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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그게 뭔데?]
책의 표지에서 아이의 얼굴이 온통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위에는 아이의 얼굴을 덮고도 남을 주먹이 강하게 스크래치 되어 있다. 프랑스 청소년 소설이라는 아동학대를 다룬 소설이라는 얄팍한 지식을 갖고 읽는 내게 아이의 글을 통해 비춰진 어른들의 세상은 가슴이 먹먹해 질 정도로의 숨을 고르기 조차 조심스러웠다. 무릇 아동학대를 다룬 소설책의 관점이 적나라하고 사실적이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이 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 말했듯 나 역시 동감이다. 사실 첫 장을 넘기며 읽을때 아이가 읽기 전 먼저 본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내용들이 부정적인 표현들이 서슴없이 표출되고 있어 당혹스러움을 감추긴 어려웠다. 국적은 달라도 아이들의 마음은 한 길을 걷고 있을터 글 속에 표현된 단어 속에서 끓고 있는 분노와 지나칠 정도의 경계성,외톨이라는 꽉 막힌 자기만의 굴레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가 정작 남의 나라의 남의 아이의 일이라고만 생각하고 담기엔 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험악하고 메말라가고 있는 민둥산에 벌거벗은 나무같아 울컥 치밀어 오른다. 겉으로는 평범함을 안으로는 고통과 분노를 삼켜야 하는 부모의 무자비한 폭언,폭력에 시달리며 하루하루가 온통 무지개 빛으로 펼쳐질 나이에 사랑을 충족히 받을 나이에 부모와의 관계가 사랑이 아닌 몹쓸 사슬관계처럼 되어버린 상황이 믿고 싶지 않고 확인하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행복이란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을 우리네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각하기에 이 아이의 행복을 앗아간 부모을 그들이라 칭한 아이의 심리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아이에겐 심리적으로 항상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어 아무리 외부적인 환경요인이 바뀐다 하여도 내적인 변화가 일지 않는다면 정말 생각하기 끔찍할 정도의 일들이 우려되고도 남기에 무언가 방법을 강구하지 않음 안되는 꼭 해야 하는 절대절명한 때가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끝을 달릴때즈음 아이 스스로 더러움을 씻고 그간에 고통들의 흔적을 치유하며 거센 폭풍속을 헤치고 나온 내게 적어도 편한 마음으로 덮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멀리 아니 지금 내 가까운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도 모르는 불쌍한 영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을터 그것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들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서면서 내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이라고 또한 아이들은 물질적인 것을 기억하기보다는 우리가 사랑으로 소중하게 여긴 사실을 더 기억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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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먼저 보아야 할 책]
청소년 도서를 읽을 때는 분명 초등대상의 도서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조도 그렇지만 대상을 분명히 어린이로 잡지 않는다는 점이 확연한 차이이다. 보다 심도 있게 아이들의 심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청소년 소설은 내게 읽는데 두려움을 주기도 하고 설레임을 주기도 한다.
쉽지 않은 주제인 가정 폭력을 다룬 청소년 도서라고 해서 사실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대했다. 아~ 탄식이 절로 날 만큼 이 책을 무거움에 그 무게가 더해진 버거움으로 다가왔다. 가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무관심과 물리적 폭력에 소년은 이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게 입고 있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년을 시커멓게 그린 이유는 그 상처받은 마음의 표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죄책감없이 자신이 낳고 먹인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종속물로 여기고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는 이미 아들에게 아버지가 아니었다. 때리는 자! 정말 섬뜩한 표현임에도 그만큼의 분노가 소년의 가슴에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가정 폭력이 묵인되면서 오래 가는 것은 가정 내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묵인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저하된 가족구성원 때문에 더욱 그러하기도 하다. 때리는 자의 옆에 있는 엄마 역시 소년에게는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너무도 사실적인 표현에 아직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에게 권해주기는 두려움이 앞선다. 조금만 더 성숙하면 나와 다른 아이들도 있음을 알려주려고 한다. 사실 이 책은 청소년 도서라고는 하지만 내 가족 외에 무관심한 우리 어른들이 보아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나만 잘 살고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사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위에 관심을 갖고 더불어 잘 살 수 있을 때 그때 우리 아이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내 주위에 혹시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은 없는지 돌아보게 되면서 또 한 가지 이런 폭력이 아니더라도 자식이라는 이유로 내가 혹시 아이에게 주는 강압과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의 폭력은 없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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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가정폭력을 다룬 작품이라길래, 아이에게 다양한 작품을 접해 보게 하고 싶은욕심이 앞섰다. 나름 난 가정폭력과 관련없다고 생각하기도 했기에, 이런 작품도 간접 경험을 해보라는 뜻에서 이 책과의 만남을 원했었다.
가정폭력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누구나 가정폭력을 당한다면 그것은 누구에게도 알리고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방송매체를 통해 접할 때도 너무나 끔찍하여 차마 볼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 좀 세다는 자가 그보다 힘이 약한 상대를, 주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행해지는 경우나, 어른들이 노인에게 행해지는 경우,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표지에 그려진 커다란 주먹에 작고 여린 그저 무방비로 노출돼 당할 수 밖에 없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듯한 아이의 모습이 바로 폭력의 희생자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주위에 있는 아이의 모습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저 난 그러지 않으니, 내 아이들과는 상관없으니 생각했던 나 자신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 책은 가정폭력에 중학교 4학년에 다니는 열네 살 소년이 겪은 가슴 아픈 성장일기이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고, 감수성이 예민해지기 시작하는 열네 살이란 나이에 온 몸에 가해지는 구타와 언어폭력으로 인해 마음에 빗장을 걸고, 인격이 형성되어 가는 중요한 시기에 온통 상처뿐이다.
너무나 사실적인 표현에 읽으며 몇 번이나 책장을 열고 닫았는지 모른다. 폭력앞에 그저 당할 수 밖에 없는 아이의 모습에서 내 아이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두렵고, 가슴이 아려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폭력 묘사 장면이 여러번 등장한다.
뭔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가? 소년이 이토록 맞고 있을 동안 이웃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학교에서는 무엇을 한 것인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반문해 보지만 사실 나도 두렵다.
소년은 때리는자(아빠)와, 옆사람(엄마)이라고 표현한다. 폭력을 가하는 사람은 소년에게 이미 부모가 아닌 것이다. 소년은 그들에게서 떠나는 것,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메모를 남겨놓고 온다. 네 아내가 죽었어. 나! 나는 멀리 있어. 그리고 너! 넌 이제 엉망이 된거라고.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난 워낙 습관이 되어 있어서.)
열네 살 소년이 쓴 글에서 소년의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이것이 열네 살 소년이 쓸 수 있는 말인가? 아동학대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의 증오가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그 뒤 몇 달간, 사람들은 소년을 치료하고, 재판하고, 어디로 데려가고, 이송하고, 얘기를 듣고, 지도했다. 그리고 쓰고 말하면서 상담도 했다. 이제 소년은 자신앞에 놓여있는 벽을 서서히 허물것이다. 거기에 희망의 빛이 조금씩 비출것이고... 가슴에 남아있는 상처도 아물것이다.
아동학대에 관한 이 책의 주제는 무거웠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가슴이 쓰리지만 내 주위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고 가정폭력, 방임등 아동학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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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혹시 자전적인 소설이라던가, 주위에 있던 누군가의 모습이라던가 그런 에필로그를 읽게 될까봐.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거의 그렇지 않았다는 점. '거의'라고 하는 이유는 여러 시민단체들을 통해 사례를 조사해서 그것을 토대로 썼다고 하니 완전 허구는 아닌 셈이다. 그래도 일단 '소설'이라는 점이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정말 이런 부모가 있을까? 자신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로지 자식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말이다. 체벌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옹호하지도 않는 입장이지만 이건 체벌이 아니라 학대다. 5학년인 딸은 우리가 조금만 협박해도 그건 아동학대라고 바른 소리를 해서 웃곤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서는 그런 말이 먹히지 않을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분명 부모의 말을 들어보면 아들이 버릇없고 못 된 짓을 하기 때문에 때렸다고 할테지. 하지만 이건...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체벌에 대해 그리고 가정사에 대해 간섭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외국에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런 일이 이렇게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책으로 나올 정도인 줄은 몰랐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 위로를 해야 하나.
옮긴이의 말대로 상황을 전부 표현하지 않고 짧게 처리함으로써, 그리고 주인공의 마음을 세세하게 나타내기 보다는 듬성듬성 건너 뜀으로써 독자는 더 급박한 상황으로 간다. 대부분의 아동 청소년 책이 그렇듯이 적어도 행복한 결말이라고 믿을 수 있을 만한 여지는 주기 마련인데 이 책은 과감하게 말한다. 거의 끝부분에서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면 여기서 책을 덮으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빠져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불행하게도 더 나쁜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폭력의 답습.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부모의 싫어했던 행동을 어느 순간 본인이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고. 아마 주인공은 부모의 폭력을 지독하게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썼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아주 최악의 방법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건 분명 소설인데도 여전히 불편하고 안타깝고 착잡한 이유는 아마 어딘가에서는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런 부모가 있을까. 보기 전에는 믿지 않는 이 의심병이 또 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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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방황하고 실패하면서 자신을 찾아야할 나이에 아무에게도 이해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사랑의 매라는 이유로 폭력에 시달린 주인공의 내면을 읽는 읽는 일은 너무 불편한 일이었다. 이 아이가 잘못 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안타깝게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의지와 능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책을 읽으려는 딸에게 읽지 말라고 하고 말았다. 아직은 내가 이 책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 고루한 생각을 가진 어른이기 때문일까 독특하고 의미있는 책이긴 하지만 쉽사리 청소년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긴 껄끄러운 책이다. 나에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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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목이 happy end다.
행복, 그게 뭔데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행복하게 끝을 맺고 싶다는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인지 자기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인지..
그림의 과격함에,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 사람이지만 색채와 선의 강렬함에 청소년의 울분이 조심스럽게 느껴진다.
친하게 지내는 중학생 녀석의 얼굴도 떠오르고, 2년 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아이도 떠오르고, 그리고 내가 겪은 중학시절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막막할 노릇이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로 막막하다. 나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내 존재감을 느끼기 위해 별별 행동을 할 수 있다. 그건 모든 세대를 불문하고 나타난다. 표현 방법만 다를 뿐.
부모라는 이름하에 철저하게 망가지는 한 소년을 난 보았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쓰는 글귀, 티비의 모프로그램에서 봤던 폭력으로 길들여져 자기도 모르게 폭력으로 동생을 다루던 아이도 겹쳐졌다.
세상의 아이들의 뒤엔 어른들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학습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청소년기의 특징을 모르고, 아니 내가 중학교땐 어떠했는지 떠올리지 못한다면 10대인 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와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의 속성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지나치고 때로는 무시하며 지나간다. 당연하다는 듯, 나는 바쁘니 알아서 하라는 듯.
내 아이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공부 잘 하고 반듯한 아이로 자라야한다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 아마 그렇게들 대꾸하겠지? 너나 잘해~
상처받은 아이는, 그리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어른이 된 사람은 여전히 상처투성이로 남아 있다. 배려와 따뜻함을 모르고 자신도 모르게 사납게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내 상처를 누가 볼까 두려워서. 내가 한 실수를 아는 사람이 혹시 있을까 두려워서.
나를 비롯한 어른들이여. 나를 인정하고 나를 좀 바로 들여다보면 어떨까.
책을 읽으며 거울을 한번 더 보게 된다. 그리고 내 아이를 좀더 끌어안게 된다. 단체생활하면서 어른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 아이를 보면서 내가 할 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부터 노력하자. 나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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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 보는 순간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온통빨간색으로 되어있으면서 커다란 주먹이 작은 아이를 향해 있어 무섭움에 떨고 있는 아이 책표지만 보아도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동학대” 가정폭력“ 이책을 읽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런 책을 읽지 않으면 되는데 아이들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손이 가진다. 이책의 주인공은 한참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때리는자, 어머니를 옆사람이라고 부르는 아이 그렇게 부르는 부모들이 얼마나 무서우면 통로가 수없이 나 있는 큰건물안을 걷고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을까? 그 아이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가족관계는 끝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부모에게 반항이라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소년 담배를 피우고, 서점에서 책을 훔치고, 혼자만의 상상으로 포르노를 쓰기도 한다. 책을 훔친것과 포르노를 쓴 것을 들켜 매질의 강도를 지나 아이가 계단에서 굴렸다며 병원에 입원을 시킬정도로 맞고 퇴원을 한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후 아이를 결국 엄마를 때려 집을 도망 나온다. 이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사실적이고 거친표현이 실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정도로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다. 하지만 끝을 보면 시민단체를 통해 여러 가지 다양한 사례를 취재하여 쓴 소설이라고 쓰여 있다. 아무리 소설이라해도 요즘 이슈되고 있는 아동학대 가정폭력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쉽게 읽고 넘길 것이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소리를 지르고 매한번 안될수 없지만 이러한 방법은 일시적인 효과를 볼지 모르겠지만 아이나 부모자신들에게도 옳지않은 행동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거운 책임이 항상 뒤따른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책이였다. |