의 배경에 대한 소개가 조금 필요할 것 같네요. 1976년 『성의 역사 ; 앎의 의지』를 낸 푸코는 8년 후에야 『성의 역사 ; 쾌락의 활용』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3권인 자가에의 배려를 쓴 푸코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이 책 '쾌락의 활용'이 나오기까지 8년이란 기간이 걸려야 했던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기존의 푸코가 권력과 담론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면 이 책 '쾌락의 활용' 이후부터는 중심 축이 조금 분산되어집니다. 그 분산되어진 관심은 바로 '주체'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다시 말하면 이 책은 푸코의 사상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전환점이 된 책이기도 한 것입니다. 푸코는 책의 서론부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성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축, 즉 성과 관계된 지식의 형성과, 그것의 실천을 조절하는 권력 체계, 그리고 개인이 그 안에서 스스로를 이 성의 주체로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해야만 하는 형태들.." 이렇게 '쾌락의 활용'에서 등장하는 주체의 모습은 윤리적인 담론과 규범 안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규정하고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책의 내용은 그리스인들의 성생활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싣고 있습니다. 동성애, 특히 성인 남성과 소년과의 관계, 그리고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의 관계, 그리고 남성의 육체 등을 통해 그리스인들이 엄격한 규약과 도덕률을 통해 자신들을 인식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인식작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푸코의 주체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검열'이라는 말이 자꾸 생각나더군요. 이 책을 통해 제가 푸코의 글의 의도를 얼마나 파악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제대로 이해나 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푸코의 글은 역시 그 중심을 잡아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숲을 뚫고 나왔을 때의 만족감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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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헌책방에 별게 다 들어온다.
이걸 헌책방에서 구입하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ㅎㅎ 어려운 책이라 머리에 쥐가 나서 힘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푸코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이상한 소리겠지만,
푸코에 대해서 말하는 많은 사람들은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이후의 푸코에 대해서는 극히 거리감을 두는 것 같다.
푸코에 관한 책들에서도 '앎의 의지' 이후에 대해서는 거의 말해주지 않고 단지 그가 기존과는 달리 분석의 방식을 전환하고 맹렬하게 작업에 임하다가 장렬히 최후를 맞았다는 식으로 넘겨버린다(알다시피 AIDS로 인해 사망했다).
때문에 그가 죽기 진전까지 작업을 했던 성의 역사 4, 5권은 출판되지 못했고, 그가 몇번의 탈고를 거듭한 결과물만이 존재한다(출판을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했으니, 출판이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혹시 스미스 씨처럼 불태워달라고 해서 불태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쨌던 '쾌락의 활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분석을 했다.
'앎의 의지'에서 어느정도 자신이 그동안 끝없이 얘기했던 '권력'이나 기타 많은 것들을 직접 설명해주며 어느정도 자신의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면, '쾌락의 활용'도 기존처럼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은 여전하지만(말 그대로 뒤집어서 생각하게 만드는데는 도가 튼 인간이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권력이나 감시 등등을 얘기하며 거대한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묶여버리는(그리고 보는 자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정성일 씨의 말대로 밑에서 위를 보도록 만들거나 위에서 밑을 보게 만드는) 그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서 보다 뜬금없어 진다.
이해했을리 없겠지만 그가 '쾌락의 활용'에서 말하는 것은 이전의 작업들이 어떻게 휘둘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였다면 지금부터는 어떻게 너가 너로서 판단하고 지배할 것인지(이것 말고도 얘기를 하지만 큰 줄거리는 이거라고 생각된다) 말하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는,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지배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지배당하지 않고 지배하는,
삽입되지 않고 삽입하는.... 등등등
푸코야 읽어도 읽은게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는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충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연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쾌락의 활용' 부터는 푸코를 무시하고 모르는 척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푸코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이 항상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 등등을 끝없이 얘기하면서도 절대 '쾌락의 활용'과 '자기에의 배려'는 얘기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지젝이 '삐딱하게 보기'에서 말년의 두 작품에 대한 한마디 촌평을 한것이 내가 읽은 두작품에 대한 평가가 전부이다. 그외에는 그는 관점을 달리 했고 그 결과물이 그것들이다 정도일 뿐이니까.
고대 그리스 시대의 성에 대한 관념과 남성애와 부부관계 및 연애술 등에 대해서 얘기를 하며 당시는 어떤 생각과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다루었는지를 얘기하고 그것을 말하며 지금을 다시금 돌아보는 방식을 취한 푸코는 확신에 찬 느낌이라기 보다는 보다 곤혹스러운 느낌으로 말을 하는 것 같다.
너무 끊어서 읽었기 때문에 제대로 읽지 못한 느낌이었고,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이렇게 많은 말을 한다는 것이 못난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단순한 인간이기에 이렇게 수다를 떨게 되는 것 같다.
여전히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게 되면 떠오르게 되는 사람이고,
무언가를 판단할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도록 권하도록 만든다.
간만에 책장에 묵혀둔 '감시와 처벌'을 끄집어 내게 만들도록 했는데...
이걸... 어쩌나? 다시 집어넣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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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가 본질적으로 남성적 구조라는 것, 이로부터 앞의 결론과 대칭적이고 반대되는 도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것은 무절제라는 것이, 그것을 여성다움에 결부시키는 수동성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무절제하다는 것, 사실 그것은 쾌락의 힘에 대해 무저항의 상태, 그리고 무력하고 복종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이 같은 남성다움의 태도를 가질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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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http://blog.naver.com/ghost0221/60038915915 앎의 의지 / 지식의 의지 : http://blog.naver.com/ghost0221/220617132934 항상 미셸 푸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때마다 들게 되는 생각은 어째서 성의 역사 2권부터, 즉 2권 ‘쾌락의 활용’과 3권 ‘자기에의 배려’에 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적은 것일까? 였다. ‘광기의 역사’나 ‘감시와 처벌’과 같은 내용과 관련해서는 항상 자주 거론되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그 논의를 다시금 검토하고 지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이전 저서들에 비해서 그가 죽기 전까지 붙들고 있었던 성의 역사와 관련된 논의들은 상대적으로 적게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논의가 복잡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게 아니면 다른 접근을 보이고 있지만 그게 그다지 관심을 주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일까? 역자의 말대로 어떤 형태로 성행위가 도덕적 영역을 이루게 되었는지에 관한 논의로 가득한 ‘쾌락의 활용’이 그다지 관심이 들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항상) 푸코의 논의는 무척 의미심장한 부분들도 많고 지금 시대를 생각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를 돌이켜 봤을 때 흥미로운 구석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스꽝스럽게 말한다면 ‘쾌락의 활용’을 통해서 자기에 대한 관리에서 시작해서 절제력에 대해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권력과 지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자제력과 규범과 도덕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지배를 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지켜내게 되었던 것인가? 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는 ‘쾌락의 활용’은 푸코가 항상 그랬듯이 흥미로운 논의들을 내놓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나처럼-생각처럼 쉽게 읽혀지지는 않고 있고, 간혹 글을 읽다 논의의 핵심을 놓치거나 헤매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게 되기도 해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관점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푸코는 자신의 논의와 연구의 방향이 ‘앎의 의지 / 지식의 의지’에서 다뤘던 방식에서 많이 벗어났음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접근을 하려고 했음에 대해서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서론을 통해서 어째서 그런 입장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으며, 그 설명 이후 그가 말하는 존재의 기술에 대해서 새롭게 접근을 하고 있다. 결국에는 도덕적 엄격함이라는 것이, 지금과 같은 종교적 도덕적 엄격함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선택과 입장에서 하나의 형식으로 규범-양식화로, 더 직접적으로 말해서 강제적으로 다뤄지게 되는 과정(강제성을 갖게 되는지를)을 철저하게 탐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정하고 생각하던 입장에서 어떻게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일종의 강제적인 성격을 보이게 되었는지를, 상대적 자율성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그 뒤바뀜의 과정을 고대 그리스 시대를 통해서 확인하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자신의) 쾌락을 인식했는지에 대해서, 그 다양한 성격들과 특성들을 자세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남성과 남성-소년의 사랑(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크게 다뤄내지 않고 있다)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려고 했고 생각했는지에 관해서 자주 검토하고 있다. 푸코는 일종의 스스로에 대한 자기 지배에 대해서 큰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을 다시 말해서 절제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양생술, 가정관리술, 연애술에 대한 상세한 논의들을 통해서 자기 스스로 절제하고 관리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확인하고 있다. 주체가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되고 그것이 변화되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국가가 어떤 식으로 개입되게 되는지 상대적 유연함이 어떤 식으로 경직되고 공고하게 되는지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를 하게 되는지 남성과 남성-소년의 관계는 또 어떻게 변화를 겪게 되는지 지배와 피지배에 있어서 자제력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게 어떻게 권위를 갖게 되는지 자기 스스로에 대한 강제력과 절제가(상대적 유연성과 자율성이) 하나의 규정된 틀로, 정해진 규범으로 외부의 강제와 절제로 이행하는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를 자세하게 탐구하는 ‘쾌락의 활용’은 반드시 이런 식으로만 이해하며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기에는 아직은 부족하기만 한 능력 때문인지 그저 읽어봤을 뿐이라고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좀 더 잘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니...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의 생각들을 좀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조금은 새롭게 생각하는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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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앎의 의지)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과연 성이 억압되었을까? 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한다.즉,성은 오히려 담론화되고,확대,재생산되었다고 말한다.푸코는 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했다.성도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과 함께 나고 자라고 다양화 된 것이다.즉,2편(쾌락의 활용)에서는,경험으로서의 성을 말하고자 한다.2편에서는 주로 고대 그리스에서 쾌락이 어떻게 담론화되고 활용 되었는지를 다루고있다.
푸코는 성을 억압의 메커니즘으로 가정을 하고나서,어떤 진실의 작용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욕망인으로 인식했을까? 문제를 제기한다.그래서 처음 책을 쓸 때와는 달리 고대에 걸쳐 형성된 자기 해석학을 연구에 재편성한다.1편에서는 기독교(고백)에서 담론의 진원지를 찾으려 했다.하지만 2편에서는 고대 이교도문화에서도 금욕적인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고 말한다.이교문화에서는 금욕보다 '자기통제의 기술'을 중요시했고,<성의 역사>는 자기 통제기술의 역사로 말 할 수 있다.진리의 축,권력의 축,윤리적 축 이라는 세 개의 축은 푸코의 사상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계보다.2편<쾌락의 활용>은 윤리적 축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기독교는 성행위에 악,죄,타락,죽음과 연결시킨 바면,고대 그리스에서는 오히려 긍정적 의미들을 부여했다.아프로디지아(Aphrodisia)란 아프로디테의 행위의 개념으로 표현되며,이것이 윤리적 경험의 씨앗으로 본다.쾌락의 도덕적 제어는 무절제에 대항해야 한다.그러나 의무와 금지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부과되지 않는다.엔크라테이아(Emkrateia)란 용어는 자기에 의한 자기지배의 역학과 그것에 필요한 노력을 가리킨다.쾌락에 관한 도덕적 행동의 기호가 되는 것은 권력을 의한 투쟁이다.즉,쾌락과 욕망에 맞서는 것이다.
푸코는 고대 그리스사상가들(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탈레스,디오게네스등)의 쾌락과 도덕에 대한 실천의 영역과 철학적고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고대 그리스사상에서는 쾌락의 절제가 중요한 도덕적가치,미학적가치,진리치이기도 하다.그리스인들은 성행위를 악으로 이해하지 않았으며,윤리적 가치 폄하의 대상도 아니었다.푸코는 주체화의 양식이 없는,금욕주의나 자기의 실천이 없는 도덕적 주체의 정립은 있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양생술>에서는 특히 자기 절제와 위험한 행위의 폭력성에 대한 통제가 문제였다.폭력에 대한 공포와 노쇠에 대한 두려움,개인의 생존과 종족 유지라는 이중의 근심이 나타난다.<가정관리술>에서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사해야할 권력이 문제시되었다. P245 남편이 가진 어떤 특권에 의해 규정되는 절제의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부부관계의 정치적 형태가 아내에 대한 남편의 권력은 귀족정치적 성격을 띤다<연애술>에서는 무조건적인 금욕을 강요하지 않지만 그러한 금욕을 지향한다.
소년애를 다루는 그리스 사상에서 소년의 지위는 난해하다.역사적 특수성은 그리스인들이 소년에게서 쾌락을 구하였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이러한 쾌락의 수용이 단순하지 않았으며,모든 문화의 생성을 야기하였다는 데에 있다.소년애는 고대 그리스에서 오랜 세월동안 끊임없이 담론을 만들어냈다.그들은 왜 성적 취향(남색)을 둘러싸고 환심을 사는 행위,도덕적 성찰,철학적 금욕주의를 만들어 냈을까? 그것은 성 관계와 사회적 관계와 동일한 유형으로 파악된다.금욕주의가 소년애를 평가절하하는 방법은 아니었다.그것은 반대로 소년애를 양식화하는 방식이자,그것에 형식과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가치화하는 방식이었다.
푸코는 그리스에서 쾌락의 담론이 소년애에서 여성으로,육체로 문제제기의 핵심이 매우 느린 속도로 그 중심이 이동하고 교리들은 통합된다고 2편을 마무리하고 있다.3편(자기 배려)까지는 출판했으나,4편(육체의 고백)은 사후출판을 원하지 않는 다는 그의 유어에 따라 출판되지 않았다. 2편은 번역이 매끄러워서 1편보다 조금 쉽게 읽었다.어렵지만 3편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