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 보였던 "빨치산 사령관의 아내, 무명옷 입은 선생님"이라는 부제. 이 때 들었던 생각은 남편과 아내 모두 '빨갱이'로써 아내는 선생님의 역할을 했겠지...였다. 몇 번이나 지나쳤을까, 드디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속의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남한에서 태어나서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전도유망한 여선생 이숙의가 후일 빨치산 사령관이 되는 박종근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내 머릿속에는 세 가지 장면이 선명하다.
#1. 연인으로서의 이숙의 남북한의 대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힘든 시기에도 박종근에 대한 이숙의의 사랑은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이숙의가 극우나 남한 체제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박종근처럼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지하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이념을 초월하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사랑은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2. 선생님으로서의 이숙의 해방 이후의 공간은 참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렇다고 많은 책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고,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처지도 썩 좋지 않았을텐데 제자들에 대한 이숙의의 자세는 오늘날에도 귀감이 된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도록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교사로서 잘못한 일들(예컨대 학급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당신의 반에 있던 동생에게 화풀이를 한다든가)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술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3. 박종근과 이숙의의 딸, 박소은 또 한 가지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선생님으로서의 그들의 소생인 박소은의 삶이었다. 박소은이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 거기서 아예 정착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에는 아버지가, 남한에는 어머니의 묘가 있다는 그 상황은 말 그대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책에 쓴 것처럼 마치 이혼한 부모님을 보는 것처럼 그녀가 남북한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이 책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이다.
|
|
아직도 색깔이 지배하는 한국사회.그녀의 남편은 6.25전쟁중 남로당 경북도당위원장이었다.그녀는 지울수 없는 색깔을 가슴에 지니면 살아왔다. 교육자로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의 기록을 남기고 이미 떠났다. 그러나, 이 글은 이념에 대한 글도 아니고,정치색이 있는 것도 아닌, 비극적 시대를 살아가며 한남자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끝까지 간직한 순애보에 대한 기록이다. 운명적 만남이라 할수 밖에없는 첫 만남의 강렬한 느낌과 떨림을 생애를 간직하며 살아왔고 생의 마지막순간 그 사랑이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세상을 떠난 한 여자에 관한 글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은 때로는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이 어떻게 개인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는가를 깨닫게하고, 생애를 관통하며 지켜야 할 가치가 분명히 있음또한 알게해 준다. 사람은 살며,사랑하며 그속에서 슬퍼하고, 기뻐한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감정조차도 사치일수밖에 없는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의 짧은 기억만으로 생애을 지탱해나간수많은 삶이 있음 또한 인정하고, 그 기록들이 소중한 우리의 자산임을 알아야한다. 한 여자의 길고도 슬픈 사랑의 기록은 죽음으로서 멈춘것이 아니라 계속된다. 힘들고, 아픈 기억은 잊어버려야하는것이 아니다. 그것을 오롯이 간직하여 삶의 새로운 정화로 승화시키나가야하는것이다. 사랑이 가벼운 농담처럼 여겨지는 요즈음 세태에 깊은 떨림과 울림이 무엇인지 알게해주고, 사랑에 대한 긴 여운을 남겨주는 소중한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